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사냥꾼
최이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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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든 사냥꾼

 

지은이 최이도, 영화 <브이아이피> 나오는 형사팀장 채이도와 “이도”라는 이름이 같아서일까, 이도는 북에서 온 VIP(이종석 분)을 살인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하는데, 물론 이 영화와 소설<매스를 든 사냥꾼>은 설정은 물론 내용도 다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피의 냄새는 비슷한 듯하다.

 

메스를 든 사냥꾼, 젊은 여성법의학자 서세현, 그녀의 손은 신의 손이랄까, 인체구조를 꿰뚫고 있는 듯하다. 의대 1년 해부학 실습 시간에 교수도 놀랄 만큼의 신속하고 정확하게…. 천재적이라고, 또 한 명의 주인공, 정정현 경위, 사법연수원 동기로 짧은 시간에 서로에게 끌려 결혼한 판사 부부의 아들로 아버지가 바라던 법관의 길 대신 몰래 경찰대로 진학할 만큼 강단 있는, 정의감과 원칙에 충실한 사건의 무대 용천경찰서 강력팀 팀장이다.

 

이 둘은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과거가 있다. 이 과거는 이들에게는 트라우마이며, 각자 의사와 경찰을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서세현은 누군가를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려고, 찾아 나서기 위해 법의학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정정현 또한 정의와 원칙에 힘을 주고 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시체 부검을 마다하지 않은 서세현. 과연, 어떤 과거였기에….

 

 

 

 

어느 날 용천대학 근처에 버려진 특이한 시체, 사냥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탄

 

국과수로 부검 의뢰된 특이한 시체 누군가가 해부한 후 실로 꿰매놓았다. 부검을 맡은 서세현은 직감한다. 그가 지금까지 기다렸던 사냥감이 출현했음을. 이 사건을 담당 정정현 형사는 친절함도 부담스럽다. 서세현은 사냥을 위해 정정현에게 수사에 협조하는 듯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깊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미리 사냥감과 연결된 일련의 미제 사건 정보를 찾도록 유도하면서, 그가 아는 정도를 흘려주는데, 두뇌 회전이 빠른 정 형사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정 형사는 세현이 쳐놓은 덫에 걸릴 것인가, 아니면 이를 놓치지 않을 것인가. 두 번째의 특이한 시체는 세현이 발견하는데, 첫 번째 사건과 동일범?, 기자들은 사건의 범인을 “재단사”라 부르는데, 소설의 반전이랄까, 범인 손에 잡히려고 일부러 덫을 놓은 건 세현?, 일부러 미디어의 관심을 끌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범인에게 날 잡아봐라라고 도발한 걸까,

 

 

 

 

 

긴장감이라고 해야 하나, 법의학자, 신출내기지만 뛰어난 두뇌와 순발력을 가진 형사가 범인을 찾아, 세현의 심리적 갈등과 연결되는 과거의 기억들, 얼굴 모습도 신분도. 바꾼 천재적 법의학자, 영화, 소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기시감이랄까, 예전에 읽었던 외국 추리소설 시리즈처럼, 낯설지 않다. 개펄 어딘가에 묻어버린 엄마의 시체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2002 이종혁 감독, 지진희 출연의 <H> 늘, 연쇄살인범 조승우, 모방범죄의 용의자를 쫓는데, 조승우는 지진희에게 최면을 건다. “심연…….” 결국 결말, 지진희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들 수치감 등이 폭발, 최면이 발동하는 시간이 되자 그는 엄마를 죽이는데.

 

 

주인공 서세현 역시 다분히 사이코패스성향이 있다고, 작가는 암시해준다. 소설 속에서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가 누군가를 죽이고 그는 시신을 해부한다. 어린 아이, 사이코패스이기 보다는 그 안에 잠들어있던 천재적인 뭔가를 깨우는 스위치가 된 게 아닌가,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보인다는 그 말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면...아마도 다소 사이코패스 인척 하는게 유리했던 게 아니었을까, "아빠, 안녕"이란 말을 남기며, 세현이란 상징이 주는 혼란함. 왜 재단사는 사람을 죽일까?...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메스를 든 사냥꾼2를 기대해본다. 아마 시리즈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현과 정현 콤비의 활약을. 작가는 말미에 이 소설은 친절과 망설임, 포용과 상처, 긍정과 외로움, 배로와 포기, 실수와 용서 이 모든 역설은 사랑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사랑이란 열쇳말로 풀어보고싶었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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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위로
은현희 지음 / 사람in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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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위로

 

지은이 은현희는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 전업 작가의 길을 걷지 않고, 출판계로 이른바 기획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이 책<문학이란 위로> 역시 꽤 독특하다. 물론 기획과 편집 그리고 작가의 안목,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이기도 하겠지만, 읽는 사람에게 뭘 전할 것인가, 공식적인 글쓰기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책을 펼쳤다.”라는 문장 속에 모든 게 담겨있다. 당신의 삶이 흔들릴 때 책을 펼치나요?, 이제부터는 한번 펼쳐보세요. 그 안에는 지금 당신이 겪는 고통을 함께해줄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했을까, 좌절하기도 극복하기도 어느 경우이든 당신에게 주는 메시지는 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삶이 버겁거나 힘들고 흔들릴 때, 책을 펼쳐라. 너만 힘든 게 아니야!

 

지은이는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문학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얻으며 깊은 사색에 빠졌던 자기 경험을 작품 소개 앞에 실어, 자연스레 작품 내용으로 옮아간다. 여기에서 다룬 21권의 세계문학 고전은 제목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것들이다. 읽었거나, 요약집을 봤거나 누군가에게서 들었거나, 아무튼 처음 들어본 소설 제목은 아닐 듯하다. 영화로 이어진 작품들도 적지 않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비드 핀쳐 감독이 2008년에 만든 로맨틱 판타지, 물론 소설의 틀거리를 빌려와 각색을, 주인공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을…. 꽤 인상적인 영화였다. 또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인적인 비극을 위하여, 1929년 미국은 물론 세계를 휩쓴 “대공황”시대를 살았던 개츠비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여성 작가 사강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꽤 흥미로운 그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베 코보<모래의 여자>역시 흥미롭다. 우리 사회 자체가 모래 구덩이다. 거기에 빨려들어 헤어나려 하면 할수록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생각보다는 그 안의 환경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나와 내 주위의 모든 환경을 바꿔버린다면 세상을 달라지리라는 것, 이른바 발상의 전환이다. 남들은 지옥이라 하지만, 내가 천국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인간 자격을 박탈할 권리, 다자이 오사무의<인간 실격>지은이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세상의 중심은 “나” , 세계문학으로 배우는 인생수업

 

러시아의 양대 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전자가 현실적이었다면 후자는 철학적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역시 영화화될 정도로였으니….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고,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꽤 의미심장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나의 고통이 가치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일이다”라고

 

여성 작가 버니지아 울프<자기만의 방> 등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다양성, 공감, 이성, 그리고 자유, 불륜과 동성애, 도박과 마약이 등장하고 심리적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작가의 이야기가 소설에 녹아 들어있다.

이 책<문학이란 위로>은 책장 속에 꽂아둔 채 먼지가 가득 쌓인 세계문학 고전을 다시 빼 들게 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인가, 삶이 힘들 때, 곁에서 조언해줄 귀중한 책들일까.

 

 

 

가장 기억에 남은 글귀, 도스토옙스키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나의 고통이 가치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일이다”란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을 토대로 한다. 힘든 나만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바꿔버리고, 극복하거나 밀리기도 함몰되기도... 우리는 문학이라는 위로의 무게를 새롭게 느낀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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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오름, 자연을 걷다
김은미 외 지음, 송유진 그림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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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오름, 자연을 걷다

 

이 책은 재) 이니스프리모음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한 연구결과다. 삼다도, 바람, 여자, 말이 많은 섬, 제주도, 이곳의 상징은 해발 1947.269(1947.3.1.기념식이 제주4.3사건의 시발점 이후 1953년까지), 약 1950미터의 한라산이다. 1947, 1950이란 숫자가 한라산의 운명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몰라도 1950년 전후로 한반도 남단의 최고 비극의 무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지은이들은(김은미, 송관필, 안웅산은 제주의 야생동물을 한라산의 생태를 연구하며, 조미영은 여행작가 칼럼니스트다) 키 큰 한라산이 제주에서 제일 높지만, 나이로는 한참 형뻘인 “어승생오름”이다. 이른바 우리가 아는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곳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톺아본다. 어승생오름이라는 산이 언제 생겼는지, 그 이름의 유래에 얽힌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섬에서 섬을 이루는 땅과 오름으로 그리고 오름에 사는 생명, 식물과 동물, 여기에 골짜기 골짜기마다 담긴 사연들, 아흔아홉 골짜기…. 이곳에는 야생이 살아있다. 180만 년 전에 태어난 오름과 3,800년 전에 만들어진 산이 어깨동무하면서 그렇게 어울어져 자연을 이루는 곳, 제주, 하와이처럼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섬이지만 결이 다르다.

 

생태계의 보고, 제주 톺아보기

 

이야기를 따라 제주에 흠뻑 빠져들 때면 내가 아는 제주는 얄팍한 관광상품 소개에 실린 어설픈 종류의 이야기처럼 여겨질 정도니까 말이다. 한국에 소개된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한국상영 때의 제목은 “원령공주”) 는 울창한 산림 세계를 배경으로 생사를 관장하는 시시가미(사슴신)…. 인간의 욕망이 수호신을 죽이며, 산은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시시가미를 죽이고 목을 베어가는데, 머리를 찾아 헤메는 시시가미는 산과 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버리는데... 이 책은 마치 모노노케 히메의 영화 속에 펼쳐지는 대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름, 어승생, 이 곳에서 길렀던 말이 조선의 국왕이 타는 말이 되었다는 전해지는 이야기와 몽골의 고고어학자 하르노트가 밝힌 어승생의 어원 “어스 새이”는 물과 관련된다. 어스는 물이고, 새이는 좋다는 뜻이어서 물이 좋은 곳이란 말이다. 실제 이곳은 제주민의 젖줄처럼 물을 공급하고 있단다.

 

생물, 동물도감의 무미건조함과 결이 다른 자연이야기 속에 정보를 담아낸 문화서

 

어승생오름에서 자라나는 식물과 동물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연구보고서라는 성격치고는 글이 부드럽다. 식물도감처럼 서식지, 길이, 특성 개화 시기를 무미건조한 서술이 아니다. 물론 동물도감 또한 이런 식이지만, 이런 도감류와는 결이 다른 매끄러운 흐름 속에도 빠뜨림 없이 도감 수준의 정보를 담아낸 문화서다. 조금은 과학적인 수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오름에 얽힌 슬픈 역사, 일제강점기 진지 동굴과 토치카, 1950년 전후로 펼쳐진 제주 4.3사건, 미국이 얼마나 깊숙이 한반도 상황에 개입했는지를 따져 묻는 목소리는 7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진행형으로 제주 대자연 속에 메아리친다..

 

이 책 속의 제주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있다(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 혹은 페르조나, 사람마다 몇 가지의 모습이 있듯이 제주 또한 그러하다). 제주는 어떻게 말하든 천혜의 자연, 한반도의 으뜸 생태계에서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이 책을 통해 관광 제주가 아닌 자연생태계의 보고, 생물 다양성이 살아있는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제주를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줄 듯하다. 덧붙여 여기에 실린 30여 점의 사진은 아름다운 볼거리를, 송유진의 그림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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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공부 - 논어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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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공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에 관한 인식“

책장을 펼치자 튀어나오는 세 낱말 충(忠), 서(恕)와 성(誠), 사람 공부는 이 세 가지 개념으로 풀이를. 우선 세상사를 생각나게 했다. 의사소통(意思疏通), 소통은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이란 뜻이다. 당연지사 아닌가 싶었는데, 이 소통이 사회적 “화두”로 급부상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명박 정권 시대쯤으로 기억한다. 물론 예전에 소통에 관한 셀 수 없는 고전 속 문장은 그다지 와 닿지 않았던 듯하다.

왜 소통이 문제일까?,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 도저히 그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진짜 막힌 사람이다. 소통이 되질 않아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아닌가, 기실 이런 현상의 진원(진짜 원인)은 사람 관계다. 왜 막힐까, 청자(듣는 사람)는 화자(말하는 사람) 이야기가 자기의 가치 기준으로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라서, 화자의 융통성과 청자의 융통성의 범위 즉 사정거리의 차이일 수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이유를 톺아보면 맨 밑바닥에 깔린 것이 청자와 화자의 관계다. 50센티미터 이내에서 말할 수 있는 관계인가, 즉 친밀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소통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은 고전(古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관계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늘 변함없이 보이지만 자기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내외적 환경에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받는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믿음‘ 혹은 ”신뢰“의 정도라고 받아들인다. 이 역시 사람과의 관계다. 관계란 결코 일방적일 수 없다. 일방적일 때 나오는 말이 위와 같은 표현들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발화 속에서 그런 말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 충성, 꾸준함,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알려면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논어“다.

지금껏 내 삶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다툼’과 ’버팀‘,’치열함‘의 연속에서 나를 찾기

지은이는 어떻게 하면 소통이 가능할까, 즉 관계, 그것이 믿음이든 신뢰든 적어도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배반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 관계,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관계를 고전 속에서 찾아보려는 시도가 바로 이 책<사람 공부>값 아닐까 싶다. 부제, 논어에서 찾는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 고전 연구가 조윤제 선생이 논어에 나오는 인간관계를 열쇳말로 정리한 것인데. 충(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다), 서(恕, 모든 인간관계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성(誠, 꾸준한 사람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이런 세 관점으로 논어를 읽는 방법도 꽤 흥미로울 듯하다. 고전은 지식의 보고(寶庫)란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지 싶다.

길을 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인간 공자가 마지막까지 탐구했던 삶의 주제 ”사람“

충(忠), 충간의담(忠肝義膽: 진실한 사람은 의롭게 살 준비가 되어 있다)

격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배움을 즐거워한다는 말, 재주로는 꾸준히 쌓은 실력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딱 와 닿는다. 요즘 이런 사람이 많기에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러지 않았을 터라는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마흔은 흔들리지 않는 어른의 시간이다(不惑). 또 기억해두자 뜻하지 않는 고난이 더 나은 나를 만든다. 하나님은 당신을 세상을 위해 크게 쓰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준다는 것은 놀랍게도 어느 목사의 설교 구절과도 같다. 이렇게도 통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증명할 기회이기도 하다.

옛것은 창의적인 배움을 얻는 기회다(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이(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말인데, 요즘 창의적인 것, 핫한 것을 찾는다. 이른바 크레이티브 한 것을.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알고,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말과 통하는 것인데, 조선의 정조 뜻풀이를 한번 보자. 정조가 온고이지신이란 무슨 말인가 하고 신하 이유경에게 묻자, 그는 옛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초학자는 이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새로운 것을 더 잘 알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창의적인 배움은 즐거움을 준다는 말, 고전을 읽으면서 아하. 하는 감탄 수준에서 그치면 그 안에 담긴 뜻을 찾고 내 것으로 만들어 자기 일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 보고의 바닷속에서 걷어 올린 진주는 바로 이 대목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이 궁리 저 궁리 온갖 궁리를 하다가 순간 뇌리를 스치는 번뜩이는 지혜, 이런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에서 적은 재주는 꾸준히 쌓은 실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요행과 재주로는 어느 정도를 이룰 수 있겠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실력이 없다면 사상누각, 모래성과 같이 외부의 힘으로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기에.

같은 책을 읽어도 어떤 사람은 행간의 뜻까지 이해하는데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문자대로 그 이상의 것을 얻지 못한다. 설령 얻었다 하더라도 이런 깊은 뜻이있었구나 하는 감탄으로 끝난다면, 말로 물고기를 잡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낚싯대라는 도구를 써야 물속 고기를 잡을 수 있듯이,

서(恕)와 성(誠) 또한, 이렇게 읽고 혼자서 새기며 제 것으로 만드는 일, 사람 공부란 그저 문장 속의 들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책 속에서 책 밖으로 뛰어나오는 그 무엇인가가 바로 배움이다. 사람 공부란 이렇게 쉽지 않다. 그러기에 여태껏 공부를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 배움, 세상살이, 관계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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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그 위대한 여정 - AI 시대 우리 일자리는 지속 가능한가, 202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백완기 지음 / 지베르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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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사회와 더불어 진화한다

 

지은이 백완기의 인생 역정만큼이 깊은 사유로 “일자리”를 열쇠 말로 동서고금의 보편적 인간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제아무리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인류 역사 발전 경로를 살펴보면, 일자리를 새롭게, 아니 없던 서비스가 생겨날 뿐,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일자리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기에,

 

그 근거로 지은이는 세 가지 점을 들고 있다. 첫째, 인류는 과학기술에서 특이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인류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점을 지나게 된다는 것, 이는 일자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즉, 일자리에 관한 인식에 터 잡은 고정관념이 바뀌리라는 것인데, 이는 곧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둘째, 지금까지 인류문명이 인간의 육체나 정신, 정서(감정) 노동 효율을 높이는 데 중심축을 두고 발전해 왔지만, 미래는 인간의 노동 자체를 기계가 근본적으로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셋째, 세계화의 심화 혹은 진전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묶일 것이라고 본다.

 

지은이의 전망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릴 수도 있다. 미래 전망은 단순히 틀 지워진 미래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유기적 관련성 속에서 미래가 결정되기에 그렇다.

 

19세 초, 거리를 달리는 지금부터 조잡하기 그지없는 자동차의 등장, 거리를 달리는 마차, 마력에 의존하는 운송수단이었고, 마차가 당대의 표준이라면 그러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마부들은 자동차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마치 지금 많은 관심 속에서 등장한 AI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 등장으로 마부는 없어졌지만, 자동차 정비소와 터미널 등 새로운 일자리가, 당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말이다. 이를 뭐라고 표현해야 적당할까?,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고, 이 욕망이 동인이 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지은이가 지적한 대로 일자리는 사회와 더불어 진화하고, 진화는 인간의 욕망이 원동력이니, 결국 일자리의 창출은 인간의 욕망으로 귀결이 아니겠는가,

 

일자리에 관한 인식의 전환

 

일자리와 어느 한 개인이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게 아니다. 필연적으로 사회적이라는 점이다. 위의 마차와 자동차처럼, 장강의 앞 물은 뒷물에 밀려나게 마련이듯이 또한 필연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태적 분석 시각에서 접근하면, 매일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사회를 대단히 정태적으로 보고 있다. 변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일자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 변화 과정은 사회적 요구가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인류 일자리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사회화로 규정하면서 시작점은 사회적 분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문명화가 되면서 일자리는 분화되고,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문명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작용한다는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이후 단계라 할까, 시계열적으로는 도시화와 국가건설로, 도구사용과 기계의 자동화, 그리고 과학기술 발달로 확산한 네트워크, 현재와 미래의 일자리….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일자리 인류학, 사회학처럼, 사회의 변화발전 양상과 인류의 과학기술, 이를 뒤따라가는 인간의 인식 태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세평할 때면 늘 나오는 이야기, 요즘 것들은…. 우리 젊은 적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지라는 말이 뭘 의미하겠는가, 그들의 과거 가치관 또는 가치체계와 요즘 젊은이들의 그것은 다르기에 그렇다. 과거의 눈으로 보면, 현대의 것들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외줄 타기이고, 현대인의 눈에는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일자리는 조금씩 지속해서 변화해 왔다

 

코로나 19 재난을 맞으면서 일자리는 늘었다. 없던 업종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중국집의 짜장면 배달통으로 상징되던 배달 라이더, 이는 중국집의 배달 주문하면 당연히 가져다주는 체계로 중국집 배달원이라는 일자리였다. 하지만, 면대면, 직접 접촉을 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배달업계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면서 많은 일자리를 마련했다. 누가 이런 변화를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배달 일감을 찾아주는 플랫폼이 생겨나고, 과거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확장까지도. 새로 생겨난 중계지 플랫폼 기업에는 ICT 기술을 바탕으로. 배달의 민족이든 요기요이든 이제 배달비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적어도 코로나 이전에는 음식 배달비? 그게 뭐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겠지만, 이제는 인식이 바뀐 것이다. 사회적 현상을 계기로, 이를 뭐라 부를까, 패러다임의 전환, 즉 무료에서 유료로, 부가서비스에서 독립된 주된 서비스로, 이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생겨난다.

 

모든 일자리는 “가치 있음”이라는 공통의 인식, 우리 안에 자리한 낡은 사고부터 버려야

 

자, 이렇게 일자리를 인류 역사 발전과정에서 보면 앞으로 인간의 욕망이 그치지 않는다면 일자리는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지은이는 노동이 가치 있음. 근로와 노동을 구분 없이 사용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개념으로 노동은 레디컬하게, 근로는 유연하게…. 하지만 이 모두 한자 말이고 가치 중립적이다. 하지만 어느 틈에 근로는 좋게좋게. 노동은 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투쟁과 쟁취를 쫓는 개념으로 인식한다. 과연 그런가?,

 

근로와 노동의 차이?

 

근로,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밖에 없잖는가, 노동이란, 자연상태의 물질을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이고 일자리는 이런 활동무대를 말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 근로기준법에서는 육체노동, 정신노동을 일컬어 근로라 정의하고, 한나 아렌트는 노동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나 활동을 해야 한다고, 누구를 먹여 살리는 그런 고통스러운 단계를 거쳐 먹고살고 자아실현을 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활동이라고. 아무튼, 꽤 재미있는 내용이다. 인류사 속에서 다시 보는 일자리에 관한 생각이라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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