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쉬어 본게 언제더라.
그러니까 간혹 술을 마셔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중간에 조퇴를 하기도 하고, 때론 교육간다고 땡땡이를 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쉰다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니까.. 그렇다. 어제는 휴가였다. 원래는 일주일정도 되는 휴가였지만 출장때문에 이래저래 토막나고 그중에 이틀은 웨딩촬영에 투자해야 하고 해서 정말 내게 휴가라고 이름붙여진 유일한 휴일이 어제였다.
휴가 아침에 당신은 무엇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첫째도 늦잠이요, 둘째도 늦잠이요, 셋째도 늦잠이다. 하지만 정확히 여덟시 삼십분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집으로 오실 손님들을 위해 청소를 시작했다. 쉬는 날이라고 늦잠이나 잔다고 잔소리를 엄청나게 들으면서. 그 후에 다시 잠을 자 볼까 했더니만 걸려 오는 전화, 법인카드 반납하시랜다. 그래. 어제 나는 법인카드로 달려주셨구나.
법인카드를 반납하고 돌아서는데, 때마침 걸려온 전화는 여행사에서 여권을 내라는것. 아. 여행사는 내가 오늘 쉬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꼭 시월에 발리를 가야 하는 걸까? 시월 십이일에 말로의 공연이 있는데 나는 그 공연을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가고 싶은데 왜 신혼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발리에 가야 하는 건가? 나는 분명 마음속으로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들은 어느새 내 입밖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혼자 궁시렁 거리는걸 듣고 있던 J군 표정이 아주 버라이어티하게 변해간다. 갑자기 몹시 불쾌해진 나를 바라보던 J군이 내민 카드는 쌀국수. 쌀국수를 사주고, 영화를 보여준다음, 신혼여행지에서 원피스에 입을 샌들을 사주겠단다. 공짜 신발이 생긴다는데 뭐.. 투더투덜 그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이 영화를 봤다.
아무런 생각없이 화면만 보고 있으면 좋을 영화다. 불편한게 있다면 너무 낮은 내 콧등으로 자꾸 3D안경이 흘러내린다는것. 영화를 보고 나오자 J군은 손을 까딱까딱. 어깨를 들썩들썩 한다. 영화가 재법 즐거웠던 모양이다. 담백한 국물이 괜찮았던 쌀국수와 포춘몇개를 집어 먹고서 시작한 신발 쇼핑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자주 드르던 수제화 집에서 맘에 드는 신발은 딱 두개가 전부였고, 두개 중에 어느걸로 할까 고민 하다가 결국 J군은 두개 전부 계산하는, 실로 오랫만에 맘에 드는 행동을 했다. 나는 너무 이뻐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각자의 우산을 폈다. J군이 씩 웃는다.
"왜 웃어?"
"그냥. 예전에는 우산 하나로도 잘 다녔는데..."
"그래서 싫어?"
"아니. 진작 각자 쓸걸 싶어서. 우산을 함께 써도 좋을 사이즈는 아니잖아. 네가."
괜찮아. 우산을 각자 쓰면 어때? 앞으로도 이렇게 한꺼번에 두 컬레의 신발만 계산해 준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