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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되지 않는 사회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
김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2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불되지 않은 사회
김관욱의 <지불되지 않은 사회>는 재독학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의 시리즈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의사로 의료인류학을 연구해 온 학자가 말하는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세계”는 지금까지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 담론을 한 권으로 정리해 놓은 수작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새로 쓰고 잡지에 기고한 글을 기웠다. 지은이의 책을 읽으면서 적이 헤맸다.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각주를 찾아 맨 뒤로 책의 여백에는 참고문헌의 책명과 출판사까지 메모해가면서, 읽었다. 정독이란 표현보다는 탐독이라고 해야 할 만큼이다.
“지불되지 않는 사회”라는 문구의 함의는 헬조선, 흙수저를 지나, 능력주의, 공정의 화두가 왜곡됐다는 말이다. OECD의 가입국, 세계 경제 8위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유가 없다. 마치 16세기의 영국, 양을 풀어주고 사람을 가둔다는 인클로저라는 말, 공유재가 사유재가 되고, 의회 인클로저를 지나, AI 시대의 데이터 인클로저는 필수노동이면서 그림자처럼 가려졌던 가치 있는 일은 무가치하게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어야 함을 지은이는 주장한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58년에 쓴 <인간의 조건>(한길사, 2020)에서는 일(work)과 노동(labor), 행동(행위)을 구분한다. 유럽 사회에서 일과 노동의 구분은 있었지만, 철학자들이 이를 지워버렸다고, 노동은 끝이 없이 사라지는데, 인간의 욕구가 그러하다고, 하지만 일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일하는 자(worker)로 묘사하는 것이 모든 것을 목적을 위해 잠재적 수단으로 여기도록 만든다고 했다. 이 책은 아렌트 저작의 서문 격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지은이는 지난 2년 동안 매달 한국 사회의 노동을 생각하면서 25개의 떠오른 이미지를 짧은 글로 포착, 1장에서 5장까지- 1장 지불되지 않는 노동, 2장 가치를 상실해가는 노동, 3장 상처가 되는 노동, 4장 아물지 못한 노동, 5장 상처가 치유되기 위한 조건들로 정리했다. 1~5장까지의 노동은 그야말로 아렌트에 따라 노동(labor)로 봐야 한다. 끝이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곧 목적을 위한 잠재적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일 과로사로 죽기 위해 오늘은 일하라는 말처럼, 공동체의 연대와 돌봄을 여성의 영역으로 가치 없는 일로 여기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능력주의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모두의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다. 비정규직은 임금으로, 정규직은 능력, 성과주의로 경쟁으로 내몬다. 그 끝에 있는 것은 허탈감이다.
그리고 6장과 7장 이 두 장으로 현재 사회를 설명한다. 6장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그 끝의 정동을, 디지털 자본주의는 노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이른바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이버타리아트로 모습이 변했고, 산업혁명으로 공장 로봇이 일하는 사람을 쫓아냈지만, AI는 지식노동자들을 대거 몰아낼 것이다. 데이터 인클로저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 “일”은 상대적이란 말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론 여기에는 논쟁거리도 있다. 7장. 공정한 노동 끝 우울:공정의 정동 병리학,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 베리, 2020) 물음,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25개의 이미지 속에는 쿠팡 청년노동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좀 더 일하면서 배려하는 공동체적 연대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가 아니라고, 영화<다음 소희>처럼 고객을 위해 친절함으로 만들고 폭언과 욕설 앞에 자신의 수치심을 참아야 했고, 결국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것이 오늘날 직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단면이다. 진로선택과 탐색의 과정이 아닌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정글만리를 헤쳐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나를 지워 버리면 좋은 본보기인 사회라고 일러준다.
일할 “때”를 정해주는 이중 빈곤의 사회
노동의 진정한 의미란 자유의지로 시작과 끝을 정할 수 있느냐로 정해질 수 있다. 아렌트가 말한 일(작업)이다.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업무와 아무리 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노역(奴役)이다. 아렌트가 말한 노동의 속성과 같다. 지은이의 “노역”이란 표현이 아마도 한국 사회의 노동을 적확하게 드러내 주는 게 아닐까 싶다. 화이트칼라 든 블루칼라든 이중의 구별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식 졸업식장에 못 가볼 만큼 일에 치여 사는 데 누구의 때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공정한 노동 끝 우울: 공정의 정동 병리학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낱말이 등장한다. 디지털 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 포함)는 “공정”을 강조한다. 공정을 화두를 중심으로 노동이 어떠한 정동(일상을 지배하는 마음 상태) 속에서 구체적 질환으로 바뀌는지를 본다. 정동은 끊임없는 마주침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느낌의 뭉치다. 특정한 감정으로 이름표가 붙기 전의 느낌이자 원재료다. 노동 끝에 마주하는 우울, 정동적 마주침이 혐오, 모멸, 수치 등을 교환하는 부대낌이 어떻게 정신적 아픔을 초래하는지,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재해사고 대부분은 50인 미만의 영세 소규모사업장에서 일어난다. 대기업의 위험 외주화가 주요 원인이다. 업무에 기인한 정신질환 또한 산재다. 이른바 일본에서 80년대 사회적 문제가 됐고, 과로 자살이라는 개념이 생겨날 정도였다. 국제적으로 KAROSI(과로사의 일본어 발음)로 표기할 정도다. 일하다 자살한 사람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로, 즉 높은 직무요구도, 낮은 사회적 지지, 노력과 일치하지 않는 보상, 직무불안정성, 위험 및 폭력 등 이른바 ‘정신건강’을 해치는 환경이다.
지은이는 인류학을 비롯하여 사회학, 심리학 등 수많은 문헌과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많지 않은 분량 속에 “노동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화두이자 질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