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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자살 수첩
이 책<자살 수첩>은 지은이 정신건강의학의 가스가 다케히코가 자살의 메커니즘에 접근해보려는 시도다. 전조증상 없이 자살하는 사람들, 기실 한국의 자살률을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일어난 자살 원인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2024년도 자살률 잠정치를 보도한 한 언론의 기사 제목은 자살이라는 사회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 28.3명은, 2022년 25.2명에서 2023명 27.3명으로 증가했다. 하루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불안한 기세를 꺾지 못하면 최고치였던 2011년의 31.7명을 넘어설 수도, 자살률은 1997년 13.2명에서 1998년 18.6명으로 급증하는데, 이건 외환위기의 영향이지만 정확히는 그 위기를 '견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한 작가 오찬호(프레시안 오찬호의 <틈새> “자살률 국가비상사태,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2025.3.19.자) 서구사회와 이웃 나라 일본이 자살률이 높아 전전긍긍할 때, 한국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저 한국의 따뜻한 가족문화 타령하기 바빴다.
이 통계가 비슷한 생활세계를 구축한 나라들에서 대등하게 나타난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접근할 문제일 거다. 그런데 왜 한국 사람이 더 죽는가, 성별, 나이별로 따져보면 한국 사람 중 누가 더 죽는지가 드러나지만 그건 한국 안에서 차이일 뿐이다.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보다 높은데, 여성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노인자살률이 세계 상위권인 청소년자살률보다 더 높다. 한국은 2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OECD 국가 자살률 평균이 10~11명이니, 한국 아니었다면 평균은 한 자릿수 아니었을까, 이런 국가적 상황이라는 거대 담론으로서 “자살”은 “사회적 타살”로 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살을 선택할 수 없는 임계상황을 만든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구조라는 것이다. 자살은 사회현상이라고 갈파한 에밀 뒤르켐, 그가 쓴 <자살론>(청아출판사, 2008)은 20세기 전에 자살에 관한 사회학의 고전으로 비사회적 요인, 사회적 요인과 사회적 유형, 그리고 사회현상으로서 자살의 일반적 성격을 규명, 자살 방지 방법은 무엇인지까지 다루고 있다.
지은이의 이 책은 왜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 부닥친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의문 속에서 자살을 더 깊게 이해하고 톺아보려는 시도다.
자살 이유를 논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아무튼, 개개인의 자살을 들여다보는 지은이는 12장에 걸쳐 자살을 좇는다. 1장 ‘자살을 기록하다.’ 자살의 징조를 2~3장 소설로 읽는 자살 1, 2를, 4 ‘유서들’ 유서의 현실성에 대하여, 5~11장은 ‘자살의 유형’ 7가지를 다룬다. 미학과 철학에 따르거나, 허무함 끝에 일어나거나, 동요와 충동으로, 고뇌의 궁극으로 선택,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 완벽한 도망으로서, 정신질환이나 정신상태 이상으로, 하지만 모든 자살을 설명할 수 없음을 12장에 밝힌다.
소설 속의 자살- 무엇이 결정타가 됐을까?-
뚜렷한 자살 동기가 없었고, 자살의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예도 있다. 자살의 동기가 될 수 없을 만한 ‘소소한 동기’가 차곡차곡 쌓이다가 여기에 결정적, 아니 상징적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 ‘결정타’를 날려 결국 자살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매일 같이 낙담과 실망으로 하나둘씩 쌓여 나가다가 어느 사소한 일로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던 걸까, 이야기 속의 자살은 줄거리를 좌우하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어쩌면 자살을 일종의 필연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 자체에 대한 의문이 노골적이고 뜻밖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자살이라는 뜻이 된다.
자살의 유형들
미학과 철학에 따른 자살, 순수, 고고함을 사랑한다든가 추잡한 현실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자살과 친화성이 높다. 하지만, 개인이 고집하는 삶의 방식과 그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직결돼 있지 않다. 이를 직결시키고 싶은 심리는 그럴듯한 괴담에 끌리는 안일한 심리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미학에 따른 자살이란 설령 존재하더라도 실제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 있으며, 그 이유에 겹치는 형태로 미학적 문제가 전경화 됐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허무함, 동요나 충동, 고뇌의 궁극, 완벽한 도망을 위해 선택한 수단이 자살이라고, 또한 정신질환이나 정신상태의 이상으로 인한 자살,
어떤 유형의 자살이든 자살의 탬플릿(프레임, 틀)을 쉽게 따르는 사람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제정신을 차릴 확률이 높다. 아이돌의 자살, 지은이는 이를 자살 체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살 체질 혹은 자살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자살에 대한 저항감이 놀라울 만큼 저항감이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이 책은 지은이의 임상경험과 일본의 소설 속의 자살, 그리고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자살자들의 심리를 추리한다. 뒤르켐의 자살론 내용과 겹쳐 보이는 대목도 눈에 띈다. 전자는 마치 후자의 사회적 보고의 일본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살 방지를 위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자살자의 심리적 배경을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는 다만 편의성의 구분일 뿐, 이 또한 해석하기 곤란하다. 그의 수첩에 담긴 “자살”과 자살자의 심리를 추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왜 자살을 결심했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죽음을, 또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과정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기도 하고, 소설 같은 유서를 남기기도 한다. 오래 살아야 한다거나 종교적으로 자살을 죄악으로 여긴다거나 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며, 심리부검과도 양상이 다른 그 무엇이며 “불가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