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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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몽골로이드 한국인 얼굴과 문화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연구자로서, 작가로서 쉼없이 활동하신 분이다. 문학과 문화 특히 문화에서는 한일문화 비교로 많은 일본사람사이에서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선생의 저작 <축소지향의 일본인>과 <하이쿠로 일본을 읽다>, 이어령식의 일본사회와 일본인에 관한 분석인데,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일어판은 일본 중고서점에가도 쉽게 눈에 띄는 책일 정도로 많이 팔렸던 책 중 하나였다. 


선생은 한·중·일의 문화에 관한 하나의 “관(觀)”을 가진 고수였다. 20대 때부터 신문에 글을 쓰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등 부지런하다. 그를 그답게 만든 것은 바로 한국문화론, “한국인 이야기”(전 4권),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전 6권) 등, 한국인의 원류와 문화를 천착해 온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은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권이다. 이를 김태완이 엮어낸 것이다. 이어령 지음, 김태완 엮음의 형식이 됐다.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의 다시금 읽어야 하는 이유


김태완은 이어령 선생의 2주기를 맞이하여 한국인의 얼굴 원형을 찾아서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와서 갈라지면서 <별의 지도>(천, 天), <땅속의 용이 울 때> (지, 地), 그리고 이 책이 인, 人에 해당하여, 천지인이 완성됐다고 말한다. 아울러 선생이 남기신 유고와 저서에 관해 말을 보태어 출간해도 좋다는 허락과 당부가 있어, 이 책을 엮었단다. 


이 책은 6부다. 1부, 위대한 한국인 얼굴의 대장정, 여기서는 경주 신라 고분과 시베리아 스키타이를 들어, 시베리아에서 내려왔음을, 남방계와 북방계의 몽골로이드 등을 다룬다. 2부 인간의 얼굴은 문화의 얼굴, 3부, 미소로 본 한국인의 얼굴(선사의 미소로 시작하여 불상의, 천년의 탈의, 장승의 각 미소를 풀어놓는다. 4부 한국 미인의 얼굴, 5부 아름다워지려는 욕망과 모험 유전자, 6부 흐르는 눈물, 빛나는 눈빛, 


외모 지향, 욕망, “애는 한국 애처럼 안 생겼어요”가 칭찬?


애는 한국 애처럼 안 생겼어요라는 말이 의미심장한 칭찬으로 자리매김한다고, 코는 오뚝하고 눈은 쌍꺼풀이 진 아이를 보고 “아이가 참 서양 애 같다”라는 말을 들으면 엄마들은 속으로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왜?, 서양을 닮고 싶어 하는 욕망인가, 이미 미디어 홍보판의 기준이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윤곽이 뚜렷하면 카메라를 잘 받아서다. 또한 코스메틱 시장, 이른바 화장품 시장을 휩쓴 한국제들, 화장품이야 원가의 수 십배의 이익이 생기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하지만, 선전 또한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유행을 타니, 쉼없이 개발하지 않으면 밀려나기도 하는 시장이다. 


얼굴, 인간의 타고난 얼굴은 완전하지 않은 불균형이다. 일종의 카오스(혼돈)인데, 이의 질서를 잡는 것이 코스모스, 카오스를 코스모스의 세계를 바꾼다는 의미가 화장, 화장품에 담겨있다. 인간의 부족함에 채워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조화다. 불상의 미소가 그렇고 탈의 미소가 그렇다. 


발상의 전환을, 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화장을 하는 것, 나를 위장하고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나를 보완하고 진실한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써 화장한다. 화장을 하는 것이 가면을 쓰듯, 나의 민얼굴을 가려 거짓된 얼굴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화장 문화 역시 달라진다. 외모에 집착하는 현상은 효율과 생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병리적 풍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진단 또한 경청할 만하다. 


화장과 성형의 평가와 그 양면성


화장을 페르소나, 가면으로 본다면, 거짓된 얼굴, 민얼굴, 쁘띠(부분) 성형이라도, 쌍꺼풀수술이라도 해서 자신감이 생긴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외모지상주의의 이중성을 눈여겨 봐야 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나를 조화롭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은 동물 세계 수컷들의 전유물이 아니라(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암컷에게 구애를 해야 하니, 어필 포인트로서 화려한 외관이 필요했다), 인간 여성 역시 그러하다. 왜 그럴까, 남성우월주의 사회,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규방의 얌전한 규수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시대가 바로 그런 사회문화적 가치관이 질서였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예뻐지고 싶은 것이 본성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그렇게 가치가 두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이어령 선생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 “나를 보완하고 진실한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써 화장”에 그 연장선에서 성형에 관한 견해도 위와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의제기가 있겠지만,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기고가 대수인가?


얼굴이 잘생겼다 못생겼다는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아무튼 이는 별론으로 해두고, 이전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 즉 인류탄생 그리고 이동 경로, 그곳 환경에 따라 진화된 인종, 백인을 뜻하는 코카소이드는 캅카스(코카서스)산맥 부근에 이르른 사람들, 이를 경계로 동, 서양을 나누기도 하지만, 이보다 먼 여정으로 시베리아 북쪽으로 올라가 바이칼호 근처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은 몽골로이드, 아예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고 그곳에 눌러앉았던 니그로이드, 자 이렇게 보면 무엇이 우월한 것인가, 또 무엇이 열등한 것인가….


선생의 한국인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연환경에 따라 각자 삶을 이어온 흔적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이다. 코가 높고 뾰족하고, 코가 낮고 마늘처럼 생겼다고.


얼굴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들 보다, 그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즉,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을 느끼게 해줄, 화장, 그리고 성형,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이 갖는 의도적 전략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 역시 필요함을 선생은 그의 글 행간에 남겨두고 있다. 상징적으로는 지금 네 얼굴이 바이칼호에 비친 몽골로이드, 신(新)몽골로이드 얼굴이야, 꽤 멋지게 생겼잖아...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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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버전
그레이스 챈 지음, 성수지 옮김 / 그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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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다는 건 뭐지


2088년, 한국식으로 말하면 1988년 서울올림픽 후 100년이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온갖 과학기술이 동원되기에, 개최국의 경제효과는 물론 관광지로서 세계인을 향한 국가마케팅의 결정판이다. 100년 후의 과학기술은 인간세의 끝자락일는지는 모르겠지만, AI는 이미 AGI단계를 넘어서 전인미답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이 소설의 무대 역시 대충 이 정도 시기일 듯싶다. 앞으로 두 세대 후의 현실일지도. 주인공 타오이, 네이빈 등. 타오이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났고, 네이빈은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지 않아, 줄기세포로 분화 등으로 얻은 신장은 자기면역결함 때문에 사용할 수 없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만큼, 인간의 몸 또한 같이 미묘한 변화가 큰 질적 차이를 가져오기도. 아무튼 작가가 의사이라서 그런지 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인드 업로딩, 아바타, 코드로 감각을 조작하는 세계, 그곳에서 여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적 존재론인가, 2009년에 나온 영화<써로게이트> 대리 혹은 대행자란 의미, 인간의 존엄성과 기계의 무한 능력을 결합하여 만든 대리 로봇(써로게이트), 혹은 아바타를 통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게 사이의 갈등과 역설,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고 본질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아바타> 시리즈 또한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영화<터 미 네이트 5>는 기계군단과 싸우는 인간해방군의 지도자 존이 기계와 융합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마인드 업로딩이다. 정신 전송(마인드 트랜스퍼, 마인드 카핑)으로 마음이 인공육체에 주입되어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신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쪽 팔이 없더라도 다리 한쪽이 없더라도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정신(마음)만으로 모든 걸 움직일 수 있으니. 영생불사의 몸, 


이런 현실과 가상, 지구 밖의 또 다른 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거나, 시간여행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왕래할 수 있는 환경이든 그 무대와 배경은 아무래도 좋다. “인간의 미래”와 “미래 인간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또 변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소설, 


“가이아”라는 가상 시뮬레이션 세계와 현실, 가이아를 만든 뉴로네티카-솜너스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개발, 아바타의 몸으로 늙거나 병들지 않는 새로운 인류의 시대를….


몸이 사라진 뒤 정신 혹은 마음만 남은 세계에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가, 


...“그녀가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이 수술실로 급하게 들어온다, 그 혼돈 속에서 바늘 하나가 네이빈의 혈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다.”(중략) 미안해요. 타오이 연결 오류가 있었어요. 그의 정신을 가이아로 이전하지 못했고, 그의 두뇌에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290쪽


아주 오래전에 느낀 공포가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다.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정신을 분리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 정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 안에 있는 톱니바퀴가 어설프게나마 손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신이 된다. 


타오이는 뇌졸중을 한 차례 겪었다. 뇌가 줄어든다. 인지기능저하가... 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던, 어머니가 불멸을 포기했던 어두운 마음이, 이제 그 그림자가 타오이에게 와 있는 걸까? 


타오이는 네이빈을 사이보그라 농담스레 부른다. 네이빈은 타오이에게 요즘 나한테 '자기야'하고 안 부르더라고... 

이들 사이에서도 타오이와 네이빈은 한계를 극복해보려 하는데...


생과 사, 현대의 난치병, 육신의 고통으로부터 과학기술은 마음을 육체 로봇으로 옮아가게 할 수는 있지만, 온전한 인간성까지 고스란히 아바타한테로 옮겨갈 수는 없을 듯, 영화<아바타>야 옮겨갔다지만. 작가는 인간성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무엇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인류세의 미래비전,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한계와 두 방향, 하나는 소름끼치게도 이천 여년전 불멸, 불사를 위해 불로초를 찾아 세상을 뒤지게 했던 진시황처럼 늙지않고 지 않는 인간을 향한 욕망, 또 하나는 인간성을 지키는 길이란 무엇인지, 아바타든 무엇이든 간에 살아있다는 감각, 픔의 고통을 느끼는 편이 낫다는 생각,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너의 모든 버전, 고통받는 현실의 인간이든, 고통없이 지내는 가상세계의 아바타이든, 때때로 어느 버전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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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 보고서 네오픽션 ON시리즈 21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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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사항 보고서


최도담 작가의 작품은 꽤 인상적이다. 이 소설<특이사항 보고서>은 유체이탈, 평면 세계, 동일 인물이 다른 세계에서 같은 시간대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상상과 현실의 이면 사회구조를 날카로운 시각은, 영화와 TV 드라마의 설정 배경이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이것들과는 구분되는 그 무엇 “결”이 다름을 느낀다. 


등장인물 서이안, 희진, 재윤, 재식, 호찬 등 지금 한 일터에서 근무하지만, 제각각의 삶의 궤적, 오늘에 이르는 배경은 다르다. 힘든 경험이라고 한 마디로 일축해버릴 수 없는 그들 삶의 틈새를 엿보는 주인공 서이안, 


이야기의 시작은 주안 고용복지센터 실업급여과에 들이닥친 복면강도 때의 출현, 강도들은 총을 든 무장 강도다. 누군가가 이안에게 총을 쐈고, 이안은 쓰러져 병원으로. 바이털에는 이상이 없는데,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를 바라보는 이안, 유체이탈이다. 


실업급여과의 창구 안팎은 "상실"시대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온 사람들, 모두 불안하고 초췌한 얼굴로, 대기표를 뽑는 키오스크 앞에 늘어선다. 창구 안쪽에서 보이는 실업급여과 풍경이다. 창구 너머 신청자의 모습과 이곳 창구를 찾게 된 이전의 사연들까지, 함께 일한 이들의 속사정까지, 유체 이탈한 이안이 무의식 속에 새겨졌던 기억을 찾아다니는데, 고단한 노동을 하는 삶,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얼마 가지 않아 그곳이 문을 닫게 된다는 사람, 부려 먹을 대로 부려 먹고 우리가 회사가 원하는 인간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리의 노숙인들이 신문지 한 장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듯, 우리 사회 노동자들은 마음에 신문 한 장을 덮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이라고, 현실의 고용복지센터 창구를 찾는 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과 신자유주의의 질서 속의 “각자도생”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평생을 열심히 살았건만, 나이 먹고 힘도 없는 데다 가진 것도 없어 그 창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라는 것만으로 그쳤다면 이 소설은 사회파 소설?, 장르 소설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이체 유탈자가 보이는 호철과의 대화를 통해 늘 굳은 표정을 했던 진실을 알게 되고, 무장 강도 사건의 트라우마를 겪던 희진의 자살 기도, 평행세계인 듯하면서도 또 차원이 달라지는. 아마도 이 소설의 몰입과 흥미는 이런 대목이 아닐까 싶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


주인공 이안은 어릴 때부터 실업급여과와의 인연?. 아니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직장에서 일하다 엄지손가락이 잘린 아버지,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어머니, 이들이 어떻게 실업급여 받는 생활의 지속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 속의 조연을 했던 이안, “복지”센터 안에는 복지가 없다. 장애인을 앞세워 기초생활 수당과 얼마 안 되는 임금을, 더 잔악하게 장애인을 고용한 회사에 쳐들어가 장애인차별이라고 인권위에 신고하겠다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수탈하면서 고급자동차 벤틀리를 타는 여인, 추악한 인간의 군상도 보여준다. 이안이 왜 총알을 맞았을까, 왜 무장 복면강도는 총을 들고 나타난 것일까, 고용복지센터 실업급여과를 은행 창구로 착각한 것을 아닐 텐데…. 여기에 숨겨진 비밀은 과연? 악마는 선한 인간의 모습을... 


몸에서 빠져나온 이안은 그간 자신이 상담했던 이들에게서. 보였던 것(현상)과 보이지 않는 것(실체 진실)의 괴리, 일부러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보게 되는데, 선한 인간을 만나는 것보다 괴물을 피하는 것이 인생이 베푸는 호의였음을 알게 된다. 실업급여과가 상징하는 것은 “상실”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새겨진 “상실”과 이 상실을 먹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가 있음을. 이것이 특이사항에 관한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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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천
이매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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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매자의 소설 <음천>의 원제는 “The Voices of Heaven”이며 영어로 쓰인 것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한글판으로 냈다. 주인공 음천(音天, 천상의, 하늘의 소리)과 남편 귀용, 그리고 그의 둘째 아내(첩) 수영, 업둥이 미나의 인생 이야기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정국의 한국, 한국 전쟁 전후, 그리고 미나의 금의환향.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기 드 모파상의<여자의 일생> 이 겹쳐오는 이 소설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여성사다. 모두들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그런 관습은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하고 다들 겉으로는 별 탈없이 그렇게 살았으니, “첩”으로 사는 여성의 일생 또한 늘 불안하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여성 모두에게 고통을 안기는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주인공은 늘 남성이었기에, 여성의 피폐해져가는 마음, 심적 고통은 사회문제로 화두가 된 적도 없었다. 


지은이는 60년대 대학 영문학과를 나와 70년에 결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갔다. 늦깎이 작가로 작품활동, 한국의 근대와 현대라 할 것도 없지만,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의 사회문화의 희생자로서의 여성을 그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음천, 수영, 미나, 그리고 이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존재인 귀용, 당대 결혼은 중매, 이른바 집안 간에 조건을 맞춰 혼사를 치렀던 게 일반적이었다. 음천은 쉽게 유산하는 체질, 집안의 대를 잇고 조상제사를 모실 사내아이도 못 낳는 여인, 15년의 혼인 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없다. 미나 역시 제 속으로 나은 자식이 아닌 업둥이다. 수영, 어린 신랑에게 소박맞고, 아버지의 일터에서 일하는 귀용의 첩으로 들어가는데, 귀용모, 음천의 시어머니 역시 고루한 습속에 메어 살기는 마찬가지. 


한 지붕 아래, 심적으로 고통받는 두 여인의 정신세계


수영이 집에 들어오고, 남편 귀용이 수영과 첫날밤을 보내는데, 갑자기, 함께 자자고, 한 남자에 여자 둘이 한 방에서. 그날 밤 음천은 심하게 아팠다. 여성으로서의 수치, 아들을 못 낳는다는 자괴감, 남편과 첩의 몸을 섞는 소리까지. 이렇게 시작된 음천과 수영의 일생, 당대의 첩은, 자식을 생산만 할 뿐, 씨받이(?) 역할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제 속으로 나은 자식이지만, 호적의 부와 모란에 수영의 이름은 들어갈 곳이 없다. 이른바 첫째 부인에 대한 질투가 일 수밖에, 음천 역시 여성의 참고 살아야 할 족쇄에 묶여, 수영에 관한 양가감정들, 전근대적인 가족, 남아선호, 여성에 관한 구조적 차별, 이러한 가치관은 경제발전으로 급성장한 한국 사회는 경제와 문화와 법과 관습의 변화는 제각각. 그렇게 수영은 자식 사남이녀는 낳고 살았다. 공문서 어디에도 흔적도 없이 여전히 미혼자로 친정 호적에 얹혀있는 유령이다. 유령의 삶, 그 자식들은 귀용의 둘째 부인으로 호적에 올리려 해도 안 된다는 말만 들었을 뿐….


남성우월주의 한국을 떠나, 금의환향? 미나, 그녀에게도 아픔의 굴레가 


미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을 몇 번이고 망설였던 이유는 뭘까, 남성우월주의 사상 때문에 여성에겐 사자굴 같았던 한국, 그녀가 한국을 떠나올 때, 아니 그 이전 부모 세대 당시의 사회와 사상들에 대해서도 좀 더 유기적, 건설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으로 귀국을 결심한 것이다. 지긋지긋한 집을 몰래 도망쳐 나왔다, 오랫동안이 흐른 후, 다시 찾은 것처럼, 중년의 미나, 꽤 성공적인 삶이다. 이 넘었다. 미국 남성을 배우자로 택한 미나는 남편이 ‘어떤 사람이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에서였다. 작은엄마 수영을 찾아가는 택시 안에서 미나는 “다시 태어나면 우리 아빠하고 또 살 것 같아요?”라고, 작은엄마 수영을 만나 왜 우리 아빠한테 오게 된 건가요. 라고 묻는다. 어릴 적 엄마 음천의 고통 기억하면서, 작은엄마는 뜻밖의 이야기를, 너는 업으로 들어왔단다고…. 한국 사회의 가난 때문에 버려진걸까, 고루한 습속 때문에 버려진 걸까... 똑똑한 미나도 한국사회에서는 여자 아이일뿐이었다. 남자아이가 아닌.


작가는 청소녀시기를 보냈던 한국 사회를 벗어나고 싶어 성인이 되자 도망치듯 미국으로, 중년이 되어 현대화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여성이란 굴레는 망령처럼 사회를 휘감고 있는데. 미 나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 구석구석에 남겨진 작가의 표현은 오랫동안 고심하고 깎고 또 깎은 장인의 작품처럼. 서술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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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논쟁에서 승리하는 법 - 설득과 타협이 통하지 않는 싸움의 시대
메흐디 하산 지음, 김인수 옮김 / 시공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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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예술, 모든 논쟁에서 승리하는 법, 


설득과 타협이 통하지 않는 싸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꽤 직설적이며 도전적이다. 지은이 메흐디 하산은 방송진행자이기도 하다. 그는 1936년 데일 카네기의 책 속에서 카네기가 논쟁은 될 수 있으면 피하라는 조언에 이의를 제기한다. 싸울 때 밟을 수 있을 때, 다시는 못 일어나게 철저하게 공격해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듯이 적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자신의 말을 상대에게 그리고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을 때, 부부 사이의 논쟁에, 토론 챔피언, 수사학의 대가, 변론술의 달인으로 이 책을 통해서 한층 실력이 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책은 4부 16장 체재다. 1부에서는 이기는 논쟁의 기본 원칙, 씨름에서 샅바를 잡는 법처럼, 어떻게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파토스와 로고스를 구분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말하고 잘 들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2부는 3의 법칙 징어의 예술과 기쉬갤럽 대응법까지 이미 검증된 논쟁 기법들을 소개하고 그 활용까지, 2부를 통해서 싱코리시스의 힘과 세벌 구조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3부,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물밑 작업으로 자신감을 쌓고, 전달력을 향상 논쟁에 필요한 자료 찾기 등의 훈련을 살펴본다. 4부는 논쟁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네 청중을 알아라


논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이를 지켜보는 청중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재판의 배심원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듯,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한 번 틀어서, 나를 알고 적을 알고 청중을 안다면, 청중을 내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싸움에서 이긴다고, 청중의 규모, 구성의 유형, 인구통계학적 특성, 연령대, 직업, 성별, 인종별로.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이기기 위해 주장을 완전히 바꾸거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전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출연했던 방송에서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요르단 출신의 영국 망명 신청자 아부 카타다는 오사마 빈 라덴의 종교적 유럽대사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다. 재판 없이 10년 동안 영국에 구금된 상태, 영국 정부는 그를 요르단으로 송환하면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송환하려는데, 두 번째 질문자가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부 카타다를 그냥 요르단으로 추방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지은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분위기는 아부 카타다가 사라지기를 원했다. 아무리 인권보고서 내용을 떠들어도 안 될 상황, 원칙을 들고나온다. 영국에서 마그나카르타라는 찬란한 자유의 역사가 있다. 영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든 자유를 왜 갑자기 포기하는가, 아부 카타다를 영국에서 재판받게 하면 될 일이라고. 영국은 인권의 나라, 위험한 사람일수록 인권을 가장 필요로 하고 법의 보호해야 하는 것이 인권의 핵심이라고, 


자, 이 대목을 보자, 지은이는 청중, TV 방송을 지켜보는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는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가, 좋게 생각하는가와는 관계없이, 접근 방식을 바꾸고,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영국 사회에서 문제가 된 사항은 인권재판소의 결정이 아부 카타다를 요르단으로 보내면 고문을 받게 된다(인권침해를 받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를 보내려 한다. 영국사람들도 그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를 쫓아내는데, 걸리는 문제는 영국이 인권보장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영국에서 재판을 받게 한다. 송환할지 말지가 아니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송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보장의 문제로. 영국인들이 자랑스레 생각하는 자유의 상징 마그나카르타를 끌어들여 공통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양념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영국민 사이에 도는 분위기를 끌어와 살짝.


청중의 집중력과 교감하기


금붕어의 집중 가능 시간 9초, 청중의 주의력은 8초, 지은이는 천편일률적인 도입보다는 강한 한 방을, 그리고 도발적인 질문, 재미있는 이야기, 이 정도는 말하기 연설하기에서 다 나온 것이기에 아이컨택, 즉 시선을 맞춰라, 뻔한 칭찬이라도, 사적인 이야기로 공감대 형성하라는 조언을 한다. 


듣기, 히어링과 리스닝, 또 리스닝에서 비판적 듣기, 공감적 듣기


듣기 기능부전 사회에서 상대방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제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이 청중들을 앞에 두고 있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청중을 의식할까, 아니면 나는 나의 전법을 고수할까, 이 책에서 말하는 히어링과 리스닝, 이를 바꿔 표현해보면 전자는 듣기(聞, 들을 문), 물리적인 과정으로 그냥 듣는다, 깊이 파고들지도 않고, 후자의 듣기(聽, 들을 청, 자세히 듣는다)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그냥 듣기(聞)조차 어려운 세상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 귀 기울여 듣는다면, 또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비판적 듣기를 하는지, 공감적 듣기를 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상대방의 말속에 공격할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면 비판적 듣기기능을 가동하여 허위주장인지, 논리적으로 잘못된 주장인지, 수긍할 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공감적 듣기, 지금, 이 순간 충실해야 하고, 상대의 눈을 맞추고,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모든 논쟁에서 승리하는 법은 그렇게 래디컬하지 않다. 다소 그런 이미지를 풍길 뿐이다. 아니, 무의식적 편견이 작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설득과 타협이 통하지 않는 싸움의 시대는 추상적인 극단적 장면일 뿐,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흐름은 상대의 질문의 본질을 파악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리스닝(聽)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비판적 혹은 공감적 듣기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라는 말이다. 협상론에서 나오는 맥락과도 같다. 여기서 생각나는 건, “조삼모사”론이다.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먹겠느냐는 질문에 선택하는 게 아니라, 왜 8개인데 7개로 줄었다는 역질문이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나름의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꼼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절실하면 절실한 만큼 해결의 방안도 보이는 것이기에, 꽤 유의미한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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