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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응 열사 평전 -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전해주 지음, 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 외 기획 / 틈새의시간 / 2023년 4월
평점 :
역사에 묻힌 4.1아우내만세운동 주역
열사 김구응,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렇게 역사에 무지한 건가, 1919.3.1.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 이후로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은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이 됐다. 이 역사의 변곡점을 시작으로 수개월에 걸쳐 5만여 명이 투옥되고, 7,645명의 희생자와 4만6천 명의 부상자가 나온 엄청난 사건, 독립 만세 운동,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목천아우내에서 음력 3.1, 즉, 4.1에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목천아우내만세사건이라고 한다. 이 일로 유관순을 일경에게 끌려갔고, 결국은 주검이 됐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정부는 유관순 열사에게 1등 훈장을 추서하면서 대통령은 윤관순 열사가 3.1운동의 표상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등급 훈장을 추서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청년학생 모두가 유관순이었고, 모든 이들이 김구응이었다
이 책의 지은이 전해주 신부(성공회)는 100년 전 일어났던 독립 만세 운동, 당대에는 어느 지역에 누구누구가 참여했고, 그 지도자 혹은 지도부는 누구였다는 것쯤은 짐작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제는 기록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라서,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은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구금됐다 풀려나 고향으로 내려와 오빠를 가르쳤던 진명학교(성공회에 운영) 교사 김구응선생에게 알렸다
음력 3.1 양력으로 4.1 아우내장터에서 터진 만세 운동의 물결이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한 달 후에 병천이라는 시골 땅에서. 게다가 윤관순 열사라는 프레임으로 3.1운동. 함께했던 수십 명의 이름은 아쉽게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칫 윤관순 열사로 모든 게 귀결돼버린 것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바라는 어떤 영웅상에 끼워 맞추기가 되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이른바, 잔 다르크처럼. 유관순 열사에게도 함께 했던 당대의 열사들에게도 누를 끼치게 됨을 물론 미래 세대에게도 왜곡된 역사로 이어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은이는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지은이 전해주 신부는 4.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선생과 그의 어머니가 현장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스러지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옥에 갇혔던 사건과 관련자들이 그 후로 잊힌 사람이 돼버렸다고 충남 병천 성공회에서 사제로 지내면서 이런 사실을 알게되고, 진입로마저 없어 논두렁 밭두렁을 넘어 찾아간 김구응 열사의 묘지, 그의 눈에 비친 묘지는 너무도 초라했다. 그는 김구응을 찾아 하나둘 퍼즐 맞추듯 선생의 후손을 찾고 또 당시 사건 관련 기록물 등의 자료를 모아, 펴낸 연구논문이 인연이 돼 평전을 썼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김구웅을 기억해야
이 평전은 4.1 그날 스러졌던 김구응과 그의 어머니, 당일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거슬러 올라 김구응을 찾는다. 모두 4장 체제이며, 1장에서는 김구응은 누구였나, 조부가 근동에서는 내놓은 부자였던 덕분인지 21세 때 청신의숙을 세워 주민 교육에 나섰다. 30세 무렵까지 면 서기관 일을 하다, 때려치우고 학교 교사가 됐다가 성공회가 운영하는 진명학교로 옮겨온 후, 1년 후 4.1 아우내 만세 사건이 일어난다. 2장에서는 성공회와 진명학교, 왜 대도시가 아닌 시골 면 단위에 학교가 세워진 것은 성공회의 전도 루트와 관련이 깊다. 3장 그날의 함성, 4.1만세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성공회의 3.1운동에 대한 견해와 분위기를 전하며 아우내 만세 운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글을 맺는다.
개화기 중국을 통해 들어 온 감리교 역시 아우내에 학교를 세웠다가, 문을 닫지만, 당시 천안, 진천, 목천은 동서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으로 사통팔달이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포교, 전도의 길로 이용된 듯하며, 아우내 유지들의 개방적이며 진보적 성향이었던 점 등이 아우내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지은이는 분석했다.
아무튼 성공회교회와 아우내 경제계, 그리고 신학문의 세례를 받은 이들과 농촌 계몽운동 등의 영향으로 1919년 음력 3.1일인 4.1만세 운동이 터진 것이고, 이때, 인근 마을의 연락 등은 유관순이 맡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구응선생은 이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지도자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 책을 펴낸 배경에는 100여 년 당시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던 3.1만세운동이 단지 몇 사람의 유명인(지금 그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거나 추승작업이 진행되는 이들)에 의한 게 아님을, 이름이 세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민중의 참여로 진행됐음을, 잊지 말라고, 단지 당시의 젊은이의 대명사가 “유관순”이었음을…. 개인이 아닌 청년 학생이 모두 유관순이었음을, 아울러 지방과 지역에서 활동했던 많은 이들이 김구옹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이 책은, 한두 사람의 영웅 만들기는 당대의 역사가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수많은 “김구응”선생이 존재했고, 이들이 지방과 지역에 남긴 것은 의로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한 몸을 던져 싸웠던 이들을 찾아내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하는 게 우선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덧붙여, 19세기말 한반도에서 왕성하게 포교,전도활동을 했던 교회의 역사 등도 곁들어 알 수있는 정보가 담겨져 있다. 3.1운동과 종교와의 관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