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섬을 걷는 문화인류학자 -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발리에서의 여정
정정훈 지음 / 사람in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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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 연구자의 “발리” 현지 조사보고서


문화인류학자 정정훈, 그는 문화라는 마법의 단어를 품고 인도네시아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한다. 적도의 태양이 길러낸 신비로운 공동체 마을 뉴꾸닝 사람들과 함께 오달란(마을 의례), 섣달 그믐날의 네빠데이, 장례식과 성인식, 관광업과 그들의 일상 속 깊이 들어가 관찰한 기록이 바로 이 책<신들의 섬을 걷는 문화인류학자>이며, 부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발리에서의 여정이라 붙였다. 


관광인류학과 문화정책 탐구를 위한 발리 여정은 관광 환경에서 지역 주민의 문화적 행위는 어떻게 표현되며, 관광객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주민 집단은 관광발전에 어떻게 대처하며 기존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적응시키는가?, 문화의 상품화가 기존 문화적 가치와 전통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등의 과제수행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 같은 화두는 꽤 의미 있다. 관광자원 상품화, 즉 문화의 상품화가 기존 문화의 가치와 전통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는 주제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 구성은 19꼭지다. 지은이는 스쿠터(작은 모터사이클)를 타고 발리의 밀림을 누비면서 여는 첫 번째 이야기 ‘완벽한 마을을 찾아 나서다’를 비롯하여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진짜 발리의 탄생을 거쳐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다시 떠오르는 것, 네삐데이, 오달란, 열아홉 번째 이야기 ‘보름 동안 이어지는 장례식과 성인식’ 등이 담겨있다. 


문화인류학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풀기 위한 답을 찾아 용맹정진의 길이다. 동남아시아의 인구 대국, 수만 개 섬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 2억 2,400명에 달하는 무슬림은 인구의 87퍼센트 정도다. 이 보고의 무대 발리는 400만의 힌두교 신자가, 인도의 힌두교와는 사뭇 다르다. 조상과 정령 숭배 믿음이 강한 곳, 마을과 일터에 사원 뿌라가 있다. 사원에서 치르는 의식을 통해 사회적 위치와 관계망을 구축한다. 




발리의 주도 덴파사르를 걷는다


힌두교 사원이 2만 개가 있다는 발리주 수도인 덴사파르에는 인구의 3분의 1이 사는 관광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지은이는 인도네시아를 배우면서, 현지 조사 지역 우붓으로. 발리를 여행할 거라면 알아두어야 할 사회문화 분위기가 실려있다. 한국의 60년대일까, 교통경찰관의 돈 뜯기. 외국인을 상대로, 이마저도 흥미롭다. 


지은이의 박사학위 논문 <노란 코코넛 마을: 발리 그리고 우붓 사람들>의 무대로, 2년 동안의 발리섬 경험의 스케치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에게 단편적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발리섬, 그곳의 낙조가 일품이다. 신혼여행지로서 좋다. 보트도 타고는 그저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상이다. 




이 책에서 중요한 대목은 문화인류학 연구자의 연구 생활이란 무엇인지, 현지어를 배우고 이론을 정립하고 현장 관찰을 통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 또한 문학인류학이란 학문 영역을 도전하려는 이들에게는 귀중한 지침서로서 작용할 듯하다. 발리 주 정부의 관광에 관한 인식이란 점에 눈길이 간다. 


관광이 가져올 폐해를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관광의 방향을 문화 관광으로 정한 것이다. 남태평양에 파라다이스 발 리가 아닌 역사와 예술이 살아있는 숨 쉬는 발리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발리인은 히따까라나(번영)의 세 가지 이유로 해석되는 전통철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 신과의 조화, 사람들 사이의 조화, 자연과 환경의 조화 필요성(신, 인간, 자연 삼위일체의 조화)을 제시, 이를 위해 일상의 삶과 공동체의 협력, 건축의 공간 구성에 이르기까지 생활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관광 산업 지향점은 어디인가를 되묻게 한다. 앞다투어 트렌드를 만들고 이를 쫓는 획일화된 관광상품 개발의 천박함, 경쟁적으로 당해 지역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근시안적이 인공물 조성과 상업성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관광의 지향점은 아닐 듯한데, 발리인들의 신, 인간, 자연과의 조화라는 삼위 일체적 사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관광객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존중, 문화를 대하는 태도, 우리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정성을 담아내는 먹거리 등은 사람들 사이의 조화다.





이 책의 시사는 “대한민국 관광의 목적과 방향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로 이어진다. 한 번 찾는 것으로 발길이 끊기는 관광, 이건 이미 실패다.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곳, 삶에 지친 이에게 의욕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 관광이란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바람직한 관광이란 무엇이며, 전통과 문화가치와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돈보다 앞서는 것이 문화적 가치 혹은 문화가치”라는 점에서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할 듯하다. 아울러 사족일지 모르겠지만, 연구결과만 보고 평가해줬으면 좋겠다는 지은이의 언급, 논문을 누가 썼느냐, 논문 앞에 적인 "지방대학"보다는 내용을 살펴줬으면 한다는 바람이 곧 한국의 현실을 엿보게 한다. 아주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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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도시 이해 - 북한 도시를 아십니까? 북한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강채연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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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북녘 도시의 이해


지은이 강채연은 국제정치학자로 통일연구원과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냈던 국립 통일교육원 교수다. 성균관대학 정치외교학과 국가전략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의 학문적 관심 영역은 북한 연구 분야다. <북한의 발전 전략과 평화경제>, <북한 선군정치와 ‘관료적 시장경제’>, <김정은 시대 녹색 담론의 정치경제> 외 다수가 있다. 


그는 이 책<북한 도시 이해>에서 “도시란 무엇인가?” 지리, 역사, 정치와 경제환경에 따라 도시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인데, 도시는 단순히 철학과 정치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어떤 기준으로 도시를 규정하는 건 어렵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도시의 속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공간이기에 그렇다. 지은이는 수년 전에 2년여에 걸쳐 25편의 북한 도시 연구를 주제로 다뤘던 북녘 사람들의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를 조감해본다. 북에는 28개 시(남한 85개시)가 있다. 특별시(평양, 남포, 나선)와 25개의 시, 이중 평안북도 구성, 정주, 평안남도 덕천, 강원도 문천, 양강도의 삼지연 등 다섯 곳을 빼고 23개 시의 도시를 스케치해본다. 


구성은 4개 장이며, 1장 ‘가깝고도 먼 도시’ 에서는 평양, 사리원, 평양의 관문 평성, 서해평화협력지대의 꿈이자 남북 NLL(북방한계선)의 중심에 있는 해주, 남북분단의 완충지 개성 등 다섯 개 시를, 2장 ‘항구도시의 밤과 낮’에서는 북한의 항구도시를, 3장 ‘국경이란 무엇일까?’에서는 국경도시를, 4장 ‘금은보화에 가려진 그림자들’ 이란 주제로 광물 등 천연자원이 있는 도시를, 입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북한의 도시는 성장하고 변화한다. 건물의 변화에도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겨있듯이, 지금 북녘 도시의 색깔은 무엇일까? 상상해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국경이란 무엇인가? 북중, 남북의 경계선 도시들


철마를 달리고 싶다. 목포-신의주, 남과 북, 상징적인 판문점을 지나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러시아, 또 절반의 백두산 너머에 중국, 국도 1호선 기점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신의주는 북중친선의 냉온 교두보이자 한반도 통일의 교두보, 분단과 통일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국경도시다. 조선 시대의 의주 땅이 새의주, 신의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에는 해방 후 현재까지 화교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데, 해방 전부터 신의주와 단둥 사이의 무역은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교통 중심이었다. 북중 무역의 70퍼센트가 이루어지는 공식, 비공식 국제무역 도시다. 2000년대에는 김정일의 새로운 특구 구상에 따라 ‘신의주특별행정자치구’를 추진하기도,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으로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인 양빈을 임명하기도, 중국과 홍콩의 관계와 대비되는 곳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탕, 혼합지역이기도 한 신의주는 신흥자본가들이 모여든 곳으로 20만 달러 이상의 아파트 거래될 정도이니, 북한은 못살고 굶주린 한국의 60~70년대 도시 모습으로 생각했다가는 오산이다. 기업과 시장의 유기적인 공생관계가 구축된 이곳, 자발적 소유화와 민영화가 추진된 지역이라니, 가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압록강변의 만포진, 조선시대부터 전략요충지였던 북부내륙의 전략적 요새, 만포진은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개시 후, 중국 남하군이 도강했던 곳이다. ‘사회주의 본태가 살아있는 곳’ 2017.12.3. 김정은이 만포시의 압록강타이어공장을 시찰하면서 한 말이란다. 지안-만포 사이의 만포 국경철도와 제3 압록강 대교를 통해 북중 교류가. 2011년 김정일이 이 철교를 통해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기도, 한국인과 일본인의 이용, 방문은 현재까지는 엄금, 절대 금지 구역이다. 만포경제개발구가 현실화하면 제2 단둥-신의자 내지 나선경제무역지대와 같은 곳이 될 전망이다. 북의 군수공업을 대표하는 전략적 요충지인데.


북중 국경지대, 조선 시대 밀무역 지대였던 곳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형식과 내용은 변했을지라도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의 모습, “국경‘이란 무엇인가? 라는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조선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슬픈 역사가 깃들여 있는 곳이기도. 다음으로 압록강 연안의 교두보 자강도의 중심 ”강계“ 청동기시대,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내륙 고산지대의 역사유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장이다. 


이 책에 실린 도시 23곳, 그중 국경도시 몇 곳,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섞인 공간이자, 화교들이 모여든 곳이기도, 천연자원을 북에서 북으로 중국을 향해 끊임없이 트럭 행렬을,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남북공동경비구역이 남북공동 경제연합지역에 한반도 출신의 특별행정구 장관을 임명한다면, 개성에서 한때 손발을 맞췄던 남과 북의 경제협력, 개성 역시 국경지대다. 북중처럼 남북무역이 이루어지는 공간, 개성이 열리는 순간은 정전에서 종전으로 대치와 경쟁에서 협력과 평화로 뒤바뀌는 질적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금강산”관광이, 경제협력으로, 북중관계가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듯이, 남북 또한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단국가 70년은 한반도 평화 정착 부침의 과정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여전히 어색한 남북한 국경이란 말


국경이란 말이 여전히 어색하다. 3.8도 선이니, 휴전선, 비무장지대가 오히려 익숙하다. 유엔의 동시 가입으로 국제법상으로는 남북은 독립국이지만, 정서적으로는 하나의 국가, 분단된 상태, 통일이 소원인 남북,  법적으로도 북한은 미수복지역인 대한민국의 영토다. 여전히 남과 북은 정전상황이라 체제 유지에 서로를 적절하게 무기로 삼고 있다. 때때로 TV뉴스에서 들리는 국가보안법 위반, 북과 당국의 허락없이 통신, 만남,소통했다는 이유, 북을 찬양했다는 죄명으로, 분단이 낳은 슬픈 상황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북녘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이들도 눈치작전도 하고 시장주의 경제가 부분적으로 통용되기도, 사람 사는 곳은 경제체제와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주 특별한 곳이라는 ”북한“ 그것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범죄도, 사회 이슈도 유행도, 휴대전화도, 호텔도, 유원지도, 술도 노래도 있는 사람 사는 곳이라고. 국경도시 개성은 남북 문화교류, 경제교류의 장으로 하면 남북 사이의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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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 스터츠의 내면강화 - 흔들리면서도 나아갈 당신을 위한 30가지 마음 훈련
    필 스터츠 지음, 박다솜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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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자유로운 삶, 고통 마주하기 연습


    이 책<필 스터츠의 내면 강화>은 지은이 필스터츠의 40년 동안의 정신건강의로서 경험을 담았다. 그가 임상 의료 현장에서 마주했던 현실, 정신과 진료 규정이라는 매뉴얼은 결코 심리치료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내담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미래의 환상 속에, 현재가 없는 전통적인 치료법의 구조 자체가 내담자의 변화를 막는다고 느꼈다. 이를 극복하는 대안이 내담자 앞에 현재에 깃든 무한의 지혜의 문을 열어주는 “툴스” 였다. 이 치료의 특징은 세 가지, 첫째는 과제, 진료실 안에서 체험하는 짧은 경험만으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없다. 인생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과제”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앞으로 나아가기, 셋째, 고차원의 힘을 끌어올리기다. 어떤 한계를 경험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힘이다. 


    책 구성은 6장이며, 1장 ‘고통은 어떻게 문을 여는가’ 에서는 철학으로 삶을 준비했더라면, 그게 바로 당신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행동할 때 알게 된다. 나는 착한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2장 ‘돌아갈 수 없는 길’은 과거에 갇힌 전통적 심리치료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쥐고 있는 강력한 도구 한 가지, 고통이 나에게 알려준 것, 3장 ‘진정 자유로운 삶’ 물고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헤엄칠 때 자유롭다. 4장 ‘내 삶에 더 큰 힘을 들이는 법’에서는 떠밀려 살지 않는 삶을 위한 것들, 5장 ‘어둠만이 알려주는 것들’ 만약 당신의 삶이 내 것이었다면, 모든 것이 부서지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6장 ‘아픔을 넘어서는 관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의존과 친밀의 차이, 감당이 아닌 사랑하기 위하여 등을 다루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뭐라고 평가하든 신경 쓰지 말고, 누군가를 가혹하게 평가하려 들지말라 


    함께하는 사람과 이웃 등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평가하든 신경 쓰지 마라, 아울러 누군가를 평가하려 들지 말라. 우리의 에고는 자부심에 중독돼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이를 신념이라고 하면 신념이고 고집이라면 고집이겠지만, 평가하려는 순간을 방해하라, 지금 다른 누군가를 가혹하게 평가하는 순간,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런 끈을 놓아라. 정신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껴보라.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행동할 때 알게 된다


    현재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에 나서는 일은 대부분 사람에게 원초적 두려움을 일으킨다. 두려움을 넘어서려면 행동을 새롭게 보는 태도가 필요한데 지은이는 효과적인 행동을 만드는 세 가지 원칙으로 속도와 밀도, 자기 전 성찰을, 속도는 말 그대로 속도다. 행해지면 바로 실행, 주어진 시간보다 많은 행동, 자기 전 10분 만 그날의 행동과 다음 날 하고 싶은 행동을 적어보라.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동기를 찾지 못해 무기력해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고정된 생각으로 동기를 보지말라, 지금 걷고 있는 길에 아무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당장 행동하는 것이 동기를 만드는 것이다. 즉, 동기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우리를 가두는 것은 스트레스 없는 삶을 꿈꾸는 게 망상이란 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


    스트레스 피하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을 의식하고 두려워하기에 엘리베이터나 비행기에서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른바, 없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에 집착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망상이 흔히 누릴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유대감이나 열정 등을 가로막게 하는 것이다. 인생은 목적을 향해 가는 고차원적 힘이다. 살다 보면 돈을 벌려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살아있다고 느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상실 받아들이기 


    자유를 원하지만, 지금 자유로운 삶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상실감은 정확하게 느낀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말이다. 피하는 게 좋은지 정면으로 받아들이기는 게 좋은지는 별론으로 하고, 우선 상실을 수용해야 한다. 상실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실에서 고차원적 힘을 가능성 인식하기, 즉,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 말이다. 상실이 일어나는 순간에 상실 경험을 처리할 능력 키우기다. 이 역시 앞으로 밀고 나아가기다. 내려놓아라. 돈과 지위 그 모든 것은 애초부터 내 소유가 아니라 잠시 나에게로 와서 머물다 가게 마련인 것이라고, 상실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어지니, 이런 맥락에서는 갈등 또한 마찬가지다. 


    무엇무엇이 없는 상태, 또 무엇무엇이 완전히 나에게 머문 상태란 그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걸 바라는 요행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집착하고, 잡으려 하고, 아쉬워하는 마음 때문에 스트레스, 갈등, 상실 등으로 나를 지키지 못하고 누군가를 위해 사는 “떠밀려 사는 삶”이 되기 쉽다. 왜 이런 것이 어려울까?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현자가 됐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은 스트레스와 갈등, 그리고 상실을 느꼈다. 


    자유스러운 삶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지향하는 삶의 상태, 바람직한 삶의 모습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이 순탄치 않기에 “자유”를 더 갈망하고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고통을 마주해 이를 넘어서는 순간 자유스러움의 의미를 알게 될 터인데, 고통은 피해가려고 간다. 아무튼, 금수저든 흙수저든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이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고통이 따른다. 자유스러운 삶은 고통을 경험하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달리 특별한 게 없다. “특별”함은 망상일 뿐이다. 이 망상에서 깨어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강화하는 길뿐이다. 과정의 고통은 이겨내야 할 분명한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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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시대를 앞서간 천재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적 세상 읽기 아포리아 5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석봉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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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70년을 넘어 지금 다시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읽어야 할 때


        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있는 에세이집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자신의 “인기 없는”이라 표현했지만), 앞에는 현란한 추천사가, 뒤에는 자신이 65세 때 쓴 “내가 쓰는 나의 부고”(1937)로 끝을 맺은 15년 동안의 써 온 철학에세이를 묶어 1950년에 출간했으니, 무려 32년을 더 살다 간 것이다. 1차 대전 발발 후에는 반전 평화 운동을, 2차 대전 후에는 핵무장 반대와 쿠바위기,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이른바 생각하고 실천했던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지금 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인가, 


        시대를 앞서간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적 세상 읽기라서 그런 것인가 싶다. 오광일이 쇼펜하우어의 저작<소품과 부록>에 실린 글쓰기 철학이다<쇼펜하우어의 글쓰기 철학>(유아이북스, 2025)에서 ‘자신의 시대를 초월한 글을 써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게 바로 이 책이며, 70년의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그 내용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열두 꼭지의 글, 1장. 세상을 보는 냉철한 철학적 시선, 2장 불확실성을 견디고 판단을 유보하는 힘, 3장 인류의 미래를 위한 철학적 제언, 4장, 잘못된 사고를 꿰뚫어 보는 힘, 5장. 억압과 착취에 맞선 약자들의 숨겨진 힘, 6장.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7장.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고발: 인간은 왜 끊임없이 오류를 저지르는가, 8장. 교육, 사고의 틀을 깨는 힘, 9장. 진보의 역사: 인류를 발전시킨 위대한 생각들, 11장. 내가 만난 두 얼굴의 유명인들, 12장. 나의 삶, 나의 신념: 내가 쓰는 나의 부고가 실려있다. 


        맹목적인 믿음은 광기의 시작


        교조주의를 경계하라, 러셀은 “맹목적인 믿음은 광기의 시작이다. 비판적 사고만이 우리를 진실로 이끈다.” 그가 남긴 말 중 “문제의 근본 원인은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동안, 어리석은 사람은 확신에 차 있다는 것입니다.” Russell and Harry Ruja. Mortals and Others, VII: American Essays 1935, 1933년에 쓴 글이라 한다. 교조주의는 지적인 사고가 아닌 권위를 견해의 원천으로 삼는다. 글이나 말도 설득력 있는 자기주장의 논리를 펼 수 없으니, 유명 철학자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의견인 양 말하는 것 또한 교조주의다. 


        또 보자,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왔습니다.”(1950), 역설적 표현이다. 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군중심리를 타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무리 즉, 극단주의로 치닫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예비군 현상처럼,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나름의 위치에서 체면도 차리고 예의도 잊지 않고 행동하던)이 예비군복으로 갈아입고 집단에 섞이는 순간 바뀐다. 이성과 지성의 작동이 순간 멈춰버리고 대신에 무질서가, 규모가 크면 클수록 책임질 일이 없기에, 이게 군중심리다. 이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극단(극우든 극좌든)으로 치닫게 돼 있다. 러셀의 경고는 ‘교조와 극단’ 모두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내 상태가 맹목적 믿음에 빠진 혹은 경도된 상태인가를 어떻게 의식, 혹은 인식할 수 있는가다. 러셀은 자신이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늘 인정, 즉 경계하라는 말인데, 이는 자기성찰과도 같은 맥락이다. 절대적인 주장을 늘 피하라는 말이다.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통하는 자기네 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별종으로,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니 답답할 뿐이라는 생각(터널 현상과도 같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데서 생긴 말), 하지만 그 부류와 속한 사람들은 제각각의 목적으로 가지고 섞인 것이라면, 어떨 것인가, 러셀이 한 말을 보자 “어떤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 말도 옳고, 너의 말도 옳고, 부인 말도 옳소라고 했다던 황희정승의 사고의 유연함이자 상호 관용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러셀은 “좌파건 우파건 그 어느 쪽에서도 교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자유, 학문의 자유, 상호 관용의 가치는 굳게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적으로 분열되었지만, 기술적으로는 통합된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28쪽)


        억압과 착취에 맞선 약자들의 숨겨진 힘


        억압받는 자들에게 우월한 덕성을 부여하는 시기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다. 이는 억압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만 시작되며, 그들이 가진 권력이 더는 안전하지 않을 때만 일어난다. 피해자를 이상화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유용하다. 땅을 빼앗긴 아메리카 선주민을 고귀한 야만인으로, 잔혹한 산업주의로 농민을 끌어다 공장노동자로 만들어놓고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기라고, 또 여성에게는, 여성들을 더러운 정치에서 배제하는 것은 남성들의 훌륭한 자기희생이란 개소리를 하는 것처럼. 덕성은 가장 큰 선이고, 복종이 덕을 만든다면 권력을 거부하는 것은 친절한 행위라고 했다. 억압받는 계급이 우월한 덕성이 권력을 갖는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억압자들은 자신들의 무기가 거꾸로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권력이 평등해지면 이런 우월한 덕성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였고 평등을 요구하는 근거로서 불필요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우월한 덕성, 인류의 오래된 망상 중 하나는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거나 열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의 성별, 계급, 국가, 시대에 대해서도 그렇다. 로마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사유를 할 줄도 모르고 무엇이 사유인 줄도 모르는 사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그저 귀찮을 뿐이다. 정해진 경로와 얻어진 지위와 그에 따르는 권력의 영속성만을 생각한다.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 엄연한 질서이자 당대의 삶을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인간이란 본디 이런 모순을 살아있는 교육으로 깨어나게 하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잠들어 버리면, 어떻게 깨울 것인가? 그래서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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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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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자살 수첩


        이 책<자살 수첩>은 지은이 정신건강의학의 가스가 다케히코가 자살의 메커니즘에 접근해보려는 시도다. 전조증상 없이 자살하는 사람들, 기실 한국의 자살률을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일어난 자살 원인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2024년도 자살률 잠정치를 보도한 한 언론의 기사 제목은 자살이라는 사회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 28.3명은, 2022년 25.2명에서 2023명 27.3명으로 증가했다. 하루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불안한 기세를 꺾지 못하면 최고치였던 2011년의 31.7명을 넘어설 수도, 자살률은 1997년 13.2명에서 1998년 18.6명으로 급증하는데, 이건 외환위기의 영향이지만 정확히는 그 위기를 '견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한 작가 오찬호(프레시안 오찬호의 <틈새> “자살률 국가비상사태,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2025.3.19.자) 서구사회와 이웃 나라 일본이 자살률이 높아 전전긍긍할 때, 한국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저 한국의 따뜻한 가족문화 타령하기 바빴다. 


        이 통계가 비슷한 생활세계를 구축한 나라들에서 대등하게 나타난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접근할 문제일 거다. 그런데 왜 한국 사람이 더 죽는가, 성별, 나이별로 따져보면 한국 사람 중 누가 더 죽는지가 드러나지만 그건 한국 안에서 차이일 뿐이다.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보다 높은데, 여성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노인자살률이 세계 상위권인 청소년자살률보다 더 높다. 한국은 2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OECD 국가 자살률 평균이 10~11명이니, 한국 아니었다면 평균은 한 자릿수 아니었을까, 이런 국가적 상황이라는 거대 담론으로서 “자살”은 “사회적 타살”로 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살을 선택할 수 없는 임계상황을 만든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구조라는 것이다. 자살은 사회현상이라고 갈파한 에밀 뒤르켐, 그가 쓴 <자살론>(청아출판사, 2008)은 20세기 전에 자살에 관한 사회학의 고전으로 비사회적 요인, 사회적 요인과 사회적 유형, 그리고 사회현상으로서 자살의 일반적 성격을 규명, 자살 방지 방법은 무엇인지까지 다루고 있다. 

        지은이의 이 책은 왜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 부닥친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의문 속에서 자살을 더 깊게 이해하고 톺아보려는 시도다. 


        자살 이유를 논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아무튼, 개개인의 자살을 들여다보는 지은이는 12장에 걸쳐 자살을 좇는다. 1장 ‘자살을 기록하다.’ 자살의 징조를 2~3장 소설로 읽는 자살 1, 2를, 4 ‘유서들’ 유서의 현실성에 대하여, 5~11장은 ‘자살의 유형’ 7가지를 다룬다. 미학과 철학에 따르거나, 허무함 끝에 일어나거나, 동요와 충동으로, 고뇌의 궁극으로 선택,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 완벽한 도망으로서, 정신질환이나 정신상태 이상으로, 하지만 모든 자살을 설명할 수 없음을 12장에 밝힌다. 


        소설 속의 자살- 무엇이 결정타가 됐을까?-


        뚜렷한 자살 동기가 없었고, 자살의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예도 있다. 자살의 동기가 될 수 없을 만한 ‘소소한 동기’가 차곡차곡 쌓이다가 여기에 결정적, 아니 상징적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 ‘결정타’를 날려 결국 자살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매일 같이 낙담과 실망으로 하나둘씩 쌓여 나가다가 어느 사소한 일로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던 걸까, 이야기 속의 자살은 줄거리를 좌우하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어쩌면 자살을 일종의 필연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 자체에 대한 의문이 노골적이고 뜻밖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자살이라는 뜻이 된다. 


        자살의 유형들


        미학과 철학에 따른 자살, 순수, 고고함을 사랑한다든가 추잡한 현실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자살과 친화성이 높다. 하지만, 개인이 고집하는 삶의 방식과 그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직결돼 있지 않다. 이를 직결시키고 싶은 심리는 그럴듯한 괴담에 끌리는 안일한 심리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미학에 따른 자살이란 설령 존재하더라도 실제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 있으며, 그 이유에 겹치는 형태로 미학적 문제가 전경화 됐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허무함, 동요나 충동, 고뇌의 궁극, 완벽한 도망을 위해 선택한 수단이 자살이라고, 또한 정신질환이나 정신상태의 이상으로 인한 자살, 


        어떤 유형의 자살이든 자살의 탬플릿(프레임, 틀)을 쉽게 따르는 사람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제정신을 차릴 확률이 높다. 아이돌의 자살, 지은이는 이를 자살 체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살 체질 혹은 자살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자살에 대한 저항감이 놀라울 만큼 저항감이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이 책은 지은이의 임상경험과 일본의 소설 속의 자살, 그리고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한다. 뒤르켐의 자살론 내용과 겹쳐 보이는 대목도 눈에 띈다. 전자는 마치 후자의 사회적 보고의 일본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살 방지를 위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자살자의 심리적 배경을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는 다만 편의성의 구분일 뿐, 이 또한 해석하기 곤란하다. 그의 수첩에 담긴 “자살”과 자살자의 심리를 추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왜 자살을 결심했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죽음을, 또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과정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기도 하고, 소설 같은 유서를 남기기도 한다. 오래 살아야 한다거나 종교적으로 자살을 죄악으로 여긴다거나 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며, 심리부검과도 양상이 다른 그 무엇이며 “불가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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