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미래 - 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재고하다
장 피에르 뒤피 지음, 김진식 옮김 / 북캠퍼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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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재고하다

 

이 책은 ‘경제’라는 ‘악’의 양면성, 철학적 대응과 경제사상을 통해 톺아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장 피에르 뒤피의 <경제와 미래>는 정치가 경제에 휘둘리는 현상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 경제에 현혹된 믿음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국가의 모든 문제를 경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 원수는 변질한 정치인일 뿐

 

그는 경제가 정치를 예속하고 있다는 가장 결정적인 징표는 현대인들이 국가 원수로서 경제 전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경제 전문가로 인정받을수록 선출되거나 임명될 가능성은 더 크다. 경제학자들이 국가의 최고 지위에 올라 있는 것은 우리는 이미 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 크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 원수는 변질한 정치인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오늘날 우리 경제는 우리 삶을 왜 이토록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을까?

 

경제가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살펴봄으로써 답을 찾을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변신론은 도덕철학에서 공리주의로 옮겨가게 했고- 신은 최선의 세상실현을 위해 약간의 악을 남겨두기로 했다, 모나드(단자, 개인)론에서는 개인 시각에서는 악으로 보일지라도 전체 시각에서 보면 큰 선을 위한 희생이라고 본다. 이 모다드론은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의 모태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루소는 인간의 악을 자기애와 다른 이기심으로 불렀다. 이기심은 편애를 낳는데 서로 비교하는 상대적 감정인 이기심에 탐닉하게 되면 자신의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타인의 불행에만 만족하려는 순전히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대화: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이 책 30쪽)

 

에밀 뒤르켐은<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제는 종교와 연관이 있다는 확신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상의 특징인 신성 상실(탈신성)이라는 종교적 과정을 겪으면서 공석이 된 자리를 경제가 차지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 말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결국은 ‘경제’= 물신숭배, 모든 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우선한다. 인류의 문화, 인간 존엄, 인권, 불평등, 차별, 혐오 등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경제적 잣대가 은밀하게 드리워지고, 또 작동한다는 말이다. 자, 이렇게 경제는 폭력적이다. 자본주의 특히 소외와 착취에 관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경제는 약인가, 독인가, <폭력과 성스러움>의 두 얼굴,

 

경제는 마르크스와 오늘날 자본주의 비판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폭력의 원천인가, 아니면 몽테스키외로부터 하이에크에 이르는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폭력의 치유책인가, 경제는 약인가, 독인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지은이는 새롭게 본다. 경제는 이면성, 양면성은 경제에는 폭력이 내재해있기도 하지만, 경제에 의해 폭력이 억제될 수 있다고, 즉 폭력과 성스러움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때로는 약이기도 독이기도 하다. 루소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이기심의 발로라고, 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부를 원하는 것은 물질적 만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로부터 부러움이 가득 담긴 감탄을 사고 싶어서 부를 원한다. 공공연한 번영은 ‘도덕 감정의 오염’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참으로 이 말은 촌철살인이다. 경제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고드는 표현이다. 물질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 본래 가지고 있는 ‘허영심’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들의 수단으로 경제적인 부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동물 수컷의 화려한 외양마냥….

 

자기 초월성

 

자본주의 위기는 본질에서 예측의 위기다. 시장경제의 중요한 가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정치가 자기 초월성의 중요한 원천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이 가끔은 자신을 초월하고 그리하여 미래를 향해 과감히 뛰어들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는 이런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정치가 이 능력을 찾기 위해서 돌아볼 곳은 바로 정치에 남아 있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눈앞의 미래 외에는 다른 지평이 없는 경제는 위축되어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국민을 가난으로 몰아넣으면서 폭력을 제어하는 능력도 상실하는 등 악몽으로 세계로….

 

경제는 자기 초월 메커니즘에 따라 미래로 나아가지만, 목적지가 최악인지 최선인지 모른다. 정치가 제공해준 초월성을 가지고 경제가 그 조건을 뛰어넘을 때는 최선이지만, 경제는 정치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면…. 악몽인 것이다.

 

미래는 경제 이성과 정치 이성이 수렴될 수 있는 개념이다. 미래를 위한 조정, 사전 조정은 칼뱅주의,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다시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 속에는 많은 이론을 소개한다. 지은이 장 피에르 뒤피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수치심이라고 한다. 정치가 경제에 조롱당하고 권력이 재정 관리인에게 조롱당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수치심. 이미 우리 사회에서 모든 곳에서 보고, 또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차 정몽구 재판의 재판장은 법과 양심에 따라서 해야 할 재판을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했다. 위대한 경제인의 구속으로 국제적인 경제 파장 우려 운운…. 결국 사회에 얼마간의 돈을 되돌려 놓으라고, 이미 법+양심+경제= 판단의 기준이다. 유전무죄를 확정적으로…. 또 보자. 삼성의 이재용이 정치를 가지고 장난하고 통제하고 희롱한 것은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세계적인…. 운운으로 결국 교도소 밖으로, 그도 모자라 보너스로 ‘사면복권’까지 경제가 정치를 희롱한다는 말 보다 달리 뭐라 할 것인가, 경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정치가 경제 앞에 비열하게 무릎 꿇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권이 잡으면 경제가 혼란해질 것이고, 경제는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 개소리에 덜컥 겁을 집어먹고….

 

이책<경제와 미래>란 경제 제국을 더욱 번창하게 한 경제가 미래를 대하는 남다른 유형을 의미한다. 정치가 스며들어 있어서 경제가 진정 정치경제학이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신념과 결단을 갖고 자신의 길을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경제는 미래를 열어주었다고. 그런데 오늘날 그 관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지금 경제는 미래가 없을지 모른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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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사람, 조광조
조성일 지음 / 시간여행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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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의 “개혁"

 

조선조의 명유, 정암 조광조는 정치무대에서 입문하여 4년 만에 밀려나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은 팩션(팩트+픽션)이라는 형식의 글이다. 역사 인물을 다루다 보면 기록의 공백이 생기게 마련이다. 율곡처럼 어렸을 때부터 과거로 입신, 어찌 보면 나르시시스트처럼 구도장원공(9번 과거에 합격한)을 할 정도로 존재감을 풍기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광조는 어떤 존재인가, 이를 통해서 뭘 알 수 있는가, 왕조실록은 왕들의 기록이다. 중종실록에 조광조가 토사구팽당했다고 적고 있을까, 주초위왕을 칭한 대역죄를 범한 이였을까?, 후대 광해 치세 때, 신원 회복이 됐지만,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느 당파의 영향력 때문이었나? 등등 양파껍질 벗기듯 한 꺼풀 두 꺼풀….

 

조광조가 입신한 1515년부터 1519년까지 을과의 장원(이상한 표현이지만, 장원은 갑과의 장원만을 일컫는 게 아닌가)이라는 어법도 그러하고, 뭐 좋다. 팩션이라니 굳이 역사를 제대로 따랐느냐는 이 책의 관심 사항이 아닌듯하니…. 여기저기, 신문 지상에서 소개하는 이 책에 관한 글, 진짜인가, 기사를 작성한 이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 것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먼저 떠올렸던 이미지, 정실, 무원칙, 불공평, 불소통의 시대에 우리는 왜 조광조의 정치철학을 읽어야 하나, 그곳에 ’개혁‘ 봉건 유교 국가에서 ’개혁‘은 어떤 의미인지, 역성혁명까지도 끌어낼 수 있는 무서운 정치 기제? 그래서 관심이….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퇴계와 율곡이 조광조를 제대로 알고 이해했나 싶을 정도…. (행장)이란 것이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인데…. 지은이의 말대로 조광조의 정치철학을 모두 담기에는 다소 성급한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소학>과 <근사록>, 맹자의 <호연장>….

 

 

 

 

조광조의 개혁 핵심이 뭐였나

 

과문한 탓에 이 책의 행간만으로는 ”개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도학 정치, 즉 하늘의 뜻을 따라 세상사를 순리대로 풀어가자는 것인데, 여기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유교 근본 국가여서 도교(미신)를 믿는 행위는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뭐 지배층의 정치이념이자 조선의 정치철학인 ‘유학’의 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은 가치 판단 이전의 문제다. 또 한편으로 널리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신분의 귀천을 따질 것 없이 현명한 자, 능력 있는 이를 구해야 한다. 유학은 신분제 질서의 공고함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가 하려는 개혁이란 유학의 근본 질서를 바로 세우는 정치권력자들의 질서를 말함인지, 정몽주, 길재, 이색을 거쳐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로 이어지는 “도학”의 후계라는 것도 다소 알기 어렵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단서는 백성은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가 제일 가볍다고 말한 맹자의 <진심장>이 그 단서였는지도….

 

현대정치에서 개혁의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조광조가 소환되다?

 

아마도 조광조가 말한 개혁의 첫 단추는 인사시스템, 선발과 구분, 지금 시대의 개혁 인사청문회의 맥락과도 통하는 듯,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볍다”(귀민경군)라는 것 때문이라면 너무 이해가 부족한 것일까?, 사농공상의 질서가 있고, 양반은 그 사회의 지배자로서 향약을 통해 나름의 질서를 잡아야만 한다. 이런 질서는 늘 조금만 방심하면 흐트러지고 근본까지 뒤흔들어 양반이 권력의 정점이고, 조선의 왕도정치의 근간인 하늘=백성은 수탈의 대상이다. 끓임 없는 개혁이란 바로, 이씨 왕조 탄생부터 배태된 근본 모순이다. 성리학 이념으로 갈아타자는 논리…. 물론 이는 유대칠의 <대한민국 철학사>(이상북스, 2020)는 양명학 전개와 성리학의 자기 개혁을 논하고 있다. 또한, 존 B.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 고려-조선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실증적으로 탐구> (너머북스, 2013), 마르티나 도이힐러의<한국의 유교화 과정>- 신유학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너머북스, 2013)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조선의 고려지배층의 연속 선상이며, 이들의 새로운 지배이념 유학은 어떻게 질서를 바꾸었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모순해결을 위해서 이른바 사림파는 성리학이라는 신유학을….

여씨 향학에 관한 접근, 조광조는 왜 지방에 향학 보급을 적극적으로 외쳤을까, 구체적인 방안 등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들

 

조광조의 개혁은 조선 시대의 지배철학 가운데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말한 개혁은 실현 가능한 것인지,

 

기발하게 멋진 말을 만들어내는 카피라이터라면 “미완의 혁명아 조광조” 그가 꿈꾼 조선, 그가 꿈을 이뤘더라면 조선 전쟁(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 이후, 조선왕조는 적어도 18세기에는 공화제로 나아갈 수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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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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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

 

소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기상천외한 사건이 터졌다. 223명의 마루타, 인체실험을 하다 죽인, 죽은 사람들의 숫자다. 델피노에서 출간된 이동건 작가의 장편소설 <죽음의 꽃> 주인공 이영환은 의대를 중퇴했다. 조선의 의성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유언에 따라 주검을 해부했다. 그의 몸 곳곳을 들여다보면서 그저 상상으로만 머릿속에 그렸던 장기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힘줄을 하나하나씩 살펴봤다고…. 전설인지 실제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인간의 죽음 앞에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이영환은 그 경계를 허물었다. 마침내 신이 된 것이다.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 시각과 청각장애인도 1시간 정도면 완봉 상태를 마치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처럼 눈을 뜨게 하고, 아무것도 안 들리던 소리를 듣게 해준다.

 

시간의 시작은 구암시 소재 장애인복지관에 자원봉사를 하러 왔던 젊은이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납치해 갔다는 것이다. 경찰도, 기자도 나오는데, 잠시 후, 자수하며 내가 그들에게 세상을 보게 하고, 세상의 소리를 듣게 했노라고….

 

신의 손, 신의 손의 한 수

 

이렇게 세상에 화젯거리가 된 “화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젊은이 앞에 모두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경계에 선 환자들의 부모·형제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어린 시절, 강도강간 사건으로 부모를 잃어버렸던 검사 장동환 형제. 이 사건의 주임검사는 빡빡하기 그지없는 끝까지 간다는 검사 장동환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박재준 변호사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아놓은 딸을 살리기 위해 잘 나가던 법무법인마저 때려치우고 이영환의 변론에 매달린다. 

 

1심에서 사형, 이제 2심에서 223명을 죽인 게 무죄라고,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살리는 의술을 발견한 공로로 사면과 연구할 수 있는 환경 제공을 요구하는 이명환, 

 

이야기는 흘러 흘러 2심 법정, 재판장은 실체진실 발견을 위해 이영환이 진짜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살려내느냐를 검증하기로…. 이런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이영환의 변호사 박재준의 딸이 죽었다. 

이제 이영환은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검사 장동환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영환을 찾아가는데…. 그리고 14년 후, 이영환이 장동환의 칼에 찔려 죽으면서 그에게 알려준 좌표를 찾아 나서는데, 그곳은 이영환의 치료 비밀의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역시, 이런 것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돼….

 

정의란, 도덕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참 까다롭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정의와 도덕을 정면으로 묻고 있으니 말이다. 하기 싫은 방학숙제를 개학날 직전까지 미루는 심정으로 조금 가벼이 읽을 수 있겠지란 생각이, 어느덧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이며, 도덕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명제가 딱 내 앞을 가로막는다. 

 

어떤 목적이든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금지되는가? 이 소설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과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에서 나오는 유명한 하인즈 딜레마처럼 준법정신과 질서만으로는 이영환의 행동은 당연히 살인자다. 그래서 1심에서 살인죄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콜버그의 5단계 즉, 사회적 계약으로서의 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의 생명과 같은 기본 인권에 중심으로 두지만, 현실적인 의료 한계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실험의 희생자…. 여기에서 이영환의 딜레마, 법을 어긴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죽임으로써 인류구원의 길을 막아버린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른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고 관점에 따라 다른 기준이 모두 올바를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즉, 선각자 이영환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또 다른 관점에서 이영환은 선각자나 철학자가 아닌 그저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여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과는 또 어떻게 다른 것인가, 

 

소설은 답을 강제하지 않았다. 그저, 정의 수호자의 칼끝에 이영환의 목숨을 앗았다. 이 상징은 의미는 장동환 검사의 과거 경험과 그의 준법 기준이 정당한가?, 현행법에서는 여전히 목적이 어떠하든 사람의 목숨을 해친 죄는 처벌의 대상이다. 

하지만, 장동훈과 이영환도 선각자라 할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의 처벌할 수 있는가, 법치국가를 유지 지탱시키는 중요한 제도인 검찰, 그 임무를 지닌 검사의 칼날은 정의인가 사사로운 처벌인가, 이는 마치 조두순을 두고, 그가 사회에 나오면 어린 여자아이들은 불안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그 동네 민심은 흉흉해질 것이라고…. 조두순의 인격 존중 여부는….

 

우리 사회의 문제 핵심을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듯한데…. 참으로 어렵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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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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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은 반어법?

 

격동의 시대, 1920년대, 엄청난 호황을 맞이한 미국의 전성기, 주가를 치솟고, 모두들 꺼질 줄 모를 버블 속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양극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경계, 

 

중서부에 살면서 Y대학을 졸업한 닉 캐러웨이는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뉴욕 롱아일랜드로 옮겨오고, 근처 이스트에그에 살고 있는 친척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그의 남편 톰 뷰캐넌의 집으로 가고, 그곳에서 골퍼 조던 베이커와 조우. 

 

닉은 호화로운 별장에 살고 있는 이웃 개츠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옥스포드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개츠비는 어딘가 비밀이 가득한 의문의 사나이. 이 베일에 싸인 백만장자는 토요일마다 떠들썩한 파티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파티에 초대 받아 참석한 후 개츠비와 우정을 쌓게 된 닉은 자신의 사촌 데이지와 개츠비가 옛 연인 사이였던 것을 알게 된다. 데이지는 가난한데다 전쟁터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개츠비를 잊은 채 부유한 톰과 결혼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톰은 정비공의 아내와 은밀한 사이였고, 때마침 개츠비와 재회하게 된 데이지는 잊혔던 사랑의 감정이……. 닉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데이지를 만나게 해준다. 

 

 

 

위대한 그 의미

 

개츠비는 닉을 집에 보내고……. 죽은 머틀의 남편이 그를 찾아와 총으로……. 그렇게 죽어버린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고, 닉은 이 이야기를 쓴다. 개츠비 앞에 위대한을 붙인다. 그 위대함은 사랑에 관한 믿음, 그가 살아온 모습 계산적이고 불법이라도 서슴없이……. 부를 거머쥔 개츠비와 대조되는 데이지-이중적이고 모순된 인간-에 관한 개츠비의 사랑은 순수하고도 깊었다. 상대적으로 그 사랑은 위대한 것일까, 

 

수차례 영화화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20년대의 도시의 모습,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사랑, 계층의 양극화를 거침없이 보여주면서, 도덕적 기준도 인간성도 잊어버리는 사회를 비판하며 동시에 개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를 대변……. 

아버지는 내게 “네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네가 누렸던 이점을 누렸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렴” 

넌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전부 모아놓은 것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야……. 바로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등장한 2013년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 왜 이 시기에 위대한 개츠비가 필요했을까를 생각한다. 1929년의 대공황, 2007~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기침체, 이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역시 깊은 양극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아마도 시간적으로 두 세대를 넘어,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상을 되돌아보면서…….

이 책은 미묘하게 다른 이의 번역과 느낌이 조금은 다른듯하다. 과문한 탓인지 그리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이 책, 당시 시대상을 꿰뚫어 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천재성을…….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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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4호 : 돌봄의 정의 - 2022.봄호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음 / 여해와함께(잡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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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정의

 

재단법인 여해와함께의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물’4의 주제 ‘돌봄의 정의’는 코로나 19와 기후재난의 시대, 돌보고 돌봄 받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취지다. 이 잡지에 실린 25인의 목소리를 싣는다. 시사인 기자 김다은과 녹색당 공동대표 김예원을 비롯해 과학사, 과학기술학자 현재환의 언던 사이언스까지 여러 분야에서 본 돌봄, 그리고 우리 사회를 다양한 시좌와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한윤정 편집인의 머리말에서는 “원전도 돌봄의 시각으로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원전이 필요한 이유는 한 가지. 경제성이다.”라고 시원하게 말한다. 요즘처럼 재난과 양극화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돌봄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생명을 지켜준다. 재난, 안전, 돌봄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세쌍둥이’, 그중에서도 돌봄은 재난과 안전 사이의 다리는 놓는다. 개인, 사회, 국가, 세계, 인간, 동식물, 환경, 생태계, 지구 사이에 돌봄의 복잡하고 중층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돌봄에는 ‘돌봄 노동’이나 ‘독박 돌봄’ 같은 협의를 벗어나 새로운 정의, 그리고 돌봄의 권리와 의무를 평등하게 나누는 진짜 정의가 필요하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돌봄에 관한 새로운 정의다. 돌봄 노동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돌봄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과 자연, 사회 모두 돌봄이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을 다시 봐야 할 것이라는 건데, 에코 페미니즘의 가치와도 맞닿은 돌봄이 사회조직의 원리가 될 때,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평등하게 대하는 돌봄의 철학이 정신문화의 기조가 될 때, 비로소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돌봄 민주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바이오크라시(생명 정치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그렇다면 돌봄의 철학과 돌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돌봄권 주체로서의 생태계

 

김현미는 <돌봄의 미학>에서 돌봄 노동의 현황을 논한다. 돌봄은 무임이든 임노동이건 인간과 생명체에 대한 연민, 동병상련, 용인, 희망의 마음에 기대어 수행하는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돌봄 능력은 현란한 자본주의의 전시물이나 인공지능, 로봇 개발로 달성될 일이 아닌, 매우 개인화된 윤리의 영역에 포함되기에 어렵고 높은 수준의 관계기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발적 돌봄, 사회적 돌봄, 돌봄의 시장화가 균형을 이루면서 모든 이의 돌봄 욕구를 해결해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돌봄 역량을 갖춘 이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 돌봄의 전 지구적인 인종, 젠더, 계급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 서로 돌봄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다<사람과 세상 사이에는 이웃이 있다, 박승옥>라고 한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대 초반, 기후위기로 인한 전 세계 식량 전쟁(식량의 자원화)은 국가 간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국가 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전쟁이기도 하다. 돌봄이란 시혜나 자선이 아니다. 우리가 국가에 대해 돌봄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의 돌봄 정책은 인민이 서로 주체의 주권자로서 스스로 서고, 지금과 같은 시장경제의 국가 돌봄은 사람을 노예로 부려먹다가 폐기물로 버리는 돈벌이 산업일 뿐이다. 강력한 체제 전환의 행동은 세계관을 바꾼 이웃 공동체의 행동이다.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은 국가 돌봄이 아니라 서로 돌봄의 공동체 돌봄이다. 기후위기 시대 더욱 절실히 깨닫는 만고 불변의 진리다.

 

박승옥의 주장처럼, 시장경제의 국가 돌봄의 본질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복지 국가체계를 촘촘히 하자는 맥락과도 다소 결이 다르지만, 국가 돌봄을 벗어나 서로 돌봄 공동체 돌봄을 하자는 말은 협의의 돌봄과 넓은 의미의 돌봄을 함께 아우르는 표현이기에 다소 이해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돌봄”이란 뭔지, 우리 사회에서 지금 돌봄이라는 표현은 협의(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일)로 받아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광의의 돌봄까지(즉 인류, 자연,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한 배려)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탈원전 노선은 휘어지고, 또다시 원전? 재생에너지든 원전이든 국민에게 물어보라.

 

녹색, 기후위기를, 환경을 걱정하고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지구를, 새로 들어선 정권은 원전정책을 지지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도대체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엎어지고 뒤집히고…. 아무튼 선정수<뉴스톱, 팩터체커>는 원전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맞춰 순발력 있게 가동할 수 있는 전원이 전혀 아니라고 한다. 시동과 정지에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이건 원전이건, 어느 쪽이든 주민 수용성이 관건이라는 핵심을 지적한다. 한국의 미래 에너지는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다. 임기 5년 안에 뚝딱해치울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정부는 에너지 정책에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늦더라도 충분히 논의를 해야 한다.

 

이 책은 돌봄 노동에서 지구 생태계 돌봄에 이르기까지, 돌봄을 주제로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분야에서의 돌봄을 이야기하고 있다. 꽤 유용한 논의와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돌봄을 생각해야 할 것인지,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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