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응 열사 평전 -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전해주 지음, 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 외 기획 / 틈새의시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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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묻힌 4.1아우내만세운동 주역

 

열사 김구응,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렇게 역사에 무지한 건가, 1919.3.1.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 이후로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은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이 됐다. 이 역사의 변곡점을 시작으로 수개월에 걸쳐 5만여 명이 투옥되고, 7,645명의 희생자와 4만6천 명의 부상자가 나온 엄청난 사건, 독립 만세 운동,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목천아우내에서 음력 3.1, 즉, 4.1에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목천아우내만세사건이라고 한다. 이 일로 유관순을 일경에게 끌려갔고, 결국은 주검이 됐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정부는 유관순 열사에게 1등 훈장을 추서하면서 대통령은 윤관순 열사가 3.1운동의 표상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등급 훈장을 추서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청년학생 모두가 유관순이었고, 모든 이들이 김구응이었다

 

이 책의 지은이 전해주 신부(성공회)는 100년 전 일어났던 독립 만세 운동, 당대에는 어느 지역에 누구누구가 참여했고, 그 지도자 혹은 지도부는 누구였다는 것쯤은 짐작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제는 기록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라서,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은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구금됐다 풀려나 고향으로 내려와 오빠를 가르쳤던 진명학교(성공회에 운영) 교사 김구응선생에게 알렸다

 

음력 3.1 양력으로 4.1 아우내장터에서 터진 만세 운동의 물결이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한 달 후에 병천이라는 시골 땅에서. 게다가 윤관순 열사라는 프레임으로 3.1운동. 함께했던 수십 명의 이름은 아쉽게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칫 윤관순 열사로 모든 게 귀결돼버린 것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바라는 어떤 영웅상에 끼워 맞추기가 되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이른바, 잔 다르크처럼. 유관순 열사에게도 함께 했던 당대의 열사들에게도 누를 끼치게 됨을 물론 미래 세대에게도 왜곡된 역사로 이어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은이는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지은이 전해주 신부는 4.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선생과 그의 어머니가 현장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스러지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옥에 갇혔던 사건과 관련자들이 그 후로 잊힌 사람이 돼버렸다고 충남 병천 성공회에서 사제로 지내면서 이런 사실을 알게되고, 진입로마저 없어 논두렁 밭두렁을 넘어 찾아간 김구응 열사의 묘지, 그의 눈에 비친 묘지는 너무도 초라했다. 그는 김구응을 찾아 하나둘 퍼즐 맞추듯 선생의 후손을 찾고 또 당시 사건 관련 기록물 등의 자료를 모아, 펴낸 연구논문이 인연이 돼 평전을 썼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김구웅을 기억해야

 

이 평전은 4.1 그날 스러졌던 김구응과 그의 어머니, 당일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김구응을 찾는다. 모두 4장 체제이며, 1장에서는 김구응은 누구였나, 조부가 근동에서는 내놓은 부자였던 덕분인지 21세 때 청신의숙을 세워 주민 교육에 나섰다. 30세 무렵까지 면 서기관 일을 하다, 때려치우고 학교 교사가 됐다가 성공회가 운영하는 진명학교로 옮겨온 후, 1년 후 4.1 아우내 만세 사건이 일어난다. 2장에서는 성공회와 진명학교, 왜 대도시가 아닌 시골 면 단위에 학교가 세워진 것은 성공회의 전도 루트와 관련이 깊다. 3장 그날의 함성, 4.1만세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성공회의 3.1운동에 대한 견해와 분위기를 전하며 아우내 만세 운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글을 맺는다.

 

개화기 중국을 통해 들어 온 감리교 역시 아우내에 학교를 세웠다가, 문을 닫지만, 당시 천안, 진천, 목천은 동서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으로 사통팔달이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포교, 전도의 길로 이용된 듯하며, 아우내 유지들의 개방적이며 진보적 성향이었던 점 등이 아우내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지은이는 분석했다.

 

아무튼 성공회교회와 아우내 경제계, 그리고 신학문의 세례를 받은 이들과 농촌 계몽운동 등의 영향으로 1919년 음력 3.1일인 4.1만세 운동이 터진 것이고, 이때, 인근 마을의 연락 등은 유관순이 맡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구응선생은 이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지도자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 책을 펴낸 배경에는 100여 년 당시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던 3.1만세운동이 단지 몇 사람의 유명인(지금 그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거나 추승작업이 진행되는 이들)에 의한 게 아님을, 이름이 세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민중의 참여로 진행됐음을, 잊지 말라고, 단지 당시의 젊은이의 대명사가 “유관순”이었음을…. 개인이 아닌 청년 학생이 모두 유관순이었음을, 아울러 지방과 지역에서 활동했던 많은 이들이 김구옹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이 책은, 한두 사람의 영웅 만들기는 당대의 역사가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수많은 “김구응”선생이 존재했고, 이들이 지방과 지역에 남긴 것은 의로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한 몸을 던져 싸웠던 이들을 찾아내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하는 게 우선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덧붙여, 19세기말 한반도에서 왕성하게 포교,전도활동을 했던 교회의 역사 등도 곁들어 알 수있는 정보가 담겨져 있다. 3.1운동과 종교와의 관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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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화
마르셀루 글레이제르 지음, 김명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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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들과의 대화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생각법이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를 좇는 게 아니라 이들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좇아가 보는 것이다. 2016년 템플턴 재단 지원으로 5년 동안 8번의 대화를 했다. “건설적인 협업”이라는 프로젝트로. 이 시대의 가장 도전적인 질문들을 주제로 토론, 논쟁했다. 실재의 본질은 무엇인가에서 AI 시대의 인류 미래 전망에 이르기까지….

 

8번을 각각 하나의 장으로 엮었는데, 1장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와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의 대화 “의식의 신비”를 비롯하여, 2장에서는 불교학자와 이론 물리학자가 만나, 실재의 본질을 묻고 답하기도 그리고 3장에서는 지능의 미래를 주제로 천문학자와 철학자의 대화를, 이어 영성의 본질이 무엇인지(4장), 시간의 신비에 관하여(5장) 과학사가와 물리학자의 대화, 그리고 사이보그, 미래주의자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로 신경과학자와 작가가 대화를(6장), 환경주의자와 의사가 만나 인간과 행성의 수명을, 마지막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문학과 과학적 관점에서. 이 8개의 대화는 의식과 실재, 지능과 영성, 시간의 신비, 미래, 수명, 인간이란? 다들 제 나름대로 이런 주제에 관해서 한 마디쯤은 할 수 있다. 제 생각대로 말이다. 정답은 없으니, 이렇게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정답 없는 핵심 문제에 관해 다양한 생각을 드러내고, 묘안을 생각해내는 장, 번쩍이는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고 소통하는 장. 소통 불능에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 까.

 

자, 지성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의식”은 인간만이 존재하나?

 

벌써 말하는 폼새가 남다르다. 1장의 안토니오 다마지오와 데이비드 차머스 이 두 사람은 신경학자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하며, 다마지오는 심리학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의식”이란 주제로 고수들의 하는 말, 꽤 흥미롭다. “의식” 인간만이 의식을 가질까?, 문어도, 물고기도 의식이 있다면, 과학논문에 물고기 의식을 다룬 대목이 있다. 의식, 그렇다면 자의식이 있는가. 이점에 관해서는 둘 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들 대화를 이끌어가는 글레이제르 또한 높은 식견으로 두 사람 대화의 핵심을 잘 정리해나가면, 새로운 주제로 이끌어간다.

 

실제 대담 현장을 보는 듯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몇 줄의 글로 전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대화들. 이들의 마무리, 다마지오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놀라운 두뇌에 애초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던 일거리를 많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논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 있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에너지가 남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언가,

 

과학의 세계, 신경과학이든 뭐든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는 것들, 사람의 살과 인공물인 실리콘의 용도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뇌에 관한 어떠한 연구와 시뮬레이션도 그저 미지의 세계에 관한 호기심일 뿐, 인간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서 뭔가 할 것이라는 생각이 뇌에 부하를 가져오는 것이다. 인간은,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있고, 하루가 끝날 때쯤에도 힘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엇박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식은 양심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다마지오의 말 또한. 곱씹어본다.

 

이론 물리학자와 불교학자의 대화, 과학, 마음과 의식 그리고 정신 과정

 

이 대목은 아주 흥미롭다. 아주 오래전에 양자물리학 공부하던 지인으로부터 불교와 과학은 꽤 닮은 구석이 있다고. 글쎄 견문이 적어 그가 설명하는 것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핵심은 과학과 종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고. 당시에는 꽤 설득력이 있는 말로 들리기는 했지만….

 

실재론에 관한 생각은 매우 다양하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의 세계, 이른바 전문가, 연구자들 속에서도 견해가 엇갈려있다. “실재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핵심 질문은 현대과학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믿음, 사후에도 의식이 지속된다는 믿음, 그리고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한 믿음과 양립이 불가능한가?, 이런 믿음은 인류 문화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에 관해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현대과학을 이루는 다양한 분야에서 관측하고 측정하는 게 정교하며 엄밀, 정확한 방법들을 개발해왔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양한 분과 전부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마음, 정신 과정, 의식의 상태다. 인간이 높은 수준의 주의 집중, 마음 챙김, 성찰 기법은 아시아에서 5000년 동안, 불교에서 2600년 동안 이어 내려온 명상과도 관련이 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지난 200년 동안 과학적 사고의 기술적 응용이 산업과 사회에 즉각적이고 심오한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라 과학 교육은 기술자들, 대체로 구체적인 일에 초점을 맞춘 전문화 된 길드를 길러내는 일로 축소됐다. 과학의 갈래는 수없이 분화됐고, 분야마다 하나의 장벽이 세워져, 전체를 보는 눈을 잃게 됐다. 전체를 보는 눈을 다시 길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지성들의 대화, 생각지도 못한 내용과 논리, 그렇다고 기상천외하여 외경심마저 들게 하는 대목도 있지만, 인간의 정신세계와 현상,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울려 빚어낸 문화라는 것, 세상은 전체로서 하나이지, 따로 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대목 한 장씩 다시 읽어봐야겠지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을 만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즐거움이 너무 지나치면 이렇게 되나 싶을 정도로….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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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악보
윤동하 지음 / 윤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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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과 동정의 노래라.

 

철학자의 악보에 실린 노래는 통찰과 동정, 정신과 숙명, 그리고 지혜와 사랑, 이렇게 3장의 노래에 78개의 악보가 실려있다. 통찰과 동정이 34개 주제로 죽음, 정신, 의문, 우상, 우울, 갈망, 증명, 절제, 진실, 인간과 존재, 후회, 동력, 이성, 농담, 통찰 등이, 다음으로 정신과 숙명의 노래는 호기심, 야생화, 바람, 거짓, 저항, 정신, 모순, 역할, 상승, 두려움, 혼란과 창조, 관계 등 24개, 지혜와 사랑의 노래에는 자연과 인간, 목적 흔적, 무상, 허무주의, 고독, 시인, 사랑과 철학, 차이 등의 20개의 악보가…. 철학의 노래하라. 그대 자신만이 그대 삶의 기준이 되고 척도가 되도록 하라는 규칙에 맞춰서,

 

이 책은 꽤 어렵다. 쉽다면 쉬울 수 있고, 어렵다면 어렵다. 바탕에 깔린 지은이의 기본적인 관념이랄까, 사고의 태도는 “나를 귀하게 여기고, 내 삶의 기준은 오로지 내 자신이다.” 멘토의 흉을 낼 필요도 없고, 이를 따라가려고 하다 열패감, 열등감에 찌들 필요도 없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이런 태도 속에서야말로 상호 존중의 자세도, 무비판적인 수용도, 휘둘림도 줏대 없음도, 온전히 내 정신세계에서 온전한 나로, 사람과의 관계 사랑과 차이에 생각해 보라고, 철학, 생각하는 것은 머릿속에 악보를 펼쳐놓고 연주하는 것이다.

 

그저 어렵다고 생각하기 싫다고 어두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지쳐버릴 지경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고, 생각하기가 아닐까 싶다.

 

죽음의 역설- 통찰과 동정의 노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가?, 지은이는 삶의 두려움에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순서가. 태어나면 죽음은 시작된다. 날마다 죽고, 새로 생겨나는 세포들, 어느 정도 균형상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 죽는 세포와 비교해서 새로운 세포가 수가 더 적을 때, 눈에 보이는 노화가. 태어날 때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 또한 죽을 때는 모두 평등하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오니.

 

죽음의 역설이란 결국,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함이라…. 삶을 적극적으로 사유할 때, 자연스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삶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삶을 치열하게 성찰할 때 죽음은 작품이 된다.

 

저항-정신과 숙명의 노래

 

밀려오는 현상들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나는 무엇인가를 자각하게 된 그 순간부터 멈출 수 없이 저항해야 한다.

나를 몰아붙이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그 모든 것을 감당해내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발견한다(157쪽).

 

자유의지든 환경에 구속돼, 타율적으로 움직이든, 움직임에는 구속과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마치 헤겔의 변증법, 정, 반합 체계처럼 말이다. 상호영향을 주기에 늘 유동적이며, 변화하는 질서들, 정과 반이 합이 되고 그 합은 또다시 균열로 끊임없이 정과 반은 합이 되려는 과정의 연속을 이 또한 저항이 아닐는지.

 

차이- 지혜와 사랑의 노래

 

사랑과 차이,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세계를 수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다. 그러므로 다름, 차이를 기반으로 한 감정의 동요다. 사랑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대상을 포함한 그의 세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작동한다. 욕망은 양방향에서 같이 발생하기에 사랑은 일반적인 관계를 넘어서 감정적 소모가 따른다. 모든 일은 나와 다른 사람의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두 세계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이란 늘 삶과 함께하는 것이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닌데, 우리는 순차적으로 오는 그 무엇을 생각하거나 갑작스레 운이 나빠서 몹쓸 병에 걸려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질서임을. 저항 또한 그렇다. 끊임없이 조우하고 극복하고 부딪치며 헤쳐나가는 이 모든 과정이 저항이다. 이를 극복했을 때, 보이는 그 무엇이 삶이 아닐까,

 

차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리, 깊이를 말할 수도 있고, 사랑,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 역시 나를 대상으로 삼는 나의 인식이라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형성되고 변화하는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무기력증에 빠진 인간은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다.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구심을 두고 따져보고 곱씹어보고 또 톺아보기도 한다. 안광이 지면을 철할 정도가 못 되니.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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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히는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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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결과가.

 

단순히 생각해보자. 괴롭힘을 당한 아이의 뇌가 변한다고,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왜 뇌에 영향을 미칠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란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인듯싶다.

 

지은이 제니퍼 프레이저는 자신의 아이가 괴롭힘 때문에 고통받고 있음을 알게 된 뒤,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이 책을 썼다. 그는 어른이든, 아이든 그들이 겪은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과 학대가 심각한 아동기 트라우마의 한 형태임을 강조한다. 뇌 가소성 연구자인 메르체니치를 만나 상처받은 뇌를 어떻게 치유하는지를 알게된다. 메르체니치는 우리가 먼저 뇌의 회복 능력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그리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뇌 가소성은 쌍방향으로 작동한다. 즉, 좋게도 나쁘게도 기능한다고.

 

뇌 가소성이 중요한가?

 

어떤 상황을 오래 겪으면 인간은 바로 적응을 통해 반응하는데, 바로 진화다. 후각이 퇴화하면 시각이 발달하듯, 추우면 옷을 만들게 되고, 불을 다루고 도구를 만든다. 인간의 적응은 뇌다. 뇌가 변하기에 적응할 수 있는데, 바로 변화하는 뇌의 특성을 ‘뇌 가소성’이라고.

 

상처받은 뇌는 회복할 수 있다.

 

괴롭히고 학대한 사람도,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는 사람도 모두 상처를 입는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서 뇌에 관해 배우자고 말한다.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뇌의 각 부분 역할을 배우고 무엇이 뇌의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이 최적화를 방해하는지에 관한 지식을 익혀야 뇌 가소성으로 우리 뇌를 치료하자고 설득할 수 있다고.

 

그리고 괴롭힘의 패러다임의 신화를 드러내자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자신의 학대 행위는 외면한다. 훈육, 교육, 버릇 고치기 등이란 말로, 아이들이 또래를 괴롭히면 나무라지만, 어른들이 학대를 하면서 피해자인 아이를 비난한다. 이럴 때 아이들은 제 잘못 때문인 양 여기게 된다. 이것이 괴롭힘의 패러다임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아니, 학습된 무기력이다. 이 잘못된 패러다임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이나 직장 내에서 괴롭힘이나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의식적으로 괴롭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보다는 그러려니…. 이때 뇌는 피해를 당연히 여기는 방향에 적응하며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수치심이 저마다 타고난 공감 능력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지은이는 리프킨을 인용한다. “수치심은 천부적인 공감 능력을 꺼버리는 위력이 있다. 스스로 존재 가치가 없고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고 있으며 자존감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른 사람의 곤경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공감의 저장고가 고갈된다고.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스스로 위축되어 뒤로 물러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뿜어내면서 버림받은 느낌을 해소한다. 이것이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 전체로 확산, 확장된다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문화적 패러다임으로…. 전염성 강한 혐오처럼.

 

범죄자들을 분석할 때 이런 말을 자주 쓰는 듯하다. 공감. 공감할 수 없다면 큰일이다.

 

괴롭힘의 악순환, 괴롭힘의 패러다임에서 공감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이는 질적 변화가 아니라 단지 방향만 바꾼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이 책의 목표는 당신이 치유될 수 있음을, 그리고 자기 안에 회복의 도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알리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회복 도구가 뇌라고, 뇌 가소성을 좋은 방향으로 끌어내는 게.

단순하게 생각한 괴롭힘은 한때의 괴로움과 곤혹, 고통 정도로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용감하다는 증명으로 착각했던 적도, 무지한 탓이다. 개인차가 있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크게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다. 이제껏 마음에 상처라는 말이 이제는 뇌의 상처로…. 표현돼야 할 듯,

 

두꺼운 책을 읽고 난 후, 읽는 동안 끄덕였던 고개. 덮고 난 뒤에, 막연하게 아. 그렇구나, 뇌가 적응을 못 하는 건가 싶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 엄청나게 반항을 하는 탓이겠기니라고 생각해두련다.

괴롭힘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몸은 안다. 본능적으로. 이런 부조화의 원인을 없애는 방안을 찾아서.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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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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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시스템, 메커니즘

 

수치심 머신, 수치심을 유발, 이를 미끼삼는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사회,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의 영화<셰임>(2013)에서 화려한 삶에 포장된 현대인의 고독과 육체에 갇힌 인간소외와 소통 부재를.

 

마사 누스바움은 그의 저서<혐오와 수치심>(민음사, 2015)에서 사회 법체계는 많은 부분이 혐오나 수치심 같은 감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법률 세계는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혐오와 수치심은 분노나 두려움과는 달리, 개인의 존중과 자유를 가로막는 제도적 토대로 이용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누스바움은 “지배하기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즐길 수 있는 능력”과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해,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사회관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캐시 오닐이 “수치심은 권력자가 느껴야 한다”라고 갈파한다. 그는 이 책에서 개인이 갖는 심층 감정인 수치심을 자극하여, 편협함과 당위로 몰아붙이는 마케팅 이른바, 수치심 비즈니스는 수치심의 체계가 끊임없이 변화해도 이를 노리는 사업 기회가 넘쳐난다. 러닝머신 구매, 코 성형수술, 광고 클릭, 가짜 명문대 학위 취득, 값비싼 다이어트 프로그램 가입,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투표 유도 등, 어떤 사업모형을 구상하든 먼저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대상을 찾아낸다. 오닐의 표현에 의하면 “수치심 산업 복합체”의 이해타산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것이 바로 수치심 머신이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수치심 머신을 움직이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3부 10장 체제로 이루어졌다. 1부는 수치심은 돈이 된다. 지은이 오닐은 비만이다. 수 없이 다이어트에 도전해보지만, 매번 실패한다. 자기 혐오감이 들 정도로, 나중에 주변의 눈을 의식하면서 수치감을. 바로 이런 감정이, 미끼가 되어 자기 스스로 사냥꾼에게 걸려들게 된다는 구조를 말하고 있다. 비만, 약물중독, 빈곤, 외모 등에서. 존엄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수치심 산업에 맞서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혐오는 어디서 시작하고 확산하는가를, 쫓아가 본다. 사이버 불링(공유, 좋아요. 그리고 돌 던지기), 차별, 인셀(피해의식과 폭력성의 발현)을 다루고 있다.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다산초당, 2017)에서 혐오는 개인을 넘어 집단의식으로까지 번지기에 위험한 것이라고, 혐오 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에 대한 맹신이다. 이를 멈춰 세우는 것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순수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데 있다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라고, 위에서 마사 누스마움이 주장한 바와 같은 맥락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오닐의 말한 자존감을 높이는 것 등이다.

 

3부에서 정의감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공공에티켓(팬데믹과 마스크), 하지 않을 자유, 공공장소에 흡연에 관한 시대의 흐름, 백신 개발에 이용된 사회적 약자를 통해 들여다본다. 권력과 저항(촛불집회, 미투, 부당해고), 나이지리아의 촛불집회와 미투 운동이 드러낸 민낯, 구글의 이중성 등을

 

탈 비만과 외모지상주의, 학력주의 사회에서 “수치심”은 좋은 미끼다.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한편으로 자기혐오를 조장하면, 미끼를 물 확률이 커진다. 정치든, 경제든,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인 동력이다. 인간의 감정이 그것도 심층 감정을 건드려, 멘토를 롤모델을 따라가게 하는 의도가 한없이 불량스럽다. 자본주의니까. 뭐 그렇다 치자.

 

이 책에서는 많은 사례를 들고 있다. 비만을 자신의 매력으로 바꿔버린 여성 가수의 이야기, 크릭이라는 값싼 마약에 중독돼 자신을 실패함 삶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쓰레기라고 여기는 여성이 수치심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자존감을 회복한 이야기, 다 성공담이기에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낙인, 한 번 성범죄자는 재범 가능성 평가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든 어쩌든 영원한 성범죄자라는 프레임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몇 년씩 더한 사람들은 어떻게.

 

아직도 이들처럼 헤어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점을 거꾸로 지은이는 보여주고 있다. 적나라하게, 자신도 비만이라는 수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제대로 통제하거나 즐기는 나는 나대로,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다 매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옮겨가지는 못한 듯,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가난한 너희들의 책임, 자신을 절제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부적절한 자기관리, 비만이 만일 체질이라면 타고난 유전자의 문제라면, 어쩔 건데. 약물을 끊지 못한 것도 개인 탓, 그렇다면 크릭소지죄나 코카인 소지죄나 같은 형량 적어도 비슷한 형량이어야 할 텐데, 법 또한 그렇지 못하다. 유전무죄가 여전히 통용된다. 코카인의 500그램소지죄와 크릭 5그램 소지죄 어느 쪽이 더 형량이 무거워야 할까?.

 

서열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특권이 있다고, 돈과 권력이라는 무기가…. 이들이 누리는 행운을 수치심머신은 간단히 설명한다. 훌륭한 가치관과 인내심을 발휘했으니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능력주의 신화가 이들의 성공을 떠받든다. 한편, 다른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든 그저 열등하기 때문이든 처참하게 실패한다. 승자는 잘했고, 패자는 잘못했다는 이분법을 통해 우리는 수치심을 조장하는 뿌리 깊은 불평등을 참는다.

 

적어도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우선은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핀다. 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 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로 모욕당하는 대상에게 현실을 바꿀 힘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존엄하게 대우하자고 요구하는 건 무리인가?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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