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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셰임 머신, 시스템, 메커니즘
수치심 머신, 수치심을 유발, 이를 미끼삼는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사회,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의 영화<셰임>(2013)에서 화려한 삶에 포장된 현대인의 고독과 육체에 갇힌 인간소외와 소통 부재를.
마사 누스바움은 그의 저서<혐오와 수치심>(민음사, 2015)에서 사회 법체계는 많은 부분이 혐오나 수치심 같은 감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법률 세계는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혐오와 수치심은 분노나 두려움과는 달리, 개인의 존중과 자유를 가로막는 제도적 토대로 이용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누스바움은 “지배하기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즐길 수 있는 능력”과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해,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사회관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캐시 오닐이 “수치심은 권력자가 느껴야 한다”라고 갈파한다. 그는 이 책에서 개인이 갖는 심층 감정인 수치심을 자극하여, 편협함과 당위로 몰아붙이는 마케팅 이른바, 수치심 비즈니스는 수치심의 체계가 끊임없이 변화해도 이를 노리는 사업 기회가 넘쳐난다. 러닝머신 구매, 코 성형수술, 광고 클릭, 가짜 명문대 학위 취득, 값비싼 다이어트 프로그램 가입,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투표 유도 등, 어떤 사업모형을 구상하든 먼저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대상을 찾아낸다. 오닐의 표현에 의하면 “수치심 산업 복합체”의 이해타산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것이 바로 수치심 머신이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수치심 머신을 움직이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3부 10장 체제로 이루어졌다. 1부는 수치심은 돈이 된다. 지은이 오닐은 비만이다. 수 없이 다이어트에 도전해보지만, 매번 실패한다. 자기 혐오감이 들 정도로, 나중에 주변의 눈을 의식하면서 수치감을. 바로 이런 감정이, 미끼가 되어 자기 스스로 사냥꾼에게 걸려들게 된다는 구조를 말하고 있다. 비만, 약물중독, 빈곤, 외모 등에서. 존엄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수치심 산업에 맞서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혐오는 어디서 시작하고 확산하는가를, 쫓아가 본다. 사이버 불링(공유, 좋아요. 그리고 돌 던지기), 차별, 인셀(피해의식과 폭력성의 발현)을 다루고 있다.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다산초당, 2017)에서 혐오는 개인을 넘어 집단의식으로까지 번지기에 위험한 것이라고, 혐오 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에 대한 맹신이다. 이를 멈춰 세우는 것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순수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데 있다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라고, 위에서 마사 누스마움이 주장한 바와 같은 맥락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오닐의 말한 자존감을 높이는 것 등이다.
3부에서 정의감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공공에티켓(팬데믹과 마스크), 하지 않을 자유, 공공장소에 흡연에 관한 시대의 흐름, 백신 개발에 이용된 사회적 약자를 통해 들여다본다. 권력과 저항(촛불집회, 미투, 부당해고), 나이지리아의 촛불집회와 미투 운동이 드러낸 민낯, 구글의 이중성 등을
탈 비만과 외모지상주의, 학력주의 사회에서 “수치심”은 좋은 미끼다.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한편으로 자기혐오를 조장하면, 미끼를 물 확률이 커진다. 정치든, 경제든,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인 동력이다. 인간의 감정이 그것도 심층 감정을 건드려, 멘토를 롤모델을 따라가게 하는 의도가 한없이 불량스럽다. 자본주의니까. 뭐 그렇다 치자.
이 책에서는 많은 사례를 들고 있다. 비만을 자신의 매력으로 바꿔버린 여성 가수의 이야기, 크릭이라는 값싼 마약에 중독돼 자신을 실패함 삶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쓰레기라고 여기는 여성이 수치심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자존감을 회복한 이야기, 다 성공담이기에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 됐지만, 한편으로는 낙인, 한 번 성범죄자는 재범 가능성 평가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든 어쩌든 영원한 성범죄자라는 프레임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몇 년씩 더한 사람들은 어떻게.
아직도 이들처럼 헤어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점을 거꾸로 지은이는 보여주고 있다. 적나라하게, 자신도 비만이라는 수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제대로 통제하거나 즐기는 나는 나대로,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다 매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옮겨가지는 못한 듯,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가난한 너희들의 책임, 자신을 절제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부적절한 자기관리, 비만이 만일 체질이라면 타고난 유전자의 문제라면, 어쩔 건데. 약물을 끊지 못한 것도 개인 탓, 그렇다면 크릭소지죄나 코카인 소지죄나 같은 형량 적어도 비슷한 형량이어야 할 텐데, 법 또한 그렇지 못하다. 유전무죄가 여전히 통용된다. 코카인의 500그램소지죄와 크릭 5그램 소지죄 어느 쪽이 더 형량이 무거워야 할까?.
서열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특권이 있다고, 돈과 권력이라는 무기가…. 이들이 누리는 행운을 수치심머신은 간단히 설명한다. 훌륭한 가치관과 인내심을 발휘했으니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능력주의 신화가 이들의 성공을 떠받든다. 한편, 다른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든 그저 열등하기 때문이든 처참하게 실패한다. 승자는 잘했고, 패자는 잘못했다는 이분법을 통해 우리는 수치심을 조장하는 뿌리 깊은 불평등을 참는다.
적어도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우선은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핀다. 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 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로 모욕당하는 대상에게 현실을 바꿀 힘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존엄하게 대우하자고 요구하는 건 무리인가?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