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머슨의 자기 확신에 관하여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솝희 옮김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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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자기 확신에 관하여


에머슨은 19세기의 미국의 철학자다. 나무위키는 그를 시인, 수필가로, 초월주의를 주장하였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립, 자연의 효용과 목적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이에 대한 인간의 사용을 주장하여 자유지상주의, 실용주의 등 후대 미국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소개한다. 자연의 효용과 목적으로 실리와 아름다움, 언어, 그리고 훈련을 들었다. 정신을 물질보다도 중시하고 직관 때문에 진리를 알고, 자아의 소리와 진리를 찾으라고, 이런 그의 사상을 소개하는 책들은 2023년에서 이 책<에머슨의 자기 확신에 관하여>에 이르기까지 “에머슨이 바라본 세상”, “랄프 왈도 에머슨 성공의 법칙”, “자기 신뢰:,운명을 개혁하는 인간” 등 여러 권이 나올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관심은 “나다움을 일깨우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생의 고전”을 향한다. 여전히 그의 사상에서 어떤 영감을 받고자 한다. 그의 생각은 인간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심리학과 노자의 사상 등에서 나오는 것들과 놀랍게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이른바 인간탐구의 보편성이랄까, 


이 책은 95개의 글이 실려있다. 1장 자기 신뢰를 비롯하여 9장 지성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뢰는 당신 자신을 믿고, 본성에 법칙에 따르라 삶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자신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다. 모두의 삶은 결국은 같다는 존재론 이는 노자의 자중자애,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고와 통한다. 2장 보상에서는 모든 것에 대가가 따른다, 사랑하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니, 가장 강한 힘은 약점에서 비롯된다는 말 또한 심금을 울리다. “약점”에서 출발하라고, 3장, 정신의 법칙에 실린 ‘생각이 곧 행위’이며 ‘남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말라’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등의 11개 문장, 4장 사랑과 5장 우정에 실린 20개 문장에서는 가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것을 사랑이 했다. 우정에서는 친구의 모든 것을 찬양하고, 책을 다루듯 친구를 대하라, 6장 신중함에서는 신중함이란 세상의 법칙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7 장 초영혼, 8장 원에서는 우주의 법칙을, 인간의 삶은 스스로 진화하는 원이라고 했다. 생각은 어떻게 발전하는지, 침묵은 어떤 대화보다 낫다. 그리고 누군가의 정의는 누군가의 불의가 된다고 하여(절대 정의에 관한 생각을, 어떤 정의가 상대적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용기가 곧 품격이라고,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에 관하여 말한다. 9장. 지성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받아들일 것, 자신에게 의미가 없는 것을 거부하라고,


이렇게 우리 삶에 자신에 관하여, 다른 사람에 관하여, 사랑과 우정, 신뢰, 신중함, 지성에 관하여 95개의 글은 자신을 자신답게 살 수 있는 영혼 가이드라고 해야 할까, 백 년 세월 전에 그가 했던 말들은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보편적 진리라서 영원함 힘을 갖는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면 첫째는 사람의 도구화’다. 인간 사회는 서로 협력하면서 사는데, 분업화된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은 무언가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도구’로서의 운명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 사회적인 ‘소외화’다. 현대사회는 뭐든지 ‘돈’을 절대적 목적으로 삼기에 돈이 절대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직업과 교육, 결혼과 가정의 존재 의미와 애초의 목적을 다르게 이해한다. 성적은 비즈니스로 바뀐 것, 결국 본질에서 본래 목적에서 멀어지는 ‘소외’가 당연하게. 목적과 수단의 전도다. 세 번째로 ‘모순과 분열’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아실현’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그것이 성공하는 인생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살다 보면 내 능력과 의지의 한계를 실감, 지위나 역할과 관계없이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자기 신뢰를 더 굳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지, 


평범한 삶의 초월주의 “누군가의 정의는 누군가에게는 정의롭지 못하고” 


누군가의 아름다움이 다른 이에게는 추함으로, 누군가의 지혜는 다른 이에게는 어리석음으로, 왜 이렇게 달리 보이는 것일까, 어떤 이는 이 대상을 더 높은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라는 에머슨, 어떤 이는 빚을 갚은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므로 빚을 갚으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진 빚, 어느 쪽을 먼저 갚아야 할까?, 관점을 달리해보자, 돈에 대한 빚인가, 사람들에 대한 빚일까, 아니면 자연에 대한 빚일까? 상인이라면 계산 외에는 다른 기준은 없겠지만, 에머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랑, 신념, 인격의 진실, 인간의 열망, 이런 것들을 신성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모든 의무 중 하나만 따로 떼어 돈을 갚는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라고,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비록 더딜지라도 더 큰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결국 모든 빚을 갚게 될 것이다. 궁극적이란 덕은 없다. 모든 덕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용기가 곧 품격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95개의 이야기에 감명받고, 기억해 두려 할지 모르겠다.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용기가 곧 품격이라는 말에 끌린다. “가장 단순한 말조차 우리가 사랑하고 열망할 때가 아니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세게 다가온다. 삶은 놀라움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드는지,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존재를 구축하는 중일 것이다. 우리는 진리가 신성하며 유용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저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만 알 뿐 아니 느낄 뿐이다. 


발전하는 사람의 새로운 위치는 이전 위치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힘을 전부 가지고 있지만, 그 방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다. 낡은 그 무엇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이 보인다. 여기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용기이며 품격이다. 대상화됐던 내 주변에 있던 것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내 열망에 반응하는 것인데, 이때서야 비로소 이것들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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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여행 설명서
윤태진 지음 / 북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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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인간 여행 설명서


의사, AI 개발자, 작가인 윤태진의 장편소설 <인간 여행 설명서>는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여행이다. T807 편으로 떠나는데 기간은 49일이다. “결핍”이라는 조건이 여행을 떠받치는 핵심이다. 결핍 요소의 현실화는 슬픔, 울음, 고난, 시련, 실망, 절망, 고뇌 등을 일으킨다.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 마치 지구의 중심의 멘톨을 찾아 파 내려가는 SF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신” 여행사와 인간 여행상품.


작가의 상상력, 여기에 T807과 49일이란 의미가 아주 깊다. 불가에서 말하는 49천도제를 의미하는 숫자 “49”인가싶기도 하다. 육신을 떠나 아직 저승으로 완전히 이사 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 중음신을 제도해 주는 기간임. 중음신이 중음계에 머무는 최대 기간이 7일에 7을 곱한 것인가, 아니면 이시야 49장 13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는 구절인가, 아무래도 좋다. 공통요소는 “위로”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위로”를 찾는 것이며 이를 찾기 위해 “결핍”이라는 조영제를 주사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 여행의 주요 원리는 결핍 해소를 위해 꿈을 꾸고, 생각을 통해 외적 제한 시공간을 재배열하고 재배열된 시공간을 다시 느끼는 경험으로 여행자들의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지혜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 몸에서 빛이 빠져나오면 여행은 끝난다. “빛”이 빠져나오면... 어ㄸ너 이들은 후유증으로 헷갈리기도 한다고, 인류의 유명인들 역시, 인간 여행 경험자였다. 


가장 좋은 여행코스는 무엇인가요?


“세상이 끝난 줄 알았더니, 저 끝에 빛이 보였다. 그 순간 난 인내라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그렇다면 운명이란 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인가? 최근 사주는 자신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 매개이자 과학적이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인간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 이들의 감상은 “이게 원래 나에게 정해진 나의 길이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느낌, 결핍에서 이루어진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여행사 ‘신’, 신의 예정인가 하는 의문과 생각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그리고 현대로까지 이어지는 시공간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여행, “~ 만약에”라는 선택지를 누르면 어떻게 될까, 인류 역사에 등장한 주요한 사실들을 그 시대에 그 현장에서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여행상품은 특별한 목적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빛으로서 우리의 존재 가치에 무언가 우리가 모르는 결핍의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애초부터 불 완전체라는 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중심의 생각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불완성을 즉 결핍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 여행 속에 담긴 결핍이라는 핵심 요소, 한 여행참가자는 생식이라는 거에 큰 기대를 걸었다. 이성 교제는 최소한 1회 정도는 할 수 있게 바꿔줄 수는 없는 것인지 신 여행사에 묻는다. 그는 태초부터 빛으로 존재해왔던 우리에게 남자 인간과 여자 인간이 만나서 새로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이색적이고 신선한 경험이 될 거로 생각했다. 모태솔로라는 말인데, “신” 여행사는 모태솔로도 정상적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이게 “결핍”이라고 생각할까?


신 여행사 서버 뚫린 듯요~


인간 여행상품 안에 인간 여행자가 아닌 다른 존재를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다 지그재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엄청나게 밝은 원형 비행체, 숲속에서 식물을 채취하는 유달리 머리가 크고, 몸통과 손발이 작은 생명체를 본 적이 있다. 이들은 아마도 인간 여행상품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버에 접속한 다른 존재가 아닐까, 지구 밖 우주 생명체의 존재를 말한다. 미국 TV 드라마 X파일에서 나올법한 일들이, 정체를 모를 생명체가 인간을 데려다가 신체조직을 채취하고, 생식 부위를 가리키며 서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는 경험담도 있으니 말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2012)는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여정이다. 인간이 외계인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생겨난 생명체라는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엔지니어라는 부르는 외계문명이 인류의 기원을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의 기술과 유물을 탐사한다. 외계인은 인간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더 높은 단계의 상징이며 인간의 파괴 본능과 생존 본능, 침략과 전쟁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괴물 이야기가 바로 외계인?, 이 소설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 기원은 어디일까 하는 따위의 근원적인 물음에서 무리를 짓고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데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작동되는 것은 인간의 파괴와 생존의 본능 때문인가, 이것이 바로 이를 통제하고 균형을 잡는 그 무언가의 “결핍” 때문인가, 그 기술이 반드시 인류에게 긍정적인 결과만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일러주는 건 아닐까,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 신이 우리의 존재 자체의 불완전(결핍)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에서 준비한 여행이었던가, 이야기는 상상을 넘어, 인간은 우주 속에 작은 티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미미한 존재임을 일러주는 한편,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바로 결핍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를 채워가는 것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성찰이 시작됨을 일깨워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이런 경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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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그 깊은 독백 -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 바람이 지구를 흔든다
박갑성 지음 / 예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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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얘들아, 삼백육십오 일 남았어


박갑성 작가의 에세이집<정년, 그 깊은 독백>, 정년퇴직을 한 해 앞두고 제주에서 한 달 살 이를 하면서 지난 세월 익숙했던 것과 결별 연습, 생각보다 쉽지 않다. 관성이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일 정도이니 몸이 기억하는 루틴을 정년 후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바꾼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익숙한 것, 익숙한 곳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유나 해방감보다는 불안이 앞선다. 


지은이는 정년이 다가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일에서 해방되면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는 현실 앞에 어떻게. 책 구성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또 봄과 여름이다. 펜 끝 가는 대로 노트북 자판이 움직이는 대로 내 일상을 적는다. 이렇게 한 올 한 올 풀어내면 내 안의 루틴도 바뀌지 않을까, 사고법도 자연을 보는 법도 세상을 향한 눈길도 달라지겠지.


정년이 뭐지,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정년(停年) 停: 머무르다, 정해지다. 밀리다, 버스정류장(停留場)처럼, 사전에서 정년의 뜻풀이는 공무원, 회사원 등이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퇴직하도록 정해진 나이다. 백세시대인데 정년연장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사회담론도 있지만, 애초 ”정년“이란 무엇이며, 누가 왜 정했는지, 미국 같았으면 ”연령차별“이다. 노인도 법적으로 그 나이를 정해 개념화하듯이, 정년의 이데올로기라고 해야 할까, 실제 정년이 생긴 지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기업 등의 인력관리의 필요성 때문에 정년퇴직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고령자고용촉진법에 정년을 61세로 정했다), 그 이유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들도 있는데, 연공급, 효율적 정년제, 노조 선택 등이 있다. 아무튼, 2033년부터는 65세 정년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정년연장은 연금 수급개시 기간과 맞추기 위해서였는데, 일본 등으로 이에 따르는 추세다. 물론 정년연장 찬반논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이제 국민 복지라는 담론 속으로


정년을 맞이하는 이들의 감정변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까운 사람도 때로는 손익계산서가 필요하고 시퍼런 칼날을 겨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불필요한 인연을 만들지 말라, 인연에 중독되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연이란 바람과 같은 것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내 삶은 다른 사람의 것이 돼서 깨지고 상처 입고 주인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삶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중요한 행위이면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지은이는 노자의 생각과 심리학자들의 조언을 기억해두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볍게, 자중자애, 내 삶은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그리고 현실


온종일 국민 연금, 고용보험, 퇴직연금, 지역 건강보험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설명이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회사라는 우산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왔다. 최근에 파리바게뜨와 커피집을 방문할 때마다 가격표를 보면서 손길이 멈칫멈칫하는 내가 우습다는 지은이, 이것이 현실이다. 내 인생에 존재감을 보인 적도 훅 들어온 적도 없던 국민연금, 고용보험, 퇴직연금을 찾는 게 현실이다. 


이번 역은 정년퇴직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환승역을 찾는 승객들, 이들은 하우스푸어가 될지, 리타이어 푸어가 될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내일이 무섭고 두렵다. 정년이란 괴물이 이렇게 내 인생에 훅 들어와 혼란스럽게 한다. 남의 일처럼 여겼던 정년, 환승역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정년퇴직 역에서 내려 곧장 나가야 할까?, 환승역을 타면 또다시 일터로, 정년의 한가로움과 불안감이 겹쳐 묘한 느낌을 즐겨볼 것인가, 아니면 몇 년 더 출근길을 나서야 할까?, 


이 책 속에 글들은 오랜 세월 같이해 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 열심히 생활하는 자식들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 종합선물세트가 되어 그에게 돌아온다. 명패도 내려놓고, 남은 명함도 쓰레기통으로 그리고 나선다. 내일을 향해, 환승역일랑 내일 또 생각하고, 오늘은 정년퇴직 역에서 내리자. 


정년을 앞두고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뜨겁게 공감할 듯하다. 열심히 앞만 보고 일터와 자기 일, 가족과 함께 지내온 시간의 소중함을, 아마도 정년을 앞둔 이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이런 생각에 잠기지 않을까, 이런 깊은 독백은 정년에 이르러, 정년을 앞두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실과 은퇴 우울에 빠질 수도, 한국 사회가 피로사회임을, 쉬는 것이 불안한 사람들, 죽는 날까지 내 힘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이즈음이면 모두가 철학자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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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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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다가오는 죽음 멀어지는 삶


한수경 작가의 소설<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관리인의 하루>, 제목을 보면서 여러모로 상상을 해봤다. 삼촌 장례식, 흙산인 공동묘지, 그곳에 삼촌은 묻힐 것이다. 지금까지 주인공 수영을 돌봐주던 삼촌이 세상을 뜨자, 혈혈단신의 사고무친 그 허망함과 슬픔은 사치일 정도로 그의 삶은 궁핍하다. 들어온 부의금만 가지고는 장례식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수중에 남은 돈을 다 떨어도 턱없이 부족하다. 할부로 장례비용을 치르려고 접수처로 향하는 발길은 천근만근이다. 가장을 잃고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근처 나무에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구인광고 “무덤 관리인”, 그 옆에 쓰인 월급이 수영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죽음으로 삶의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눈앞에 보이는 삶의 끈


주인공 수영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자였다. 장례비를 치르러 가던 그 순간까지, 구인광고를 보는 순간 탈출구를 봤다. 순간순간 뭔가를 상실하기도 하지만, 또 순간순간 희망을 얻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의 삶의 과정이지 않을까, 죽음과 삶의 경계의 상징적 공간이자 무대인 공동묘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간직한 저마다의 사연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태워 묘지에 묻고 가슴에 묻고 눈 속에 간직한다. 


무덤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상실을 겪은 참배객, 이들을 고객이라 부르며,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덤 관리인, 이들에게 이곳은 삶의 현장이다. 밤에 귀신이 나온다며, 용돈 벌이를 위해 심령사진을 만들어 내 고객들에게 파는 일도, 묘지라는 무대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묘지는 귀곡산장, 납량특집의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온갖 상실을 경험하면서도 어느 한순간 얼굴에 번지는 웃음은 행복이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는 여전히 살아야 하는 그런 세계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아니라 죽어가기도 하고 살아가기도 하는 역설이다. 죽음을 막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죽음 맞이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할까, 


소설은 무덤 관리인이라는 생소한 일의 세계로, 을씨년스럽고 소름 끼치는 산 사람이 머물 수 없는 죽음의 영지, 눈에 보이는 광경과 다르게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웃고 즐기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다투기도 하고, 서로를 격려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


그저 곁에 있다가, 함께 밥을 먹고 집이란 공간에서 때로는 떨어져 살지만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한다고 믿고 안심한다. 이른바 동시대를 산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죽음 바로 거기 그곳에 중단을. 상실로 볼지 삶의 한 과정으로 볼지는 세계관과 가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죽음이 죽은 이와 살아있는 이를 갈라놓을 수도 갈라놓지 못하는 수도 있다.. 죽은 이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또 살아내고 있다면... 죽은이를 가슴에 묻고 살지라도 어느 한순간은 그 존재를 잊을 만큼, 아니 가슴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밀어넣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어떤 형태로든 다가오는 죽음, 그렇다면 멀어지는 삶을 좇아 발버둥 처 보는 건 어떨까?. 


장례식장 너머 늘 무덤을 보고사는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 그곳 또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들이 살다보면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는 그런 곳이다. 제목만큼이나 지루할 틈이 없이 이일 저 일로 바삐 돌아가는 고즈넉한 무덤과 바삐 사는 무덤 관리인이, 꽤 흥미로운 발상의 소설이다.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은 삶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무덤 관리인의 하루는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분주하다. 무덤의 역설이랄까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묘지를 감싸는 고요함 속에도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과 다를바 없이 뭔가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삶이다. "무덤"이란 멈춤과 끝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움직임의 시작이다. 무덤을 둘러싸고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한데 얽혀 사는 모습은 삶이다. 죽음과 삶이 함께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읽기에 따라서는 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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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역사 - 이해하고 비판하고 변화하다
니알 키시타이니 지음, 도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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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리는 왜 원하는 것을 마음껏 갖지 못하고 선택해야 할까?


이 책<경제학의 역사>은 독특한 경제사이자 경제사상사로 재미있는 사례와 비유를 들어 쉽게 경제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경제와 정치만큼 헷갈리는 분야도 없다. 경제란 무엇인지, 거창하게 거시, 미시, 경제원론, 통계 등 다양한 영역이 있다. 실증이니 이론이니 하는 것도 있어 경제는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면 생활경제도 경제인가?, 생활 정치가 정치인가? 우리 생활 자체가 경제이고 정치인데, 왜 자꾸 대상화시키고 밀어내려 할까?, 실제 이 책에서는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여러 사회문제의 실마리를 풀고 많은 사람이 잘사는 세상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사람의 생존, 건강하게 살고, 교육받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경제학도가 아닌 일반 사람의 눈높이에서 알아두어야 할 꼭 필요한 경제학의 핵심 개념과 경제사상가의 이론을 다룬다. 여기에 오늘날까지 경제학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됐는지,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여다본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경제학의 개념과 이론이 어떤 배경에서 누구에 의해 발전됐는지를 담은 40개의 이야기로 정리했다. 중요한 몇 가지를 보자. 경제학자의 자질과 돈이 신과 함께 섬길 수 있다는 사고, 사회주의 발명가, 이성과 선의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마르크스의 이론, 사라진 여성 등을 살펴본다. 경제사에서 다루는 건조한 이론 나열보다는 핵심 개념과 포인트 그리고 이와 관련한 학자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쓰기 방식이 딱딱한 경제학이 아닌 쉬운 경제학 현상을 다룬다. 


경제학자의 자격과 자질


경제학자는 차가운 머리와 따듯한 가슴 외에도 갖춰야 할 게 무엇인지,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 자신의 관심사만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적인 방식 너머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다. 경제학의 역사를 공부하면 이런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 경제사상가들이 당시의 환경 속에서 고유한 관심사를 어떻게 사상으로 발전시켰는지를 배움으로써, 우리가 현재 처한 환경에서 관심 대상에 관한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지를 알 수 있기에. 경제학자들을 향한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경제학자는 어용 나팔수가 아니라 이성과 배려를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기술이 아닌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경제


중세의 성직자들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절도처럼 여겼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자급자족의 마을공동체를 벗어나 교역, 유통이 시작되자, 돈의 힘은 점차로 홀로 커가기 시작, 돈은 돈을 낳고, 무역으로 확장, 11세기에 막 들어설 때까지도 교황은 상인은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세기 후 12세기 말 교황은 호모보노라는 상인을 성인으로 추대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13세 중반이 되면서 이탈리아 어느 회사의 장부에는 ‘신과 이익의 이름으로’라고 하느님의 경제가 상업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어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돈과 신을 함께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한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


사람들은 때로 가난한 사람을 보고 가난하게 살아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그저 게으르거나 악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19세기 들어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흙수저는 흙수저로 살아야 하나, 부익부 빈익빈의 질서는 자연스럽지 못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으로 몇몇 사람은 부자가 됐지만, 다수의 사람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이때, 자본주의와 대척에 서는 ”사회주의”를 꿈꾸는 이들이 등장한다.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그런 세상을, 푸리에는 새로운 사회를 제안하는데 이것이 ‘조화의 체제“ 팔랑스테르라는 소규모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팔랑스테르 안에는 작업장과 도서관, 오페라하우스까지, 이곳에서는 다들 어떻게 돈을 버는가?, 임금 대신에 팔랑스테르가 내는 이익으로부터 각자의 몫을 받는다. 로버트 오언도 공동체를 설립했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끝났다. 인간의 욕구는 한도가 없다는 점, 편하면 더 편한 것을 찾고, 악당들은 기생하려 들기도, 생시몽 또한 푸리에나 오언처럼 시장과 경쟁은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들을 사회주의 발명가라고도 한다. 모두 인간의 이성과 선의로 완벽한 세상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계의 노동자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던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갈등은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모순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점점 더 세게 쥐어짜 이윤을 지키려 한다. 경제 파이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결국 전체 체제가 붕괴, 노동자는 폭동으로 공장과 논밭을 점령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세운다. 이런 마르크스의 생각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세계관으로 발전, 세계 각국에 나타난 공산주의 엄밀하게 보자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는 단 한 번도 작동된 적이 없다.다만,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했을 뿐이다. 번역자가 공산주의라고 번역했지만, 실제는 사회주의 단계조차 성숙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다른 이론으로 대체했다. 


사라진 여성 


노벨경제학상을 받은1990년 활동한 아마르티아 센은 세상에서 적어도 1억 명의 여성이 사라졌고, 그 원인을 극심한 경제적 궁핍 때문에 희생당한 것으로 봤다. 1990년대 경제학자 중에 ”경제의 성차별”을 설명하려 했고 이들은 여성주의(성 평등,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정치적 사상)와 경제학을 결합했다. 린다 스콧의 <더블엑스 이코노미>(쌤앤파커스, 2023) 더블엑스란 배신하다 속인다는 뜻으로 모든 여성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경제적 배제”를 경험했다고 적고 있다. 


40개의 이야기,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다양한 현상과 이론들이 소개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더블엑스 경제 등까지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어둠의 경제학을 다루고 있다. 밝혀져야 할 내용, 어떻게 어둠의 방향으로 가게 됐는지, 수정자본주의를 넘어 금융자본주의로까지 점점 살아남기 위해 지배하기 위해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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