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공도성 지음 / 이야기연구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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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악을 행한 적이 없나요?

 

작가 공도성은 소설<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서 당신은 악을 행한 적이 없나요? 라고 묻는다. 또다시 묻는다. 당신은 인간의 악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인간의 탐욕과 무지를 넘어서는 악, 그 악의 극단의 끝점에 서려는 자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각 등장인물의 내면의 악을 들여다본다. 불완전한 인간이 가진 악의 주요 동기가 유일성과 전부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점, 악은 불의를 향하고, 그 반대편에는 의와 이치가 있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일란성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닌다. 선은 추상적이어서 실체를 알기 어렵지만, 악은 금방 알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은 불완전하게 태어나 악과 함께 뒹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 악은 내 안에 그리고 밖에, 이 밖에서 오는 악이 가장 참기 힘들다 했다. 

 

유일성을 추구하는 남자, 전부성을 선택하는 여자 

 

이 소설은 지적으로 파고들면서 독자들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묻는다. 소설의 맥락과 메시지가 마치 김성규의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 (책이라는신화, 2022) 를 소설로 쓴 듯한 착각, 기시감마저 든다. 우리 주변의 악은 늘 존재하며, 상대적이기도 절대적이기도 하다. 누구나 조금씩은 비정상적이다(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점과 구별은 별론으로 하고), 소설에서는 이를 인간의 불완전성이라 표현한다. 그 기원은 아담과 화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다. 그때까지도 선악에 관한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무지요, 불의인 셈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행을 저지르도록 태어났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작가 공도성은 이야기를 전개해가면서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질문은 우리 안의 악은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향기 시대는 불완전한 인류의 시대를 나타낸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향수 가게인 “향기 시대”다. 이야기 속의 많은 만남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등장인물 하란정은 이 가게 주인이다. 옛 약혼남 이영담을 잊지 못하고 13년째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끔 이영담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아들 현기는 중학생, 남편 관상국은 무역회사 상사(임택수 이사)의 책임을 떠맡으라는 집요한 요구에 힘들어하는 무역회사의 과장이다. 그리고 개천에서 두 명의 여성을 죽인 개천 살인범, 이를 쫓는 중년의 경찰 김동진 경위와 오서운 경사, 이 이야기의 핵심 인물 이영담은 윤판중이 몰던 차에 치여 10여 년 만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다. 얼굴과 목소리에 이름까지 이상범으로 바꿨다. 그리고 도끼를 든다. 자신이 다쳐 사경을 헤매는 동안 하란정에게 접근했던 친구 백충진의 악행을, 전신불수가 되게 했던 교통사고 가해자 윤판중의 자기합리화, 무지와 악행을…. 임택수 이사와 개천 살인범의 악행을 악으로 처단한다. 또 다른 차원으로 유일성을 이루려는 그는 하란정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가 아팠던 것만큼 너도 아파야 한다. 그걸 느끼게 해주겠다며 남편과 아들까지 죽이려 드는데….

 

이 소설의 또 다른 축 김동진 경위, 악행을 쫓는 형사다. 그는 많은 범인을 잡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왜 인간은 악행을 저지르는가에 대해 자신에게 물으며, 그 어디엔가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영담의 유일성을 추구하는 악행이 극에 달할 때 그 해답을 찾는다. 집요한 소유욕, 유일성의 다른 모습이다. 악은 악으로 대응해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반복의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우연과 필연

 

사건의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결과는 필연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존재한다. 우연한 만남에서 사랑이 싹트고, 연인이 되고, 그 연인 중 한쪽이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우연히 10여 년간 깨어나지 못한 채로, 우연이 깨어났고, 잃어버린 긴 세월 동안 달라진 세상, 13년 전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은 필연인가, 집착과 소유욕, 이도 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전부를 가지려 하는 그래서 선택할 수 없게 되는 전부성. 무지와 탐욕이 악을 나타내는 속성이라면 유일성과 전부성은 극단적인 결과다. 

 

악의 스펙트럼 안에서 양극단에 서 있는 살인자 이상범(이영담)과 두 명의 여성을 목 졸라 죽이고 강간한 무명의 살인범, 이 둘은 똑같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뭔가 해석이 다른 듯하다. 살인자는 유일성에 집착,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얻으려는 광적인 집착을 보이지만(능동적), 살인범은 공허라는 공포를 피하려고(수동적), 이도 극단에 이르면 사람의 목숨도 사물로 보게 돼 사람 죽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렇듯 살인에도 태도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 인간의 악은 유일성의 관성에 따르는 탓에 부나방처럼 결코 파멸의 늪으로 빠져든다. 수동적인 공허의 공포라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회피하려는 그 순간의 행위에 희열을 느끼는 중독성에 빠져들면….

 

이 소설의 흥미로운 대목은 마치 다중인격적인 변화 또는 요소를 가미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정면으로 드러나는 대목(심리묘사 등에서, 과민한 탓에 발견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이상범과 이영담, 왜 얼굴과 목소리를 바꿔야 했지, 왜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만들어야만 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로맨티시스트에 순진하고 사람 좋았던(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 내면의 이중성 중 어두운 면이 발현되기 전의 상태)이영담이 10여 년 동안 병상에 드러누워 있다가 깨어난 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으려 아집으로 뭉친 흉측스러운 괴물이 광인이 됐다. 존재였던 이영담의 모습이 10여 년 동안의 공백으로 소유욕으로 변해 이상범이라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당신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란정, 김동진, 성범죄자, 개천 살인범 등등의 캐릭터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의 지은이 김성규가 연구하면서 ‘죽음의 심리학’이란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다는 대목 “자연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이 서로 물고 뜯고 죽이게 만드는 잔인한 창조자”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인간은 생존하는 필연적 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악을 행하고 자신에게 시시각각 닥쳐오는 자기 존재 파멸의 공포인 죽음을 어떻게든 밀어내고 떨쳐내려는 인간의 본성을 알기 위해서 인간의 악에게 물을 수밖에 없음을….

 

공도성의 이 소설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연상케 하는 대목도 엿보인다. 선과악, 정의와 불의….

 

공도성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악, 하란정으로 상징된 것들. 세상의 거짓말, 즉 유일성의 유혹에 속은 무지한 사람들을 상징한다. 살인자 이상범(이영담)이 살인범을 죽이고 하란정을 보호한 것은 불완전한 인간 사회(정부)가 약속한 정의의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상범이 하란정에게 남편과 아들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장면은 모순이다. 이상범을 ‘살인자’로 개천 살해의 범인을 ‘살인범’으로 나타낸 것은 살인자는 악의 선봉에서 사회체제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상징하고 살인범은 악의 밑바닥에서 이끌림을 당하다 내쳐지는 피지배자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김동진 경위는 여기서 설정된 악의 밖에서 악을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설정된 악의 모습과 달리 그 밖에서 생긴 악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꽤 묵직한 주제다. 읽기 흐름을 막을 만큼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휙 하고 넘길 수 없는 대목들이 곳곳에, 마치 파놓은 덫처럼…. 그래서 심각한 읽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이 공부가 된다는 말이 어울린다. 

 

 

<출판사에서 보낸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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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 - 세계를 열광시킨 K-콘텐츠의 비밀
정길화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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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도형 시청자의 등장과 플랫폼 자본주의 전진 방식, "넷플릭스"<오징어 게임>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자기주도시청법, 퀄리티 TV 등 '바보상자'라는 조롱 속에서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문화로 서서히 패러다임이 전환돼간다. 이른바, OTT(Over The Top=미디어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세계 83개국에서 52일간 1위를 기록, 106만에 TOP10에서 물러난 <오징어 게임> 뭔가 낯설지 않은 제목,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뒤돌아서 움직이는 아이를 찍으면, 그가 술래(오니)가 되는 것인데, 그런 느낌을 자아낸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몰이 회오리바람의 정체

 

당황스러운 <오징어 게임>의 인기몰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카데미 4관왕의 <미나리>를 비롯하여 한국 영화, 드라마가 약진세를 보인다. 이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몇 달 전에 <오징어 게임과 마키아벨리즘>이란 책이 선을 보였는데(뭐 내용은 제쳐 두고), 아무튼 종주국에서 오징어 게임 현상과 넷플릭스와 관계, 또, 넷플릭스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오징어 게임이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 이유와 배경 등에 관한 연구자들의 탐색, 세계적으로 주류와 비주류로 굳이 나눠보자면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는 아시아 그것도 한국 영화, 드라마가 세계성, 인류 감정에 호소하는 보편성에 터 잡은 작품을 상업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창작성을 맘껏, 걸리는 장애물이 없이 발휘하였기 때문인가, 등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이 책은 본격적이라 할까, 언론, 문화콘텐츠를 연구하는 이들이 각각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오징어 게임>을 분석했다. 시청자들은 왜 열광을 했을까? 바탕에 깔린 심리적 요인의 보편적인가, 낯선 문화란 소화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이를 분석하는 것도 꽤 여러모로 살펴봐야 하기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행히 발 빠르게 움직인 연구자들이 내놓은 견해, 이를 바탕으로 관련 연구가 진척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오리바람의 정체는 양극화의 말단부에 있는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져 버린, 한 번 내리면 다시 탈 수 없는 기차처럼…. 절망감 속의 몸부림을 공감, 이게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

 

이 책의 구성은 OTT 시대를 선도하는 킬러 콘텐츠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의 머리말과 1장은 정길화가 쓴 '서사적 관점에서 본 <오징어 게임> 참가자가 왜 456명이지라는 의문, 오징어 게임의 온상은 한국, 오징어 게임 톺아보기가 실려있다.

 

2장은 서정민이 쓴 글로 <오징어 게임> 신드롬 취재기다. <오징어 게임>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그리고 함께 살자가 눈에 띈다. 쌍용차의 기업이미지 운운하면서 작은 소란이 일기도 했다. 3장 홍경수의 세계는<오징어 게임>을 어떻게 해석했나, 이는 대단한 관심 분야다. 즉 보편적인 정서로 받아들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런 오락물인데, 킬링타임으론 괜찮아서인가? 인색한 점수를 주던 후한 점수를 주던 이 대목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4장은 임종수의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 넷플릭스<오징어 게임> 읽기, 여기서는 신자유주의의 플랫폼, 규칙이라는 적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5장은 이성민의 <오징어 게임>은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바꿀까? 라는 호기심 어린 분석작업을 했다. <오징어 게임>은 기존드라마 한류와 무엇이 다를까? 포맷이 다를까, 소재, 주제가 다를까, 관심도? 이와 함께 글로벌 텔레비전 넷플릭스, 영상 생산과 소비를 바꾸다(패러다임 전환의 의미로서 일까?), 드라마 한류는 어디를 향해가는가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6장은 김윤지가 쓴 글로 <오징어 게임>의 경제 효과 1조 원이 말하지 않는 것들로 경제가치 측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2012년 강남스타일의 1조 원과 2021년의 오징어 게임의 1조 원은, 이어서 7장에서는 유건식의 드라마 관점에서 본<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 만들어진 배경과 성과 및 한계를 다룬다. 그리고 8장은 황동혁 감독 인터뷰가 실려있다.

 

1장부터 7장까지 연구자들의 깊은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제목에서 짐작되는 분위기가 가볍지 않다. 거기에 감독의 인터뷰까지, 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소논문 7편, 아니 <오징어 게임>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7권이다. 느낌도 접근방법도 달라서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어 요리조리 살펴봐야 하는데…. 우선은 홍경수, 임경수 두 사람의 글이 흥미로웠다.

 

홍경수가 본 <오징어 게임>, 세계는 이를 어떻게 해석했나?

 

홍경수는 콘텐츠 측면에서 분석하는 글이라고 한정하면서 그동안 <오징어 게임>에 관한 비평을 정리하고, 텍스트 비평이론에 근거 다양한 비평 접근법을 펼쳐 보이려 한다고 밝혔다. 이글은 오징어 게임 현상을 잘 이해하기 위한 기반 작업인 동시에 영상을 해석하는 영상 리터러시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참고자료가 됐으면 한다는 의도를 가진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인기 요인을 분석하는 국내외 언론보도에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다. 한국 내의 반응이 나눠진 것은 오징어 게임의 서사가 가진 시대착오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는 듯하고, 일본 영화<신이 말하는 대로>, <배틀로얄>과 만화<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의 요소를 짜깁기한 듯 보인다거나 일부 캐릭터의 과장된 연기와 틀에 박힌 대사, 여성 캐릭터를 시대착오적인 시선 등에 비판이 제기됐다. 긍정적인 평가는 데스 게임 장르를 한국 정서로 변주, 목숨을 건 승부의 긴장감, 어린 시절 놀이 사이의 대조 효과가 돋보인 점, 절절한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풍부한 사연이 공감을 주었다고….

 

외국 언론은 현실 공감론 <오징어 게임>이 부의 양극화와 생존에 몰린 약자의 냉혹한 현실반영,

'뉴욕타임스'는 <오징어 게임>은 한국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기회의 상실에 대한 절망감을 활용해 전 세계시청자를 사로잡은 최신 한국 문화수출품이라고 평했다.

 

왜 한국의 학부모단체는 잠잠할까? <오징어 게임>의 교육적 위협에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우리 사회, 왜지

사회규범 비평을 보자. 넷플릭스는 구독형 영상 다시 보기 플랫폼이라는 제한성을 영상시청은 온전히 구독자의 자유라고, 그렇다면 KT처럼 넷플릭스를 세트로 볼 수 있는 통신사를 사용하는 집의 청소년에게 노출된다면 이것을 청소년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넷플릭스를 청소년 몇 명이 공동구매 이를 보는데…. 이 대목에서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국에서라면 생각하기 힘든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콘텐츠를 한국이라는 생산 기지에서만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넷플릭스는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희석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 역시 사회규범 비평의 확장된 효능이라 할 수 있겠다.

 

페미니즘 비평, 한국 사회가 여성의 이미지 재현에 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여성 캐릭터를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묘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권력에 빌붙기 위해 몸을 성적으로 활용하는 한 미녀의 캐릭터, 장기 밀매를 목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과 함께 "그년 배 가르기 전에 우리가 돌아가면서 그 짓까지 했는데, 설마 남자한테 그랬겠어!" 라며 집단 강간을 연상케 하는 대사….

 

황동혁 감독은 여성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 다만,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뭐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튼 남성 캐릭터의 서사적인 설명과는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에는 설명이 빈약했다는 점 등은…. 서사가 풍부한 측이 중심이며, 반대로 서사가 부족한 쪽은 주변부일 수밖에 없다는 점 등도 눈여겨 볼만하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탈북자 등 주변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구성원들에 대한 재현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어야….

 

오징어 게임은 공정신화다. 아울러 지독하게 폭력적인 영상이 판타지로 느껴졌을까 하는 대목은 기호학적 접근으로 초록색과 빨간색의 대비, 초록색 운동복은 현대사에서 사회적 지위 상징이 되어 백수, 실업자, 사회 주류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을, 운동복은 게으름뱅이와 기생하는 삶을 시각적으로 상징….

 

이 책은 <오징어 게임> 현상을 여러모로 분석하고 있다. 콘텐츠의 영향력을 실감 나게 한다. 넷플릭스는 뒤에 숨어, 접속자를 보고 있다. 바로 플랫폼 자본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물론 세계화의 영향임은 당연하다. <오징어 게임> 2를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들에 대한 분노찬 얼굴의 주인공 성기훈 표정….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래서 시리즈 2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모양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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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A Year of Quotes 시리즈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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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읽는 소로, 왜 읽어야 할까?

 

<윌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19세기 중반에 살았던 소로, 그는 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날짜를 거의 맞춘단다. 소로가 월든에 썼다는 문장 "시간은 내가 물고기를 낚으러 가는 시냇물일 따름이다."라고, 이 책<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은 시간의 흐름과 현존에 관한 소로의 실험집이다.

 

계절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라. 그 공기를 호흡하고, 그 음료를 마시고, 그 열매를 맞보고, 그 영향력에 자신을 맡겨라. 불어오는 모든 바람에 나부껴라. 모공을 활짝 열어 자연의 온갖 물결 속에 잠겨라….

 

마치 자연인의 선언처럼 들리다. 아니 선언이다. '계절 속에서 살아가기' 무위자연으로라는 사상처럼, 귀를 방바닥에 바짝 대고 땅이 숨 쉬는 소리를 듣고, 땅속에서 생명이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산업화가 산 밑, 산 중턱에 이르는 사이에 잘린 나무 밑동에서 들여오는 생명의 소리, 나비의 날갯짓, 이 모든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니다. 눈으로 소리를 본다. 머리로 소리를 그린다. '자연 속으로 자연과 함께'라는 말을 입으로는 외치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자연으로부터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

 

개발의 붐이 한적한 산골 마을 턱까지 올라와 숨을 헐떡이게 만들고, 어제와 오늘 봤던 그 큰 나무들이 없어져 항구로 실려 나가고, 그 나무 대신에 세상의 온갖 물건이 돌아온다.

 


 

소로는 계절 속에서 살아가면서 현대인이 느끼는 단절감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으며, 소외감을 관계 맺기로, 무관심을 사랑으로, 무지를 책임을 대체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도심 속 번화한 곳에서 쉼 없이 바삐 움직이는 삶이라도, 자연인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할 수 있는 길이 이 책 속에 있다면, 보물찾기라도 하듯 찾을 수밖에….

 

<겨울산책(1843)> 바람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미덕이 깃든 것들뿐

구석구석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은 모든 전염병을 몰아낸다. 바람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미덕이 깃든 것들뿐이다. 산꼭대기처럼 춥고 황량한 곳에서 무엇을 만나든, 우리는 청교도적 강인함과 같은 꿋꿋한 무구함을 존경한다….

 

1854년 1월 12일의 일기, 연못도 깊은 잠에 빠져든다.

매해 겨울이 되면 연못은 수면에서부터 깊은 바닥까지 단단하게 언다. 소나 말이 끄는 매우 무거운 수레도…. 이내 눈이 내려 연못과 땅을 구별할 수 없는 높이…. 연못도 깊은 잠에 빠져든다.

 

1860년 1월 27일의 일기, 그때가 바로 성공하기 직전이다.

당신이 발걸음이 아무 이득도 없고 실패라는 생각이 들 때, 이제는 발길을 돌리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성공하기 직전이다. 우울해지고 탈진하려는 순간, 자연은 반드시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1860년 1월 30일의 일기, 까마귀 소리

높이 날아오른 까마귀가 우리를 위해 하늘의 고막을 건드린다. 그리하여 비로소 그 음색이 드러난다.

 

1856년 12월 12일의 일기

우리의 삶과 우리와 동행하는 삶은 얼마나 멋지고, 놀라운가!. 사람이 아니라 야생의 동물 같은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와 함께 사회 비슷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고양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성경을 읽지도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고 성경을 읽은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1857년 12월 13일의 일기

병들고 무기력할 때는 삶이 장애물로 막혀있으며,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인정하는 게 용기를 준다. 그래야 손해가 없어 보인다. 잃어야 할 때 잃는 것은 힘을 축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 편의 일기를 봤다. 겨울날에서 겨울날로 이어지는 혹독한 시기, 자연도 긴 쉼 속에 잠겨 들고, 당신이 실패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성공하기 직전의 상황임을 느껴라…. 겨울의 긴 쉼은 봄을 위한 것이듯, 당신에게 이득이 없다고 실패할 것 같다고 여기는 순간 이미 성공을 향한 여정은 시작됐고, 그 길 가운데 서 있음을 자각하라. 시작이 반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짧은 문장을 보면서 지금의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투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마치 게임처럼, 어제 내가 이 책을 읽고 써 놓은 글과 일주일 뒤, 읽고 써 놓은 글이 같을까, 그렇지 않을까, 누구도 모른다. 자연과 하나 된다는 말, 자연 속에서 산다는 말은 공간과 시간이 아니다. 내 마음의 평온상태를 말하는 것이기에,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일기 쓰기란 여간 어렵다. 보기보다는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생각을 자판 가는 대로 누르고 때리면 문장이 되듯, 우선 두들겨 보고, 써보고, 말해두고,

어차피 자연이란 내 안에 있는 자유의지인 것을….

 


 

이 책<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은 헐거워짐을 막기 위해 양장본으로 만들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계속들 게 한다.

 

비타민 한 알처럼 날마다 조금씩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서는 좋지 아니한가, 순서도 날짜도 제멋대로인데, 그냥 아무 데서나 읽기 시작해도 좋다.

출근길에 상상해보자, 자기 전에 상상해보자. 나만의 자연을 상상해보자.

이것이 날마다 소로를 읽어야 할 이유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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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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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일본 문단의 페미니즘 작가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 마쓰다 아오코의 소설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제목이 꽤 의미심장하다. 일본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형식을 빌린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 아니다 '아저씨가 사라진 세상에 관한 보고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아저씨(오야지)’와 ‘걸 그룹’ 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발상이 신선하다. 혹여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재한 고정관념이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아저씨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소녀들

 

아저씨는 권력이다. 남성우월주의로 똘똘 뭉쳐, 사회 전체를 가부장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그 유지를 위해서 철저하게 여성들을 그림자 취급한다. 아저씨는 제1성, 여성은 제2성이다. 본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책 첫머리부터 가까운 미래 일본 사회에서는 ‘아저씨’들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게 됐다. 이로 인해 소란이 일었다. ‘소녀’ ‘교복’으로 상징된 눈요기에 손대면 똑하고 터질 것 같은 물건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아저씨들에게 자리한 여성의 모습, 주인공 걸그룹을 좋아하는 30대 여성 게이코(敬子=늘 존중하는 사람)는 비정규직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40대 아저씨가 치근덕거린다. 아주 영리하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또는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여, 두 사람이 사귀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환경을 만들고, 심심하면 성희롱을 해댄다.

 

게이코는 회사에 이 남자를 인사과에 성희롱으로 신고한다. 결론은 아저씨가 만들어 낸, 착하고 일 잘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이미지에 남성이고 여성이고 모두 속아 넘어가고, 게이코는 한때 사귀다가 사이가 틀어져 복수하려는 무서운 여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분위기에 짓눌려 피하듯 회사를 떠난다.

 

'아저씨'들이 출퇴근 길에 지하철을 타건 버스를 타건 타자마자 찾는 것이 '교복' 입은 소녀다. 그 옆으로 바싹 다가가서 몸을 비벼대고(우리는 이런 사람을 변태라 부르겠지)…. 교복=함부로 해도 좋은 장난감, 교복은 학생을 표상하는 것으로 아끼고 우선 보호해야 할 대상음을 알리는 것, 아니다. 그들이 학생이기에 어리기에 소녀이기에 '아저씨'들은 느끼한 눈으로 전신을 훑고, 만지고….

 

회사는 통상직과 한정직으로 통상직은 말 그대로 성별이 없다. 일과 삶의 양립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단신 부임, 출장, 여성, 모성보호 이 모든 것이 없는 중성 집단이다. 이른바 잘나가는 집단이다. 여기서 출세하면 여성의 모습을 한 남성 '아저씨'가 된다. 한정직은 대부분 지역 대부분 붙박이다. 이제는 이런 한정직은 비정규 계약직으로 대체한다. 한때 OL(오피스걸), 오차구미(사무실에서 차나 타 나르는)라 불렸던 여성들,

 

이 소설을 읽다가 떠오르는 책, 미켈라 무르지아의<아직도 그런 말을 하세요?>(비전코리아, 2022)-여자가 어디서, 남자가 말하는데 조용히 안 해, 어디 건방지게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겠다- 똑같다. 이탈리아의 남성우월주의자나 일본의 '아저씨'나 본질에서는 어쩌면 닮은 꼴인가,

 

 

 

게이코가 좋아하는 걸그룹, TV 화면 비칠 때의 모습과 다른 이미지들이다. 의상은 아저씨들이 환장하는 '교복', 생기발랄한 소녀들이라기보다는 훈련된 병사처럼…. 라이브쇼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이들 뒤에서 프로듀싱을 하는 '아저씨'들에게 반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룹리더….

 

일본 사회의 구석구석,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짚어내고 있다. 가네코의 동생 미호코와 그의 파트너 엠마, 캐나다에서 산다. 일본에서 살 때 미호코는 흐릿한 세상에서 침묵이 미덕이라는 숨이 막히는 통제 속에서 해방되고 싶어, 그곳으로 옮겨갔다. 그저 눈치로 때려잡는 암묵지 같은 것은 없다.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 일본의 남성우월주의에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캐나다로 도망한 여성, 영주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죽어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며,

 

지속가능한 영혼이 되려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집단의 부속품으로 흡수되는 개인이면서 개인이 아닐 때는 이미 '영혼'이 없는 것이다. 고독한 군중,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나는 혼자 있는 편이 더 강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그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등장인물들, 전직 걸그룹 멤버,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이에게 젖을 주는 여성들이 하나둘씩…. 혁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위가 없는 일본,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 무관심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들(아마도 이 대목은 지지 파파차리시의 <민주주의 그 너머>,뜰북, 2022를 함께 읽어보는 게 좋겠다)에 대해….

 

혁명

 

혁명은 절망을 직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저씨'가 움직이는 사회, 그 어디든 결과는 똑같다. 사회가 아저씨 손에 돌아가게 된 이상 여자아이는, 여성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아저씨'의 손과 눈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아저씨'가 정하지 않는 세계를, 아저씨가 사라진다면 사회구조를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아저씨는 멸종돼야 한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러, 일본은 깨끗이 사라졌다. 우리가 육체를 잃고 나서 발견한 것은 자신의 몸이 오롯이 제 것일 때, 육체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한국의 실정과도 딱 들어맞는다. 더 보면, 일란성쌍둥이처럼….

아저씨가 외국에 나가서 질펀하게 노는 꼴도 그렇고, 나이로 아저씨를 개념 짓지 않는 것도 그렇고, 아저씨, 오야지,

꼰대, 뉘앙스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결이 달라 보이기도….

아무튼 소설은 시원하다. 주인공 가네코의 울분과 절망 그렇지만, 걸그룹의 화려한 이면에 당차게 자신을 찾으려는 실마리를 찾아내 희망으로 이어가려는 것들,

 

우리가 육체를, 육체는 껍질이다. 성을 표징 하는 것, 여성이라서 받아야 하는 대우를 한 마디로 묶은 '여성스러움'이라는 아저씨의 규율과 음습한 법칙도 없어지고, 지속가능한 영혼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아저씨' -일본여성작가5인의 <발칙한 그녀들>(작가와비평, 2022)-그들에 대한 저항은 100년 이상 이어져 왔다. 

이제 일본은 아저씨에 의한, 아저씨를 위한, 아저씨의 나라가 아니게 됐다.  

 

청소년청소녀들이 그리고 2030, 베이버부머들까지 이 책은 두루두루에게 각자의 느낌으로 다가설 듯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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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3 : 약속 식당 특서 청소년문학 25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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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식당

 

죽어도 지키고 싶은 약속이 있었다. 목숨을 바쳐, 약속식당을 열었다.

 

박현숙의 구미호 식당 3 <약속식당>, 참 쫄깃한 소설이다. 청소년 베스트 셀러 구미호 식당 시리즈, 구미호 만호는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천년 묵은 구미호를 연상케 하지만, 꽤 인간적이다. 주인공 유채유, 두들겨 맞고 죽었다. 심판결과는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주기로, 이때 구미호 만호가 유혹한다. 너의 새로운 삶을 나에게 주기로 하면,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어릴 적 보육원에서 만난 한 살 아래의 설이를 다시 만나는 거다. 설이는 음식 만드는 재주는 영 없다. 라면도 제대로 못 끊이는 아이였다. 그런데 미각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음식을 머리 속으로 그려낸다. 마치 TV 드라마 대장금처럼 말이다. 구미호 만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 채유가 찾는 설이는 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등장하는 인물, 예쁘다 미용실의 왕 원장과 장례 염습을 했다던 황 부장, 고동미, 구주미와 그의 동생 동찬이다. 왕 원장 역시 유채유처럼 만호와 계약을 하고 환생한 이다. 사랑하던 이를 보겠다고, 그 대상은 놀랍게도 황 부장이다.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황 부장을 만났지만, 절망한 끝에….

 

영화 <중천>에서 천계와 인간계 사이에 사는 이를 올 수 없는 중간계인 중천, 사랑하는 이는 죽었고, 이를 쫓아 중천에 들어온 주인공, 하지만,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인연의 실타래들

 

낡은 이층집으로 들어온 채유는 키가 훤칠하고 날씬한 모습의 청년이 아니라, 40대의 작은 아줌마의 모습으로 환생했다. 식당을 찾은 구주미는 아줌마라 부른다. 채유가 상상했던 설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설이와 만들기로 했던 미완성의 ‘파감로맨스’라는 메뉴를... ‘약속식당’이라 간판을 내걸고 마련한 음식 메뉴는 비밀병기와 살살 말랑, 파와 감자가 사랑에 빠질 때(파감 로맨스)다. ‘비밀병기’는 인기가 있었다. 이를 만들기 전에 반드시 게 알레르기가 있는지를 주문한 이들에게 확인했다. 아마도 다른 모습을 하는 설이를 찾으려는 이유다.

 

약속식당을 둘러싸고, 황 부장, 왕 원장, 고동미, 구주미, 구동찬, 이 동네 중학교 체육교사 등이 찾아온다.

어느 날, 시간대를 달리해 식당을 찾은 고동미와 구주미에게 게 알레르기가 있냐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게살을 넣어 비밀병기를 만들었다. 이를 먹은 두 여학생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실은 이 둘은 절친이다. 얼마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낡은 이층집에 사는 같은 또래의 남학생 황우찬을 좋아했다. 어떤 사내가 황우찬의 집의 위치를 묻자 이를 알려주고 난 후에 황우찬 일가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다투다, 사이가 벌어진다.

 

설이는 누구, 고동미일까, 구주미일까,

 

채유는 이 둘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중에 고동미에게서 설의 모습을 발견한다. 고동미가 황우찬을 좋아했다는 사실에 질투까지 느껴가면서 말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호가 손에 찍어준 도장의 줄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채유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이들 사이, 관계회복을 위해서 비가 올 때마다 이 층에서 뭔가를 끄는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의 원인을 밝히는 것과 황우찬 가족증발 소문은 황 부장이 그 집을 싼값에 사려는 작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비 오는 날, 고동미와 구주미를 약속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비 오는 날, 이 층에서 뭔가를 끄는 소리가 난다. 소리를 낸 사람은 황 부장이다. 실은 이 흉가에 들어 식당을 하던 사람이 괴이 현상을 증언해준다면 누가 흉가를 사겠는가…. 이를 노린 황 부장, 왕 원장이 그리워하며 만호에게 새 삶을 넘겨주고 만나러 왔던 그 사람이다. 가슴아픈 사연하나, 새 삶을 포기하면서 찾은 전생의 인연과 만남이 허망함을...

 

황 부장의 짓임을 밝힌 채유, 낡은 이층집 사건의 전말을 밝혀지고, 고동미와 구주미사이의 앙금은 없어지는데,

이제 시간이 다 돼간다. 마지막으로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던 파감 로맨스 조리방법을 고동미와 구주미에게 각자의 생각을 물어본다. 설이가 구주미임을, 이제 곧 사라지게 될 순간에 알게 된 채유, 주미는 파를 데치는데, 시간이 중요하다고, 채근하며 채유의 손을 잡고 이제 꺼내세요라며,

 

채유는 주미에게 너 요리잘하니라 물었다. 아니 라면도 못 끓인다는 주미의 말을 들으면서….

 

 

구주미가 비밀병기를 입에 넣으면서 하는 말, 아 고소해 콩가루를 넣었네…. 그건 설이와 채유밖에 모르는 비밀인데,

채유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설이가 주미…. 이제 갈 시간이다. 주미의 기억 속 어느 곳엔가는 있는 옛 기억의 흔적들, 완전히 채유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채유와의 기억이었음을 모른다는 함정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미완성의 파감로멘스는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하지만 어차피 구주미는 파감로맨스가 필요없으니까 괜찮다.

 

 

 

채유는 만호에게 말한다.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을 달라고 제안할 때, 살았던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되었다고,

새로운 <전설의 고향>의 시작이다. 단숨에 읽어내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뭔가 가슴 한켠이 아린 듯, 아려오는 듯... 여운이 남는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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