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 경상도의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 걷는사람 에세이 27
안지은.전윤채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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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니


헬조선, 흙수저, 88만 원과 삼포를 경험하면서 비정규직이란 지각변동을 일으킨 신자유주의와 함께 노동자들 사이에도 같은 계급적 연대는 갈라져 계층이 생겨나고 서로 경쟁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 차원으로…. 이 에세이는 안지은과 전윤채 30대 초반의 젊은 두 작가의 날카로운 대한민국 살아가기 보고서다. 이들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경상도의 딸 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를 말하면서, 


지은이들은 가족이란 남자-여자-아이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뼛속같이, 대한민국 남자들의 유전자 속에 깊이 박혀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젠더의 왜곡, 여성들은 돌봄 노동의 당연한 전담자로 노동의 사회적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비딱하게 쳐다보며, 따끔하고도 속 시원한 사이다처럼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린다.

이 험한 세상을 힘겹게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씩씩한 두 젊은이의 좌충우돌 자유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 내용은 나를 찾는 여정으로 여행과 취미, 연애와 결혼, 고향, 여성, 부모님 세대, 주거, 밥벌이 이렇게 8꼭지를 담았고 윤채와 지은의 이야기를 곁들였다. 


힘이 있어야 연애도 하는 거지


개오바를 떨면서 살아야 하는 젊은 날, 현재진행형이다. 부모님의 재정적 가호로 어찌어찌 버티고 보험료, 휴대전화 요금 같은 고정지출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처럼, 연애해도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나를 꾸미는 게 웃기고 좀 미안할 정도, 피자를 시키려다가도 내일 마주할 통장 잔액만 떠올리면 입맛이 떨어지는 사람들, 나를 챙길 여유가 없다. 오늘을 저당 잡혀 불투명한 내일에 투자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나를 챙기고 나서 연해도 결혼도 생각할 여유가 있을 듯하다.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연애도 저만치 멀어져 간다. 


한 뼘짜리 자취방이 돼버린 지금, 몇 년 전에는 공간도 여유로워 보였건만, 느는 건 잡동사니, 그 사이에 호더에 맥시멀리스트가 돼버렸다. 강박적 축적처럼, 물건을 주워다 성을 쌓듯 한 호딩을, 심리 안정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상처도 재산이라면 나는 부자다


시인 안지은 이야기다. 학창시절 등단이라는 제도권을 통과했다. 그때 그는 시인이라는 직업으로 평생 먹고살 줄 알았다. 소설가(家)는 가(家)를 쓰기에 직업이 될 수 있지만, 시인(人)은 사람이니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시덥지 않는 농담처럼, 글쓰기로 밥 먹고 살 수 없다. 가성비가 최악인 글쓰기, 이걸 밑천 삼아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 세상에서 가장 짠 염전이 있다면 그건 내 월급이라는 안지은. 막상 이력서 칸을 채우려다 보면 정규직, 경력직 타이틀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한다. 모두 계약직이다. 뭐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30대 청년이 갈 곳은 마땅치 않다. 내놔라 하는 유수의 전국 일간지 신춘문예에 등단해도 별 볼 일 없기는 마찬가지다. 


윤채의 이야기도 지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최저임금의 알바 찾아 삼만리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대학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건 계약직이다. 문학 관련 사단법인에서 7년을 일했다. 예산도 억 단위에 국가사업이라 회계도 했건만, 이를 경력 삼은 이력서를 내도 1차 서류전형도 통과한 적이 없으니. 방송국 막내 작가나 알바나 내 손에 쥔 돈을 거의 비슷비슷하니, 


이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힘 빠지는 미래의 장밋빛 희망일뿐, 당장 오늘의 밥벌이를 찾지 않으면 내일 마주할 통장 잔액이 쑥 줄어든다. 사회문제에 목청을 높일 여유도, 환경보호니 뭐니 하는 것조차도 사치처럼 다가온다. 


그래도 나를 찾아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다


두 젊은 작가의 이야기는 푸념이 아니다. 세상살이의 단맛보다 쓴맛, 매운맛에 길들어질 만도 하건만 여전히 길들여 들지 않는다. 내일의 삶을 깎아 오늘을 사는, 마치 매혈해서 밥을 사 먹는 악순환처럼, 세상이 힘들어지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삶의 팍팍함을 전할 뿐이다. 2030세대의 현주소, 지은이들은 삶의 표준도 모범답안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리는시대, 이렇게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경상도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 바로 이 글들이 모여 이유서가 된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는 별다른가, 노동의 끝이 사라져버린 지금, 상처만 남은 노동, 가치상실의 노동, “경상도”란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상징적 표현이다. 이들에게서 각자도생이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의 환경에서 왜 초개인화가 돼가는지를 느낄 수 있다. 왕년에, 라땐 이란 말로 젊은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아주 많이 늦었다. 이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은 “나를 찾아라. 찾거든 절대 놓치지 마라” 나를 놓치는 순간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나를 잃어버린다. 흔적도 없이, 나침반 없는 세상에서는 내가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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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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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 그래서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지은이 김범석 의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젊었던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뒤따르는 채권자의 등장과 채무자의 모르쇠 또한 고인에 불편한 감정을 남기기도. 지은이는 이런 경험을 겪고, 의사가 됐다고, 아버지에게 담배를 끊으시라는 말을 한 번도 못 한 게 못내 억울하다고 했다. 


지은이의 이 에세이<죽음은 직선이 아니다>에 암과 인식, 치료법의 진화 등 주요 의학 정보를 공유하면서 암 예방법을 강조한다. 기실, 의학의 발전과 보건 위생과 경제적 수준 향상 등으로 우리 사회의 평균수명은 100세 시대라 할 만큼 늘었다. 한 세대 전에는 환갑을 넘기면 노인이었지만 지금은 장년 수준이다. 노화 현상을 어떻게 늦출 것인가, 인체의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암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물과 공기처럼 너무 당연한 안티에이징 즉 노화 지연법과 암 예방법은 똑같다. 우리가 아는 상식 바로 그 수준이다. 담배 피우지 말고, 술 먹지 말고, 유산소 운동, 균형 있는 식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다. 돈 들지 않는 운동 대신에 돈 들여가며 좋다는 영양제 사 먹는다고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암에 관한 서사,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찾아온 걸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지은이는 왜 암과 싸우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암과 생을 공존하게 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있다. 예전에는 독으로 암을 죽였다. 이 과정에서 암만 죽는 게 아니라 인체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온다. 즉 부작용이 새로운 암을 키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암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5부 15장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낸다. 2부에서는 암 발생의 메커니즘과 암 정복의 과정을, 3부에서는 암은 살아남기 위해서 진화한다는 사실, 그리고 4부는 반전 우리는 시시각각 태어나고 시시각각 죽어간다. 5부 죽음 뒤집어 보기 전환과 공존에서 발상의 전환, “암과 함께 살아가기”, 완화의료, 죽음과 노화, 무엇과 싸우는가, 


의학적으로 암 정복이 과연 제일 나은 방법일까


이 책의 핵심은 제5부 죽음 뒤집어 보기다. 관점의 전환, 암과 함께 살아가기, 우리는 항암 치료를 하면 암이 죽고 암 덩어리가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환자는 당연하고, 의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좋아하지만, 실은 복잡하다. 항암 치료를 했다고 해서 모두 예후가 좋은 것도 아니고 항암 치료로 암 덩어리가 줄어든 것이 보이지만, 내성이 생긴 때는 별 효과가 없어 다시 암이 커지면 죽는다. 환자나 보호자나 항암 치료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건 알지만 손도 못 써보고 죽는다면 보호자(배우자, 자녀 등)는 서운함, 아쉬움, 죄책감 등의 트라우마를, 손을 쓴다면 이미 치료는 연명 수준 정도인데, 환자의 고통은 심해지다 결국에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상태가 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이는 당사자의 딜레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인식과 사회 문화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기에 말이다. 


죽음에 관한 인식을 달리해보자. 이를 거시적으로 보면 어떨까?, 결국에는 암 크기를 줄이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더 커지지 않도록 억제하면서 심신의 부담을 주지 않고, 좀 더 오래 살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런 발상에서 나온 치료법이 메트로놈 항암 치료와 적응 요법이다. 


호스피스에 관한 제대로 된 인식 


호스피스는 그저 이제는 손을 쓸 수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한다. 2016년 <호스피스, 완화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제정됐다.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죽음은 치료의 실패를 의미하고 절망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그래서 말기 암 환자의 죽음의 질은 2010년 <이코노미스트>에 발표된 ‘임종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32위로 33위인 말레이시아, 39위인 우간다를 가까스로 제쳤을 뿐이다. 2014년 같은 보고서에서 18위로 올랐지만, 의료 시설과 의료진의 질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살기 힘든 나라에서 죽기도 힘들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평온하게 죽는 일이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특권의 소수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사람에게도 죽음은 평등하게 찾아온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며칠 전 폐암 환자인 지인이 죽었다. 표적항암치료약에 내성이 생겼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는데, 2년 넘게 살았다. 아니 연명했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너무 빨리 갔다고 서운해한다. 환자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그동안 함께 투병 생활을 해왔던 가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런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죽음”이란 악일까,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 것이냐며 불행과 박복함을 탓할 것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마음 챙김을 하는 것, 암과 싸우는 것일까,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일까, 많은 여운을 남기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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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되지 않는 사회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
김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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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되지 않은 사회


김관욱의 <지불되지 않은 사회>는 재독학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의 시리즈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의사로 의료인류학을 연구해 온 학자가 말하는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세계”는 지금까지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 담론을 한 권으로 정리해 놓은 수작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새로 쓰고 잡지에 기고한 글을 기웠다. 지은이의 책을 읽으면서 적이 헤맸다.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각주를 찾아 맨 뒤로 책의 여백에는 참고문헌의 책명과 출판사까지 메모해가면서, 읽었다. 정독이란 표현보다는 탐독이라고 해야 할 만큼이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라는 문구의 함의는 헬조선, 흙수저를 지나, 능력주의, 공정의 화두가 왜곡됐다는 말이다. OECD의 가입국, 세계 경제 8위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유가 없다. 마치 16세기의 영국, 양을 풀어주고 사람을 가둔다는 인클로저라는 말, 공유재가 사유재가 되고, 의회 인클로저를 지나, AI 시대의 데이터 인클로저는 필수노동이면서 그림자처럼 가려졌던 가치 있는 일은 무가치하게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어야 함을 지은이는 주장한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58년에 쓴 <인간의 조건>(한길사, 2020)에서는 일(work)과 노동(labor), 행동(행위)을 구분한다. 유럽 사회에서 일과 노동의 구분은 있었지만, 철학자들이 이를 지워버렸다고, 노동은 끝이 없이 사라지는데, 인간의 욕구가 그러하다고, 하지만 일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일하는 자(worker)로 묘사하는 것이 모든 것을 목적을 위해 잠재적 수단으로 여기도록 만든다고 했다. 이 책은 아렌트 저작의 서문 격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지은이는 지난 2년 동안 매달 한국 사회의 노동을 생각하면서 25개의 떠오른 이미지를 짧은 글로 포착, 1장에서 5장까지- 1장 지불되지 않는 노동, 2장 가치를 상실해가는 노동, 3장 상처가 되는 노동, 4장 아물지 못한 노동, 5장 상처가 치유되기 위한 조건들로 정리했다. 1~5장까지의 노동은 그야말로 아렌트에 따라 노동(labor)로 봐야 한다. 끝이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곧 목적을 위한 잠재적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일 과로사로 죽기 위해 오늘은 일하라는 말처럼, 공동체의 연대와 돌봄을 여성의 영역으로 가치 없는 일로 여기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능력주의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모두의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다. 비정규직은 임금으로, 정규직은 능력, 성과주의로 경쟁으로 내몬다. 그 끝에 있는 것은 허탈감이다. 


그리고 6장과 7장 이 두 장으로 현재 사회를 설명한다. 6장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그 끝의 정동을, 디지털 자본주의는 노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이른바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이버타리아트로 모습이 변했고, 산업혁명으로 공장 로봇이 일하는 사람을 쫓아냈지만, AI는 지식노동자들을 대거 몰아낼 것이다. 데이터 인클로저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 “일”은 상대적이란 말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론 여기에는 논쟁거리도 있다. 7장. 공정한 노동 끝 우울:공정의 정동 병리학,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 베리, 2020) 물음,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25개의 이미지 속에는 쿠팡 청년노동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좀 더 일하면서 배려하는 공동체적 연대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가 아니라고, 영화<다음 소희>처럼 고객을 위해 친절함으로 만들고 폭언과 욕설 앞에 자신의 수치심을 참아야 했고, 결국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것이 오늘날 직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단면이다. 진로선택과 탐색의 과정이 아닌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정글만리를 헤쳐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나를 지워 버리면 좋은 본보기인 사회라고 일러준다.


일할 “때”를 정해주는 이중 빈곤의 사회


노동의 진정한 의미란 자유의지로 시작과 끝을 정할 수 있느냐로 정해질 수 있다. 아렌트가 말한 일(작업)이다.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업무와 아무리 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노역(奴役)이다. 아렌트가 말한 노동의 속성과 같다. 지은이의 “노역”이란 표현이 아마도 한국 사회의 노동을 적확하게 드러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화이트칼라 든 블루칼라든 이중의 구별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식 졸업식장에 못 가볼 만큼 일에 치여 사는 데 누구의 때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공정한 노동 끝 우울: 공정의 정동 병리학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낱말이 등장한다. 디지털 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 포함)는 “공정”을 강조한다. 공정을 화두를 중심으로 노동이 어떠한 정동(일상을 지배하는 마음 상태) 속에서 구체적 질환으로 바뀌는지를 본다. 정동은 끊임없는 마주침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느낌의 뭉치다. 특정한 감정으로 이름표가 붙기 전의 느낌이자 원재료다. 노동 끝에 마주하는 우울, 정동적 마주침이 혐오, 모멸, 수치 등을 교환하는 부대낌이 어떻게 정신적 아픔을 초래하는지,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재해사고 대부분은 50인 미만의 영세 소규모사업장에서 일어난다. 대기업의 위험 외주화가 주요 원인이다. 업무에 기인한 정신질환 또한 산재다. 이른바 일본에서 80년대 사회적 문제가 됐고, 과로 자살이라는 개념이 생겨날 정도였다. 국제적으로 KAROSI(과로사의 일본어 발음)로 표기할 정도다. 일하다 자살한 사람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로, 즉 높은 직무요구도, 낮은 사회적 지지, 노력과 일치하지 않는 보상, 직무불안정성, 위험 및 폭력 등 이른바 ‘정신건강’을 해치는 환경이다. 


지은이는 인류학을 비롯하여 사회학, 심리학 등 수많은 문헌과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많지 않은 분량 속에 “노동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화두이자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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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충의 만화로 보는 동양철학 4 : 장자 - 자연의 피리 소리 채지충의 만화로 보는 동양철학 4
채지충 지음, 이신지 옮김 / 들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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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장자, <장자>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서


만화로 동양철학과 문학의 재창조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채지충의 작품들, 그는 15세에 전문 만화가가 됐고, 1999년에는 네덜란드의 프린스 클라우스상을, 2011년에는 황금 만화상 평생 공로상을 받은 대만의 만화가다. 


이 책은 채지충의 만화로 보는 동양철학 시리즈 8권 중 도가사상(4권~6권)중 4권 장자: 자연이 피리 소리다. 장자라는 이름은 귀에 아주 익숙하다. 장자와 제자들이 함께 지었다고 전해지는 <장자>는 제자백가의 치열한 사유들이 빚어낸 중국 선진(先秦) 철학사의 정수가 녹아 있는 철학서로 여겨지는가 하면, 상처 입은 삶을 위로해주는 지혜가 담긴 우화집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특유의 도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신화적인 사유의 보고이자, 문학서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보기 나름이다. 다원적, 다각적인 접근이 가능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장자>는 내편(內篇) 7편, 외편(外篇) 15편, 잡편(雜篇) 11편 등 총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통상 장자가 직접 쓴 글이라 본다. 외편과 잡편은 장자 제자들이나 장자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쓴 글로 여긴다. 장자 사상의 본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내편 7편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대종사(大宗師)>, <응제왕(應帝王)>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들 한다. 이 책의 구성은 33편을 155컷으로 담아냈다. 


제물론


이 중에서도 <제물론>이 가장 중요하다. 장자서 전체의 이론적 틀을 담당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 33편 글 중 유일하게 ‘론(論)’이라는 말을 제목에서 사용한다. 그런데 장자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중도에 독해를 포기할 정도로 <제물론>은 그 내용이 난해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마당에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학자가 굳이 장자를 왜 연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소통의 맥락에서 유불선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 사상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우리들의 소통 수단인 감각과 그 연장인 언어에 관한 내용이 유불선 사상의 중심 부분을 관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물(齊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물(物)’을 ‘제(齊)한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제(齊)한다.’라는 것은 ‘같게 하다’, ‘가지런히 하다.’, ‘하나로 하다’란 의미를 지니기에 제물이란 ‘사물을 고르게 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세상 만물은 크기나 색깔, 또 그 느낌마저 다르므로 사물이 제물 상태로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드러난 외형은 다를지라도 우리들의 마음에서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제물론>은 중국 철학사의 최고봉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 사상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빼어난 내용으로 구성된 사상의 으뜸가는 보고이다. 


소요유(逍遙遊)에서 열어구까지 


'소요유'는 '자유롭게 노닌다.'라는 뜻으로,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장자 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소요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자유를 넘어,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 소요유의 궁극적인 목표다. 우리가 사는 사회, 즉 현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조직, 심지어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걸린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 소요유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정신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아마도 이 대목이 유유자적, 음풍농월, 치열한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피해가거나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뭔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글쎄다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대종사(大宗師)


진인이란? 이란 대목을 보자, 진인(眞人=도를 깨친 사람), 진인은 실패해도 낙망하지 않고 성공했다고 해서 교만하지도 않으며 어떤 일을 억지로 꾀하지도 않는다. 때를 놓치고도 후회하지 않았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고 해서 자만하지도 않았다. 살아있음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든 받아들이고, 잔꾀로 도를 손상하지 않으며 인위적인 행위로 본연의 성질을 해치지 않는 자가 바로 진인이다. 


진인은 자연스럽다. 물 흐르듯,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속에서 젖지 않고, 불에 타지도 않는다. 지식이 도와 융합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이렇게 될 수 있다. 그림 한 컷에 담긴 모든 것, 진인이 되기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진인이 하는 일의 반대되는 일을 한다. 그것이 출세라 여기고, 입신양명의 길이라 생각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역지사지하지 않고 오로지 내 처지에서 현상과 사람을 예단하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 거꾸로 지금 하는 것을 반대로 하면 진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무아지경, 백리해의 무아


백리해는 소를 키우는 자신을 운이 없다고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오로지 소를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이를 본 진목공<秦穆公)은 그를 오고대부(五?大夫)로 책봉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벼슬에 올라서도 소를 키우듯 열심히 했다. 뽐내거나 유세를 떨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뭘 하든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잊을 수 있는 “무아” 벼슬이든 작위든 마음에 두지 않고, 재물도 원하지 않고 공을 자랑할 마음조차 없으니 나라를 잘 다스릴 수밖에 없음을.


장자의 몇 구절만 보아도 뭔가 와 닿는다. 이 책으로 장자입문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소요유란 무엇이며, 진인이 되려면, 무아란 무엇을 말하는가, 제아무리 해석하고 해설해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장자가 고전인 이유는 고금을 따지지 않더라도 보편타당한 말을 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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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우주난민특별대책위원회
제재영 지음 / 마인드마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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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한국 우주 난민 특별대책위원회


제재영 작가의 장편소설 <한국 우주 난민 특별대책 위원회>,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1991년 11월부터 35년 동안 우주인과의 교류에 관한 기록 중 일부다. SF영화의 소재와 줄거리의 행간 속에서 길어 올린 상상의 조각들을 씨줄로 작가의 상상력을 날줄로 엮어낸 듯하다. 고대부터 하늘을 보고 길흉을 예견하는 점도 있었지만, 이를 관찰하는 망원경을 만든 과학도 존재했다. 왜 우주(宇宙)일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별까지 모두를 헤아릴 수 없어서다. 우주란 측정 불가능이라 관념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외계인(外界人: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ETI) 또는 우주인 혹은 외계지성(外界知性)은 지구 이외의 천체에 산다고 상상되는, 사람과 비슷한 지적인 존재로 외계 생명체 중 지성을 가지고 있는 생물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나, 외형은 연체동물과 비슷하다. 여기서는 한국에 우주 난민으로 들어온 플라 2.5 행성인 즉 “플라인”을 말한다. 가장 흔한 물 친화형, 갑각류 화 된 플라인은 9%, 형광 혹은 발광을 하는 라이트 버그는 2%가량이다. 태초의 지금처럼 물의 세계였던가 싶다. 


김종태의 <외계 행성의 미스터리>(렛츠북, 2024)를 옆에 두고 드 넓은 우주를 행성들의 이름을 들먹여 보면서 플라 2.5 행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를 더해 준다. 우리와 같은 지성의 생명체가 우주에는 살고 있을까?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떻게 소통할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모르니까 우주인 것을, 이 소설은 1997년 영화 <콘택트>와 2016년 영화 <컨택트>를 거쳐 한국을 찾아온 외계인의 일상이라고 생각해보면 이 또한 흥미롭다. 전자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단파 신호 수신을 통해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한다는 내용으로 1985년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후자는 테드 창의 SF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의 일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에 나타난 거대한 12개의 달걀 모양의 구조물, 외계인과의 접촉하는 이야기, 이 두 영화는 인간과 외계인의 접촉이다.


아무튼, 어찌 됐든 넓은 우주를 얼마나 떠돌아 다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을 찾아온 플라인, 그들이 살았던 우주 공간은 지구와는 얼마나 다를까? 이들은 예전에 살던 고향에서 살 수 없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우주를 떠돌다 한국에 들어오게 오지만, 또다시 길을 떠난다. 그들의 주식은 감자와 비슷하고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또한 흥미롭지만, 왜 정착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구가 포함된 태양계의 외행성에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있고,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는 약 1억 5천만 킬로다. 우리 귀에 익은 목성도 별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행성계를 이룬다. 목성(주피터)과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행성을, 토성계에서는 토성, 타이탄, 엔셀라두스, 테디스, 디오네, 레아, 이아페투스를, 천왕성계에서는 천왕성, 티타니아, 오베른, 아리엘, 엄브리엘, 해왕성계는 해왕성과 트리톤, 네레이드, 히포캠프 그리고 5장에 행성 X를, 해왕성 바깥 천체들과 플래닛 나인, 니비루, 네메시스 이렇게 24개. 뭐 플라인이 이런 곳에서 왔다면 금방 족보가 밝혀지겠지만. 혹시 이들이 살던 곳은 태양이 두 개였을까?, 혹시 두 개의 태양가설처럼 태양보다 크기가 작고 빛도 약한 네메시스(제2의 태양)는 타원 형태로 움직이는데 이 경로에 오르트 구름이 존재한다. 물론 가상의 천체 집단이다. 네메시스가 2,600만 년을 주기로 오르트 구름을 지나가면서 그곳을 교란해서 대량의 혜성이 만들어지고 그중 일부가 지구에 떨어져 대량멸종 사태를 만든다는 것인데, 혹시 이 소설 외계인이 난민이 된 이유는 아닐까? 


한국으로 온 우주 난민 플라인은 관리의 편의성을 이유로 거주를 수도권 내에서만 살게 된다. 우주 난민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서울시의 한 부서, 예전에는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중요부서였지만, 한국을 찾은 19만 명의 플라2.5 행성인은 9개월 동안 살다가 영구 거주자 1,528명을 남기고 다른 우주 공간을 찾아 지금도 여행 중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20만 명 가까운 우주 난민, 지금은 채 10%도 남지 않았기에 외계인 관리요원협회 안에 있는 정보부의 특수지원팀의 대민행정 서비스국, 1,528명을 대상으로 하는 민원실이다. 


중심 무대는 한강 물밑에 차려진 건물, 이른바 지휘부, 민원도, 이동도, 행방불명이나 불가사의한 사건(우주인들이 일으킨 사건은 인간이 보기에는 상식 밖의 일이기에), 미국 TV 드라마 “스타트렉”처럼 외형이 제각각이어서, 인간의 외형을 닮은 슈트를 입는다.  여기에 신고된 사건을 해결해가는 민원실 팀원들의 분투기로 작성자는 공 필연, 작성 기간은 2022.5.13.~2023.1.2.까지다. 


한국 우주 난민 특별대책위원회라 쓰고,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라고 읽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다. 비슷한 꼴의 사건. 이민청 설치 논의가 화두가 될 듯하다, 수면 아래로, 이주 계절 노동자들이 한국의 농어촌 일손을 메우려 한국으로 밀려들어 오는데, 우리 사회는 이중적이다. 동남아 등지에서 시골로 찾아드는 국제결혼 배경의 여성들은 한국인으로 살라며 동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남성에게는 “노동력만 제공”하라, 정주해서는 안 된다. 일했으면 얼른 당신들 나라로 가라고. 플라 2.5 행성인들이 왜 한국을 떠났을까? 그리고 남은 플라인은 왜 남았을까? 

이 흥미로운 소설 무대 밖으로 조금만 확장해보면, 또 다른 현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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