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미궁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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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같은 미로 게임

 

72시간 안에 누군가의 뇌 속 무의식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그 안에 들어갔던 다이버는 의식불명,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재벌의 손자와 애인, 기상학전공의 안개를 연구하는 교수 부부, 방과 후 교사, 배달라이더, 그리고 중학생, 무의식 속으로 다이빙하는 다이버 등 전혀 연결점이 없는 이들이 누군가의 무의식 속 세계로 떨어지고, 늑대인간에게 쫓기고, 스테이지 단계별로 무대 설정이 달라지는 안개 미궁이라는 게임이 시작되는데….

 

다이버란 무의식 전이, 환자의 머릿속으로, 정확히는 그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것을 다이빙이라 한다. 환자와 다이버의 뇌파를 연결하는 것인데, 각기 다른 두 개의 뇌가 한순간 파동이 겹칠 때가 있는 그때 환자의 무의식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뇌 속으로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된다.

 

딥게임, 마치 게임의 무대,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실제 경험이다. 무의식 속에서 사냥을 당하면 죽는다. 영화 모바일 게임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 등장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닮은 구석이 있다. 영화 브루스 윌리스의 주연 ‘루퍼’와 ‘12 몽키스’ 특히 <써로게이트>(2009년)가 그렇다. 영화는 아들을 잃은 FBI 수사관과 그의 아내는 써로게이트를 통해서만 생활을 하는데, 써로게이트는 인공의체, 장애인의 뇌파로 의체를 조종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실제의 인간은 집에 틀어박혀서 써로게이트만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써로게이트의 내부 칩이 파괴되었고, 접속 중이던 사용자 두 명 모두 뇌가 녹아내려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소설<사건 분석관 K: 미래범죄 수사일지> (EBS, 2022), 무대와 등장인물의 캐릭터 등이 꽤 흥미롭다. 양자 두뇌, 마인드 업로딩(의식 전이), 우주 엘리베이터, 더미블루(의식 전이나 양자 두뇌, 더미를 사용해 영생하는 사람들이 겪는 우울증) MTD(더미블루 치료시설)이란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상상이 소재다.

 

이 소설 역시, 게임 속 설정이다. 여기에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의식 전이, 무의식에 들어갈 수 있는 다이버가 된, 등장인물이자 또 다른 주인공, 그와 함께 수사했던 주인공, 형사를 때려치우고 실종된 사람을 찾아주는 민간조사원이 되는데, 실종된 청년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쓸만한 조수를 데리고 시작한 사람 찾기는 고구마 줄기를 따라가듯.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게 되는데….

 

게임 속에 들어오게 된 등장인물, 스테이지 난이도가 높아질 때마다, 사람들이 죽는다. 살아서 지옥을 맞보게 되고, 어떤 이유에서 이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인지, 이들을 모두 살아나갈 수 있을까, 누구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온 것일까, 누가 이들을 무의식 속에 가둔 것일까, 이들은 그들이 갇힌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현실세계인지, 상상의 세계인지,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는 다이버... 과연, 어디까지 기억해낼지,

 

흥미진진하다. 전건우의 장편소설, 안개 같은 미로 게임,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힌 이들 죽느냐 사느냐는 탈출게임. 안개 미궁, 범인은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 범인의 뒤에 있다. 게임 안내를 하는 여성의 목소리.

 

역시, 전건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의식 전이라는 소재로 등장한 영화와 소설을 무의식 세계로 들어간다는 설정…. 한편의 SF영화처럼, 스릴러. 여러 장르가 겹치는 그래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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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라틴어 산책 - 뿌리가 되는 언어 공부
한동일 지음 / 언어평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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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의 이해

 

지은이 한동일의 라틴어 강의는 사뭇 오래전에 귀동냥으로 서울의 사립대학에서 인기리에 진행됐다고 들었다. 이제 그가 가르쳤던 라틴어 교재가 정리돼, 이 책으로 나왔다. 라틴어는 고대 로마와 그 주변 라티움에 살던에 이들의 언어다. 상식으로 로마가 유럽세계를 지배하던 때, 공용어로 사용하였고, 인도유럽계어족이라는 정도로만 인식했다.

 

이 책을 통해 인도유럽어란 기원전 5000년전에서 2000년 사이에 우랄 폰토스(흑해)에서 북인도, 근동, 유럽 전 지역에 전파된 언어군을 가리키는데, 18~19세기 역사 비교언어학에서도 단일한 공통조어에서 파생됐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문화권, 중국을 중심으로 서로는 베트남(안남)에서 동(북)쪽으로는 한국, 일본으로까지, 한자를 빌려다 쓴 가차문자(이두) 등... 아울러 일본의 메이지시대 구미와의 접촉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글자들 나라과 집가는 따로따로 쓰였으나, 국(國)+가(家)=국가로 조어(만들어진 글자), 즉, 이전 시대에는 국가란이 없었다는 말이다.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자연스레 지배적인 언어가 됐고, 그 힘이 미치는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액센트와 방언들이 녹아들어 만들어진 라틴어, 이는 산스크리트어, 히타이트어, 그리스어, 켈트어를 쓰던 곳에서 라틴어를 쓰는 게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서 이지 않을까 싶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신 라틴어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포르투칼어,스페인어, 루마니어... 라틴어를 배우면 현대 유럽어 접근에 용이하다는 점 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라틴어와 한국어 차이를 분명히 해두는 데서 출발, 라틴어문법과 연습문제 등 19강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어, 개인차를 있지만, 우선 6개월 정도... 알든 모르든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어학교재라는 성격 때문에 우선 흥미가 있어야... 하지만, 뿌리가 되는 언어공부라는 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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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도시설계 매뉴얼 : 공공공간
Prague Institute of Planning and Development 지음, 강 / 서울연구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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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도시설계 매뉴얼

 

프라하라는 유서 깊은 도시는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 도시계획이 다루는 공간 규모는 수백 킬로미터 이상, 수십 센티미터 이하까지 있다. 시민의 공유물인 공공공간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의 질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기에 공공의 이름과 공공복리라는 목적으로 도시계획을 통해서 관리된다.

 

공공공간이 부족하거나 질이 낮다면, 즉 넘치는 쓰레기, 차량 정체, 악취, 범죄 등이 있다면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공공공간은 국유든 공유든 공공이 소유한 토지와 건물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공간적 차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별 건축물의 외관, 형태, 크기, 때로는 지붕까지도 공공공간 측면에서 하나의 요소로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공공공간은 우리가 순간순간 경험하는 공간으로 직접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며,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일차적 공간이다. 외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공공공간의 양과 질이 좋기 때문이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 촉, 느낌이다. 보는 순간, 걷는 순간, 얼굴에 닿는 바람, 공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올 때다. 걷기 좋은 거리, 사람들과 대화하기 좋은 공간, 깨끗하고, 공공공간이 전체적으로 연결되는 듯하여, 툭 터진 개방감…. 아마도 이런 도시를 우리는 맘에 들어 한다.

 

공공공간이 추구해야 하는 질적 목표 수준은?,

 

건축은 공공공간의 질적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정착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듯, 앙이 없는 찐빵처럼, 진짜 살펴봐야 할 내용이 빠진 그저 형식적으로 흘러가기 쉽다. 공공공간의 배치와 디자인이 건축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공공공간에 관한 생각은 늘 뒷전이다. 부실하고 부적절한 건축으로 수준 낮은 공공공간이 만들어지면 이를 고치는 건 어렵다. 이 평범한 진리가 공공공간 도시설계 매뉴얼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공간이란 거리(가로), 넓은 공간(광장), 수변공간 그리고 공원이다. 즉, 대중이 모이는 그런 곳이다. 여기에 새롭게 더해지는 특수 공공공간, 공공건물의 공공공간, 주택 단지의 공공공간, 교통시설, 나 홀로 건물의 주변 등….

 

가로, 길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교통 정온화한 조용한 가로, 중요한 가로, 함께 쓰는 공간, 차량 통행량이 많은 가로, 또 공공 공간의 부분 또한 생각해둬야 한다. 길거리의 주차 장화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자전거 기반 시설로 바꾸는 건, 전차와 버스 정류장, 교차로와 건널목, 놀이 공간, 빗물 관리 등 모든 것에 접근할 때,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시민인가, 자본가인가, 이해충돌을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들의 조화는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형성된 도시는 수백 년, 수천 년….

 

도시의 주인은 누구, 도시의 목표는 살기 좋은 곳, 기능적, 심미적, 안정적 공간과 장소

 

도시, 그 목표는 살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 기능적, 심미적 그리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프라하 공공공간 목표 수준은 “보행자를 위한 도시로 보전하기, 도시의 특성과 기존의 특성 보호하기, 과도한 상업화와 관광지화 억제하기, 도시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이는 프라하만의 것이 아닌 보편적인 공공공간의 목표 수준이 되어야 한다. 보행자,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고, 상업 시설과 도시의 관광지화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누구에게 내보여주는 게 된다. 적어도 그곳 도시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공간이면서 장소다.

 

최고 수준의 공공공간은 생활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공공공간은 사람을 마음에 두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자동차의 통행 금지, 혹은 통과 속도규제, 거기에 자기중심적인 자동차보다는 철도교통을 중심으로 통합된 대중교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GTX 건설 논의로 시끌벅적한 수도권의 모습과는 달리 인구소멸지역이 늘어가는 지방, 사람이나 차량통행이 뜸해지는 도로…. 전체적인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또, 대중교통의 사양산업화는 자동차 보급과 함께, 자기중심적 자동차운행, 나만 편하다는 생각, 이로 인한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로 바뀐다.

바뀌는 환경 가운데 사람 중심, 주민들의 질 높은 삶의 보장이 우선되고, 공공 공간의 설계 대원칙은 사람 우선….

 

도시설계의 매뉴얼, 어찌 보면 도시가 살아서 움직인다. 그곳 사람들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외관의 모양새보다는 주변 자연경관과의 조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야기가 이 정도면 한국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돌이켜 생각해보지 않을까,

 

이 매뉴얼은 건축이나 다자인 공공공간의 설계, 야간조명은 어떻게, 대형광고판의 또 어떻게…. 이렇게 도시를 하나씩 확대경을 들이대어 자세히 살피고, 톺아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밝으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마구 세워둔 조명등. 이거 하나로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는 만큼,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도시를 보는 눈이 단순히 거리, 가로등, 교통신호체계, 달리는 자동차, 기차... 도시의 그랜드 디자인의 모든 것은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모두 연결됐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인 시내버스 노선도 지역경제의 미치는 영향과도... 어느 하나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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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다는 것 - 삶에 사람에 지친 당신에게 전하는 진솔한 위로, 5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
투에고 지음 / 로즈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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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뎌지는 일

 

지은이 투에고, 에고를 향한다는 뜻인가, 자아를 찾아서란 의미일까, 이 수필집의 색깔이랄까, 결이랄까, 아무튼 “산다는 건 무뎌지는 일”이란 사유의 끝인가?

책 속에 투에고라는 필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상처받은 자아, 치유하는 자아,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중주라 하여 “투에고”라 했다고, 상처받기도 스스로 치유하기도 하는 완전체를 향해 나아가는 의미로 읽힌다.

 

책은 4부로 나뉘었고 133개의 문장이 실려있다. 1부는 잘살고 있는 건지를 되묻는다는 제목 아래 35개.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옭아매는 것은 아닌지를 비롯하여 딱 거기까지. 사족이 되면, 효과는 반감, 이미지 또한 구겨지기도…. 무심코 내뱉는 말의 무게는 이란 글이 눈에 띈다. 2부 누군가의 꿈, 희망 고문이란다. 한계에 직면, 주연과 조연 등, 3부 무뎌진다는 것, 어른아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독기, 악몽 등, 4부 내가 나를 기억해라는 제목 아래, 기억의 파일, 순리에 맡겨라, 내가 나를 기억해 등이 눈에 띄는 글이다.

좋은 글이 넘쳐난다.

 

“본연의 모습이 어떨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갈고 닦으면 정진시킬 수 있다는 것.”(21쪽)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불완전 체로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계속 변해가는 게 아닐까, 마음은 충분히 갈고 닦으면 정진시킬 수 있을까? 마치 불가의 화두처럼 눈에 와 닿는 이 문구.

 

자발적 장애

 

많은 사람은 자발적 장애를 앓고 있다. 들을 수 있음에도 두 귀를 막고

볼 수 있음에도 두 눈을 감고, 말할 수 있음에도 입을 닫는다.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과 외면이다(120쪽).

 

촌철살인이다. 현실 세계, 우리 시대와 우리 사회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마치 시집살이하는 시집살이 3년(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처럼)동안 참고 또 참고,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말하고 싶어도 입을 닫고. 이렇게 길든 여성은 이 고통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되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처했던 그때 그대로를 며느리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 하는 것처럼. 아니다. 그게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얻은 지혜라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일이 아니면 오지랖 넓게 끼어들지 말라, 결론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우리는 모두 자발적 장애를 겪지 않았을까, 물론 경험하지 못했다고, 나는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원체 세상은 넓으니까,

 

자발적 장애, 나는 지금도 자발적 장애를 겪는 중이니. 다들 나처럼 이런 장애가 있을까? 라고 그저 그저 생각해 볼 뿐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과 외면이다. 아직 무관심과 외면은 제대로 못 해봤다. 일부러 무관심한 척하려 하지만, 외면해보려 하지만 영 안 된다. 이 역시 장애인가,

상처받는 자아가 있다면 그 대척에는 치유하는 자아가 있어 사람은 살 수 있는 거다.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여전히 이 틀은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강하게….

 

인생은 마라톤일까?

 

왜 뛰고 있는 걸까?

도대체 종착역은 어디인가?

지금 달리고 있는 난 누구인가? (182쪽)

 

목표가 없는 달리기, 달리다 보면 내가 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달리고 있는 사람과 나는 분리된 것인가, 정작 뛰고 있으면서 왜 뛰고 있는 걸까…. 남들이 뛰니까, 그냥 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뛰다 보니 왜 뛰고 있는지를 잃어버린 사람도, 내가 지금 왜 달리고 있지, 내가 내가 아닌 듯, 마치 다른 누가 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를 되돌아볼 때, 아마도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나는 지금 어디서 서 있는가, 이게 제대로 된 삶인가, 도대체 얼마나 더 뛰어야 하나.

자신의 맞는 방법으로 속도로 방향으로 뛰어야 하지 않을까.

 

133개의 사유, 133개의 고민이라는 건가. 108번뇌보다 더 많기는 많다. 하지만 내가 나를 만족하지 못할 때, 더 분발하거나, 스스로 위로하면서 멈추거나,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며 억울해하거나….

바쁜 일상이지만, 여유를 가지고 이 책을 펼쳐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뭔가 제대로 안 된다는 느낌이 들 때, 그저 아무 곳이나 펼쳐보고 아무 생각 없이 읽어보면, 뭔가 집히는 게 있을 듯하다. 아마 이 책은 이렇게 읽어야 제맛이 날 듯하다.

삶에 사람에 지친 당신에게 전하는 진솔한 위로... 정작 내가 무너지고야 나서 깨달았다는 말...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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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하나가 되는 길 - 알베르투스가 알려주는 완전한 인간의 삶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지음, 안소근 옮김 / 오엘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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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전한 인간이 되는 삶

 

이런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가능할까? 우리 영혼의 심층 욕구, 가장 순수한 열망은 가능한 한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작은 책자에 그 길, 즉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주요한 원리와 방법들을 단순, 분명하게 제시, 가장 높은 영적 삶으로 이끌어주고 있다고 옮긴이 안소근은 평한다. 과문한 탓인지 뭔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런 것들 13세기 당대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오로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었나. 신의 세계, 신의 시대였으니, 모든 가치 중심이 그곳에 놓여있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은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해서 논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보다는 그 이전 더 전통적인 신학의 색채가 두드러진다고. 옮긴 이는 보는데, 하느님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것을 초월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물을 통해서 또는 그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보다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남으로써 하느님과 결합하는 것. 여기에 단순히 절대자의 도그마?, 아무튼, 지은이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위대한 알베르투스)의 중요한 공헌, 뛰어난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길러냈다는 점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고….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무조건 신을 믿고 따르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세에 살면서도 충분히 천국에서의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지은이 알베르투스의 생각이 아닐는지, 이를 이어받은 아퀴나스,

 

현대의 사고방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800여 년 전에 쓰인 것이기에, 하지만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의 핵심은 현세에 살면서도 이미 모든 제약을 떨쳐버리듯, 자유롭게 하느님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이 세상의 좋은 것들 포기한 우울한 삶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복 된 이들과 같은 삶이고, 인간이 가장 완전하게 인간이 되는 삶이다.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길과 그와 하나 되는 길

 

이 책은 이 두 개의 길에 대해서 말한다. 우선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게 맡긴다. 현세에서 완전함에 이르는 길,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이다. 신을 향해 오르는 일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노자의 생각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 다음 그와 하나 되는 길은 우리와 하느님의 의지가 하나 된다는 것, 모든 판단은 양심의 소리에 따른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버려라,

 

신을 향해 오르는 길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

 

우리가 안식을 누리지 못함은 방해물이 많아,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안식에 이를 수 없다. 정신이 산만하고 쉽게 다른 것에 사로잡힌다. 정신은 기억의 도움을 받아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환상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다. 지성으로도 들어가지 못한다. 지성이 정념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적인 기쁨과 영적인 즐거움에 대한 갈망도 영혼을 내면으로 이끌지 못한다. 감각적이고 덧없는 것들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있어서, 창조주의 모상인 자신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분은 감각이나 상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감각과 이해를 초월한다.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지만, 그는 우리 갈망의 대상이다. 형태가 없지만, 우리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을 들려야 마땅한 분이다.

이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영혼의 어둠으로 들어가 더욱 깊이 자신의 안을 파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버리면서, 매일 다른 이들의 눈에 더 하찮게 보이도록 애써야 한다.

 

글의 주제 하나하나가 깊이가 있다고 해야 하나, 하느님이 느낄 수 없는 존재이고, 의식적으로 인식하려 해서 인식되는 존재도 아니다. 신앙이란 도대체 뭘까, 뭔가를 믿는다. 요즘 절실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자신을 낮추고 버리면서 매일 다른 이들의 눈에 더 하찮게 보이도록 애써야 한다.” 누구 위에 서려고 하지 말고, 이들을 사랑의 따뜻한 눈으로 보면, 어떻게 보일까?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는 방해물들, 인식을 방해한다..

곱씹어 볼 말들이 많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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