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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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내 행복의 상징

 

 

17년 전에 나온 소설과 그 개정판의 옮긴 이 김난주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한다. 그렇다면 절망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이기에 사람을 죽음의 심연에 빠뜨리는 것일까 라고 말한다. <웨하스 의자>에서 절망은 곧 사랑이라고, 사랑이 절망이기에 사랑을 하는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고.….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다 인간은 원래 자기 자신이 될 사명을 가진 자기로서 창조돼 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결정적인 의식(자기 인식)이 늘수록 절망도 강해진다. 그는 절망을 이차적으로 봤다. 틀림없이 절망은 병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이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동물 이상이기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병으로부터 치유되는 것은 기독교인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이 병에 걸려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불행한 것….

 

<웨하스 의자>는 보고만 있어야 하는 대상물인가, 손을 대면 바스러지고, 앉을 수도 없고, 이 책 주인공 나, 나에게 웨하스 의자는 행복의 상징이다. 눈앞에 있지만 그리고 당연히 의자이지만 절대 앉을 수 없다(73쪽).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웨하스였다. 바삭하고 두툼한 게 아니라, 하얗고 얇고 손바닥에 얹어만 놓아도 눅눅해질 것처럼 허망한 것이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내게 인생이란 운동장 같은 것이다. 입구도 출구도 없고,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테지만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 무질서하고, 전진도 후퇴도 없다. 모두 그곳에서, 그저 운동할 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77쪽)

 

나와 애인 사이, 어쩌면 내 행복의 상징인 ‘웨하스 의자’ 눈앞에 있지만 절대 앉을 수 없다. 요즘 문득 애인과 헤어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애인과 살려 하면 갇히고 만다.

 

 

애인 없는 인생이란 절망이다. 그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몸짓들….

 

이 소설의 끝, 죽음의 상태에서 돌아온 그를 바라보는 애인의 따뜻한 눈길…. 그는 애인에게 말한다. “잘 들어. 나는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니야. 그냥 죽어가고 있지. 병원에 가도, 당신을 만나도, 이렇게 식사를 해도, 그건 변함없어, 나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고, 그건 슬픈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믿어.”

 

이 소설은 절망과 사랑의 경계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애인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미 세상의 가치는 문제 되지 않는다.

홍차 잔에 곁들여진 각설탕이 홍차 없이는 의미를 갖지 못하듯, 애인 없는 자신의 삶은 무의미하기에 절망한 여자,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만, 애인이 없는 상태의 자신은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기에 결국은 애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되는 여자, 이런 여자에게 사랑은 곧 절망이다.

그가 어른이기를 주장하고, 절망을 벗어던지려 할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애인과 헤어짐, 이 헤어짐은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갇힌 상태의 사랑이 아니라 열린 상태, 자립한 어른으로서 사랑…. 아마도 통과의식이 아닐까,

 

옮긴이 김난주의 개정판 옮긴이의 말 “웨하스라는 무르디무른 과자의 이미지처럼 허망함이나 가련함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마저 품고 자기를 긍정하는 강함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끊임없이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선도 넘어서서…. (246쪽)

 

내로남불 이라는 말로 접근하면, 안 될 듯하다. 절망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의 가치판단은 신경 쓰지 않은 듯하지만, 그 바탕에는 마치 철로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평행선과 같은 것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란 본디 존재하는지, 외로움, 사랑, 성장과 함께….

 

사족, 2004년 소설을 나올 때, 길고양이는 도둑고양이로 멸시의 대상, 2021년, 고양이는 반려묘로, 길고양이 맘이…. 소설의 무대도 소재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인가, 하지만, 절망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임은 여전하다….

 

아직도 <웨하스 의자>는 유효한 것인가,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읽힐까? 거꾸로 그때의 느낌이 궁금해진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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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하이데거 전집 38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김재철.송현아 옮김 / 파라아카데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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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테거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 논리학>

 

하이데거는 왜 나치스에 협력했나? 그를 실존철학자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7년에 내놓은 책 <존재와 시간> 때문이다. 그는 1889년 9월 26일 바덴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났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후설에게 현상학을 수학, 1923년 34살에 마르부르크대학 교수, 그리고 39살 때인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 1933년에 총장으로 그다음 해 당과 학내갈등으로 직에서 물러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스에 협력, 전후 추방됐다가, 복직, 1976년 세상을 떴다. 후반 인생 30년간 그는 고독 속에서 살았을까, 아니면 자신의 소신이라며 자위하고 살았을까?, 그가 죽음에 이르러 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생뚱맞지만, 친일파 윤치호처럼 말이다.

 

이 책은 1934년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여름학기 강의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그런데 실은 이 시기의 정치적 행보와 2차 대전 때 나치스의 협력은 연속선 상에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게 그의 철학적인 신념이었을까?, 이를 연구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행동은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은가, 다른가, 언행일치는 동양적 사고인가? 이런 물음이 꼬리를 문다. 법학자들 가운데서도 나치스에 협력, 헌법을 손질한 이들은 생명의 위협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동서고금을 통해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학자라 할 수 없지 않을까, 요즘 TV에 나와서 썰을 풀어대는 만물 박사 텔레페서들처럼. 아무튼

 

왜 이 시기에 논리학 강의를 생각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1934년 여름학기에 “국가와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할 예정이었다. 이는 그의 저작을 편집했던 이들이 입수한 것들…. 1931년 10월부터 시작한 “검은 노트”에 암시니 숙고니 지침들이니 하는 것들에서 논리학을 강의하려는 이유를 발견했다. 하이데거는 자신이 실제적인 논리학 아래에서 구상하는 것은 진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 위에 스스로 세우며 존재에서 존재자를 표현하는 것은 진리의 본질에서 일어나는 근본 사건이라고(283쪽-편집자의 후기)

그의 현존재가 존재자 전체 그리고 그것의 깊이와 근거에서 존재자 전체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는 자는 어떤 논리학도 필요 없다. 논리학은 그에게 무가치한 것이다.

 

언어란 무엇인가, 앎이란 또 무엇인가, 그리고 말함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논리학의 근본 현상은 진술이다. 논리학이란 제목은 그리스어 로기케의 약어다. 이 표현은 로고스와 관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보충되어야 하는 것은 에피스테메 즉 앎이다. 따라서 논리학은 로고스와 관계하는 앎이며, 로고스에 정통해 있음을 의미한다. 로고스는 이야기, 말함이다. 논리학은 진술의 근본구조와 근본규칙의 형식에 관한 학문이다.

논리학은 사고를 다룬다. 사고가 일종의 말 함이라면 그때 사고에 대한 앎, 말함에 대한 앎, 언어에 대한 앎, 모든 논리학의 근본 물음,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며, 언어철학은 논리학의 전당이 된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크게 2부 각 3장(33절)으로 구분되는데, 1부는 모든 논리학의 근거 물음이자 주도적인 물음으로서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1장에서 언어의 본질, 2장에서 인간의 본질, 그리고 3장에서 역사의 본질을 각각 묻는다. 즉, 언어와 인간과 역사의 본질을 묻는다. 그리고 2부에서 역사의 본질로서 근원적으로 통일된 시간이라 제목으로 인간의 역사성은 변화된 시간과의 관계에서 경험된다. 즉 규정과 임무와 사명으로서 규정, 노동으로서 규정, 그다음 장에서 인간을 그에 관한 규정에서 경험함, 기분, 노동, 사명, 임무의 내적 관계를 살핀다. 3장에서 인간존재와 언어를….

 

강의에서 그는 논리학 자체를 시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해체하여 그 이름에 담긴 것보다 더 근원적인 과제를 일깨우고 포착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25쪽). 그것을 위해 그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파악을 한다. 이는 항상 그가 그 시대 속에서 여전히 생각했던 “민족”의 현실적인 “변혁”과 연결된다(125쪽). 그는 결론에서 “근원적인 언어”는 “시 짓기의 언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263쪽).

 

인간존재와 언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답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언어는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가 누구이냐는 물음에 바탕을 둔다. 우리는 인간 현존재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했고, 인간의 존재를 시간성, 염려, 규정에 대한 염려로 파악했다.

우리는 여전히 언어를 인간 현존재의 구성 틀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언어 그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정말로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지금 언어는 인간 현존재라는 개념에서 의문시되고, 진정으로 근거가 제시된 의미에서 비로소 물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지금 현존재의 본질적 구성 틀에서 획득한 통찰력과 거기에서 생겨난 개념의 도움으로 언어의 본질을 정의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값싼 속임수다.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을 지배하는 언어

 

언어는 격리된 주체 속에서 출현하고, 주체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으로서 이리저리 건네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주체적인 것도 객체적인 것도 아니다. 언어는 개별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언어는 그때마다 역사적인 것으로서 존재를 위임받고, 존재자 전체에 내어 놓여 잇는 사건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언어의 사건 속에서만 존재를 획득하고 상실한다. 언어는 세계의 지배를 형성하며 보존하는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이다. 시간성이 시간화되는 곳에서만 언어가 사건으로 일어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논리학은 결코 논리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논리학의 물음은 세계의 지배가 언어에서 사건으로 일어남으로써 존재의 힘을 갖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앎의 염려로서 생겨난다.

 

이렇게 알듯 말듯, 언어는 사고의 외부로 표출이며, 사고는 논리학을 통해서 앎이 되고, 그렇지만 논리학은 하룻밤 사이에 완성하여 교본으로 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가 논리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언어”의 위력 때문이 아닐는지, 나치스에 동조했다, 안 했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대상이 아니니 논외다. 언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고를 반영하는데 이 밑바탕에 흐르는 것들을 정리하고 다듬을 것인가, 촌철살인, 세 치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이데거가 국가와 학문이라는 걸 하려면 적어도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 표현적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걸 먼저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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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세계 - 지금 여기,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을 말하다
안희경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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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세계 

 

"지금 여기,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을 말하다“

 

재미 언론인 안희경이 7명의 지성을 만나, 인류의 재난인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재난 경험 속에서 미래 인류 문명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이들에게 묻고, 그들의 답을 각 장에 담아낸 것이 이 책<내일의 세계>이다.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벼랑 끝인지, 이미 추락하고 있는지, 또 추락했는지,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그리고 삶의 결을 이루는 문화 의제를 다룬다.

 

 

코로나 재난은 우리에게 '대비'의 교훈을 안겼다.

 

1장에서는 재러드 다이아몬드를 만났다. 그에게 지은이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뭔가를 물었다, 다이아몬드는 지구가 안전하지 않은데 인류가 안전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화두다. 지구의 안전은 누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 생각을 말한다. 몇 가지 우리 기억해 둘 말들이 있다. 코로나 재난의 가르침은 대비해라다. 유비무환, 역시 보편성 있는 사고다. 그다음으로 공동체의 협력과 개인의 진취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집단주의냐 개인주의냐의 논쟁보다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또 가장 시급한 위기를 찾는 사고에서 벗어나기, 이는 환경론 가운데 종말론적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듯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것보다, 지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휴면 환경론적 입장), 우리 삶과 자연, 공존 모색을 위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회가 이뤄야 할 안전지대 공존과 순환의 도넛경제학 모델

 

2장에서는 기후 위기,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도모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은 무엇인지를, 케이트 레이워스에게 물었다. 그의 답은 경제 혁신의 실행은 기업이 아닌 국가의 역할이라고 명확하게 말한다. 그리고 지구와의 공존은 재생과 회복의 도넛 경제학(그가 주장하는 이론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물의 명암이 있는 것 처럼 그렇게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이윤이 될 모든 것을 추출해 소비하고 쓰레기로 배출하는 경제구조를 재생과 회복으로 순환하는 도넛모양의 경제모델), 성장주의는 이제 그만, 언제까지 성장 타령인가, 그동안 사람이 먼저 죽겠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삶의 질을 우선하자 아울러 우리는 절대 혼자 살 수 없다. 공동체 연대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디지털자본주의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3장에서는 오늘날 자본주의 성격을 진단하며 불평등 문제를 완화할 전략에 대해서, 다니엘 코헨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디지털자본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화두로 삼는다. 최근 많이 쏟아져 나오는 플랫폼 자본주의(GAFA, 네이버, 알리바바, 카카오) 거기에 배달의민족이니 쿠팡까지도 이들의 경제판을 흔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도 뒤흔들고 있다. 그는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AI 기반의 플랫폼은 사생활까지 마구 침범한다. 이럴 때, 유비무환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디지털 혁신을 보는 눈을 가지고 말하는데, 개인정보 수집인가, 경제 권력 독점 전략인가, 고구마 줄기를 잡아 끌어당기면 고구마가 나오듯, 지금 정보 유출, 개인정보 중언부언해도 이는 플랫폼 기업의 먹을거리, 블루오션인 셈인데, 무슨 법 따위를 지키는가, 최종목적은 경제 권력 독점이란 점을 기억해두자.

 

 

그린 뉴딜의 정수는 지역화, 분산화, 지역경제살리기

 

4장 국가마다 그 이름을 달리하여 진행하는 '그린 뉴딜' 정책이 제 길로 가고 있는지를,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시대를 잠식하는 성장 서사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했다. 기후 문제의 근원은?, 그린 뉴딜은 지역화, 분산화에 있다. 세금과 보조금, 그리고 규제가 지역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맞는 말이다. 지역경제 공동화에서 이제는 인구까지 한국의 지방을 보라, 자연 소멸지역이 몇 개나 되는지, 50년 전만 하더라도 군 단위 인구가 30만을 헤아리던 것이 지금은 4만의 벽도 넘지 못하고, 세수가 없으니, 가난한 지자체 살림이 되는 악순환, 당장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지방소멸이다. 해답은 자생력과 위기 극복 능력을 갖춘 지역경제 생태계에 있다는 그의 주장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보는 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엘리트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5장에서는 불평등 세습 프레임의 기제인 능력주의 구조를 살펴본다. 대니얼 마코비츠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설계하는 엘리트들' 온 지구상 나라에서 이거 하나만큼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의 진리인 듯 여겨질 정도이니 말이다.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쟁 구도다. 죽을 때까지 달리게 한다. 그러다 보니 완전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은 신판 제국주의 노예 '노동자'다. 시원스럽게 말한다. <엘리트 세습> 책에서 말한 것들에 대한 보강이랄까, 금수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찾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1대99의 싸움이라고, 코로나 정국 속에서도 우리 사회 20%가 저소득층의 15배, 20배를 가지고 있다고…. 재난은 본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이고, 있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란 말이 이토록 실감 나게 다가온 적이 있던가? 

 

 

포스트모던, 포스트 콜로니얼, 포스트 휴먼을 제대로 거쳐야 

 

6장에서는 박탈감, 원망이 차오르는 이 시대의 감정을 읽고자 조한혜정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은 서구의 잣대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일 따위는 이제 접어야 할 때라고…. 인류발전의 과정이 남성 중심의 그것이었다고, 상대를 무너뜨리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사고를 극복하는 게 지금의 과제다. 즉, 어떻게 함께 공존할 것인가로 사고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트휴먼의 사고가 필요하다. 

 

 

지구는 구할 수 없다. 단지 사랑할 수 있을 뿐

 

그리고 마지막 7장에서 그렇다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거리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이 안내역으로 사티시 쿠마르는 '사랑'을 들었다. 나를 사랑하고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며, 지구를 사랑하는 매뉴얼을 전한다. 지구를 구할 수는 없다. 단지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참으로 대단한 표현이다. 

 

지은이는 이 인터뷰 작업을 시작할 때, 세상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만 기본 순위는 있다.', 즉 세상에 우선순위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당신의 생각을 흔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지은의 말 또한 명언이다. 세상에 큰일, 작은 일이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일의 선급이 어떻게 또 누구를 기준으로 정해지느냐고 묻는 다이아몬드, 당신은 그 결정에서 소외됐는가? 참여했는가?, 한 사회 엘리트는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플라톤의 국가론처럼 철인은 시민을 위해서, 만인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인간의 본성을 모르고 한 소리는 아니다. 현대사회, 물질 만능, 철학자들이 경계했던 그런 일들이 당연한 질서가 돼가고, 아니 이미 됐다. 이를 일깨우는 대니얼 마코비츠 등, 

 

이 책의 내용이 던지는 화두는 결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너무 당연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왜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의 실천이 어려운가가 문제일 뿐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내일의세계 #인류문명의10년생존전략 #안희경 #재레미다이아몬드#케이트레이워스#조한혜정#대니얼마코비츠#사티시쿠마르#다니엘코헨#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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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
박시은 지음 / 아이콤마(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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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은 에세이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


 

누구에게나 빛의 속성은 있다. 이 에세이를 읽는 동안 작가 박시은은 누굴까 라는 생각이 다 읽고 난 뒤 한참 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옆에 있어도 혹은 멀리 있어도 빛이 있다면 길을 잃지 않아….

 

작가는 90년 생이라 한다. 이대녀(20대 여성)을 갓 탈출, 30대로 옮아온 지 이제 1년, 그런데 “빛” 그게 뭐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게 한 작가는 감성도 감정도 웃음도 모두 메말라가는 요즘, 달콤하고 시원한 샘물이다.

 


 

에세집은 “친구”라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해댄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들을 소환시킨다. 머리가 굵어 생각해보니, 친구란 학교 화장실 뒤에 숨어서 급히 빨던 담배 피우기 공범인가?, 마을 과수원에서 배를 서리한 또래들일까, 마음에 둔 여학생에게 숫기가 없던 나를 대신하여 사랑 고백편지를 전달해줬던 녀석이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불현듯…

 

작가 말대로 그냥 너와 함께 있으면 이유 없이 좋은 게 친구일까?,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추석 전날 고향에 내려가 거기서 일하면서 사는 녀석들과 한데 어울려 밤새 웃고 떠들던 그런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이게 친구 사이일까?, 

 

사회생활에 익숙해 질 무렵, 은행 대출 보증 서 달라고 오래간만에 찾아온 동창생 녀석이 친구일까? 응 미안해지라는 말도 못 하고, 생각해볼께라는 말만…. 며칠을 두고, 해줘야 해, 말라며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에게 친구는 미안하다…. 해결됐어. 고마워, 그리고 연락이 끊겼다. 난 친구를 잃어버린 걸까?, 친구 간에 지켜야 할 뭐가 있나?, 늘 마음 한편이 무겁다.

 

갑자기 오성과 한음이 떠오른다. 이들은 정파, 당파는 다른지만, 친구였다. 한음 이덕형이 병이 들었을 때, 오성 이항복은 처방을 보냈는데, 독약의 처방과 비슷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음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대로 했다는 설화가 있다.

 

작가의 책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로 돌아간다.

 

이 책은 이야기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졌다. 이야기 하나는 우리는 언제부터 친구였을까? 이야기 둘, 너와 함께 있으면 그냥 이유 없이 좋아, 그리고 이야기 셋 항상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넷 우리, 잘살고 있는 거겠지?, 마지막 다섯 나의 고백들, 반가운 너의 목소리

첫 가출(17쪽)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푹 빠졌다.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도 첫 가출이 꼭 요만할 때였는 데라며, 맛깔나게도 썼다.

 

초점(56쪽), “너 곧 취직 잘하려면 조상님들께 인사드리는 게 좋아. 너뿐만 아니라 동생도 잘풀릴 수 있고, 가족들 다 좋아진다니까” (중략) “내가 아는 언니가 제사상 잘 차려주고 하거든, 소개해줄까?” “아냐 괜찮아”. 불편했다.이외의 대화는 거의 기억이 안난다....미안하지만, 더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 굳이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글쓰는 사람(67쪽), 작가는 자기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고, 평범하게 사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 했다. 딱 이 말이다. 늘 선택에 갈림길에 선다. 이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런 친구가 옆에 있다면, 그 친구는 나에게 “빛”이겠지.

 

너무 착하면 안 돼(212쪽) 사람마다 성격도,경험도, 행동도 다르다.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는 맞는 수준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싫어하고 싶지 않지만, 노력해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모두와도 잘지내려 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지은이는 회사를 옮겨갈 의향이 없냐는 분위기에, 내가 너무 착한가...

뭐 그렇지, 세상이란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어, 내 착각일 뿐...그런데 친구는 어떨까?, 이럴 때, 미주알고주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사이가 친구일까?

 

"빛으로 다가온다"

 

이 에세이는 읽는 이에게 “빛”으로 다가온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평범한 삶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날마다 새롭고 신기한 일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이때 함께 했던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전화라도 해보련다.

 


 

잘살고 있는지, 그리고 늘 내 곁에서 함께 의논해주던 친구의 얼굴이 왠지 요즘 더 수척해 보인다. 그러려니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뭔 일이 있는지 맨날 나만 생각하면서 친구랍시고 부려먹기만 해서 쓰겠는가, 오늘 이 책이 나에게 전하는 말이다. 긴 여운의 꼬리를….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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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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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용의 "파괴자들"

 

정혁용, 글쟁이라는 표현이 꽤 어울리는 작가다. 그는 이 책 작가말에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오마주가 있다, 이를 알아보는 재미도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말이 압권이다. 이 소설을 읽으신 분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집사와 K의 대결, 장발과의 마지막 진검 승부...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인데, 작가는 여기에 독자를 향한 제안을 했다. 오마주,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을 찾아보라고, 술술 읽히는 작품은 그저 된 게 아니라 출산의 고통이었음으로 재치있게 표현하는 센스가 돗보인다. 이 소설은 한 번 읽게 아니래요. 내가 이렇게 힘들게 온 힘을 짜내서 죽을 동 살동 썼는데, 내가 이글을 쓰는 동안 머릿속으로 그려낸 영화와 드라마 장면을 한번 찾아보세요라며,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말그대로 술술, 용병 K, 안나와 그녀의 동생 이레나, 조카 마리의 운명은

 

주인공 K는 PMC(민간군사용역회사)에서 일했다. 팀 동료였던 안나로부터 만나자, "동료"여 어디론가 와 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대한민국 경상도 어디쯤에 있는 집안 마치 영화 ‘대부’의 시칠리아 본부나,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아마도 최후의 작전인가,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본거지처럼, 이런 그들의 성으로 들어간다. 유니콘이라며 아기 흑염소를 데리고 다니는 ‘마리’, 내용과 줄거리도 나쁘지 않다. 조직의 보스, 어둠의 세계의 배후(흑막), 수렴청정하는 사극의 대비마마와 같은 존재, 그 옆에 손녀 해시, 그리고 손자들 첫째 해왕, 둘째, 해성, 셋째 해창 이렇게 셋과 해시, 이들은 삼형제는 작은 동네에 카지노장과 마약수출, 그리고 매춘사업을, 해시는 부인의 비서역을, 이들 사이의 조직장악을 위한 전쟁은 이미 수차례 벌어진 듯, 거기에 어리버리한 경찰을 하고 있는 어리버리한 손자 대머리...

 

안나는 부인을 위해 일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는 러시아 출신이고 그의 여동생 이엔다와 셋째 해창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마리’였다고, 안나는 순전히 동생과 조카의 안전을 위해서 이 전쟁판에 뛰어든 것인데, 언제 떠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은 뇌동맥류를 앓고 있어, 옛 동료 K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부인은 손자 셋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 중 손자들과 손잡은 이들을 찾아내어 죽인다. 목을 잘라 보란 듯이 전시한다. 손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은 요리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다. 시체를 처리함으로써 자연스레 공범으로 만들어 그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도록 해왔던 것이다. 이 저택은 지옥이라고, 이 곳 생활도 지옥의 삶이라는 말...

 

부인과 손자들 사이의 밀당, 부인은 조직의 미래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가장 유력한 후보인 손녀 딸 해시에게 맡길 참이었다.

 

소설의 결말, 이전투구 끼리끼리 몰살작전 속에 결국 누가 살아남게 되는가?

 

이 소설은 참으로 끌림이 강하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릴 만큼, 흥미진진...글쎄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는데, 왜 그랬지라고 생각해보니, 작가가 군데 군데 깔아놓은 덫에 제대로 걸린 듯한 기분(나중에 작가말을 보면 아하...라는 생각이 들었듯이), 술술 읽혀던 이유의 하나는 글솜씨도 글재주도 빼어나지만, 빠른 흐름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사연들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어내는 그물은 꽤 탄탄했다.

 

주인공K, 아프가니스탄 전장터의 기억, 동료 중국특수부대 출신의 ‘아랑’과의 추억, 등을 빌려주며,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던 그녀의 아픈 기억들과 함께 지켜주려는 인간애(둘사이는 남녀관계가 아닌), 그리고 그녀를 죽인 부인의 집사에게 복수를...

 

7년 동안 제대로 잔 적이 없다는 ‘용병’들, 이들의 사연들을 하나하나씩 끼워넣고, 또 다시 꿈속에 등장하는 장면들, 가위눌려 깨어난 K... 내일 살아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작전에 투입된 용병들...

 

우리의 무의식에 있던 기억들, 이제컷 봐왔던 액션 영화, 오락물 속의 장면들을 끄집어 내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던 때문이지않았을까, 소설 속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되는, 그리고 그 뒤를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도 K의 대화법이 맘에 든다...작가는 3개월에 걸쳐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아마도 100일 정성을 다한 듯하다. <파괴자>에 이어 어떤 소설이 나올 것인지, 작가만의 스타일과 글결... 기대된다. 마지막의 반전...마리는 안나의 조카가 아니라 이레나의 친구 오르가와 부인의 둘째 손자 해성의 딸이라는 사실... K와 마리는...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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