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심연 - 어느 청년 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탁장한 지음 / 필요한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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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


이 책<서울의 심연(深淵)>의 지은이 탁장한은 2019년부터 5년 동안 쪽방촌, 쪽방 거주자, 일선 지원기관 들을 참여관찰하다 2022~2023년 동안 몸으로 서울의 또 다른 세계 “쪽방촌”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그곳에서 잠을 자고 먹고, 놀고 부대끼고, 싸우기도하고, 화해하면서 말 그대로 주민으로 살아온 다섯 계절의 경험을 녹여낸다. 이른바 르포르타주 “쪽방촌 표류기”기 바로 이 책이다. 기자정신과 연구자의 탐구심을…. 실제 책상에서 자료를 통해서 본 쪽방촌 사람들, 이들에 관한 이론과 담론을 분석하는 이론 편인 전작<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의 후속편으로 마치 조지 오웰이 북잉글랜드 탄광 노동자의 삶을 다룬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사, 2023)처럼, 연구자의 관점과 생활 속 경험자의 시간 사이의 틈새, 빈곤의 도사에는 쌓인 해악과 이익이 복잡미묘하게 얽히고설킨 그래서 또 다른 세계 “쪽방촌”은 난해했다. 연구실에서 생각했던 쪽방촌 세계와 발 딛고 사는 쪽방촌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말 그대로 심연(深淵)헤어나오기 힘든 깊은 곳, 깊은 연못이었다. 


이런 참여관찰에서 직접적인 체험으로, 느낀 것들은 결이 다르다. 절실해서 쪽방촌을 찾아든 게 아니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지은이가 이 연구의 의의와 한계에서 밝혔듯이 쪽방촌을 다루는 연구나 언론은 특정 기관에 친화적인 거주자로 연구 대상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와 한정이 존재한다. 따라서 방영되거나 학계에 보고 등 자료가 공개될 때, 현실이 왜곡될 위험성이 높다. 아무리 제한, 한계를 전제로 하더라도 보이는 것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부족하기에. 1,000여 명의 주민, 이 중 200명(20%)의 구술이 쪽방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80%의 구술대상자가 남아있다는 점은 과제다. 


이 책의 흐름은 쪽방촌에 산다는 것에서 입주를 시작으로 돈을, 사회복지 시설, 쪽방 상담소, 사회운동 단체, 사랑방, 종교 기관, 개신교 교회, 수난의 공간, 대안을 위한 제안을 통해서 참여기관들과 거주민 200명의 구술을 정리 분석한 가운데, 이들에게 희망이란 무엇이며, 우려하는 것, 등을 그리고 홈리스(노숙인)등과 함께 펼치는 빈민주거 운동 등과의 접점들 속에서 이들의 하는 사업, 부탄가스, 종이컵, 한우,한돈의 공동구매와 저렴 판매, 마을잔치, 청소, 무연고 장례, 법률상담, 병원 동행, 선반지기 활동(선반 달아주기 등), 소액금융, 식당 식도락 운영(1,000원짜리 밥 공동체), 이사 협동, 연대활동, 주거권 투쟁(쪽방 퇴거 반대 시위 등), 이 작은 세상이 뿔뿔이 흩어진 모래알처럼 살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주체적으로 주민이 돼가는 과정, 의식의 변화 등, 다양한 정보가 함께 사람은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를.


쪽방촌은 양면성이 극도로 강한 지역


쪽방촌으로 밀려들 수밖에 없는 불평등 구조, 경쟁대열에서 탈락한 이들에게는 두 번 다시 탈 기회는 원천봉쇄되고, 빈곤의 뫼비우스 띠에 올라탄 순간 롤러코스터처럼 울렁거림은 심신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데, 한 번 쪽방촌으로 들어가면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가, 탈쪽방을 위한 사회적 지원과 맞춤형 계획은 거주자들의 선택권을 늘리며 그들이 마주한 빈곤의 실질적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는가, 그 밖의 대안이나 정책은?, 탈쪽방 혹은 쪽방에서 삶을 지원하는 기관들의 비전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지은이는 판자촌의 불도저식 해체와 같은 빈민 주거사를 쪽방촌에서 거듭하지 않으려면 국가는 쪽방의 불법화와 세입자 주거권이 미묘하게 연동됨을 이해하고 탈쪽방이 더는 갈 곳 없는 거주의 추방을 뜻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지은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쓴 글에 대해 가장 경계하는 자기 회의, 잠재적 한계는 부분 인용을 통해 세입자 주거 대책이 미비한 상태에서의 쪽방촌 철거와 해체 담론에 여기에서 오랜 관찰 등이 오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아주 귀중한 연구자료를 함께 읽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도록 공유해준 지은이에게 거듭 감사를 드린다. 각 지역의 광역 도심의 쪽방들 또한 이와 같은 처지일 듯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본질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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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이우연 지음 / 문예연구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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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톨랑의 유령


오르톨랑, 잔인하지만 프랑스 영혼을 담은 멸종위기종 촉새 요리라는 데, 거위나 오리의 간덩이를 키워 음식 재료로 쓰는 푸아그라 또한, 인간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끝판인가 싶기도 하다. 


작가 이우연의 소설집에 담긴 소설들은 “혼자”에 관한 글이다. 동시에 혼자일 수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에 관한 글이다. 비현실, 악몽, 잔인하게 태어난 유령들의 목소리, 청소 도구함 속에 갇힌, 피해자, 돌아오지 않는 가해 악동들, 


이 소설집을 채우는 글들은 작가가 미학, 심리학을 공부한 데서 오는 그 무엇인가, 비현실적이기도 하면서, 몽상인 듯하지만, 인간의 심리 속을 헤엄치듯이 다니며, 뭔가를 찾고 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한다. 갇혀있던 그 공간과 장소에서 밖으로 혹은 위로, 자그만 촉새가 재미있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 마치 메추리와 참새구이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 과정은 잔인해서 마치 예술적으로 비치는 건 아닌가, 


소설집은 2장으로, 1장은 “교실 속의 미로는 새들의 우주를 닮았다.”, 2장 “그녀는 TV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여자를 꿈꾸었다”로, 갇힌 공간 청소 도구함, 미로, 조종실, 교실, 다락방, 서커스장, 동아리실, 우주, 고래의 배 속, 유원지 따위 장소와 공간 속 이야기다. 소름 돋치는 서커스장과 고래의 뱃속 이야기, 


서커스장, 잔인한 반복의 굴레, 탈출하지 못한 것들


서커스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폭죽 소리에 귀가 먹고 말았다. 어떤 때보다 관중들은 아버지의 퍼포먼스에 열광하고 흥분해서 환호를 지르는 순간, 서커스장 뒤쪽에서는 평소 죽은 고기만 먹던 사자가 아버지보다 한참 키 작은 엄마의 머리를 먹어버렸다. 나는 사자의 배 속에서 배를 가르고 세상에 나왔다. 내 엄마는 누구일까, 내게 배가 뚫린 짐승, 

“사자가 저의 죄를 감내하고 숨죽이는 오랜 세월. 사람이 짐승을 도축하고 사육하고, 겁간하고 젖을 짜고 새끼를 놓고 질겅이고 버리고 사랑하고 겁간시키고 젖을 짜고 새끼를 먹이는 그 오랜 시간. 사자는 죄를 먹이며 먹히며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난 그의 죄를 기생충처럼 파먹고 바깥으로 나왔어요.”


서커스장이라는 공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은 그 옛날 인간과 동물의 벌이던 채집경제에서 재배, 목축 정주 경제가 되면서 식량을 얻기 위한 반복과정, 한 생명이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목숨을 거두는 행동, 아이누족은 곰사냥을 할 때, 어쩔 수 없는 공존을 위해 곰의 생명을 거둘 때, 그 정령이나마 평안한 곳으로 가라고, 제를 지냈듯, 예의라는 게 있었다. 시나브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는 인간은 생명의 존중도 가치도 모든 것이 그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양, 생각하고 또 행동하고 굳어지고 양식이 되고 문화가 돼버린 것이다. 사자는 순치된 자연의 반란이다. 잠들어있는 야생 본능의 발현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잔인한 사치를 입맛을 위해 멸종되어가는 오르톨랑처럼, 또, 수많은 장소, 공간을 떠도는 유령처럼.


꽤 어렵게 느껴지는 소설들, 하지만 짧은 글 속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가 왜라는 말보다는 그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작가 이우연의 작품은 세계가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나무 문에 질러진 빗장 사이로 새어드는 빛처럼 다가온다. 한 줄기 빛이, 그 빛을 따라 작가가 이끄는 유령의 세계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그런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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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 힙하게 먹고 놀고 사고 일하는
김상하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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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


Z세대인 이 책의 지은이 김상하는 현장에서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경험했고, 지금도 채널A에서 디지털 신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내용은 Z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마케팅 정보다. 언제, 어디서나 Z세대와 함께하고 싶다면 우선을 읽어라.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른바 Z세대가 들려주는 Z세대의 사용설명서다. 


삶의 방식을 보자, 크게 6개 항목으로 구분하며, 각각 라이프 스타일 1~6이다. 힙의 기준(Hip), 쩝짭박사가 되어 레시피를(Eat), 삶의 모든 순간을 콘텐츠화한다. 재미를 추구, 지루함을 싫어한다(Play). 침대에서 쇼핑하고 경험 소비를 한다(Buy). 스마트 워커로 업무효율을 높인다(Work). ?즉,  힙하게 먹고, 놀고, 사고, 일하는 Z세대의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각 라이프 스타일의 장면을 들여다보자. 


함부로 정의하려 들지 않는다. Z 세로 규정되기를 싫어한다. 몰개성, 집단화 묶음으로 처리되는 것에 저항한다. MZ세대(이런 말을 나는 사용하지 않지만)유행어 중 마카롱 김치찌개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이란 뜻으로 강한 개성과 다양한 취미를 가졌기에 서로 섞여서 하나가 될 수 없는 Z세대를 상징한다. 사회에서 이들 세대를 규정하는 이미지, 뭐 공통된 이미지라 하자. 칼퇴근, 회사소속감 희박 따라서 충성심도 주인의식도 낮다고. 진짜 그럴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이해하는 시각도 다 같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워라밸 실천 의지를 실현할 뿐이다. 규정 속에 묶이고, 구호나 표어에 그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늘 구세대는 신세대를 향해 입버릇처럼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를 몰라” 우리 때는


Z세대건 MZ세대건 세대 이해에는 세대를 규정해왔던 사회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세대는 늘 신세대를 일컬어 세상이 종말로 치닫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라테를 들먹이며, 그것이 권리행사를 포기했던 그들 세대의 강제된 희생을 정당화하면서 나름 자기 위안을 얻으려는 듯 보인다. 늘 그래왔다. 어르신들의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가 없어, 참을성이 부족해, 과격해, 맞는 말이다. 그들도 똑같이 경험했고, 그들이 젊은 시절에 당시 어른들에게 들어왔던 말 그대로다. 진짜 세상이 말세인가?


당대에도 이런 소리를 하는 어른들 뒷말할 때, 꼰대라고 했다. 지금은 정면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할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 세대는 하고 싶은 말을 우회적으로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한다. 이게 문화라면 문화고, 삶의 패턴이라면 그렇다. 이런 틀에서 전개되는 Z세대의 특징은 그저 그대로 존중해주면 된다. 이 책은 이들 세대를 공략하는 마케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그렇게 이해하면 될 듯하다. 물론 더 확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똥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세대보다는 훨씬 알기 쉽다. 


MBTI와 Z세대


한때 혈액형 논이 있었다. 이러저러한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면 O형이고, 이러면 A형, B형, AB형, 심지어는 스페셜 O형도 등장했다. 정형화된 틀에서 행동 양식과 성격을 규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면 스페셜이 되는 것인데,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닌 듯하다. 아마도 관계설정에 혈액형이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Z세대가 MBTI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에 알고 싶어하기에 그렇다. 어느 대학 신입생환영 현수막에 “당신의 MBTI를 분석해드린다.”라고, 거꾸로 말하자면, 이 세상은 Z세대에게는 그리 녹록지 않은 곳이란 말이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힙(새로운 가치를 찾는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배울 점 많은 시니어를 좋아한다. 위에서 봤던 Z세대의 행동 양식의 연장선에서 보면 수긍할 수 있겠다. Z세대를 향한 세상의 편견과 오해, 남의 일에 관심 없고 오로지 제 것에 몰입하며, 나이 많은 사람을 배척한다는 것인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힙한 세상은 새로운 가치 발견이다. 고정된, 획일화된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는 일,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을 싫어하고 피하려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불편함은 반대로 힙한 게 되기도 한다. 플라스틱 없는 삶, 일회용 용기가 없는 삶 같은 말은 이제 참신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 세대에서 실천행으로, 즉 가치 소비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말하는 순간, 힙한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다수의 신세대인 Z세대의 가치체계다. 


매일 유업은 희소병 아동을 위해 우유를 만든다. Z세대는 자신들과 관련이 없지만,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매일 유업의 우유를 사서 마시고, 못생긴 채소를 고르고, 폐휴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신이어마켙’ 앱에서 필요한 노트를 사기도 하고, 미디어에서 말하는 Z세대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Z세대는 텍스트보다 영상과 이미지에 훨씬 강해,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이모티콘과 사진을 사용한다. 이렇게 1에서 6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Z세대를 진짜 모른다.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기보다는 이상하다. 경우가 없다고 여기고 또 그렇게 평가한다.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데 왜 그럴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자신들의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고정, 획일화된 그 무엇과 질서가 몸에 익은 편안함으로, 하지만 신세대는 편안함이 아닌 불편함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니, 미래의 공기를 마시는 것이며, 세상을 새롭게 본 때문이다. 

이 책으로 Z세대에 관한 고정된 관념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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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론
아이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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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주의, 명예론


지은이 아이나, 아마도 필명인 듯한데, “명예론”의 창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미지의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듯하다. 세상에 밝은 빛인가?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라는 말은 마치 종교적 표어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재물보다 명예를 말할 때는 신사도를 연상케 한다. 


이 책은 명예 주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알 듯 모를 듯하다. 견문이 적은 탓에 지은이 이 책 저술의 목적과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예주의= 유위험 의사결정 체계


명예주의는 물질보다는 이상을, 물신숭배와 비견될 만큼, 재물이 세상의 가치척도가 되고, 어느 인간의 인물됨이 물질의 소유 여부와 그 정도로 존중과 존경이 대상이 되니, 이른바 선비 혹은 지사형의 정의를 추구하고 이성을 좇아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물들은 그저 무능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룸펜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유위험 의사결정 체계는 사상론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무위험의 의사결정, 즉 위험이 따르지 않는 의사결정이라고 본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인민과 유리된 채 그들의 정치대리인(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인민의 대표자)은 아주 제한적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고, 이들이 내리는 결론(정치적 결정이든 정책이든)은 세계의 정의나 진리가 아니라 당해 사회의 특정 집단이 이익을 보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확실히 우리 사회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임의의 영향력이 결론의 변수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이지만, 대의정치로서 민주주의는 오히려 민의 이익에 반하여 소수의 정치대리인 집단이익에 복무하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의 의사결정도 (영향력 있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의지의 개입이 아닌 사회 최적의 필연성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명예주의의 핵심이다. 


이를 6장에 걸쳐, 가치와 소득, 의결권, 의사결정, 이상사회, 명예법인, 명예주의 아래 거시경제 균형으로 나누어 각각 설명하고 있다. 


가치와 소득, 어떠한 힘, 가치량의 실존 천박한 기업의 이익은 사회의 불이익으로 전환


인간의 경제활동에 중요한 가치와 소득은 노동의 가치와 그에 대한 대가다. 거래의 자유가 있는 한 노동력을 얼마에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가는 전적으로 두 사람의 의사결정에 따른다. 명예주의가 개입하는 것은 거래의 자유가 제아무리 원칙이라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불행해지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는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거래의 자유 원칙과 도덕률은 지금껏 개입장면과 층위가 다른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한 예를 들어보자. 기업이 생산비 저감을 위해 공해유발을 생각하지 않고 유독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하며 생산한 경우, 그 기업은 이익을 얻고, 소비자는 싼값에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행복은 그 고통 속에서 많이 감소하고 말 것이다. 즉, 개인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가 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초과 불행이라는 고통을 남긴다고 설정한 것이다.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미시적 거래는 곧 거시적 강제 거래로 이행하게 되며 여기서는 사회 환경 피해가 생긴다는 논리다.


인간이 부여하는 가치에는 소득과 부를 초월하는 어떠한 가치량이 실존하고, 이를 반영하지 못한 의사결정 체계의 한계와 극복에 관해 논하고 있는데, “가치량의 실존”과 어떠한 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회적 가치와 가치의 이면, 행복, 숨겨진 간절함, 이상적인 거래체계는 임의로 나타난 가치 거래가 신축적, 효율적으로 보상되고, 반대급부가 적절한 양과 적절한 시기에 지급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결권도 의사결정도 모두 연동되며 심지어는 명예법인도 이 틀 안에서 규정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부정의한(정의롭지 못한) 모든 혼란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의사결정 속에 있고, 이상적인 의사결정과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험이 반영된 투표권이 필요하다. 마치 혁명론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투표혁명론?)


이 책은 사상으로서 명예주의,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개인과 개인이 존중이란 기본적 인권적 접근도 명예로 해석한다. 특히 경제사회에서의 인간행동이 무조건 영리추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적어도 규칙에 따른 링 안에서의 싸움과 무기 평등, 정보 대칭으로 상호 어떻게 경쟁해야 한다는 것까지도 규율하게 된다. 명예주의 아래서, 


꽤 신선한 듯하면서도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많다. 인권, 자유로운 개인 사이의 거래, 민법에서 규정하는 계약 자유의 원칙의 제한은 법과 공공의 복리가 아닌 명예주의에 따라서라는 말은 고정된 관념 때문에 새롭게 제기하는 것들에 관한 부분적인 이해에 그치게 하는 듯하다. 시간을 두고 지은이가 말하는 명예주의 전체의 틀을 톺아봐야 할 듯하다. 이해가 쉽지 않은 주의의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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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불신 - 기부금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이보인 지음 / 마음연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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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형성된 기부 문화에 관한 이해와 기부 문화


이 책<기부 불신>의 지은이는 행복 나눔 즉 기부행위와 관련된 기업출현 단체에서 활동했던 전문가다. 글을 쓴 목적은 “읽기 전의 당부” 첫머리에 분명 나와 있다. 기부자의 눈높이와 그들의 처지에서 기부의 불투명성과 대안을 이야기한다고, 이런 유의 책은 반드시 나와야 한다. 또, 이 책에서 지은이가 지적하는 내용에 기부금을 모집하는 단체에서는 불만스럽게도 여길 것이라는 점 또한 동감한다. “끼리끼리 하는 거 없이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서” “좋은 일 하는데. 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우리가 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 본다면, “투명한 기부”라는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아무튼 기부 불신 현상, 뭘 믿고 기부해요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기부 문화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을, 좋은 목적에 쓰라고 돈을 보태주었건만, 우리를 봉으로 여긴다고 느끼는 순간, 기부자의 일생에서 기부라는 단어는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는 기부 문화에 관한 기부단체나 기부자 그리고 한국 사회 모두 기부 문화에 관한 역사와 흐름 그리고 그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른바 몰이해가 나은 역설이라 할까,


이 책에 실린 단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굿네이버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다. 이들이 22년 한 해 동안 받은 기부금은 1.6조 원, 1조6천억 원을 받았다. 누가 이렇게 냈을까?, 기부금 맞나, 선의일까, 정부에서 도움을 주라고 해서는 마지못해 내놓는 대정부용 보험금일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언론에서 기부금 관련 사건을 다룰 때마다. 겉모양은 기부임이 분명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함부로 써도 되는 남의 돈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뭐야, 뭐가 잘못된 걸까, 


투명한 기부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


우선 한국 사회의 기부 불신 현상의 이유를 보자. “절대 기부 안 하고 살았는데, 후회도 죄책감도 없을 이유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21쪽) 라는 말의 의미, 바로 기부단체를 향한 막연한 의심이 확증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의심의 시발을 지은이는 어금니 아빠 사건(2000), 새희망씨앗 사건(2014)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기부 불신의 한 요인일 뿐 모두는 아니라 말한다. 실제로 대형기부단체는 개인적인 욕심이나 애초부터 사기를 치려는 모금 등은 시스템적으로 할 수 없도록 법과 제도가 마련돼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 대형기부단체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하기에 문제다. 물론 기부 불신의 또 다른 요인으로 들라면 들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기부자는 기부단체의 뭘 보고 기부금을 낸 것인가? 


내가 월 2만씩 내는 기부금의 행방을 알고 있을까? 기부단체는 신뢰할 수 있을까? 우선 월 약정 기부금 액면이 작고, 기부단체 TV 광고에 괜찮아 보이는 연예인 등이 나와서 기부 모금을 홍보하니까 믿은 것인가, 아니면 기부단체 펼치는 구체적인 사업에 동참하고 지지하기 위해서인가, 아무래도 좋다. 우선 기부를 했다. 그런데 기부단체로부터 당신이 낸 기부금이 이렇게 사용됐다는 설명 등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기금의 주요사용처 및 명세를 밝혔는가, 


만약 내가 낸 돈이 기부금을 모을 때 밝힌 사업내용과 전혀 다른 곳에서 사용된다면, 기부자는 고민 갈등도 없이 정기기부 의사를 철회할까?, 측은지심이 발동하거나 하지 않거나. 기부단체는 기부 불신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기부 불신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목소리로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의 아니라고 깨끗하다고, 억울하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기부하는 단체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 기부를 하느냐고, 되려 반문,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는지, “투명한 기부”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 공유, 보고의무다. 어려운 회계용어를 써가면서 일부러 어렵게 설명하려는 공시제도 등등보다는 알기 쉽게 설명하는 태도나 시스템 혹은 체계 등이 필요하다. 벌써 수십 년째, 기부단체와 기부자의 공방이 지속된 곳도 있으니 말이다.


기부 불신 의심의 확산 ‘단란주점’만 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단체를 위한 기부단체‘ 역할을 한다. 기부금을 모아서 기부가 필요한 단체에 나눠주는 것이다. ‘비즈니스석’만 남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기부금 유용‘만남은 정의기억연대, 기부금에서 왜 단체운영비를 쓰지라는 생각, 


믿을 수 있는 기부는 가능한가?


기부단체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기부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이들을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기부단체는 내 돈 아까운 줄 아는 만큼, 철저하게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보를 공개하고(사업이든 운영이든)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기부자가 하는 오해 남을 돕는 것을 생필품을 전달하는 것이고 생필품 전달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운영비 15%가 왜 필요해, 왜 기부금의 85%만 전달되는 거야, 운영비 15% 안에 인건비가 모두 포함된다는 등의 오해다. 자, 사업을 하려면 단체가 있어야 하고, 그 단체 운영유지에 필요한 경비와 이 일을 하는 활동가의 급여가 있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여기서 기부자는 후원회원이든 기부자든 어떤 명칭이든 관계없이, 그 단체의 든든한 지원군이면서 단체원인 셈이다. 기부자들을 대신해서 일을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어디서 마련하라는 말인지?, 기부단체가 전혀 엉터리로 일을 하는 곳은 없다. 다만, 유용, 횡령 사건 등이 있더라도, 이 원인을 우선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중이 절 보기 싫다고 절간을 태우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회에서는 뭘 어떻게 도와야 할까? 기부단체가 보수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잘 정비해야 한다. 이는 늘 약방에 감초처럼 따라다니지만, 이 또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니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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