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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공도성 지음 / 이야기연구원 / 2022년 4월
평점 :
당신은 악을 행한 적이 없나요?
작가 공도성은 소설<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서 당신은 악을 행한 적이 없나요? 라고 묻는다. 또다시 묻는다. 당신은 인간의 악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인간의 탐욕과 무지를 넘어서는 악, 그 악의 극단의 끝점에 서려는 자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각 등장인물의 내면의 악을 들여다본다. 불완전한 인간이 가진 악의 주요 동기가 유일성과 전부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점, 악은 불의를 향하고, 그 반대편에는 의와 이치가 있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일란성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닌다. 선은 추상적이어서 실체를 알기 어렵지만, 악은 금방 알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은 불완전하게 태어나 악과 함께 뒹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 악은 내 안에 그리고 밖에, 이 밖에서 오는 악이 가장 참기 힘들다 했다.
유일성을 추구하는 남자, 전부성을 선택하는 여자
이 소설은 지적으로 파고들면서 독자들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묻는다. 소설의 맥락과 메시지가 마치 김성규의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 (책이라는신화, 2022) 를 소설로 쓴 듯한 착각, 기시감마저 든다. 우리 주변의 악은 늘 존재하며, 상대적이기도 절대적이기도 하다. 누구나 조금씩은 비정상적이다(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점과 구별은 별론으로 하고), 소설에서는 이를 인간의 불완전성이라 표현한다. 그 기원은 아담과 화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다. 그때까지도 선악에 관한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무지요, 불의인 셈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행을 저지르도록 태어났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작가 공도성은 이야기를 전개해가면서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질문은 우리 안의 악은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향기 시대는 불완전한 인류의 시대를 나타낸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향수 가게인 “향기 시대”다. 이야기 속의 많은 만남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등장인물 하란정은 이 가게 주인이다. 옛 약혼남 이영담을 잊지 못하고 13년째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끔 이영담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아들 현기는 중학생, 남편 관상국은 무역회사 상사(임택수 이사)의 책임을 떠맡으라는 집요한 요구에 힘들어하는 무역회사의 과장이다. 그리고 개천에서 두 명의 여성을 죽인 개천 살인범, 이를 쫓는 중년의 경찰 김동진 경위와 오서운 경사, 이 이야기의 핵심 인물 이영담은 윤판중이 몰던 차에 치여 10여 년 만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다. 얼굴과 목소리에 이름까지 이상범으로 바꿨다. 그리고 도끼를 든다. 자신이 다쳐 사경을 헤매는 동안 하란정에게 접근했던 친구 백충진의 악행을, 전신불수가 되게 했던 교통사고 가해자 윤판중의 자기합리화, 무지와 악행을…. 임택수 이사와 개천 살인범의 악행을 악으로 처단한다. 또 다른 차원으로 유일성을 이루려는 그는 하란정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가 아팠던 것만큼 너도 아파야 한다. 그걸 느끼게 해주겠다며 남편과 아들까지 죽이려 드는데….
이 소설의 또 다른 축 김동진 경위, 악행을 쫓는 형사다. 그는 많은 범인을 잡아도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왜 인간은 악행을 저지르는가에 대해 자신에게 물으며, 그 어디엔가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영담의 유일성을 추구하는 악행이 극에 달할 때 그 해답을 찾는다. 집요한 소유욕, 유일성의 다른 모습이다. 악은 악으로 대응해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반복의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우연과 필연
사건의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결과는 필연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존재한다. 우연한 만남에서 사랑이 싹트고, 연인이 되고, 그 연인 중 한쪽이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우연히 10여 년간 깨어나지 못한 채로, 우연이 깨어났고, 잃어버린 긴 세월 동안 달라진 세상, 13년 전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은 필연인가, 집착과 소유욕, 이도 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전부를 가지려 하는 그래서 선택할 수 없게 되는 전부성. 무지와 탐욕이 악을 나타내는 속성이라면 유일성과 전부성은 극단적인 결과다.
악의 스펙트럼 안에서 양극단에 서 있는 살인자 이상범(이영담)과 두 명의 여성을 목 졸라 죽이고 강간한 무명의 살인범, 이 둘은 똑같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뭔가 해석이 다른 듯하다. 살인자는 유일성에 집착,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얻으려는 광적인 집착을 보이지만(능동적), 살인범은 공허라는 공포를 피하려고(수동적), 이도 극단에 이르면 사람의 목숨도 사물로 보게 돼 사람 죽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렇듯 살인에도 태도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 인간의 악은 유일성의 관성에 따르는 탓에 부나방처럼 결코 파멸의 늪으로 빠져든다. 수동적인 공허의 공포라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회피하려는 그 순간의 행위에 희열을 느끼는 중독성에 빠져들면….
이 소설의 흥미로운 대목은 마치 다중인격적인 변화 또는 요소를 가미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정면으로 드러나는 대목(심리묘사 등에서, 과민한 탓에 발견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이상범과 이영담, 왜 얼굴과 목소리를 바꿔야 했지, 왜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만들어야만 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로맨티시스트에 순진하고 사람 좋았던(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 내면의 이중성 중 어두운 면이 발현되기 전의 상태)이영담이 10여 년 동안 병상에 드러누워 있다가 깨어난 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받으려 아집으로 뭉친 흉측스러운 괴물이 광인이 됐다. 존재였던 이영담의 모습이 10여 년 동안의 공백으로 소유욕으로 변해 이상범이라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당신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란정, 김동진, 성범죄자, 개천 살인범 등등의 캐릭터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의 지은이 김성규가 연구하면서 ‘죽음의 심리학’이란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다는 대목 “자연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이 서로 물고 뜯고 죽이게 만드는 잔인한 창조자”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인간은 생존하는 필연적 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악을 행하고 자신에게 시시각각 닥쳐오는 자기 존재 파멸의 공포인 죽음을 어떻게든 밀어내고 떨쳐내려는 인간의 본성을 알기 위해서 인간의 악에게 물을 수밖에 없음을….
공도성의 이 소설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연상케 하는 대목도 엿보인다. 선과악, 정의와 불의….
공도성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악, 하란정으로 상징된 것들. 세상의 거짓말, 즉 유일성의 유혹에 속은 무지한 사람들을 상징한다. 살인자 이상범(이영담)이 살인범을 죽이고 하란정을 보호한 것은 불완전한 인간 사회(정부)가 약속한 정의의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상범이 하란정에게 남편과 아들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장면은 모순이다. 이상범을 ‘살인자’로 개천 살해의 범인을 ‘살인범’으로 나타낸 것은 살인자는 악의 선봉에서 사회체제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상징하고 살인범은 악의 밑바닥에서 이끌림을 당하다 내쳐지는 피지배자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김동진 경위는 여기서 설정된 악의 밖에서 악을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설정된 악의 모습과 달리 그 밖에서 생긴 악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꽤 묵직한 주제다. 읽기 흐름을 막을 만큼 신경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휙 하고 넘길 수 없는 대목들이 곳곳에, 마치 파놓은 덫처럼…. 그래서 심각한 읽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이 공부가 된다는 말이 어울린다.
<출판사에서 보낸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