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醉不歸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 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 아닌 1992년에 나왔던 허수경시인의 책을 읽고 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에게도 경계없는 봄 그늘 같은 사람이 있으니...    

취하지 않았으니 돌아 갈 수 없고, 사랑하지 않았으니 보낼  수 없다.


봄은 아직 채 오지도 않았는데, 나는 벌써 보낼 준비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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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0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 좋아요!

2011-03-03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3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사야겠당, 허수경 시인 책.
얼마 전에 어디서 마주쳤는데, 다시 따라님 서재에서 보내요.

난 봄을 움켜쥘테에요. 안 그래도 몸이 시려 견딜 수가 없어요!

따라쟁이 2011-03-03 11:25   좋아요 0 | URL
봄을 움켜쥐세요. 저는 끌어안고 가기엔 봄이 너무 따뜻해서 안되겠어요. 왜 그런거 있잖아. 차갑게 내칠때는 나도 같이 매서워 지는데 상대방이 따뜻해 지면 괜히 눈물 나는거...

그래서 안되겠어요 ㅎㅎㅎ

저 시가 수록된 시집은 -혼자가는 먼 집-입니다. ㅎ

Mephistopheles 2011-03-0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이 날씨가 과연 봄인지...덜덜덜...

다락방 2011-03-03 12:31   좋아요 0 | URL
아침 출근길에 예전보다 밝은걸 느껴요. 봄 맞아요, 메피스토님! ㅎㅎ

따라쟁이 2011-03-03 12:32   좋아요 0 | URL
저.. 사실은.. 오늘.. 어그부츠 다시 신고...목도리도 다시 하고... 겨울잠바 다시꺼내 입고... 막.. -ㅁ-;;;;

다락방 2011-03-0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가하군요, 따라쟁이님! ㅎㅎ

따라쟁이 2011-03-03 13:2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냥 한가해 보려고 해요. 사실은 할 일이 있는데 하기도 싫고.. 하기도 싫고.. 그러니까.. 하기도 싫고.. 해서요.

저절로 2011-03-03 13:32   좋아요 0 | URL
오늘 한가하군요..*2

허수경씨는 이 지방 출신이랍니다~자랑질.

따라쟁이 2011-03-03 13:55   좋아요 0 | URL
네. 그러니까.. 할 일이 있는데, 그것도 많은데 하기도 싫고.. 하기도 싫고... 하기도 싫고.. 그러니까.. 하기도 싫고.. 해서요.

으흠.. 그지방이 점점 끌리는 군요.

무스탕 2011-03-0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하기 싫을땐 그냥 노는것도 좋아요. 뒤에서 수시로 체크하고 태클거는 상사만 없다면요 ^^

따라쟁이 2011-03-03 18:06   좋아요 0 | URL
수시로 체크하고 태클거는 상사는 없지만 내내 지켜보다가 이르는 사람은..있;;;;;

잘잘라 2011-03-0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하기 싫은 일 하나 하고 왔어요.
공무원 수행하고 현장 돌기. 한시간 걸렸어요.
공무원 갔어요. 해방감 충만!
완전 기뻐요. 나의 기쁨을 따라주세요. 따라쟁이님! ^^

따라쟁이 2011-03-03 18:07   좋아요 0 | URL
저는 하기 싫은일 끝까지 안하고 버티다가 퇴근할거에요 ㅎㅎㅎ
메리포핀스님의 기쁨을 따라하면서 퇴근하겠습니다+_+

양철나무꾼 2011-03-04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하지 않았으니 돌아갈 수 없다.
취하면 돌아가야 하나요?

사랑하지 않았으니 보낼 수 없다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았으니 보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아닐까요?

허수경 시를 이 봄날 새댁이 읽기는 너무 잔인해요~ㅠ.ㅠ

따라쟁이 2011-03-04 09:22   좋아요 0 | URL
'아직'사랑하지 않아서, '아직'은 보낼 수 없어요..
이게 진심인것 같아요.

잔인하죠. '아직'사랑할 기회를 주지 않은 그 사람도, 그 마음을 후벼파는 허수경시인의 시도..

무해한모리군 2011-03-0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려고 해서 요즘 자꾸 술이 당기나봅니다.
취해서라도 넘겨봐야겠어요.. 봄을.
아직은 너무 춥지만.

따라쟁이 2011-03-07 15:46   좋아요 0 | URL
봄에 취해서 봄을 넘기든, 술에 취해서 봄을 넘기든.

우리 무사히 봄을 넘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