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 임세원 교수가 세상에 남긴 더없는 온기와 위로
임세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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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말로 고 임세원 선생의 유족은 생전에 선생이 삶의 철학을 실천하려 한다.

 

 

2018년 12월 31일, 그해의 마지막 날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 예약 없이 찾아온 환자를 끝나기 남아 진료하려던 임세원 선생은 환자의 그 무엇에 의해 세상을 떴다. 유족들은 할 말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선생의 유지만을 남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19년 그 메아리가 사회에 잔잔히 퍼져 "임세원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2020년 그는 의사자(의롭게 죽은 사람)로 지정됐다.

 

이 책은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 개정판으로 선생의 아내 신은희 님이 그의 미공개 원고를 실어 다시 펴낸 것이다.

 

신은희 선생은 왜 남편 임세원 선생의 저서를 다시 펴냈을까? 라는 궁금증이 앞섰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 표지 뒤에 실린 글을 남편은 언제고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의 속편으로 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큰, 조금 더 예쁜 상자

 

 

나에게 남다른 기억으로 남은 환자들은

퇴원할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도 어느새 가득 찼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기를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조금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260쪽)

 

 

고통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가치는 임세원 선생 자신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허리통증을 시작으로 치료를 끝내면 곧 낫겠지라는 희망은 무참히도 깨져버렸고, 수년간 그를 괴롭힌 원인 모를 통증, 지쳐가는 심신, 이에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쓴 책이 바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였다. 육필에 온 힘을 기울여 고통받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바로 이 책이다. 2부와 262쪽에 추모의 글과 부록으로 보고 듣고 말하기가 실려있다.

 

 

그는 1장에 고통이 나에게 알려 준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2장에서 남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이제는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3장에서는 희망과 함께 가라고, 4장 오늘 이 순간을 살기 위하여

 

 

이 책 속에는 중요한 4가지의 메시지(한 번 더 생각해보기)가 담겨있다.

 

 

첫째는 누가 진짜 전문가인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조금 아는 것 많이 아는 척, 진짜 전문가는 많은 경험과 이론을 아는 전문가다. 모든 걸 쉽게 말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둘째,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 혼자 생을 마감했다는 착각, 이후에 남겨진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생각하라, 마음의 상처를 두고 가는 건 어느 이기적이지 않겠는가,

셋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과거가 아닌 오늘, 현재를 사는 것,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다.

넷째, 고통을 겪는 가족과 함께 산다는 의미,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 가족은 함께라는 것을 상대가 느끼게 해 주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가족은 함께 고난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참 따뜻함이 전해져 오는 말들이다.

 

자신은 의사로서 환자들을 앞에 두고 과학적, 이성적, 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말만 해왔다. 환자에게 희망이란 처방에 인색한, 아니 익숙하지 못했던 그 날들, 자신이 환자로 원인 모를 고통에서 힘들어할 때, 누군가 내 맘을 알아주고, 희망이란 처방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경험을 한 임세원 선생은 그저 냉정하고 이성적인 의사였더라면 그날 그렇게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환자 고통의 의미를 이해했던 만큼, 그리고 남겨진 그의 가족들은 선생의 고통과 싸우는 힘겨워했던 모습을 지켜봤기에 모든 상황을 알고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신과 마음의 병이 흉기가 됐다는 것을 알기에, 죽인 자의 처벌을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향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는 것들을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다. 진정한 이해와 배려를 부탁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우리는 조현병을 앓고 있던 이가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우리 주변에 무서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풀어놓는가,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무서운 사람들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이라는 소리 또한 그 여느 때보다 크게 들렸다. 비로소 세상은 정신의 병, 마음의 병을 조금 이해하려고 움직인다. 어디까지나 조금, 아주 조금 알려고 말이다.

 

누구든지 마음의 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공황장애로, 우울, 조울로도 눈에 보이는 것 모든 것이 풍성한 세상, SNS, 손만 뻗치면 정보를 알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오는 쌓이는 스트레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마음의 병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알고 다스려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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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메이카 하시모토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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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백두대간이라 불리는 조지아주에서 메인주에 이르는 장장 3,360킬로미터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산길), 이 소설의 주인공 토비의 모험이 펼치지는 무대다 645킬로미터 황무지를 지나 마운트 카타딘 정상에 이르는 트레일의 험난한 구간도 들어있다.

 

작가 메이카 하시모토, 일본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산을 배웠을까? 산에 대한 호감이 가게 한다. 이 책으로 만들어질 영화 <트레일>(아직은 모르지만, 제작이 결정됐다고 한다.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모양이다). 번역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조금 해야겠다. 김진희 번역가의 고심 흔적과 큰 노력이 전해져 온다. 단어 선택을 위해 사전을 많이 펼쳐보고 고민도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문득 그렇게 느껴졌다. 자, 책 속으로 여행을

 

12살 소년 토비의 대모험

 

우리의 용감한 12살 난 소년 토비, 부모의 이혼과 함께 보스턴 교외에서 버몬트주 노리치의 할머니 집으로 이사 와서 만난 절친 루카스, 보스턴에서 아빠 차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가는 빗길 속에 무스(엘크사슴)가 뛰어들어 사고가 일어나, 팔에 깁스하고 병실에 누워있을 때, 그를 찾아온 게 바로 루카스였다. 퇴원 후에는 마블 코믹스 만화를 가져다주는 등….

 

이들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처럼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꿈꾼다. 지난 여름 방학 토비와 루카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낚시하러 가기, 벌레 먹기 등등…. 그리고 #10: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하이킹하기(벨벳 락스 쉘터,에서 마운트 카타딘까지), 함께 하나씩 해 보자던 이 약속들. 결국 #9: 돌산에서 로프 스윙하기를 하다 루카스는 사고로 목이 부러졌고, 한 시간 후에 둘이 처음 만났던 병원에서 죽었다.

 

나와 루카스의 버킷리스트 #10을 향해….

 

"나는 루카스와 마운트 카타딘까지 함께 하이킹하기로 약속했어. 그래서 그 약속을 꼭 지키고 말 거야." 할머니에게 편지를 써놓고 길을 나섰다. 트레일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는다. 여기서 두 녀석을 만난다. 아니다. 맨 처음에 만난 친구는 개다. 못생기고 더럽고 야윈 개, 이 녀석이 내 저녁을 훔쳐 먹었다. 게걸스레 뜨거운 파스타를 한입에 먹어 삼킨다. 잔뜩 곤두선 떨, 날카로운 이빨, 악에 받친 듯 매섭게 째려보는 눈빛으로 묘사된 토비, 이 친구 역시 주인에게 학대를 받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토비 여정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이 녀석에게 토비는 무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또 토비를 도와준 두 친구, 저체온증으로 쓰러졌을 때 덴버와 숀이 구해준다. 이렇게 만든 이 친구들 또한 토비 못지않은 사연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여러 번 트레일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허클베리 핀도 꽤 읽어보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 덴버와 숀, 그리고 무스

 

아무튼 트레일에서 만난 동물들…. 그리고 계곡과 언덕 등 책을 읽노라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런 풍경들 말이다. 이렇게 해서 트레일을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극이 이어진다. 차갑고 무뚝뚝하게 보이는 숀, 반면에 인정 많아 보이는 덴버, 그리고 무스와 죽은 루카스와의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이 소설을 이어나간다. 실의와 절망, 슬픔과 우울은 트레일의 여정과 함께 점차 줄어들고 대신에 씩씩함이 용기가 그 자리를 채운다.

 

덴버가 실수로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한 순간에 토비와 숀은 손을 뻗어 덴버를 끌어 올린다 죽을힘을 다해…. 마치, 그들이 각자 짊어지고 있던 좌절감과 슬픔 같은 것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버린 듯….

이 소설은 토비와 친구의 성장 소설이다. 절친을 잃은 슬픔, 그와 함께 만들었던 버킷리스트 #10을 향해가면서 친구를, 루카스를 놓아준다.

이 소설은 번역이 아주 잘 된 듯하다. 듯하다는 표현은 원서를 보지 못했기에 미루어 짐작할 뿐이라는 의미다. 섬세한 묘사, 재미난 표현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잡히는 입가의 주름, 힐링이란 이런 건가, 읽는 이도 함께 책 속에 뛰어들어 주인공과 어울리는 이런 책 읽기라면 분명 좋은 작품이다.

 

코로나로 힘든 이들, 주말 오후 시간을 내어 가볍게 읽어볼, 아니 웃을 준비를 하고 저녁 약속일랑 아예 접어두고, 밤새 읽을 책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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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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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작가 이문열의 자화상인가?

시인(詩人,時人)은 시를 짓고 노래하는 사람인지, 시대의 인물인지, 아니 이 둘 다인지,

 

이 소설이 나온 지는 한 참됐다. [31] 에 실린 "시인과 도둑"을 단편소설선에서 읽었는지 어쨌는지 출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은 또렷이 지금도 기억한다. 이 장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언제나 보편적이다. 시대를 관통해서 통하는 진리라고 생각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느낌이 그러하다.

 

선생의 독보적인 문체는 다작임에도 늘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만큼 내공이 깊은 걸까, 아니면 선생이 이야기하듯, 이야기꾼인가, 선생은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우리나라의 썰 꾼 중 윗길에 가는 이다.

 

전설따라 삼천리...

 

<시인>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오래전에 라디오에서 김삿갓을 소재로 한 방송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의 할아버지 선천부사 김익순은 서북지방에서 일어났던 홍경래 난(이를 농민혁명이라 해야 하나, 이는 제쳐 두고) 때, 홍경래 군에게 항복했고, 그에 빌붙어 부역했고, 반군이 밀리자, 그의 군사 목을 베어 관군에 투항했다 한다. 설화에 따르면, 어린 김병연은 이런 사실을 몰랐고, 그의 나이 스물이 되는 해(순조 26, 1826), 강원도 어느 고을 백일장에 나서는데, 이때 시제가 가산 군수 정시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우러러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름을 굽어 한탄하라고 했다.

 

병연은 할아버지 김익순을 천하에 둘도 없는 역적으로 징치해야 한다는 논설을 했고, 장원이 됐다 한다. 이때 만난 관서 사람 노진은 그의 시를 격찬한다…." 그렇지만. 김익순에게 자손이 있다면 그들에게 그 시는 무엇이겠습니까?, 당대 양반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진의 말, 수신은 치국의 바탕, 수신의 효를 거치지 않고 치국의 충에 이르는 길은 없고, 그게 대성(공자)의 가르침이셨소. 두 사람 간의 수작. 김병연의 일탈 시작이 된 것인가, 아무튼 설화는 이를 계기로 일생에 걸친 떠돎의 시작이라고 한다.

 

작가는 병연의 시를 세 시기로 나눠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형 병하와 함께 인적 드문 골에 들어 장가들고 농사일하면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던 병연은 어머니 함평 이씨의 평생소원은 과거급제하여 집안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에 못 이겨, 과거를 보러 길을 나섰으나, 당시 과거는 형식이요. 이미 권문세도가의 입신을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과거는 실력이 아님을 알게 된 병연은 생각으로 권세가의 객으로, 당대의 지배층 자제들과 어울려 뭔가를 도모하려 했다. 뜬구름 잡는 "시"를 생산하다가, 결국, 형 병하의 죽음을 알게 되어 낙향한다.

 

아니, 이때 당대의 실세,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의 말, 대역죄인으로 연좌시만을 면한 것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에, 현실을 깨닫게 된 병연은 방랑길에 나서는데, 이때는 시인으로서 날개를 펴지 못한 그저 시를 끄적이던 수준이었다. 두 번째 시기는 취옹과의 만남이겠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상층계급 양반의 사고로 "시"를 감히 논하는가, 이때부터 서민들과 함께, 그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삶, 그리고 시의 파격을 가

져오는 취옹과의 수작을 보자.

 

"원래 큰 시를 오늘날 보는 것처럼 작게 줄인 것은 요순과 공맹을 이은 썩은 선비들이었다. 그로부터 수천 년, 혹은 인(仁)으로 가두고, 혹은 예로 얽어매고, 의로 옭죄고, 훅은 지로 억누르니 뒤에 온 사람이 어찌 시가 가졌던 원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작은 것을 키워 못쓰게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줄여 놓아서 못쓰게 된 걸 이제 원래대로 키워 쓰려는 것뿐이다"(152쪽)

이런 취옹의 말, 다복동(홍경래 반군의 본영)을 찾는 병연, 여기서 할아버지 김익순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의기 있는 이였고, 군사 등이 나쁜 놈들이라 그들의 목을 벤 것이라고…. 김삿갓 병연의 붓끝은 이제 민중 속으로 거침없이….

언문진서 섞어作(한글과 한자 섞어서 시를 짓지만)하니

   是야非야皆吾子(옳으니 그르니 하면 모두 내 아들놈)이라 (190쪽)

 

시의 파격만이 아니라 기성 사회와 정통에 대한 도전의 뜻까지 보인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병연은 관서 지방을 떠 돈 지 몇 해, 우연히 산골 마을에서 늙은 선비를 만나고, 그로부터 홍경래 반군의 이야기를 듣는다. 왕이 되려 했던 자다. 지금을 왕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오르려 했다.'라는 것이다.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여기에 힘을 보태고, 나섰던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알아버린 할아버지의 진실, 사건의 본질이 그러하다면 그의 울분과 한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고, 그걸 바탕 삼았던 그의 정서와 예술적 감수성도 다복동을 찾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206쪽)

 

이제야 그는 시인으로서 길에 접어든다. 취옹이 말하듯, 인의예지의 허울에서 벗어나, 자연을 노래하는 그런 시인으로 서른아홉 나던 해 봄에 찾아온다. 관서 사람 노진으로부터 그에게 온 서신(병연이 할아버지는 성토했던 그 시를 적어), 또 한 번 정신을 차린다.

 

시인과 도둑

 

병연은 양비(?非)와 양시(?是)의 세월을 보냈다. 때로는 우주와 인생을 다 이해한 것처럼 그 두 상반된 세계와 인식을 한꺼번에 꾸짖었고, 때로는 그 둘을 아울러 껴안고 아파하며 뒹굴었다. 양비일 때는 어김없이 양쪽 모두가 적이 되면서도 양시일때는 모두가 벗이 돼주지 않았다.

시인은 산길을 가다 도둑들에게 잡혔다. 두목인 제세 선생이라는 먹물이다. 너를 살려둬야 할 이유를 말하라 한다. 시인은 산채 사람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생산할 수 있고, 더 큰 도둑들에게 자발적인 회개, 위로부터 스스로 고쳐 나갈 의지를 기르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을 생산하여 선생의 적들에게 나눠 준다면 힘들고 험한 싸움 없이도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소라고….

 

이렇게 해서 도둑 산채에 남게 된 시인, 그에게는 시의 용도를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하였다. 시에 노랫가락을 붙여 노래를 만들고 이를 퍼트리고, 하지만, 상황이란 늘 살아있어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이다. 산채의 도둑들은 생각하게 되고, 합리성을 논한다. 아래의 큰 도둑들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게 된다. 겨울이 지나고 산에서 아래로 출병, 이미 약해 빠진 도둑들로는 거사할 수 없었다.

 

제세 선생이 시인에게 말한다.

"혁명을 꿈꾸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무릇 혁명하려는 자는 실질 없는 혁명의 노래가 거리에서 너무 크게 불리는 걸 경계하여라. 온 숲이 다 일어나야 날이 새는 것이다. 일찍 깬 새 몇 마리가 지저권다 해서 날이 새는 것이 아니다."(240),

오히려 일찍 깬 그들의 소란은 숲의 새벽잠을 더 길고 깊게 할 수도 있다. 선잠에서 깨났다가 다시 잠들게 되면 정말 날이 새도 깨나지 못한 법"

"어서 떠나거라. 이번 실패의 연유를 그대에게 전가할 유혹이 일기 전에“

시인은 다시 길을 간다. 세상 시비의 먼저를 툭툭 털며, 구름처럼 바람처럼 들꽃처럼 산새처럼….

 

작가 이문열은 <시인>이기도 하고 <제세 선생>이기도 했다.

 

이 [31] 장 시인과 도둑, 이 장 안에 담긴 시인의 생각과 제세 선생의 생각이 곧 이문열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서울대 국문과를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3번이나 응시했다가 떨어진다. 그의 아버지는 월북자다. 어찌 보면 병연과 같은 처지다. 초년에는 재능에 의탁하여 입신출세를 꿈꿨다. 시인이라는 소설 자체가 그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작품 활동의 내용과 경로를 보더라도. 조금은 억측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90년대 어느 날, 동아일보의 글을 실어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홍위병"이라 했고, 젊은이들에게 철없는 짓을 그만두라 했다. 아마도 이 소설 속 시인처럼 용기와 믿음이 생기게 하고,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프로다간다(선전선동)을 해 본 게 아닐까 싶다. 혹은 제세 선생 말처럼 치기 어린 행동은 결국 큰 혁명의 흐름을 어리석게도 끊는 짓이 될지 모른다는 염려, 우려에서 나온 말일지도…. 그 시기에 오적의 김지하가 젊은이들에게 일갈했다. 미친 짓을 그만두라고. 왜 그들의 눈에는 젊은이들의 이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외침이 불안하게 비쳤을까,

 

시인은 참으로 깊이가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 속에서 다시 옆길로 빠지셔한다. 독창적인 소설 쓰기, 문장이나 가져온 어구들 단어들, 지금도 감탄한다. 하지만, 이후로 시인이 황석영의 장길산처럼 장편소설이 되지 못하고 그만 묻힌다. 왜 그랬을까? 시인의 세 시기만 보더라도 충분할 텐데, 아쉽다. 그러나, 이문열 선생에게는 절제의 힘이 있다. 대중에 영합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라는 소설은 그의 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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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유순덕 외 지음 / 이화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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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

 

꽤 솔직한, 살벌한 제목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대치동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대치(大峙=한티, 한톳재, 큰고개, 큰 언덕)는 뭔가 있어 보인다. 18세기 담양군 대전면에 조선조 건국에 반대해 두문동으로 들어간 고려조 72 충신을 배양하는 대치서원, 이 역시 같은 한자를 쓴다.

 

 

대치동이라 쓰고 큰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며 조선 시대 "과거"는 큰 고개를 넘어야 출세의 길이 펼쳐지듯, 대치동 또한 현대 한국 사회의 교육 메카가 된 게 아닐까?, 한자 말을 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왜 대치동이지 하는 생각, 물론 지리 여건과 주변 환경 때문에 교육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됐을 것이지만 말이다. 시나브로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서당(대치동) 옆으로 이사를 해야, 공부하는 폼이 잡힐까 했던 그런 맹모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터가 좋은 곳일까?

 

 

지은이들은 대치인문독서클럽에서 책을 읽는 이들이다. 이들 중 유순덕 대치도서관장은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 클럽은 도서관이 삶의 놀이터라 생각하는 이들의 모였다. 자그만치 11년이나 됐다. 2021년 길 위의 인문학 심화과정 선정 조건에 책 출판이 있어, 간단한 소감문집을 만들려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책을 펴낸 것이다.

 

 

지은이 유순덕 관장이 말하는 대치동, 누군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꿈을 품은 채 대치동을 찾고, 또 누군가는 아이들의 교육을 마치고 대치동을 떠난다.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 나오는 남매처럼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이 찾던 행복을 찾았을까? 파랑새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혹시 허상과 같은 신기루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쪽) " 자신보다 자녀 인생의 파랑새를 찾아 주고 싶어서 대치동으로 왔다면, 아이들의 가슴속에 이미 파랑새가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들여다봐 주면 어떨까? (21쪽) 바로 이 대목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을 풀어가는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도 고대의 엘리트 교육(플라톤 등이 주장한)과 정부의 고위직 대부분을 명문대 출신으로 채우는 우리나라의 정치 시스템의 영향력이 더해져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주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를 위해 "대치동 행을 결심했다는" 거짓말

 

 

지은이 김한나 선생은 대치도서관에서 한국과 중국 역사, 중국어 강사로 활동한다.

"남들이 극성이라며 혀를 차도, 대치동 한복판까지 우리가 왜 들어왔겠어요? 다 아이를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다른 애들은 달리고 있는데 얘가 자꾸 꾀부리면서 공부도 안 하고 학원 숙제도 제대로 안 해가니 속상해 죽겠어요"라는 말, 지은이는 "어머니…. 혹시 00이가 어머니, 아버지 저를 제대로 키우고 싶으시면 대치동으로 가 주십시오라고 부탁이라도 했나요?(57쪽), 과히 이 대목은 촌철살인이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부모 혹은 보호자는 열등감, 학력, 학벌 콤플렉스(열등감)의 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나는 시대가 됐고, 부모의 재산과 노력 여하에 따라 나아가는 세상의 수준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향과 추세이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잉 일반화라고 할까?, 신문 기사에서 난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출발부터 다른 환경을 만들어줘야 부모 노릇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 사회에서 자식 문제를 들먹이면 전혀 득 될 게 없다. 잘못하면 친구 사이에도 의가 상할 정도로 민감하고도 첨예한 문제다.

 

 

대치동을 떠난 아들과 대치동에 남은 엄마, 우리들의 성장기 "내려놓으면 얻는다"

 

지은이 박동희 선생은 대치인문독서클럽에서 역사도서토론리더로 활동한다. 대치동에 왔을 때, "엄마, 나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 외국으로 가면 안 될까에서 시작된 아들의 결정, 중고, 대학을 나와 해병대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금융업계에서 열심히 잘 살아 있다는 아들, 그 어머니는 말한다. 나는 아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믿지 못했다. 나 스스로 설정한 허상들- 명문대 입학,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 그리고 이를 이루어 줄 대치동의 삶-에 아들을 끼워 넣으려고만 했을 뿐이라고…. (129쪽)

 

 

공부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각과 깨달음이 생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끌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대치동이 대한민국 교육 메카요,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가 모인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말을 물가까지는 끌고 갈 수 있어도,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듯이 어느 환경에서건 자기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 혹은 보호자는 도와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면서 내가 못 이룬 꿈들을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건 아닌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 "허영심"이 때로는 이렇게 애꿎게도 아이도 잡고 부모도 잡아먹는다.

 

오늘도 대치동으로 고고(GoGo)를 외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미래의 길을 열어가는 힘은 부모의 도움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일 뿐이라고.

 

사족, 그래도 자식 문제 앞에서만큼은 모두가 팔불출인 셈이다. 부모가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자식을 믿어주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찾아내서 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학업 중심체제의 한국에서 지와 덕과 체를 함께 갖춘 씩씩한 미래세대로….

박성수의 책 "개천의 용, 공정교육은 가능한가"(공명, 2021)도 한 번 봐둘 필요가 있겠다. 대치동 행 결정에 앞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부모교육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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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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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에는 제목 글 외에 ‘목격자는 없었다.’ ‘고마워, 할머니’ ‘언니처럼’ ‘그림 속의 남자’ 이렇게 5편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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