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 경상도의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 걷는사람 에세이 27
안지은.전윤채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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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밥은 먹고 다니니


헬조선, 흙수저, 88만 원과 삼포를 경험하면서 비정규직이란 지각변동을 일으킨 신자유주의와 함께 노동자들 사이에도 같은 계급적 연대는 갈라져 계층이 생겨나고 서로 경쟁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 차원으로…. 이 에세이는 안지은과 전윤채 30대 초반의 젊은 두 작가의 날카로운 대한민국 살아가기 보고서다. 이들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경상도의 딸 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를 말하면서, 


지은이들은 가족이란 남자-여자-아이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뼛속같이, 대한민국 남자들의 유전자 속에 깊이 박혀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젠더의 왜곡, 여성들은 돌봄 노동의 당연한 전담자로 노동의 사회적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비딱하게 쳐다보며, 따끔하고도 속 시원한 사이다처럼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린다.

이 험한 세상을 힘겹게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씩씩한 두 젊은이의 좌충우돌 자유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 내용은 나를 찾는 여정으로 여행과 취미, 연애와 결혼, 고향, 여성, 부모님 세대, 주거, 밥벌이 이렇게 8꼭지를 담았고 윤채와 지은의 이야기를 곁들였다. 


힘이 있어야 연애도 하는 거지


개오바를 떨면서 살아야 하는 젊은 날, 현재진행형이다. 부모님의 재정적 가호로 어찌어찌 버티고 보험료, 휴대전화 요금 같은 고정지출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처럼, 연애해도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나를 꾸미는 게 웃기고 좀 미안할 정도, 피자를 시키려다가도 내일 마주할 통장 잔액만 떠올리면 입맛이 떨어지는 사람들, 나를 챙길 여유가 없다. 오늘을 저당 잡혀 불투명한 내일에 투자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나를 챙기고 나서 연해도 결혼도 생각할 여유가 있을 듯하다.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연애도 저만치 멀어져 간다. 


한 뼘짜리 자취방이 돼버린 지금, 몇 년 전에는 공간도 여유로워 보였건만, 느는 건 잡동사니, 그 사이에 호더에 맥시멀리스트가 돼버렸다. 강박적 축적처럼, 물건을 주워다 성을 쌓듯 한 호딩을, 심리 안정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상처도 재산이라면 나는 부자다


시인 안지은 이야기다. 학창시절 등단이라는 제도권을 통과했다. 그때 그는 시인이라는 직업으로 평생 먹고살 줄 알았다. 소설가(家)는 가(家)를 쓰기에 직업이 될 수 있지만, 시인(人)은 사람이니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시덥지 않는 농담처럼, 글쓰기로 밥 먹고 살 수 없다. 가성비가 최악인 글쓰기, 이걸 밑천 삼아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 세상에서 가장 짠 염전이 있다면 그건 내 월급이라는 안지은. 막상 이력서 칸을 채우려다 보면 정규직, 경력직 타이틀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한다. 모두 계약직이다. 뭐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30대 청년이 갈 곳은 마땅치 않다. 내놔라 하는 유수의 전국 일간지 신춘문예에 등단해도 별 볼 일 없기는 마찬가지다. 


윤채의 이야기도 지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최저임금의 알바 찾아 삼만리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대학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건 계약직이다. 문학 관련 사단법인에서 7년을 일했다. 예산도 억 단위에 국가사업이라 회계도 했건만, 이를 경력 삼은 이력서를 내도 1차 서류전형도 통과한 적이 없으니. 방송국 막내 작가나 알바나 내 손에 쥔 돈을 거의 비슷비슷하니, 


이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힘 빠지는 미래의 장밋빛 희망일뿐, 당장 오늘의 밥벌이를 찾지 않으면 내일 마주할 통장 잔액이 쑥 줄어든다. 사회문제에 목청을 높일 여유도, 환경보호니 뭐니 하는 것조차도 사치처럼 다가온다. 


그래도 나를 찾아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다


두 젊은 작가의 이야기는 푸념이 아니다. 세상살이의 단맛보다 쓴맛, 매운맛에 길들어질 만도 하건만 여전히 길들여 들지 않는다. 내일의 삶을 깎아 오늘을 사는, 마치 매혈해서 밥을 사 먹는 악순환처럼, 세상이 힘들어지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삶의 팍팍함을 전할 뿐이다. 2030세대의 현주소, 지은이들은 삶의 표준도 모범답안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리는시대, 이렇게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경상도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 바로 이 글들이 모여 이유서가 된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는 별다른가, 노동의 끝이 사라져버린 지금, 상처만 남은 노동, 가치상실의 노동, “경상도”란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상징적 표현이다. 이들에게서 각자도생이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의 환경에서 왜 초개인화가 돼가는지를 느낄 수 있다. 왕년에, 라땐 이란 말로 젊은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아주 많이 늦었다. 이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은 “나를 찾아라. 찾거든 절대 놓치지 마라” 나를 놓치는 순간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나를 잃어버린다. 흔적도 없이, 나침반 없는 세상에서는 내가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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