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뷰오브북스 13호
송지우 외 지음,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음 / 서울리뷰오브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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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선거


선거는 민주주의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세계의 선거결과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한 전체주의의 복고, 귀환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시진핑은 진시황을, 러시아의 푸틴은 차르를 연상하게 할 정도이니, “선거”란 결국 강제된 절차? 합법적인 권력 인정이라는 형식적 절차만을 충족시켜 주는 게 아닌가 싶다. 아울러 민주주의의 유린과 트럼프, 그 역시 수십 건의 범죄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민주주의와 선거는 전혀 같은 맥락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되면 민주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선거가 될지도, 2024년 지는 4.10 끝난 22대 국회의원선거, “야대여소”의 결과만 두고 보자면 선거는 민주주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 듯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거대 양당 속에 갇힌 진보진영의 애잔한 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극우냐 우파냐 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 이미 진보성향의 정당은 지리멸렬, 축소를 거쳐 이제 정치무대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서리북(서울리뷰오브북스)의 2024년 봄호 특집 “민주주의와 선거”에 실린 5편의 서평, 송지우의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민주주의에 반대한다>(제이슨 브레넌, 아라크네, 2023), 유정훈의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 2018), 하상웅의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정희옥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에서 프랜시스 후쿠아먀의 <존중받지 못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그리고 지역 정당의 설립 담론을 정리한 윤현식의 <지역 정당>의 서평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을 장석준이 썼다.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늘 해묵은 그러면서도 새로운 주제는 정치개혁이다. 거대 양당제도의 개편을 요구하는 여러 담론은 번번이 국회의 담을 넘지 못하고 끝났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도도 군소정당의 난립은 정치 불안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한반도의 근본 모순인 분단이 늘 상수로 자리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까지 이어지는 정치구조의 변혁은 어떻게. 아무튼, 거대 양당의 독점구조를 어떻게 깰 것인지를 생각게 하는 장석준의 서평에 눈길이 간다. 이 번 22대 국회의원선거의 결과에서도 보이듯, 


송지우의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했는가“


지은이 제이슨 브레넌은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서 “우리는 더 유능한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문제 제기의 핵심은 잘못된 지식(정보)을 갖춘 유권자가 비합리적인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말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한국의 윤석열 같은 현재 상식(뭐 고정관념이라 해도 좋다)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그가 이런 현상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문제 제기와 맞아떨어진다. 본디 민주주의에 관한 이해의 관점은 민주주의는 갈등의 연속이며,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생물이다. 끊임없이 변화한다. 


브레넌 민주주의 이론에는 악마의 옹호자-다수가 동의하는 의견에 반대하면서 더 깊이 있는 토론을 끌어내는 사람-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2016년에 출간된 이 책은 <투표 윤리론>(2011),<강제 투표 찬반론>(2014)과 함께 3부작을 이루는 마지막 책이며, <투표 윤리론>에서 시민 미덕을 행사하는 제일 나은 방법은 정치 밖에 있으며, 시민 대부분은 투표권이 있어도 투표를 자제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제 투표 찬반론>에서는 강제 투표가 정당하지 않다고 한다. 이들 주장의 연속성 상에서 이 책의 논의는 민주주의는 완성체가 아님을 전제로 한다. 


에피스토크라시, ‘지식인에 의한 통치’는 하나의 대안일 뿐


이 책에서는 브레넌은 민주주의 대안으로 “에피스토크라시”, 즉 ‘지식인에 의한 통치’을 주장하지만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피스토크라시는 플라톤의 철인통치(철학자에 의한 통치)를 연상케 한다. 에피스토크라시 형태의 정부는 공화주의 대의 정부의 정상적인 특징을 대체로 유지한다. 정치 권력은 소수의 집중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따라서 힘은 분산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 물론 법적으로 에피스토크라시는 정치 권력을 균등하게 분배하지 않는다. 법에 따라 지식을 갖춘 유능한 시민은 상대적으로 덜 유능하고 지식이 부족한 시민보다 약간 더 많은 정치적 힘을 갖는다고.


브레넌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정의롭지 않기에 더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지우의 서평은 브레넌의 이 책이 사회과학적 방법과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논리 비약과 4~6장 사이의 주장점 가운데는 서로 충돌하며 모순마저 보인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에피스토크라시는 어디까지나 대안이라 평가하며, 여기에 가해진 다른 이들의 비판에 관한 반비판을 하기도, 


미국의 민주주의와 선거- 인종차별이 근원?


서평자 유정훈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2018년에 쓰여진 점을 전제로 두 정치학자는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 직후,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 후, 이 책을 썼는데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민주주의 사회에 등장한 독재자들의 공통된 특성을 분석하고, 해당 국가에서 어떤 과정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됐는지를 살핀다. 


미국의 모든 문제는 인종차별로 통한다고, 즉 미국 민주주의 규범은 인종차별에 의존해왔다고, 1965년 미국 사회는 완전히 민주화됐다고... 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인데, 실제 미국의 사고, 불법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하지만 현실은 어디나 비슷하다. 한국도 유럽 여러 국가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상을 추적하면서 이와 같은 결론을... 그 밖에 흥미로운 내용으로 후쿠시마의 “존중받지 못한 자들의 정치학”이 있다. 일독을 권하면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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