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 - 인구 절벽 위기를 기회로 맞바꿀 새로운 미래 지도
전영수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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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맬서스의 ‘인구학’을 주제로 한 강의를 수십 년 전에 들은 듯한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인구는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즉, 시장에서 수요는 곧 인구라는 말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인데,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저출산고령사회의 절박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여러분 주위에서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을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일본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나라이니까, 그는 살짝 비틀어 말하기에 앞서 이렇게 운을 뗐다. 

 

젊은이들은 3K(3D) 업종을 기피하고, 니트를 지향하니, 산업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노동력을 수입해야겠다고…. 여러분 주변에 낯선 외국인이 무섭게 왔다 갔다 하면 어떨까요…. 물론 여기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뉘앙스가 그랬다. 그래서 출산해달라, 아이만 낳아주면 국가가 키우겠다고,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이제는 없다. 한참 일본이 고도성장을 구가할 때, 토끼장 같은 집에서 묵묵히 참고 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일해준 산업일꾼들이 은퇴 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 책임지겠다더니, 슬그머니, 개호(고령자 돌봄)보험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빠져나간 산업현장은 하나둘씩 외국인노동자로 대체해나간다. 산업연수생이란 명목으로…. 또 고도전문인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또 하나 2050문제라는 게 있다. 인구출생률이 이대로 나가다가는 2050년이 되면, 인구절벽에 맞닿게 되고, 그러면 떨어지는 수밖에, 결국 1억 2천의 인구가 서서히 감소 7천만 대까지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맬서스가 말한 인구론 그대로…. 인구가 감소하면 수요도 감소하고, 학교는 물론 모든 사회체제의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거기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 즉 미래의 일꾼(노동력제공자)은 줄고, 나라에서 먹여 살려야 하는 고령인구만 늘어나는데…. 이를 어찌할 꼬…. 머리를 싸매는 것이 바로 2050문제다. 

 

일본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는 더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있으니

 

이 책 <대한민국 인구트렌드>는 인구의 변화의 트렌드를 보자는 게 아니고, 인구라는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미래 전망을 보는 것이다. 대단히 귀중한 서책, 자료라 해두자. 

표지에서 적힌 카피? “전 세계 출산율(출생률-가치중립적인 표현) 꼴찌,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사회…. 미래의 해답은?”이라는 촌철살인의 문장, 이 책의 핵심이다. 거기에 더해, 단순히 인구론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개인, 기업, 정부 모두 이 책에서 제안하는 내용을 읽고 생각 좀 해보라는 절절함이 담겨있다. 그래서 부제 또한 “인구절벽 위기를 기회로 맞바꿀 새로운 미래 지도”라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 안에는 꽤 많은 아이디어가 들어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로마는 하루아침에 망했다. 바로 인구 감소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로마의 멸망의 유력한 근거 중 하나가 경기침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전성기에는 0에 가까운 저비용으로 노예를 공급해 단위 노동당 생산성을 극대화했는데, 차차로 이 구조가 약해지며 불황에 빠지게 된다. 재정도 문제다. 복지수혜를 독점한 로마 시민의 부양 부담은 커지고, 끝내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노예 수입은 줄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기왕의 노동력을 대던 유입 민족의 불만으로 로마 사회는 내분에 한술 더 떠서 로마인의 출산 기피 현상(저출산 신드롬)이 더해진다. 

 

60년대 파리가, 90년대 일본이 외국인노동자를 대량으로 받아들이면서 곤란을 겪었던 경험, 이게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1천 년도 넘은 로마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도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력을 수입,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과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즉 이민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우선 노동력만….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이주노동자들이 정착하게 되고, 사회는 다문화화 돼가는데, 그저 나 몰라라 한다. 즉, 기계가 아닌 사람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내다 버릴 수 없다. 

 

아무튼 이 책에서는 또 중요한 걸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인구충격을 인구 혁명으로-

 

1983년 40년 전 인구 유지선(2.1명)이 무너졌다. 그 이후로 줄 곳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시장과 기업은 달랐다. 인구변화는 고객 변화로, 다시 시장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이에 맞는 사업으로 변모한다. 아마존의 사례가 그렇다. 

새로운 고객과 시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런 시좌는 홍춘욱의 <인구변화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원앤원북스, 2006)에서도 볼 수 있다. 위기는 기회라 말한다. 인구 감소가 꼭 비관론만 있는 게 아니라는 논지로 지은이가 말하는 5070세대를 거대한 소비권력이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또 정현숙의 <인구위기국가 일본>-저출산고령사회 극복-(에피스테메, 2021)도 볼만하다. 일본의 인구정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한국 사회는 여성을 주목해야 한다- 청년 여성에 길을 물어라, 인구정책=여성정책

 

인구변화, 성별 구분이 없는 문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여성인가? 천만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문제는 여성 홀로 해내기는 불가능한 사회다. 정부의 인식과 통계는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전 근대사고가 지배한다. 젊은 여성에게 올가미를 씌운다. 일본은 20~29세 가임기 여성을 ‘인구 재생산력’이라는 명칭까지 만들었다. 낮은 출산율의 원인을 찾고자 유배우자 출산율까지 끄집어낸다. 여기에 미혼여성을 더하면…. 그런데 결혼이 여성 혼자 결정할 일인가, 저출산이 문제라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혼여성에게 출산율 저조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웃기는 짓이다. 오히려 정책을 여성에게 맞춰야 한다. 

 

이민정책은 해결의 대안인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노동력 유입 또는 수입을 위한 이민정책은 어떤가, 북미는 단순노동자 유입은 거의 없다. 투자이민이거나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 역시도 기술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민’이란 말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다. 민족주의 정서가 워낙 강해서, 그래서 ‘재류 자격연장’ 혹은 재류 자격 신설로 장기체류를 허가한다. 세금도 내고, 일도 하니,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새로운 노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독일 같은 나라들은 우선 북미, 일본, 한국과는 비자 체계가 달라서, 선비자 후입국이 아니다. 선입국 후비자 제도를 가진 곳이 유럽이다. 난민이 많이 몰리는 이유도 이에 영향을 미치지만….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학력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정책을 썼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다. 제주도로 들어왔던 난민들을 두고 우리 사회가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일자리를 쥔 기업이 인구 해결사로 등판?- 지은이의 생각-

 

이제는 기업이 인구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인구 감소=사회 쇠락, 인구증가=경제성장의 등식 아무튼 이런 기본공식을 놓고 보더라도 인구 감소=고객감소=기업침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주의 깊게 봤다. 

 

그간 기업은 일자리를 통한 고용 제공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자본시장이 ESG(아직 진짜 그러냐는 의문도 들지만)를 기업평가의 핵심 잣대로 보려는 변화, 기업은 내부, 주주당사자 이해를 넘어 외부, 장기적 이해관계자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자, 노동력 공급은 가계가 맡지만, 그 가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기업 책임진다. 출산휴가 등 복지 책임을 다함으로써, 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 

 

신케인스적인 사고일까?, 아무튼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칼과 방패 삼아 종횡무진 기업의 수익 올리기만 급급했던 사회는 자연스레 인구 감소로 갈 수밖에 없다. 인구라는 게 하루아침에 팍 줄지는 않으니, 그 영향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이미 IMF 이후 20년이 넘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의 변화가, 단기간에는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줄 줄 모른다(적어도 사모펀드니 뭐니 하는 사냥꾼들에게는) 하지만, 로마멸망처럼, 머지않아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면, 그래서 지은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 다해주더라도 인구 감소는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여러 각도에서 인구 감소는 기회일 수 있고, 왜 인구 감소가 됐는지를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고, 무조건 낳아라. 낳으라 하는 식의 무식한 정치나 정책은 아무런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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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2024-05-06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구 감소의 문제를 정부가 제도로만 밀어붙이는 것은 원시적 정책이죠.
부모가 회사에서 일에 집중하라고 어린이집 학교의 돌봄이나 늘봄 등의 정책으로
사랑스런 각 가정의 자녀를 기관이 떠안게 만들면서
가정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제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아이 옷 갈아입히고 잠이나 재우는 곳으로 전락했지요.
엄마와 아이 사이의 애착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집이 행복하고 편안한 보금자리 기능을 잃는데 정부가 나서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자녀 기르는 즐거움을 맛보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기업이 나서야 합니다.
기업의 육아를 위한 제도가 변해야 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육아를 정부 기관이 하도록 쉽고 편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육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기업과 사회 전체가 함께 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주면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moonbh 2024-08-02 00:10   좋아요 0 | URL
아이구, 죄송합니다. 좋은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편안한 보금자리˝를 파괴하는 주범은, 국민을 안전과 행복한 삶을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켜주고 더 증진시켜야 할 국가이니, 본말전도에, 사람을 자본주의 사회의 톱니바퀴로 보는 사고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시커의 영역 새소설 10
이수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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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의 영역

 

이 소설<시커의 영역>은 제4회 자음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마녀’는 어떤 존재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마녀’는 신비 그 자체다. 말 그대로 마술을 부리는 사람으로 때로는 사람을 해치는 흑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생김새는 매부리코에 꾸부정한 허리, 손에 쥔 긴 단장,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여성이다. 이것이 마녀의 이미지다. 

이연타로점을 열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점을 쳐주는 이연, 이야기는 12살 난 딸 이단, 그리고 단이 친구 로운, 어떤 연유로 로운이 한국에 살게 됐는지, 일설에는 프랑스 아이란다. 

 

엄마를 찾는 이들은 글쎄다. 자기 믿음을 확인받으러 오는 이들인가, 아니면 뭔가 눈에 보이지 않은 기운을 찾는 것인가, 

 

사람들은 스스로가 과학적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라는 믿음, 혹은 종교인으로서의 양심 같은 것에 억눌려 자신이 인공지능도 아니고 예수도 아닌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지거나 불안할 때, 가끔은 그저 재미 삼아 점을 본다. 

 

 

 

점괘를 알려주는 순간, 다시 한번 봐달라는 애원형, 저녁 메뉴까지 결정해달라는 의존형, 뭘 안다고 떠드냐는 불괘형, 그럴 리 없다는 부정형, 그럴 줄 알았다는 체념형, 이것이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시커는 점을 보러온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영역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삶의 여정을 말하기도 한다. 단이처럼...

 

마녀 이연(李緣- 인연 ‘연’)이야기, 이연은 단이 아빠 에이단을 어떻게 만났으며, 어떻게 해서 단이가 태어난 걸까?

단이는 마녀다. 보름달이 뜰 때, 엄마를 보고 한 눈에 반한 에이단이 단이의 생물학적 아빠다. 엄마보다 16살 어리다. 이렇게 신성한 기운이 타고난 단이...

 

이야기의 여정은 엄마 이연의 12살로 되돌아간다. 미국에 유학 온 아버지와 간호사로 일하던 엄마 그리고 연 이렇게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엄마와 아빠는 죽었다. 연 또한 사경을 헤매던 중 

 

영혼을 부른다

일어나 나에게로 오라

나는 자연의 심장이니 

우주에 생명을 주리라

나는 그녀이니(90쪽)

 

희미한 숨이 이연에게로 들어온다. 이렇게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고 살아난 연은 키르케라는 마녀에 입양됐다. 이 또한 인연인 것이다. 

 

 

 

16살의 이연은 1974년 4월에 미시시피강 상류의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봄의 마녀’ 모임에 참석하여 마녀선언문을 낭독한다. 

 

16살에 엄마와 미국으로 온 단이, 에이단과 만나기로 한 날, 에이단은 사고에 휘말려 동양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온 몸으로 그를 감싸안다가 총에 맞는다.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던, 아니 생명이 다한 그를 엄마 이연은 헤이든을 데리고 마법이 깃든 장소로, 마녀들과 함께 간다. 마법의 심폐소생술을 하러... 마녀들의 힘으로 숨을 돌린 에이단, 단이에게 인사를 하고, 숨기척이 빠져나간 에이단은 꺼진 전구처럼 그렇게 숨을 거뒀다.

 

에이단이 뉴욕으로 가던 날 뽑았던 카드 ‘메이저 아르카나 12번’ 매달린 남자는 시련과 희생을 의미한다. 이단은 엄마 연에게 카드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했냐고 묻는다. 단이는 타로점 해설을 펼쳐본다. 

 

 

일반적으로 형틀을 이루는 나무는 죽은 나무지만, 이 나무에는 새싹이 돋아 있습니다. 아직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남자는 죽음의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위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157쪽

라고 쓰여 있다. 에이단이 죽은 날부터 단이에게 뿌리내린 죄의식을 어디든 전가하고 싶었다. 

 

아빠 에이단이 보호했던 류이와 단이... 운명은 그렇게 이어지나 보다. 세상이 인연의 줄로 엮이듯, 엄마 이연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다시 한국을 찾은 단이...

 

 

 

 

 

이 소설 속 마녀는 관성적인 그런 이미지의 마녀가 아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과 자연의 힘, 자연과의 소통을 부정한다. 사람을 어떻게 살리든 무슨 상관일까, 하지만, 의사면허가 없이 활인하는 행위는 범죄란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자연과 소통하는, 자연의 힘을 의심없이 믿고 하나되는 것은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마녀’는 1980년대 영화 <위험한 정사> 속 주인공 댄과 유망한 직장 여성 알렉스, 이들은 만나,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자, 요즘 말하면 쿨하게 즐기는 거야로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알렉스는 임신하고, 낙태하라는 댄에게 알렉스는 말한다. 내 나이 서른셋,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라는 말, 자신감 넘치는 자유로운 직장 여성의 페르소나를 걷어내고 자신을 아내와 어머니 위치로 데려가 줄 구원자를 따분하게 기다리는 비참한 여성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마치 에이든과 이연의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어린시절 이연의 겪었던 마녀사냥…. 마녀 망치, 실비아 페더리치는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에서 이렇게 말한다. 악의 기운이 그 고통을 막아준다고 죽이고, 또 고통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마녀라고 하면, 마녀여서 죽는다. 한 번 걸리면 영락없이 빼지도 박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라고...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로 이어지는 마녀의 계보...

 

이 소설은 흥미롭다. 읽을 때마다 자꾸 씩씩한 마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단이도 이제 입회식을 치러야 할 나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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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이 바뀌어야 우리가 산다 - 응답하라 베이비!
나치수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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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이 바뀌어야 산다

 

베이비붐 1세대, 고등학교 졸업 후,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주경야독을 통해 끊임없이 일하면서 부지런히 공부하여 기술경영과 교육행정에 일가견을 갖춘 지은이, 참으로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이지만 뭔가 허전했는지, 재능기부를 몇 년째 대학 현장에서 하고 있다. 몸소 하는 실천행이다.

 

학교 교육과 과학기술과 사회문제, 좋은 공동체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베이비부머들은 어떤 사고를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세대론을 펼치는 한편, 시대정신 또한 바뀌어야 함을 피력한다.

 

시대정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회

그는 베이비부머들이 어렵고 힘들게 일과 공부를 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래도 그때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를 꼬집었던 교육부 출신 박성수는 저서 <개천의 용, 공정한 교육은 가능한가>에서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과 제도, 정책, 그리고 미래 교육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개천에서 용, 공정한 교육이라는 두 축, 이 책의 지은이 나치수 또한 이를 되묻고 있다. 다만, 베이비부머 관점에서 바라는 것들을 적고 있다. 저출산 초고령사회는 우선 대학진학률이 낮아진다. 뭐 전학시대-모두 대학가는 시대-가 열린다. 경쟁에서 밀린 대학들은 문을 닫을 것이다. 뭐 꼭 어두운 전망만은 아니다. 고교학점제도 좋고, 공정한 대학입시제도도 좋고, 교권이 바로 서야 인성교육이 된다는 원칙론도 다 좋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 둬야 할 듯하다.

 

대학을 가느냐 안가냐가 인생의 향방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 우리 고등학교 교육 특히 특목, 특성, 일반고의 구분 중 특성화 고등학교는 현장실습과 관련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교육 중심이냐, 아니면 수습사원, 대졸 엔지니어의 보조냐, 단순공이냐 하는 등 현장에서 보는 시각들이 뿌리 깊다. NSC(국가직무 표준능력)를 갖추면 학벌, 학력의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의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지, 대학 졸업장이 뭐란 말인가, 우선 이런 불필요하고 애매한 고리를 끊어야만 제대로 된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대학(교육과 연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직업전문교육도 아니고, 일반교양도 아닌 어정쩡한 그저 그런 곳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에 대한 정체성부터, 대학을 가야 할 직업군이라면 현장과 학습 트랙을 만들어 이는 어느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바꿔서 해도 되는 것으로 해둔다면 대학에 목맬 필요도 없다.

 

숨차게 달려온 60년의 후유증

 

지은이처럼 일과 학업, 끊임없는 연구로 삶의 마라톤을 해온 이들에게 지난 60년 2세대에 걸친 변화는 격세지감일 것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IMF 금융위기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정규와 비정규, 아웃소싱, 다운사이징의 여파, 사오정의 등장, 88만원 세대, 삼포, 오포, 칠포세대….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어둡고 적의에 찬 젊은이들…. 한강의 기적을 읊어대던 가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를 뒤로하며, 다가선 21세기, 여성 혐오가, 보수화가 젊음의 상징, 젊으니까 모험도 하는 거라는 말은 이제 몰상식에 가깝다.

 

좋은 공동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말하는 지은이, 과연 그럴까,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경제도, 심지어는 요즘 나온 책 제목처럼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라고 할 정도다.

공정의 허상, 정의로운 사회를 이야기하면 몽상가, 이제는 땅만 보고 다니자. 그러면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이라도 주울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고 걷다가는 엎어져 코가 깨지는 수가 있다. 발밑을 먼저 보자는 말이다. 내처지와 현실 파악을 통해서 미래를 비전을 내와야 하지 않는가, 뭐 정치인들이 해대는 소리마냥, 허실한 공약(개소리)은 남발하지 말자.

 

베이버부머세대의 우리 사회 걱정론은 아마도 국민보통평균수준의 우려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는 이렇다. ~라때라는 말은 필요 없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그리고 변해 온 대한민국, 여전히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또 살아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변하는 사회를 위해 세상 경험을 해온 시니어들이 걱정을 하나씩 둘씩 보태기도 하고 또 풀어내기도 하는데 나서야 한다. 그게 지금 이 시대 베이비부머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뒤로’가 아니라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뎌 다양한 세대에게 다가서자는 말이 아닐는지….

여느 시론과는 결이 조금은 다르지만, 삶 속에 넘쳐나는 경륜과 따듯한 눈으로 미래를 본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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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 학교
김자중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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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의 뿌리 ‘전문학교’

 

1876년 개항으로 조선은 서양의 신식문물이 대거 밀려온다. 단발령, 복식 등과 아울러 교육 제도에 이르기까지, 특히, 고등교육체제에 무지했던 조선, 갑오경장기(1894)에는 일본의 고등교육체제를 본뜬 전문학교 제도까지 검토한다. 한성주보는 정기적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대학 제도를 소개하기도 한다. 대체로 초등-중등-고등의 3구분이 보편적으로 인식했다.

 

이 책 <한국대학의 뿌리 전문학교>는 지은이의 박사학위 논문과 갑오개혁기-1910년대를 다룬 논문을 바탕으로 썼는데, 핵심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내에서 설치된 고등교육의 정책-전문학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대학설립의 의도적 저지, 그리고 해방, 1945년 이후 미군정의 교육 방임(?) 흐름에 따라 전국에 생겨난 대학들(전문학교에서 승격의 형태로), 아무튼 일제강점기 일본의 대(對)조선 교육체제구상은 2구분, 초등-중등(고등학교, 전문 정도 학교)학교가 중심이며, 고등교육기관 설치는 설립재정, 재일조선 유학생(배일 등) 문제, 조선에 있던 일본인에 대한 교육 등을 이유로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 내에서 고등교육기관을 둬야 한다는 견해나 나오기도 했다.

 

이 견해는 조선교육령에 따라 중등교육을 마친 자들은 비교적 체재 내 순응형인데, 일본 유학 등을 통해서 배일감정이 고조되어 오히려 반항적으로 되는 경향, 아울러 재조(선) 일본인에 대한 고등교육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학교 설치를 허가했지만, 이는 문화정치기에 이르러, 관리들의 조선부임회피, 의사 등의 전문직 역시 조선으로 오지 않으려 했던 것 등을 이유로 민족별입학정원(1/4은 일본인으로 한다. 당시 인구 비율에 따른 것이라면 1:50 정도였으니 정원 50명이면 일본인 1명만이 입학 가능할 텐데)을 조정 혹은 폐지(실력우선원칙- 실은 일본인의 입학을 늘림으로써 외형적으로 일본인이 조선인에 비해 우수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와 관립전문학교의 척식인력 충원, 즉, 조선 내 일본인을 교육해, 식민지 지배경영의 중추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바람을 타고, 늘 그런 사람이 있듯, 조선 내에 출세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의 관립의 지역 제1고가 명문으로 대두된다. 예컨대 지금도 교명이 남아있는 곳도 있다. 일본 내, 도쿄 외의 지역 3중학, 5중학 하는 식으로 교육구를 나눠서(-일본 8개구로 나누고 수위 관립학교명이 제0중학, 지역명을 표기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은행 등도 제일은행을 시작으로 16은행, 105은행 식으로 숫자를 사용했다. 우리 제일은행도 제1은행이다. 일본의 제일은행은 지금의 미즈호은행이다.

 

일본의 조선 고등교육에 관한 딜레마

 

식민지 지배경영에서 조선에서 똑똑한 인재들이 많이 나오면 식민지 경영에 문제가 생길 뿐이다. 제 이름자나 쓰고 산수 정도만 하는 기능인력을 늘리는 것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학문을 하기 위해 일본의 대학으로 유학을 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일본 유학 중에 사회주의에 눈을 뜨고 식민지 현실을 자각, 깨달은 이들의 배일 운동으로 기우는 경향이 나타났다. 일본은 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인의 일본 유학을 줄여야 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조선 내 고등교육기관을 설치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실무교육 중심의 전문학교를 만들고 일본인이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일련의 정책들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전쟁기에 들어서면 이과계 증설 등을...

 

법률전문학교, 의학전문학교 등에는 변호사, 주판임관(판검사임용자격)시험에서 고등학교(구제도 중학), 전문학교, 대학의 예과 출신은 예비시험을 면제했다. 대학은 당시 경성제국대학밖에 없었으니…. 한편, 늘 부족했던 의사를 보충하기 위해 관립은 경성의학전문학교, 사립은 세브란스연합전문학교로 대표되는데(1920년 당시는 2곳 밖에 없었다), 경성의전은 출신은(처음에는 의료규칙에 따라 조선 내에서만 면허) 설립 7년 만에 일본 국내에서도 가능한 의료법에 따른 의사면허를, 세브란스연합의전은 개교 17년 만에 의료법에 따른 의사면허를 받게 됐다. 대체로 의사는 의전을 졸업하면 무시험을 면허했다. 즉, 어느 학교로 진학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니, 사립전문학교로서는 자격 등을 인정받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지방에는 의학강습소만이라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평양과 대구만 생겼다.

 

지금 대학 문제를 이야기할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왜 사립대학이 이리 많은 것인가, 이는 국가가 교육책임을 사립에 떠 넘기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선의 역사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이리 바뀌어 왔기 때문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사립대학들이 생겨났다. 전라남도민의 모금으로 설립된 도립대학 조선대학교, 이래 저래 사립학교로, 70~80년대 유명한 사건이 많다. 이런 사학의 역사들 또한 깊이 들여다 볼 일이다.

 

오늘날의 대학입시 경쟁의 최고정점은 서울대학이다. 이는 일본과 비슷하다. 이런 서열 구조화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의 교육 제도에 닿는다. 미국의 최고정점은 사립대학(하버드, 예일이니 하는)이다. 독일 등의 유럽은 국립이라서 서열, 줄 세우기로는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구조 그대로 관립 아래 사립, 전문학교가 대학으로, 지방에 국, 공립, 사립대학이 생겼을 뿐 여전히 그 모습은 같다는 말이다.

 

상아탑은 우골탑이란 말은 이때부터...

 

전문학교 학비가 3원, 5원 의전 중 아주 비싼 곳은 60원, 자소작농의 연간 수입이 470원, 소작농 350원 정도였으니, 금방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장학단체(여전히 친일파 주도로-식민지배 경영에 필요한 만큼)가 장학금을…. 아무튼 개천에서 용을 내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학교 소재는 경성에 많았다. 지방 학생들은 유학을 해야 하는데, 1936년 경성법학전문학교 조선인 재학생(1학년)의 연간 지출을 보자 466원이 쓰였고, 하숙비(10개월)가 180원이나 차지한다. 경성고등상업학교 재학생의 연간 지출 532원 50전~588원 중 하숙비가 220원 이상, 수원농림고등학교도 사정은 그러하다. 지출의 35~45%가 하숙비로 들어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 간 차별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며, 각 지방 발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을 보면 한국대학의 과거가 보이고, 이를 따라가다 보면 일제의 대조선 교육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향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식민잔재 청산을 이야기하지만, 깊게 자리한 일제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한국대학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전문학교에서 비롯됨을 밝히는 아주 귀중한 정보와 자료가 들어있다. 좀 더 들여다보면, 당시 교육기관의 지도라 할까, 분포를 알 수 있는데, 고등교육기관의 경성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중공업지대였던 북선(북한)에 기술 관련 전문학교가, 수산 등은 남쪽 부산에 자리했음을, 아울러 각 지방에서 의료관련 학교를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음도 엿볼 수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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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비폭력 투쟁기
외즐렘 제키지 지음, 김수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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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혐오와 공존은 불가능한가? - 장마르크 로셰트의<늑대>는 공존 가능함을 보여주는데

 

얼마 전 장마르크 로셰트<늑대>(리리, 2022)를 읽었다. 양치기와 늑대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양치기 영감의 사고방식을, 그가 쏘아죽인 어미 늑대의 어린 새끼는 그 영감의 자연과 함께 나누는 방식이라는 배려로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어느 날 양 떼가 전몰했고,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목양견마저 죽었다. 양치기 영감은 이 모든 것이 그 어린 수컷 늑대의 보복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는 사고였다. 복수심이 불탄 양치기는 수컷 늑대를 쫓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겨울 3천 미터가 넘은 산에서…. 다리를 다친 양치기, 눈에 파묻혀 죽음을 기다리는 그를 구하기 위해 늑대가 눈을 헤치고 있었다. 그가 눈에서 나오자 늑대의 어린 시절 양치기가 던져 주었던 산양고기를 그의 앞에 놓아두었다. 이날 이후 두 번 다시 양 떼가 늑대에게 공격당한 일은 없어졌다. 양치기는 죽은 양을 그 늑대 어미를 쏴 죽였던 그곳에 놓아두었다. 양치기와 늑대의 공존은 자연스레…. 아마도 인간이 자연과 함께하는 길이라는 것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을 읽으면서, 덴마크 사회의 무슬림 혐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치 늑대와 양치기처럼, 쌓이고 쌓인 오해들의 상호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혐오의 근원

 

함께 살 수 없는 적대적 관계, 이는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은 쿠르드족 출신의 터키에서 태어난 무슬림으로 부모와 함께 덴마크에 이민했다. 거기서 간호사가 됐고, 결혼하여 세 아이의 엄마이며, 8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앞으로 쏟아져 온 혐오 메일, 양키 고 홈이란 구호처럼 파키(무슬림을 덴마크에서 부르는 비어)는 제 나라로 돌아가라고, 그의 시아버지는 덴마크인들이 우리를 선의로 받아들이고 삶을 터전을 일구도록 배려해주었는데, 배은망덕한 이민자들이 덴마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고….

 

혐오 사회, 재일동포 작가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장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시월이일, 2021)에서 작가는 이 책을 읽고 일본에 죄를 묻는 것보다는 세계적으로 만연해 가는 헤이트(혐오)와 소수자들에 대한 부당한 취급이 차별을 바탕에 둔 것일까? 를 생각해보자고 한다. 또 최인철 외<헤이트>(마로니에북스, 2021)는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다산서당, 2017) 는 앞서 언급한 이들이 제기하는 의문의 바탕에 흐르는 혐오와 증오의 메커니즘을 분석, 비판하며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엠케가 본 혐오는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를 멸시하고 적대하는 행위에서, 또 그런 행위를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태도에서 사회적으로 공모된 것이다. 또 혐오 때문에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면 언제든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적 광기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혐오의 상호작용

 

혐오 메일을 보냈던 이들에게 지은이는 ‘커피타임’을 제안한다. 그에게 혐오 메일을 보낸 네오나치와 그의 지지자들은 스킨헤드나 건들거리는 건달들이 아니라 반듯한 직장과 복장을 한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 ‘편견이 빚어낸 오해’들, 무슬림을 혐오하는 이들은 모두 과격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다. 지은이는 무슬림을 혐오하면서 자신에게 혐오 메일을 보냈던 이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설득과 이해를 바탕으로 무슬림에 관한 혐오는 누그러질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덴마크의 역사를 보면서, 100년만 해도 여성에게 인정되지 않았던 투표권, 44년 전까지 낙태가 불법이었다. 그리고 3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겼던 이들, 아동 체벌도 20년 전에 불법이 됐다. 이렇듯 세상은 변해왔다. 혐오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상호이해가 가능함을 믿는 지은이는 혐오주의자와의 대화에 나섰다. 먼저 킴, 앙겔로, 지미, 그리고 한국인 출신 입양아 미, 그리고 무슬림들을….

 

하지만, 지은이 자신 또한 이들에 대한 이해의 눈과 열린 마음이 부족했음을 시인한다. 혐오는 상호작용을 통해 확산하고 굳어진다는 것을…. 혐오가 누구의 탓인지를 묻는 것 가 자체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지은이는 차이가 차별되지 않고 다름이 혐오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대화뿐이라고 말한다. 

 

무슬림을 혐오하는 이들, 혐오대상인 무슬림들의 반응과 사고법 ? 건널 수 없는 강-

철길처럼 영원한 평행선이 이어질 것인가?

 

무슬림이라고 모두 같은 태도로 이슬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덴마크인이라고 모두 무슬림, 인종혐오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 다만, 미디어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혐오, 인종차별이 미화될 수도 있다는 점, 무슬림 커뮤니티 안의 극단주의자들, 이맘을 외국에서 데려오고, 덴마크말을 못 하며, 남녀를 구분 지어 진행하는 예배, 덴마크인들 눈에는 위화감이 들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불안과 두려움’이야말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집단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의 주범이라고….

9년 동안 이어온 ‘커피타임’, 매번 대화를 마치고 나면, 틈을 확인하고, 생각이 다름을 느끼며, 지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끝없는 여정, 합일점을 찾기 위한 신념의 행동은 덴마크 사회를 바꿔놓을 것인가? 

 

민주주의는 요원한가

 

지은이는 커피타임의 대화-무슬림 혐오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건- 둘 다 대화를 통해 태산도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것뿐이다. 그의 싸움도 나만큼 정당하다. 무기나 강압적인 행동을 동원하지 않는 한, 나만큼 그도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투쟁할 권리가 있다고.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확인과 그의 사고에 대한 존중이 똘레랑스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하나씩 문제를 풀어서, 무지의 벽을 허물어가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겠지만….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사회는 난민, 이주노동자 등 다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지은이가 말한 ‘다름’ 에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모두 포함된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 사회는 혐오에 대해서 제대로 된 논의를 해야 한다.

언제쯤 서로 다름을 인정할 것인가 너무 서둘지 말자, 지은이는 10년 동안 ‘커피타임’을 해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을, 큰 감동이다. 늘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 커다란 벽을 느끼고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느낌…. 무슬림은 무슬림 나름대로 덴마크인 또한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고 그 바탕에 깔린 불안과 두려움이 주범이라고…. 너무 빠른 합의점을 도출하려는 조급함을 앞세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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