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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 나를 바로세우는 사마천의 문장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10월
평점 :
나를 바로 세우는 사마천의 문장들
2천 년 사람 사마천, 그는 궁형을 선택해서까지 세상에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가 남긴 사기는 52만 6,500자다. 이 바탕을 흐르는 초지 일관된 이슈를 집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은이 김영수 선생은 아마도 인간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게 아니었겠냐고 말한다. 이게 사기를 평생 연구해 온 학자의 견해다.
이 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우리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전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은이는 사기를 정제와 압축의 미학으로 규정한다. 사기의 언어들은 때로는 냉혹하기 그지없고 차갑고 서늘하고 무섭고 무겁지만,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겨있기도 하다는 평가하고 있다.
이 책 또한, 우리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전제로 인간의 길을 통찰하기 위해 사기에서 선정한 62개의 문장을 가져와 1장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17문), 2장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16문), 3장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13문), 그리고 4장 세상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16문)를 배치해두었다. 기실, 어떻게 사는 것인 참된 삶인지 즉, 스스로 무엇을 경계하며, 자신을 다스릴 것인지에 관한 명심보감인 셈이다. 이어서 어떤 세계관(사상 또는 철학)을 지녀야 하는지, 그리고 세상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서야 하며, 그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적어두고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선택하는 최선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또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에 눈길이 간다. 최선의 삶은 굴원을,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은 백이와 숙제 고사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는 진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선의 삶을 선택한 굴원 무엇인 최선인가, -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게세혼탁유아독청],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요즘은 그 속도마저 빨라졌지만,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이치만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이 그렇다. 어느 시대건 부패 정권과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이에 저항한 굴원은 결국 조정에서 쫓겨나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 자살을 택한다. 세상 사람들은 굴원의 결벽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두고,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법,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박차고 나오는 행위는 시세를 모르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느 선에서 시세를 따르고 어느 선에서 발을 뺄 것인가, 오늘날에도 이런 고민이 따른다. 2012년을 상징하는 한자로 거세혼탁이 선정됐다. 즉 세상이 온통 흐리다는 것이다. 굴원은 죽음으로써 시대에 강력하게 저항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고 그 어떤 힘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의지’가 있다. 오늘을 사는 인생에 내일은 없다. 훗날 역사가 나를 뭐라 부를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행동은 제멋대로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의식하는 이들은 후세에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한다. 사기 열전의 첫 장에 소개하는 백이와 숙제의 고사는 이들의 죽음의 과정과 의미를 알리고자 함이다. 즉 자유의지는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남게 하며, 인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싶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게간위기- 진승 이야기
진나라가 망하다. 농민봉기의 선봉장 진승이라는 평범한 사내가 난을 일으킴으로써 진나라의 일곱 종묘가 모조리 파괴됐다. 사기는 진승을 제후반열로 끌어올려 ‘세가’에 실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민중의 힘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진시황이 죽자(기원전 210년), 호해가 왕의 자리에 올라 하남지방민을 북방 변경 경비에 투입하라는 조서를 내림으로써 서막이 열린 농민봉기, 징발된 900명 가운데 들어있던 진승, 비가 와서 목적지에 제시간에 대지 못하면 참수형을 당할 처지가 되지 봉기를 일으켰다. 대장부가 기껏해야 죽지 않는 정도에 만족할 수 있는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세상에 이름이라도 남겨야 하는 것 아닌가?,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더란 말인가?,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끝난 봉기, 그러나 이 봉기는 불씨였다. 황우와 유방 세력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민중의 진정한 힘은 자각에서 나온다. 일어나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박차고 일어나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다만, 냉철한 판단과 준비된 역량이 없이, 성급하게 나서는 것은 모두를 죽게 하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의 모습도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2000년도 넘는 그 아주 먼 옛날과 다르지 않음은 무엇 때문일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세계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까- 대체 하늘의 도라는 것이 정말로 이러한 것인지(당소위천도 시야비야)
사마천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기보다는 박해를 당하거나 불행하게 삶을 마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당소위천도 시야비야 도 바로 그런 마음의 표현이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을 베푼다는 것이 어찌 이 모양일꼬, 사마천은 공자의 말을 끌어다 썼다.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푸르름을 실감하고, 세상이 어지럽고 더러워져야 깨끗한 선비가 드러나는 것인가”라고,
사마천은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잘못을 구분 지어 봤던 게 아닐까 하는 지은이의 해설이 더해져 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거나 선이 악을 물리친다(권선징악)는 말이 요즘은 너무 공허한 말인 듯하다. 하나, 이를 역으로 보자면 사물과 인간의 실체와 본질을 통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에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핵심은 “말”이다.
사기에서 눌변의 미학과 달변의 이중성, 설득력을 높이는 말의 기교, 비유와 상징의 효과 등 ‘말’과 연관된 문장들을 뽑아 실었다. 이 중, 굳건한 믿음마저 흔드는 말의 반복효과를 보자, 이는 마치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이론과도 같은 맥락이다. 거짓말을 백번 반복하면 그것은 사실이 된다는 것처럼, 가짜뉴스를 계속 반복해서 의도적 유포하면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세 사람이 의심하니 그 어머니도 두려워하더라(삼인의지 기모구의),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 감무는 기원전 308년 한나라를 공격하라는 무왕의 명령을 받았다. 조정은 여기저기서 파견된 첩자들이 진나라 내부 실세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상황, 감무가 출정 나가면 그에 대한 유언비어와 악의에 찬 중상모략이 예상됐다.
감무는 왕에게 자신을 믿는다고 맹세해달라며 증삼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떠났다. 시간이 흐르자 왕은 감무를 의심했으나(변덕스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감무는 자신과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유명한 식양의 맹세다. 유언비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럴듯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복되는 유언비어는 굳은 믿음마저 뒤흔든다. 귀는 나쁜 말에 관심을 더 갖는다(헐뜯음이 쌓이면 뼈도 깎는다는 말이 있듯) 때로는 정치적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해관계가 해제되면 인간관계는 멀어진다, 사냥개가 아닌 사냥꾼으로 살아라, 작은 갈등이 큰 손실을 초래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 사람의 앞날은 단정하기 어렵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사기는 적고 있다.
이해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하는 게 좋겠다. 사람은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준비하지 않는 기다림은 시간 낭비다. 준비란 기다림 속에서 상황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깊이 생각하며, 사물과 일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한 번 날면 반드시 하늘까지 이를 것이다. 이것이 한비자가 말한 비필충천이다.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기에 실린 많은 이야기 중에 62문, 그중에서 몇 개를 살펴봤다.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나,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보충적인 성격도 있어, 정독이든, 완독이든 앞뒤로 왔다 갔다 하든,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하루에 한 문씩 출퇴근길을 오가며 가볍게 읽어도 좋을 듯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