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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그 위대한 여정 - AI 시대 우리 일자리는 지속 가능한가, 202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백완기 지음 / 지베르니 / 2023년 11월
평점 :
일자리는 사회와 더불어 진화한다
지은이 백완기의 인생 역정만큼이 깊은 사유로 “일자리”를 열쇠 말로 동서고금의 보편적 인간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제아무리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인류 역사 발전 경로를 살펴보면, 일자리를 새롭게, 아니 없던 서비스가 생겨날 뿐,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일자리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기에,
그 근거로 지은이는 세 가지 점을 들고 있다. 첫째, 인류는 과학기술에서 특이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인류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점을 지나게 된다는 것, 이는 일자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즉, 일자리에 관한 인식에 터 잡은 고정관념이 바뀌리라는 것인데, 이는 곧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둘째, 지금까지 인류문명이 인간의 육체나 정신, 정서(감정) 노동 효율을 높이는 데 중심축을 두고 발전해 왔지만, 미래는 인간의 노동 자체를 기계가 근본적으로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셋째, 세계화의 심화 혹은 진전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묶일 것이라고 본다.
지은이의 전망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릴 수도 있다. 미래 전망은 단순히 틀 지워진 미래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유기적 관련성 속에서 미래가 결정되기에 그렇다.
19세 초, 거리를 달리는 지금부터 조잡하기 그지없는 자동차의 등장, 거리를 달리는 마차, 마력에 의존하는 운송수단이었고, 마차가 당대의 표준이라면 그러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마부들은 자동차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마치 지금 많은 관심 속에서 등장한 AI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 등장으로 마부는 없어졌지만, 자동차 정비소와 터미널 등 새로운 일자리가, 당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말이다. 이를 뭐라고 표현해야 적당할까?,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고, 이 욕망이 동인이 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지은이가 지적한 대로 일자리는 사회와 더불어 진화하고, 진화는 인간의 욕망이 원동력이니, 결국 일자리의 창출은 인간의 욕망으로 귀결이 아니겠는가,
일자리에 관한 인식의 전환
일자리와 어느 한 개인이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한 게 아니다. 필연적으로 사회적이라는 점이다. 위의 마차와 자동차처럼, 장강의 앞 물은 뒷물에 밀려나게 마련이듯이 또한 필연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태적 분석 시각에서 접근하면, 매일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사회를 대단히 정태적으로 보고 있다. 변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일자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 변화 과정은 사회적 요구가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인류 일자리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사회화로 규정하면서 시작점은 사회적 분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문명화가 되면서 일자리는 분화되고,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문명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작용한다는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이후 단계라 할까, 시계열적으로는 도시화와 국가건설로, 도구사용과 기계의 자동화, 그리고 과학기술 발달로 확산한 네트워크, 현재와 미래의 일자리….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일자리 인류학, 사회학처럼, 사회의 변화발전 양상과 인류의 과학기술, 이를 뒤따라가는 인간의 인식 태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세평할 때면 늘 나오는 이야기, 요즘 것들은…. 우리 젊은 적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지라는 말이 뭘 의미하겠는가, 그들의 과거 가치관 또는 가치체계와 요즘 젊은이들의 그것은 다르기에 그렇다. 과거의 눈으로 보면, 현대의 것들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외줄 타기이고, 현대인의 눈에는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일자리는 조금씩 지속해서 변화해 왔다
코로나 19 재난을 맞으면서 일자리는 늘었다. 없던 업종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중국집의 짜장면 배달통으로 상징되던 배달 라이더, 이는 중국집의 배달 주문하면 당연히 가져다주는 체계로 중국집 배달원이라는 일자리였다. 하지만, 면대면, 직접 접촉을 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배달업계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면서 많은 일자리를 마련했다. 누가 이런 변화를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배달 일감을 찾아주는 플랫폼이 생겨나고, 과거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확장까지도. 새로 생겨난 중계지 플랫폼 기업에는 ICT 기술을 바탕으로. 배달의 민족이든 요기요이든 이제 배달비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적어도 코로나 이전에는 음식 배달비? 그게 뭐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겠지만, 이제는 인식이 바뀐 것이다. 사회적 현상을 계기로, 이를 뭐라 부를까, 패러다임의 전환, 즉 무료에서 유료로, 부가서비스에서 독립된 주된 서비스로, 이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생겨난다.
모든 일자리는 “가치 있음”이라는 공통의 인식, 우리 안에 자리한 낡은 사고부터 버려야
자, 이렇게 일자리를 인류 역사 발전과정에서 보면 앞으로 인간의 욕망이 그치지 않는다면 일자리는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지은이는 노동이 가치 있음. 근로와 노동을 구분 없이 사용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개념으로 노동은 레디컬하게, 근로는 유연하게…. 하지만 이 모두 한자 말이고 가치 중립적이다. 하지만 어느 틈에 근로는 좋게좋게. 노동은 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투쟁과 쟁취를 쫓는 개념으로 인식한다. 과연 그런가?,
근로와 노동의 차이?
근로,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밖에 없잖는가, 노동이란, 자연상태의 물질을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이고 일자리는 이런 활동무대를 말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 근로기준법에서는 육체노동, 정신노동을 일컬어 근로라 정의하고, 한나 아렌트는 노동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나 활동을 해야 한다고, 누구를 먹여 살리는 그런 고통스러운 단계를 거쳐 먹고살고 자아실현을 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활동이라고. 아무튼, 꽤 재미있는 내용이다. 인류사 속에서 다시 보는 일자리에 관한 생각이라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