이방인 -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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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57년 마흔넷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지만, 1960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어제였나 보다. p.8


이렇게 시작하는 『이방인』은 첫 문장부터 사람을 끌어들인다.

엄마가 왜 죽었을까? 어떤 사이길래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 그것도 자세히 모를까?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든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해수욕을 즐긴다. 거기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여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같은 건물에 살던 레몽과 친구가 되고,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

온몸은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날카롭고 귀를 얼얼하게 하는 소리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어버렸다. p.76


뫼르소는 살인을 저질렀다.

태양 때문에….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다니….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뫼르소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뫼르소는 엄마 장례식 때도 그랬고, 좋아하는 여자가 '나랑 결혼할래?' 하고 물었을 때도 그의 대답은 평범하지 않았다.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감방에 가고, 재판을 받는다.

재판을 받는 과정은 2부에 나오는데, 예심판사나 검사들은 뫼르소의 '살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뫼르소라는 인간 자체를 심판하려고 한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여인을 만나 즐거운 희극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여인과 만나 해수욕을 하고, 집에 갔다는 이유로….

판사와 검사는 뫼르소가 살인을 계획했으며, 살인을 저지르도록 예정된 자로 규정하고 단죄하려 한다.

뫼르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재판이 아닌 그 자체를 재판한다.​

감옥 생활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자유로운 신분이었을 때처럼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발바닥 아래로 밀려드는 첫 파도의 소리, 몸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 물속에서 느끼는 해방감을 상상하다 보면 이 감옥의 벽들이 얼마나 나를 옥죄고 있는지 실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도 몇 달간이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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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생활을 하며 뫼르소는 느꼈다.

자유로운 신분이었을 때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이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적응했고, 어느 순간 자신을 누군가가 마른 나무의 기둥 속에 넣어놓고는 머리 위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하늘만 보면서 살게 한다 해도 조금씩 그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참 적응을 잘하는 무서운 동물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심지어 부조리, 불평등조차 적응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방인』을 읽으며, 나도 혹시 부조리와 불평등에 굴복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죄수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여자 문제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도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이며 그런 대우는 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러려고 댁들을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려고라뇨?"

그래요. 자유란 그런 것입니다. 댁들에게 그 자유를 빼앗는 거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p.95


뫼르소는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 받는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이 가진 부조리성을 깨닫는다.

하지만, 뫼르소는 항소를 하지 않는다.

그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많은 사람이 그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기를 바라며 죽음을 맞이한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끊임없이 그려졌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전 한국외대 변광배 교수의 작품 해설이 담겨있다.

작품 해설은 다각도에서 분석을 해놓아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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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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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리다 쉬베크는 198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고,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다가 2011년 발표한 첫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한국에 처음 소개된 프리다 쉬베크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심연희에 의해 번역되었다.

템스강이 보이는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187번지에서 30년 넘게 책방을 운영하던 사라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스웨덴에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던 샬로테는 어느 날 영국 변호사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변호사는 샬로테를 영국으로 부른다. 이유는 이모 사라가 샬로테에게 서점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모가 런던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에 얼떨떨했지만, 상속에 관해서는 본인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꼭 영국에 가야 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샬로테는 하루라도 빨리 상속 절차를 마치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마르티니크가 너무도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고, 샬로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서점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샬로테는 사라 이모가 살던 서점 2층에 머물며 이모가 왜 자신에게 이 서점을 물려주었는지 이유를 찾는다. 이모의 집에 들어선 순간 자신의 엄마와 이모, 그리고 한 남자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왜? 엄마는 내게 이모가 있단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몇 해 전 돌아가신 뒤였다.

이모의 집을 정리하며 샬로테는 궁금증을 풀어가기 시작하고, 책의 마지막에는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마르티니크는 눈가를 훔쳤다. 샬로테는 아직 자신이 준 책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또 새로운 책을 추천해 주어야 할까? 샬로테는 자신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마르티니크가 보기에 그 말은 그냥 핑계였다.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독자가 되는 법이니까. p.236

책을 읽다 보면 동네 작은 서점의 장점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샬로테를 도와주는 주변 인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마르티니크의 성장 이야기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거절을 못 해서 이렇게 또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p.125

자신은 어떻게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날 이렇게 키워주면 된다는 설명서를 달고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마르티니크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못을 저지르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p.126

마르티니크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딸과 동생은 마르티니크에게 처음엔 부탁을 했지만, 어느 순간 부탁이 아닌 당연히 마르티니크가 해야 하는 걸로 생각하게 된다. 거절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아니, 안 돼."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마르티니크….

마르티니크가 소설 속에서 거절의 말을 했을 때, 독자로써 통쾌함이 느껴졌다.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극적인 반전이나 역동적인 부분은 찾기 힘들지만,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잔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한정적인 공간인 서점과 몇 명 되지 않는 인물들이 전부인데, 6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함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잔잔한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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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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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방식』으로 2023 이효석 문학상의 대상을 수상한 안보윤은 2005년 문학동네 작가 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작가다. 『애도의 방식』은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승규'는 동전을 던지며 '동주'에게 묻는다.

​"앞? 뒤?"

​동주가 어떤 대답을 하던, 승규는 동주의 뺨을 후려친다.

동전의 앞과 뒤는 매번 승규의 마음대로 바뀐다.

어느 날 승규는 친구 여러 명과 동주를 데리고, 폐건물 옥상에서 놀았다. 다른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승규와 동주만 남게 되었을 때 승규는 다시 한번 묻는다.

"앞? 뒤?"

​동주는 "호랑이"라고 답한다.

동주의 돌발적인 대답에 승규는 잠시 멈췄고, 동전을 확인했다.

그리고 동주의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

동주는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승규는 자신의 힘에 못 이겨 폐건물 아래로 떨어졌고, 죽음을 맞이했다.

승규 엄마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어 동주를 찾아온다.

"너는 거기서 대체 뭘 했니?"

동주의 엄마와 변호사는 동주에게 불리할 수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건은 마무리가 됐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고 형태를 바꿔 나를 끌어들였다. 옥상 위 그 자리로 끝없이 나를 불러들였다. 어느 때의 나는 승규의 주먹에 얻어맞아 어금니가 깨졌다. 어느 때의 나는 승규에게 휩쓸려 공사장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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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종료됐지만, 동주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거듭되는 상상은 현실보다 혹독했다. 나는 수없이 승규를 붙들고 수없이 승규를 밀쳤다. 매 순간 나는 필사적이었다. 오롯이 진심이었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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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한 동주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까지 끈질기게 찾아오던 승규의 엄마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동주를 찾는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진심이야.

여자가 말한다. 그러고는 뒤돌아 걷기 시작한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걸음걸이다. 흙길이 끝날 즈음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릴 것처럼 평범하다.

나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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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주는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글을 읽고 나니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도의 방식』이라는 다섯 글자로 이 소설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승규 엄마에게는 승규의 죽음이 이별의 시작이었다. 승규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동주를 찾아왔던 동안 승규 엄마는 남은 삶을 승규를 추억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동주에게 승규의 죽음은 또 다른 관계의 시작이었다. '나'를 괴롭히던 현실의 승규는 사라졌지만, 동주는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타협하거나 굴종하거나, 저항하거나 복수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동주'는 괴롭다. ​

'나'는 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사람의 얼굴, "비리고 물컹한 것"을 입에 물고 있는 표정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윤리적 인간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나름의 '애도의 방식'으로 복수와 애도, 그리고 복수의 애도에 도달한 소설의 표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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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 또는 주변 상황에 이끌려 입을 다물지만, 가끔은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당시로 나를 끌고 갈 때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장면들이 많이 떠올랐다.

이 책에는 안보윤 작가의 『애도의 방식』과 『너머의 세계』 두 작품이 실려있다.

『너머의 세계』도 결은 다르지만 학교 폭력에 관한 글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로 괴로워하는 선생님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명쾌한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안보윤 작가의 소설은 읽는 내내 통쾌함을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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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수상록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10
미셸 드 몽테뉴 지음, 구영옥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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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록』의 작가 미셀 드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에세이' 장르를 최초로 고안한 모럴리스트이다.

몽테뉴는 1533년 보르도 시장인 아버지와 유대인 혈통의 어머니 앙투아네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6살에 보르도에 있는 귀엔 학교에 입학해 스콜라 학자들로부터 엄격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15살에 대학을 들어간 그는 법학을 전공했고, 보르도 고등법원의 법관으로 일했다.

법관으로 일하며 『자발적 복종』을 쓴 철학자이자 법률가 에티엔 드 라 보에티를 만났다. 라 보에티는 젊은 나이에도 당시 정치 상황을 가감 없이 비난했고 몽테뉴는 그런 라 보에티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을 오래가지 못했다. 라 보에티가 33세의 나이로 페스트에 걸려 사망한 것이다.

라 보에티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남동생도 사망했다. 몽테뉴는 37세에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성 꼭대기에 서재를 꾸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서재에서 쓰인 책이 바로 『수상록』이다.

『수상록』에는 옷차림서부터 우정, 신앙, 상상의 힘, 고독, 사회, 관습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가 담겨있다. 도저히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썼다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 가득하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몽테뉴가 한 생각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였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자신의 삶을 통찰하기 위해 쓴 『수상록』은 다양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끝맺음이 있는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 '수필(에세이)'이란 장르를 탄생시켰다.

아테네 데마데스는 마을에서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한 남자를 비난했다. 그가 너무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으며 그 이익은 많은 사람이 죽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그릇된 판단인 거 같다.

본래 이익이란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으므로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이익이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p.54

본래 이익이란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을까?

몽테뉴는 책에서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에게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해롭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자문해 보면 우리의 깊은 욕망은 타인의 희생으로 탄생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자연은 보편 규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주의자들은 모든 것의 탄생, 성장, 증진은 다른 것의 변질과 손상에 상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p.55

변질되고 그 한계를 넘을 대마다 즉시 그전에 존재했던 것이 소멸한다. - 루크레티우스

이 부분을 읽는데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님의 건강은 쇠약해졌다. 또한 현재 두 아이의 부모가 된 나는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정말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없는 걸까?

블루오션이라는 건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은 걸까?

500년 전에 몽테뉴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이런 내용을 썼을까?

『수상록』에는 쉽게 읽고만 지나칠 수 없는 다양한 주제들이 있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 책이 500년 전에 쓰였다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생각은 비슷한 걸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왜 몽테뉴를 역사상 최고의 작가(오슨 웰스), 최초의 완벽한 근대인(레너드 울프)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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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동 인권 이야기
박명금 외 지음 / 서사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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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인권 이야기』는 인권 강사 박명금, 손민원, 김보희, 김보선, 김현정 이렇게 다섯 명의 저자가 양육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아동인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아동과 양육자를 돕기 위해 썼다고 한다.


1부. 영유아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2부. 초등학생, 어리다고 얕보지 마세요.

3부.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일상에서 일어날 만한 일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제시한다. 다음은 그 구체적인 상황을 인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더한다. 각 장은 '아동 인권 한 스푼'이란 페이지로 마무리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p.69


책에서 위의 문구를 접했을 때, "그래, 그래야지!"라며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문구에는 모순이 있다. "어린이는 어때야 한다."라는 문구는 아동이 주체가 되지 못했다. 이 문구를 이야기한 사람은 스스로를 '사령관'이라는 지위에 놓고,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비판적 관점에서 다시 한번 위의 문구를 봤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놀고 싶을 수도 있다.

건강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데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는 말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행복해야 한다.'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상황에 따른 감정이지, 물건처럼 얼마를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의 문구에서 어린이를 이란 단어를 '너는'이란 단어로 바꿔봤다.


"너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너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너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누군가 성인이 된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집에서 쉬고 싶은 내게,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고 말했다면, 나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한 번에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이란 주어 대신 '어린이는'이라는 주어가 쓰였을 땐 이 문구가 꽤 그럴싸해 보였다.


"학원 수업 들을래?", "나를 따라가서 놀이할래?"라는 질문은 O, X 밖에 없는 선택지를 주고 또 다른 방식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p.70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써먹었던 질문이라 책을 읽으며 뜨끔했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잘 놀고, 잘 성장할 힘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시간표대로 지금을 즐기고 행복을 추구할 힘이 있습니다.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서 진짜 필요한 것은 아동의 유능함에 대한 신뢰입니다. p.70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잘 놀고, 잘 성장할 힘이 있습니다.

이 문장이 내겐 가장 크게 와닿았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면서 사회를 경험하고,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세상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생명을 가진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위해 내가 뭘 해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동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아동의 유능함에 대한 신뢰'라는 말을 아이를 키우는 내내 되새겨야겠다.


책을 읽으며 뜨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아이들이 되어본다면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라는 생각이 든 곳도 있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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