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작정하고 쓰면 이런 글도 쓸 수 있거든? 히가시노 게이고 님 나이스샷.

 

* 움베르트 에코, 프라하의 묘지 - 지적 만족 또는 지적 허영을 원하는 자, 움베르트 에코를 읽으라.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 심하게 난해했고 머리칼은 수난당했지만. 밀란 쿤데라를 버릴수야.

 

* 이기호, 김 박사는 누구인가? - 모두가 입을 모아 추천하는데는 이유가 있지요. 사랑받는데도 까닭이 있지요.

 

* 공선옥,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 거기에서, 그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작가가 있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나는 더 이상 믿지 못한다. 정확히는 믿을 수가 없다. 철저한 경험론자인 스스로의 근거에 의거해, 나는 내가 자라거나 변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신간평가단을 처음으로 했을 땐 그저 신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혹했고 그러다 보니 '평가'라는 어휘와 무상제공된 책과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방황했다. 제깟게 뭐라고 평가 따위를 한단 말인가. 제깟게 뭐라고 심지어 평가 절하를 한단 말인가. 참을 수 없는 조소. 객관성의 면에서도 알라딘과 출판사의 이득 창출에 대해서도 의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어쩌자고 또 이 자리에 발을 들여놓았던가. 좋은 순간은 언제나 나쁜 순간보다 짧게 기억되고, 좋은 일은 거의 나쁜 일보다 쉽게 지워진다. 는 속성에 의거해 나름대로의 골머리를 썩히며 어찌어찌 시간이 갔다. 여전히. 어떤 면에서도 확신이나 객관성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첨언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신간평가단의 매혹은, 아마도 추천 도서를 작성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면밀히 신간도서를 뒤질 때 발생한다. 평소라면 무심코 넘겼을, 혹은 구태여 뒤지지 않았을 것을. 그렇게 기억해둔, 추천도서에 쓰지 않은, 혹은 뽑히지 않은, 좋은 책들을 생각해보면 꽤 많이 만났다. 두 번째 매혹은 보통의 독자로서 고르거나 읽지 않았을, 판타스틱 어메이징한 책들을 만난다는 점에 있다. 이기호 작가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나 늘 스치듯 안녕했더랬다(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만날 듯 말 듯 정작 인연은 한참 후에 닿는 멜로 드라마 주인공들 같은 우연 혹은 필연). 처음 만나는 글이다보니 편견이나 과신, 과민도 없이 순수하게 쪽 들이킨 기분이다. 게다가 그 질감이 꽤나 좋다면 젤라틴이라도 만지는 것 마냥 묘하게 불쾌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 밖에.

 

늘 마감을 아슬아슬하게 지킨데다 마지막 도서,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비공개로 저장해두고 고치고 고치다 다 지우고 기묘한 글이 되어 남았다. 슬프도다. 글 솜씨란 잘도 늘지도 않는건가. 게으름은 퍽도 나아지지도 않는건가. 아니면 나란 사람은 본디 질긴건가. 어떤 이유이든 또 이렇게 인간의 변화에 대해, 불신이 깊어진다. 여름도 깊어진다.

 

 

 

 

* 함께 봄, 여름을 통과한 신간평가단 모든 분들과 특히 고생하셨을 파트장님, 알라딘 담당자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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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7-0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신간평가단에 한 번 발을 들여놓았던 사람이 다시는 안해! 하다가 또 다시 하는 이유는 그만두고 나서 다음 기수가 받는 책을 보니 배가 아파서가 아닐까요..? (물론 나만 그러는 것 같기도...)

Shining 2013-07-09 00:46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평가단 안 할 땐 전혀 안 들어가보기 때문에 사실 어떤 책이 선정된지도 잘 모르는데 제가 읽으려던 책 소개 열면 항상 페이퍼 꽁지에 신간평가단 도서라는 알림글이.... 그럴 때 촘 부러운 것 같고, 사실 더 큰 이유는 강제성이 있으면 글 좀 자주 쓸까 싶은 꼼수와 희망. 그런데 번번이 무너져서=_= 폐 끼치는 건 아닌가 두렵네요(웃음). 끝내니까 왠지 마음은 후련하네요 :-^
 

 

 

 

  

 

 

 

처음, 엄청나게 지루한 소설이라며 원래 고전이란 지루한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눌렀다. 개츠비는 머저리 속물이었고 '위대한' 이란 수식어는 반어법, 이라고 마치 수능시험 기출문제 답을 외우듯 기억했다. 두 번째 읽었을 때, 그는 여전히 머저리 속물이었지만 그의 사랑이 과연 그렇게까지 조롱받아 마땅한 일이었는가를 생각한다. 사랑 할 만한 사람을 못 알아봤다는 면에서 그는 바보스럽지만 우리 중 누가 사랑할만한 사람을 따져본 다음 사랑을 시작한단 말인가. 데이지나 톰, 심지어 닉이나 조던 역시 개츠비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처럼 느껴져 '위대하다'는 수식어는 과했지만 어떤 면에선 그럴지도 모른다고 납득했다. 세 번째 읽었을 때는 시대와 작법이 보였다. 또는 보려고 노력했다. 재즈시대, 1925년 출간, 금주법 그럼에도 여기저기 퍼져있는 반쯤 덜 깬 혹은 반쯤 취한 알코올 기운의 글. 젤다와 피츠제럴드, 몸의 외도와 마음의 외출. 여기저기 널부러진 듯 느껴진 인물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배치, 자동차 사고라는 초반의 복선과 후반부의 사건. 20세기 최고의 미국소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두 팔을 어두운 바다 쪽으로 뻗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분명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바다 쪽을 바라보았지만, 저 멀리에는 부두 끝에 비추는 것 같은 자그마한 초록 불빛 말곤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개츠비를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수선한 어둠 속에 다시 홀로 남겨졌다.

 

겨울날 미술관을 가는 길 지하철에서 두 번째 읽었다. 꽤 추운 날씨였고 그러나 햇살이 해사한 날이어서 묘하게 포근하게도 느껴지는 날. 아마도 2월이었을 것이다. 외곽으로 빠지는 지하철 한 량 안에는 겨우 열댓명의 사람들이 띄엄 띄엄 앉아 데면데면하게 시선을 피하며 몸을 덜컹였다. 무덤덤하게 소설에만 집중하다 마침내 마지막 문단에 이르렀을 때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왔고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얼굴로 크림색 햇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무표정한 인형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일순 표정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아색 빛이 몸으로 닿아 그 순간 후, 입김을 넣어준 것처럼. 마치 어릴 적 하고 놀던 거울놀이처럼 반딱거리는 햇살에 눈이 찔렸을 때, 결코 이 감각을 잊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 들었다. 예감과도 다르고 예상과도 다른, 확신보다는 부드럽고 느낌보다는 확고한, 예측. 그렇게 찾아간 모딜리아니의 전시에서 목이 길고 눈동자가 없는 여인들을 바라보다 흉골에서 목덜미까지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뭔가가 느껴졌다. 발칵 뜨겁기도 하고 부릅 차갑기도 한 뭔가가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처럼 울렁거렸다. 슬픔이 그토록 육체적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개츠비를 비도덕한 속물이라고 비웃을 때, 확신이 가득했다. 세상은 인과因果로 이루어진 곳이고 선과 악은 명백히 떼어낼 수 있는 것이며 행幸과 불행 또한 행위로 인한 결과라고 믿었다. 사랑할만한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한 개츠비, 고작 사랑 때문에 자신의 삶을 버린 개츠비, 사랑을 잃은 직후에도 깨닫지 못하는 개츠비는 한심한 바보였다. 고작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관장으로 삶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사랑도 뜻도 감정도 생각도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그 겨울, 나는 개츠비에 도달해있었다. 알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그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졌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만큼 확답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났다. 인과는 모호해졌다. 어떤 것은 원인만 있고 때로는 결과만 생겼다. 원인과 결과는 대개 짝이 맞지 않았고 원인이 세 가지고 결과는 한 가지가 되는가하면 원인은 하나인데 결과는 열 가지가 넘게 생겼다. 책임 소지도 불분명해졌다. 일을 벌인 후 책임이 사라지기도 했고 책임이 아닌 결과만 안게 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불행했고 때로는 그럭저럭 행복했다. 행과 불행은 글자 그대로 다행과 다행이 아님일 뿐 거기엔 어떠한 소치도 없었다. 믿음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쉬웠고 불신이란 말은 무던히 어려웠다. 감정에도 뜻이 없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도 하고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감정에 무릎 꿇려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놀랄만한 광기와 두려울만한 선의. 대체로 사랑이 증오보다 막막했다.

 

거기까지. 겪고 보고 듣고. 인생에 있어 단언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삶에는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영원불멸의 진리 뿐이었다. 터덜터덜 지쳐 개츠비를 읽고 모딜리아니의 여인들 앞에 서서 가시적인 환멸에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할 따름이었다.

 

그 미소는 영원히 변치 않을, 평생 네다섯 번이나 볼까 싶은 아주 보기 드문 미소였다. 영원한 세계를 잠시 보았거나 보는 듯한 미소,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하겠다는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어하는 만큼 당신을 이해하며, 당신이 믿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 자신을 믿어 주며, 당신이 전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인상을 정확히 받았다고 확인해 주는 그런 미소였다.

 

선로가 구부러져 이제 태양에서 점점 멀어졌다. 태양은 낮게 기울면서 그녀가 숨 쉬던, 저 멀리 사라지는 도시를 축복하듯 햇빛을 뿌려 대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줄기 바람을 잡으려는 듯, 그녀 덕분에 아름다웠던 도시를 한 조각이라도 구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눈물로 뿌예진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쳐 버렸고, 그는 그 곳에서 가장 싱그럽고 가장 근사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 다음에야. 시대가 보이고 인물이 사건이 느껴졌다. 피츠제럴드가 젤다를 의뭉스럽게 그려낸 것은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에서만은 아니다. 데이지 역시 젤다의 어떤 부분, 부부의 이야기와 가닿아있다. 개츠비가 느꼈을 절망과 수치는 피츠제럴드의 것이기도 하다(혹은 독자에게 그렇게 느껴지도록 그려져있다). 사랑을 이루고 혼인을 한 상태에서 쓴 이 글이, 이 글에서 진하게 묻어 나오는 아득한 향수鄕愁와 허무와 조락의 기운을 읽는 것이 젤다에게도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을까.

 

 

파티, 술, 춤, 음악, 그 모든 것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갈망.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을 모르고 도취된 사람들. 갑자기 부자가 되어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를 모른 채 돈을 원하고 돈을 증오하던 사람들. 땅에 떨어진 도덕심, 누구도 허리를 굽혀 줍지 않으려는 해이. 포크너, 헤밍웨이와는 다른 식으로 피츠제럴드는 그 나름대로의 세상을 관망한다.

 

부산스러운 인물들의 배열은 종국에 한 지점에서 만나고, 톰의 과거 사건(메이드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왜건을 박아 낸 사고)과 개츠비의 저택을 나오며 닉 캐러웨이가 마주한 바퀴가 빠지고 술 취한 운전자의 이야기, 는 파국의 정점에서 화살표를 그으며 이어진다. 그냥 고급 셔츠, 가 아니라 영국제 셔츠, 를 개츠비가 던지고 꽃잎처럼 떨어지는 셔츠들 속에서 데이지는 울음을 터뜨린다. 강을 하나에 둔 채 한쪽은 태생적인 부자, 한쪽은 신흥부자. 톰과 데이지가 머무는 뉴욕. 그 모든 것들이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마치 해변가의 모래알처럼 퍼져있다 한 차례 파도가 지나가자 모두 한 곳으로 모인다. 마치, 거기 있어 마땅한, 이 조합을 위해 파도를 불러오기라도 한 듯.

 

 

그리고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래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선착장 끝에서 빛나는 초록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로움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까지 먼 길을 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틀림없이 손에 잡힐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 꿈이 그가 지나온 곳, 도시 너머의 광막한 어둠 속 어딘가, 밤하늘 아래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들이 펼쳐진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And as I sat there brooding on the old, unknown world, I thought of Gatsby's wonder when he first picked out the green light at the end of Daisy's dock. He had come a logn way to this blue lawn, and his dream must have seemed so close that he could hardly fail to grasp it. He did not know that it was already behind him, somewhere back in that vast obscurity beyond the city, where the dark fields of the republic rolled on under the night.

 

「겨울꿈」,「다시 찾아온 바빌론」,「분별 있는 일」등의 단편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와 『밤은 부드러워』에서도 피츠제럴드의 글에는 조락凋落의 냄새가 난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토록 갈망하던 것을 꿈꾸면서 그것을 잃은 후에 대해 쓴다. 향락에 대해 써내려가면서도 쇠락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꿈.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불행한 그것은 꿈. 피츠제럴드의 글에서는 아직 잡히지 않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동시적인 요원한 절망이 느껴진다.

 

"데이지의 목소리는"이라는 말에 "돈 냄새가 나지"대꾸를 한, 영국제 셔츠를 던져 그녀의 환심을 사려한 행동만으로도. 개츠비는 자신이 사랑한 혹은 가지려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오로지 녹색 불빛만을 향해. 그가 품었을 마음의 깊이와 어떤 광의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녹색 불빛에 닿기 위해 그가 버렸던 것들, 잃거나 잊었던 것들, 그래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짐작해본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영역이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는 것도 사랑의 속성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이 반드시 위대하지 않은 것만도 아닐 것이다.

 

 

 

 

 

 

 

 

 

 

 

 

 

* 발췌 된 문장들은 열린책들의 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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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05-28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의 한쪽 면을 봤다고 해서 달을 보지 않았다고, 반드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남자의 사랑,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소설 작법. 어떤 시각으로든 이 책은 제법 읽을만하다. 원래 쓰려던 건 영화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는데 쓰다보니 영화 혹평만 하고 있어 영화 이야기는 쏙 빼고. 아마 영화쪽 페이퍼는 또 나오려나. 아니려나.

다크아이즈 2013-05-2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원어로도 읽으셨군요.
슴슴한 소설이긴 한데 확실히 묘사력은 빼어나더군요.
하지만 일반 독자(예를 들면 대학 초년 내 아들)들은 문장력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보진 않으니 지겹게 느껴지는 거지요.
게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위대한 꼴을 보여주지 않는 개츠비 때문에 화딱지 날 만할 거구요.

그나저나 영화까지 넘 섬세하게 보셨구나. 혹평하신 걸 보니.
책은 책이고, 영환 바즈 루어만의 영화다, 생각하고 보니 슴슴했던 책에 비해 영화는 의도한 바대로 되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가 책의 분위기를 그대로 따랐다면(이전 영화는 그랬어요. 그래서 지겹고 갑갑한) 생각만 해도 ㅠ
영화 리뷰 꼭 올려 주시어요. 기다릴게요.^^*

Shining 2013-05-29 11:33   좋아요 0 | URL
하하. 원서가 있어서 들춰보긴 했는데 다 읽진 않았어요 팜님^^ 저 구절은 너무 유명한 구절이고,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이라 대충은 외우고 있고, 다른 분들께도 원어의 느낌을 전하고 싶어서 적어봤습니다 :)

아마도, 저는 페이퍼에서 말한 두 번째 읽었을 때, 스스로가 그 텍스트를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느끼던 오만함의 좌절, 강렬한 감정에 휘청대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때가 아니었음 그렇게까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하는 생각은 들어요(웃음).

전 이전 영화들을 보지 못했고 사실 소설로도 충분한 텍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캐리 멀리건의 데이지가 너무 궁금해서ㅎㅎ(...털썩) 글이 너무 길어져서 영화 부분을 과감히 삭제했더니 거의 페이퍼 하나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살 붙여서 지금 쓰고 있어요. 곧 나옵니다, 영화 페이퍼!(...광고하기, 쿡쿡)

아이리시스 2013-05-3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기시작을 했는데 결국 같은 부분에서 막히고 이게 왜,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또 마치지 못하고 뭣땜에 Shining님은 이런 좋은 페이퍼를 썼나 원망하고, 뭐 그렇게 돼요. 영화랑 뭐가 다른지 볼래요, 얼른 써줘요!

Shining 2013-06-04 11:31   좋아요 0 | URL
어떤 부분에서 막혔는데요? 난 그게 더 궁금한데+_+ 에둘러 썼지만, 이 책, 감정 때문에 덜컹이던 때 읽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뭐랄까, 그 때가 아니었어도 좋아했겠지만 그때였기에 더더 좋은 책? 전 피츠제럴드 모든 문장의 골 사이에 있는 조락과 회한의 정서가 너무(정말, 매우, 엄청 말고 너무ㅋ) 좋아요. 얼른 썼어요! (씨익)
 

 

 

 

 

도통 믿기지 않은 것. 머리 혹은 기억력. 몇 십번을 외운 것이 처음같이 낯설 때, 불신감은 확고해진다.

보다 명확히 믿는 것. 몸 혹은 적응력. 몸이 한 일은 제법 오래 간다. 어릴 때 타다가 안 타던 자전거도 곧바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멀어졌던 코바늘도 몇 번 헤매다보면 기억이 나고, 레시피는 폐지가 된지 오래여도 몸이 절로 움직이는 일처럼. 더욱이 인간의 적응력에 대해 나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다. 아침잠 오죽 많고 저혈압에 서서도 잘 자고 3초 만에 잠 드는 내가 지각 없이 산다는 것, 같은 실례를 통해. 인간이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스스로에게 관대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는 것을 나의 잠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몇 주 정도. 글 쓰는 데 영 애를 먹었다. 짐작가는 이유는 있다. 신체적 피곤, 시간의 물리적 고갈, 저하된 집중력, 사기 충천 실패 등등. 아니면 어떤 이유도 없었을지도. 좋다, 는 감정에 열 가지 근거를 붙이는 것처럼 싫다, 는 감정에 열 가지 변명을 할 뿐일지도. 사실 글 쓰기가 쉬웠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짧은 메일, 회신, 메시지 등을 포함해서 일말의 망설임 없는 글은 없었다. 모두 매번 새롭게 어려웠지. 어쨌건 겨우겨우, 몰아서 숙제 하듯 써야 할 리뷰만 해치우다 보니 멋쩍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지금은, 서두를 어떻게 떼야 할지도 막막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침, 벌써 사라지는 목련꽃들을 바라보다 문득 스티븐 킹의 말이 떠올랐다. 어쨌든 같은 시간에 같은 리듬을 갖고 쉼없이 앉아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창 하나 없는 공간에서도 몇 시간씩 앉아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건 레이먼드 챈들러였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마라톤에 실패한 이유는 하나 뿐이라고 했던 것. 연습량 부족, 연습량 부족, 연습량 부족. 네, 연습량 부족이네요. 일정한 템포로 일정한 자극을 가하는 것. 그건 글쓰기에도 마찬가지. 글쓰기도 머리나 기억력을 믿지 말고 몸에 알려줘야하는구나. 그래서 조심스레 시동을 걸어보는 글쓰기. 이른바 빌린 책, 산 책, 도착한 음반(길다).

 

 

 

  고립된 산장이나 무인도에서 발생한 사건이 '공포'라는 단순하고 흉폭한 감정에 휘둘리게 한다면 비행기나 열차에서 일어난 사건은 '추리'에 직접적으로 접근한다. 그런 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의외로 다양성 있게 장소(내지는 방식)를 물색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에서의 살인(『구름 속의 죽음』), 기차에서의 사건(『블루 트레인의 수수께끼』, 『패팅턴발 4시 50분』), 배(『나일 강의 죽음』), 고립된 공간의 한정된 인물(『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으로 떠오르는 대표작들이 있는 걸 보면( 백퍼센트 심리전 『테이블 위의 카드』나 기억만으로 추리하는 『코끼리는 기억한다』까지!). 더욱이 자타공인 최고의 대표작인 『오리엔트 특급살인』 은 열차 칸, 눈 속의 고립, 우연인 척 했던 필연. 모든 게 기막히게 믹스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크리스티 못지 않게 칭찬해주고픈, 사실 크리스티보다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고루 높은 사람은 마쓰모토 세이초다. 복 받을 출판사, 모비딕에서 세이초 전집을 출간해주셔서 덕분에 은혜롭게 종종 쪼아먹고 있는데 실망시키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점과 선, 은 세이초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져있는데 과연. 열차시간표를 이용한 사건이라니. 범인이 첫장부터 알겠는데도 끝까지 재미있다니. 이게 무려 1957년 작품이다. 세이초에게 빚지지 않은 자, 없으리라. 당신은 최고입니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듣는다. 그 중 이미 읽은 책도 몇 권 있고 읽으려고 했던 책도 있었지만 덕분에 읽었던 책 중 최고의 수혜는 이 책.

 

이동진 씨와 김중혁 작가가 했던 이 책에 대한 거의 모든 발언에 동의하는 바, 특히 와닿았던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저자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이 교접되는 부분 때문이다. 근원적 니힐리즘, 영장류에 대한 혐오와 환멸, 강력한 힘(물리적 힘, 을 넘어선 초인적 정신력과 의지)의 경도, 위엄과 자존감에 대한 골몰, 맹수류 특유의 눈빛에서 읽어내는 야생성과 침착함의 경탄 등. 특히 잭 런던의 글을 감명깊게 읽었고 늑대에 대한 로망을 키운 기억까지. 저자의 화려한 이력에 나는 비할 바 아니지만(쳇) 가치관과 사고관이 유사해 감흥이 컸던 책. 브레닌(늑대)를 지나치게 미화시켰다는 평도 이해가 가지만, 동물들이 갖고 있는 어떤 숭고함에 반한 기억에  있기에, 특히 저자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서 -주관적으로는- 브레닌에 대해 찬탄하는 것도 공감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상당히 잘 쓴 철학서라고도 생각하는데, 문장과 구성도 좋고 번역도 무척 좋다. 문득 뭉클해지는 문학적 소양도 높은데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는 자제심이 있고 독자를 무시해서 마구 가르치려 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과대평가해 개념에 대한 설명을 넘겨짚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 또한 큰 장점 중 하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절반 채 못 읽고 사기러 결정했다. 특히 저자가 언급하는 철학들이 이론적이기보단 평범한 사람들도 한 번쯤 골몰할 만한 주제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MD가 권하는 그저 좋아서 하는 이 달의 추천 형식을 빌리자면 이런 식.

 

이런 분께 추천 : 개 좋아요(늑대지 개 아닙니다) / 시크하고 똑똑한 선생님 최고지요 / 영장류에 대한 고뇌와 환멸을 가진 분

이런 분께 비추 : 개 싫어요(늑대지 개 아닙니다) / 최고여봤자 시크하고 똑똑한 쌤  / 영장류가 뭔데요?

 

 

 

  정확히는 싸게 산 책들. 전자는 비슷한 호오를 가진 리뷰어의 호평에 관심이 갔고 후자는 얼떨결에 발견해 사게 된 중고서점에서 데려온 친구들.

 

『신성한 봄』은 몹시 호불호가 갈릴 책. 사소설이냐 소설이냐 에세이냐 정체가 혼동되는 것도 그렇지만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나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는 동의되어야만 책장이 나갈 듯하다. 무척 단호하고 유니크한 화자의 가치관과 구성 면에서 매력을 느끼실 분들에게만 각별히 다가올 책. 삶의 연륜과 글의 경륜이 바람직하게 더해질 결과물.

 

을유문화사의 평전 시리즈는 기획면에서도 완성도나 인물 선정 면에서도 완벽하지만 너무 두꺼워. 베고 자면 목주름 생길 것만 같은 두께. 거의 새 책과 다름 없는 상태의 이 책이 꽂힌 걸 보고 얼른 집어왔다. 사실, 평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과 작가는(변용하자면 감독과 영화는, 배우와 연기는 등등) 분리해서 판단해야 함을 알지만 잘 되지 않아서.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면 가끔 그의 이상한 결혼의 결과가 떠오르고, 헤밍웨이의 글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옹졸하고 졸렬한 나르시시즘에 짜증나고, 미시마 유키오의 글은 무척 좋아하는데 그의 극우적 말과 행동 때문에 가끔 헷갈려서. 아는데 아는데 안되서. 아직 읽지 않았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어떤 삶을 살았나, 보다 실망하면 어떡하지, 싶은 마음.  

 

 

 

   벚꽃이 흐드러지는 절경을 보니 작년에 갔었던 꽃구경이 생각난다. 처참한 상황이었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했는데 굳이 가자고 우기는 친구를 따라 털레털레 따라갔던 길. 인파는 꽃잎 수만큼 많았고 맥주는 달았고 밤은 추웠는데. 고작 그런 기억인 줄 알았는데. 일 년이 지나서야 문득 좋은 기억이었다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너덜한 몸과 마음으로도 가길 잘했었구나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새삼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해봤자 어차피 꽃은 피고 지고. 방구석에 앉아 초조해한다고 일이 더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까, 언제고 만날 수 있으니까, 해봤자 소용이 없더라. 꽃구경 단풍구경 며칠이면 지나가는 딱 그 시간을 내고, 누군가 아프거나 힘든 후에야 후회하지 말고 생각날 때 바로 연락하고 고마운 거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한 거 덜 미안하도록 사는게 옳겠다 싶다. 나중에, 언젠가, 돈 벌어서(혹은 모아서), 몇 살이 되기 전에, 내년에 등등 말고. 요새 주변인들의 병환이나 사건 사고 등에 대해 들으며 더욱 느낀다.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는 걸.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한살씩 더 먹을수록 철 드는 시간에 민감해진다. 모든 계절이 그렇기야 하지만 특히 4월과 10월은 땅을 보며 걷기엔 너무 아까운 달. 15도 쯤 고개를 위로 들고 피고 지는 꽃의 변화와 조금씩 길어지는 해의 시간에 주의를 기울일 것. 이런 하늘쯤에야 언제고 볼 수 있다며 오만하게 자만하지 말 것. 이라고 결심하는 시간을 보내는 지금 가을방학의 새 앨범은 배경음악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아니, 작고 사소한 것일수록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때 하고 살 것. 예컨대 잊지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과 그 때 가을방학의 음악을 듣는 일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깊게 단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 하고 실례를 보여가며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 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기는 하지만)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간다. '이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무척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쪽이 순서만 올바르게 밟아 나가면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습을 며칠 쉬어버리면, "어렵쇼, 이제 그렇게까지 힘 쓸 필요는 없어졌구나. 아, 잘 됐다" 하고 자동적으로 판단하여 한계치를 떨어뜨려 나간다. 근육이라는 것도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 들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 나간다. 그리고 일단 해제된 기억을 다시 입력할 경우에는, 또 한 번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야 한다. 물론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는 필요하다. 그러나 레이스를 눈앞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는, 근육에게 착실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건 말이야, 애들 장난이 아니야"라고 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펑크가 나지는 않을 정도로, 그러나 흔들림 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두어야 한다. 이때의 전략은 경험을 많이 쌓은 러너라면 모두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요상한 글이 나와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말고 이 자리에 앉아있기, 라고 결심하고 쓰니 또 글이 나오긴 나온다. 두서는 없고 행간도 지저분하고 당최 정체는 모를 글이어도 어쨌거나 스스로에게만 집중한 시간의 결과물.

 

무라카미 하루키 옹 말씀에 의하면 나는 실례를 보여서 설득하고 서서히 힘을 들여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가야하는 셈이다. 그것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글쓰기라는 일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으로선 그 외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제 경고는 했으니 다음 번에는 "이건 말이야, 애들 장난이 아니야."라고 말해줘야지. 펑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흔들림 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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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4-12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답글 달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님 심정 바로 그것이랍니다.
<신체적 피곤, 시간의 물리적 고갈, 저하된 집중력, 사기 충천 실패>
이런 것 때문에 쓰기도 안 되고, 자책만 하고 그러다 앓아 눕고....
글 고수이신 샤이닝 님도 그렇다니 위안이 되면서도 어쩐지 글 쓰는 자의 짠한 숙명 같은 게ㅠㅠ

Shining 2013-04-15 11:44   좋아요 0 | URL
사실, 글 쓰는 게 '쉽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팜님. 그렇다면 보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려는 제 자신의 의지랄까 고집이랄까 그런거군, 싶기도 하구요(흑).
누가 쓰라고 종용하지도 않고 글 쓴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하하) 내가 뭐하는 거람 싶다가도
결국 (언제가 됐든 어떤 글이 되든) 쓰게 되는, 그게 글쓰기라는 걸까요? :-)

2013-04-13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5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E-9 2013-04-15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은 거의 적과의 동침 같아요. 요즘은 쓰기도 힘들고 쓰면서도 다른 편하고 좋은 일들도 많은데 내가 왜 굳이 이렇게 사서 고생하고 있나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되네요 ㅠ ㅠ Shining님의 '앉아 있기'란 글을 읽다보니 '글은 원래 엉덩이로 쓰는 거다'라고 말했던 스티븐 킹의 말도 생각나네요. 사실 저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말입니다. 쓰다가 달아나고 싶을 때 엉덩이로 쓰는거다 엉덩이로 쓰는거다 몇 번이나 주문처럼 외우곤 했던지...^ ^

올리신 책 중에 읽은 거 저랑 두 권이 겹치네요. '점과 선'은 따로 말할 것도 없고 '철학자와 늑대' 저 역시 정말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흡인력과 깊이가 그토록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을 줄은 읽기 전엔 미처 몰랐어요. 어찌나 빠져 읽었던지 지하철을 잘못 타버리기도 했죠^ ^; 책을 읽고 작가의 페이스 북이었는지 블로그 였는지 오래되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브레넨의 추모 글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네요. 문장이 좋았는데 그만 까먹어 버렸어요 ㅠ ㅠ

내일 부터 새로이 한 주가 시작되네요. 이번 주는 더없이 좋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하기를 바랄게요.^ ^


Shining 2013-04-15 12: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참 이상한 거예요, 글쓰기란 게. 이거 한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업도 아니면서. 스스로를 쥐어뜯어가면서 하고 있다는게 말이죠(웃음). 결국 글쓰기란 자기 자신의 의한 자신을 위한 채찍질이란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요즘입니다ㅠ

저는 책 읽다가 약속 장소를 지나치거나 아파트 옆 라인으로 들어가서 졸지에 도둑 될 뻔한 적도 있었어요(하하). 사실 페이퍼에 썼다 지웠는데, 원래 갖고 다니면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지하철 안에서 읽기 좋은, 이라고 쓰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그런 식으로 자주 갖고 다니는 책 몇 권을 쓰려다 그냥 지웠죠^^

넵. 헤르메스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 당연히 좋은 주가 되겠죠? :^ 헤르메스님도 좋은 일 많은 일주일 보내세요 :)

2013-04-16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3-04-2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성한 봄, 읽으려고 했는데, 좋을 것 같았는데, 역시!

<철학자와 늑대> 신문에서 보고는, 그때 막 철수씨(늑대소년)를 보고난 이후로, 늑대가 남자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워낙 개와 강아지를 사랑하기도 하고. 응?(늑대지, 개 아닙니다..)

아..어제는 <생존자>를, 그것만은 아니고, 다른것들이랑 같이, 주문했어요.
저는 그게 이창래의 생존자인줄 알았는데, 수용소의 생존자라서, 놀라면서 들었어요.
이상하긴했어요, 목록만 쓱- 봤는데, 문학-비문학 번갈아한댔는데, 아닌거예요.
어쨌거나 오늘 올거예요, 아마도.
촌스럽게 책샀다고 자랑하고있어..ㅋㄷㅋㄷ

Shining 2013-04-27 16:37   좋아요 0 | URL
전 그 소설 좋았는대 사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소설은 아닌 것 같아요. 하하.

하하. 그 늑대와 그 늑대를 연결시키시다니....

아, 팟캐스트 얘기하는거죠 지금? 이창래 씨의 생존자도 읽고 싶긴해요. 샀어요 그 책? 읽고 리뷰 써주세요, 흐흐
전 아직 읽을 책 많아서 사고 싶은 책 많은데 좀 참고 있어요, 아놔...

호빵 2016-10-3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근육에 대한 글이 shining님이 쓰신 줄 알았네요. 하루키를 세간의 평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은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덕분에 좋은 책들을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Shining 2016-10-30 15:09   좋아요 0 | URL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약간의 글을 좋아하고 약간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인데 이 책은 정말 좋아해요. 글과 소설가, 달리기와 삶의 이면에 대해서 읽어볼만한 글을 좋은 번역으로 엮어낸 책이라 감히 추천까지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비가 온다. 간헐적으로 베란다 창틀을 텅덩하고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신비한 밤이다. 연무가 낮게 깔린, 비가 마치 혜성처럼 떨어지는 밤. 스산한 바람이 울음처럼 부는 날을 좋아하지만 이런 밤도 나쁘지는 않다. 이런 날씨는 처음 본다. 그만 신기해서 길을 가다 멈춘다. 눈을 부빈다. 집에 돌아와 외투를 벗으니 선인장에 박힌 가시마냥 외투에 비가 박혀있다.

 

눈이 온다. 눈이 온다, 라는 말이 좋다. 눈이 내린다, 라는 표현도 썩 좋다. 눈이 내리는 밤은 세상이 세피아톤 옷을 입은 것처럼 어두운 분홍빛을 띈다. 눈이 추적해지기 되기 전 새벽에 몰래 눈을 맞으러 나간 적이 있다. 눈이 오는 밤, 세상은 홀로 적막하다. 고요에 가까운 어떤 적요한 세상. 그 적요의 세상엔 눈 내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재미있군. 눈은 내리면서 세상을 고요하게 만들면서 제가 떨어지는 소리를 그토록 크게 낸다는 것이. 눈이 오는 날. 세상은 기묘하게 환해지고 무섭도록 고요해지며 사부락거리는 나부낌만이 침묵의 세계를 매운다. 눈은, 침묵의 소리를 내며 온다.

 

 

 

 Alfred Sisley, Road under Snow, Louveciennes, 1876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이 종종 온다.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이란, 아이러니하게도 기억해내야하는 순간 기억해내야만하는 절박함이고 당연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때문에 그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은 타자로부터 지적받은 혹은 타자로부터 끌어내어지는 순간 떠올려야 하는 어떤 착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히며 살아왔다. 대부분은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를 찌른다. 그 태도는 마치 펜싱이나 검도시합에 나선 선수같다. 머리, 가슴, 을 찌르면 상대에게 지잉, 불이 들어온다. 말로 주는 상처는 대부분 즉각적이다. 쏘아버린 화살처럼, 손에서 떨어진 활시위처럼 초속 몇 백 킬로로 상대에게 날아간다. 아차, 깨닫는다. 때로는 깨닫는 동시에 다시 공격을 하기도 한다. 말로 주는 상처가 공시적이라면 행동으로 주는 상처는 통시적이다. 손을 뿌리침, 눈을 피함, 뒤돌아서버리는 단호함, 경멸과 환멸을 담은 눈빛 같은 것은 그 당시보다 그 후에 더 깊게 파고든다. 총알의 사입구보다 사출구가 몇 배나 더 광대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태도나 행동은 어떤 때는 그 날 저녁, 혹은 일주일 뒤, 때로는 몇 십년 뒤에도 뱅뱅 돌아 사출구를 넓힌다. 망각으로 주는 상처는 올가미 또는 지뢰다.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터진다. 원인은 찾기 어렵다. 상대를 탓할수도 없다. 사고와 같은 일이다. 만약 상대가 유리컵이라면, 말로 주는 상처는 그 순간 와장창 유리를 깨트리는 것이고 행동으로 주는 상처는 흔들거리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것이며 기억으로 주는 상처는 이가 빠진 채 언제까지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망각으로 누군가를 상처입힌 적이 있다. 상대는 상처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복기를 하는 변함없는 태도에서 기미를 느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실된 외침과 삽시간에 기억이 밀려오는 깨달음이 서로 먼저 들어오겠다며 마음문을 열고 싸우고 있었다. 퍽 당황스러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찰나 기억을 하다니. 기억을 내 편으로 만들어 도망치는 짓을 하다니. 그래놓고 상대에게는 망각으로 태연자약하게 상처를 주다니. 기억을 재생한다는 행위를 더 이상 믿지 못할 수 밖에.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누군가와 기억을 맞춰 보지도 않았다. 기억은 똑같이 사서 나눠서 들은 두 장의 테이프 같았다. 상대는 3번 트랙을 나는 12번 트랙을 많이 들었다. 그 결과 상대는 2번과 5번 트랙이 손상되었고 나는 10번과 11번 트랙이 엉뚱하게 망가졌다. 둘이서 만나 고장난 트랙을 잡고 원래의 것으로 복원하려고 노력해봤자 두 테입이 얼마만큼 달라졌는지만 확인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예컨대 폐부를 찔러오는 눈빛, 엄청난 악력으로 쥐어 손목에 남은 다섯개의 손가락 자국, 귓바퀴에 난 상처, 떨어진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없었다면 그것은 상상이라고 치부해 마땅하다.

 

 

 

, Snow, Louveciennes, 1878 

 

기억은 자의적이다. 이기적이다. 어떤 면에서 차라리 곧다고 해도 좋다. 어쨌건 저 하고 싶은 것만을 저 하고 싶은만큼 제가 원하는 속도로 몸을 웅크린다. 때문에 기억은 더 많이 기억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있되 더 적게 기억하는 사람이 편하다. 더 깊게 감춰둔 사람이 더 많이 상처받고 더 얕게 감춰둔 사람이 더 빨리 상처받는다.

 

죄책감을 느끼게 해서 잊어버리게 하고, 잊어버리게 함으로써 죄책감을 불러온다는 데 있어 죄책감과 기억은 공범이다. 더 많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적어도 상대방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적게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적은 기억은 방금 내린 커피처럼 언제나 김이 올라왔다. 더 깊게 감춰두었나. 하지만 숨기지는 않았다. 더 얕게 감췄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롭게 심지어 덧 씌워져 느낀다. 죄책감은 죄를 짓지 않은 쪽에서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지, 애초에 죄를 짓지 않았기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기억은 누구의 편인가. 기억은 죄책감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게 단단히 족쇄를 채웠고 동시에 그 족쇄를 풀 열쇠를 주었다. 마찬가지로 죄책감을 느끼기에 잊지 않게 하고, 잊지 않게 함으로써 다시 죄의식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일테면 망각은 죄악감을 불러오고 그 죄악감은 기억을 재구성한다. 재구성한 기억은 죄악감을 몇 겹이나 덧칠하고 망각하고자 했던 바람까지 죄악으로 분리하는 식이다.  

 

 

 

, Snow, Louveciennes, 1878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 눈이 오는 새벽에 나가 침묵 속에서 침묵의 소리를 들으며 몸을 떨릴 때까지 서있었다. 발끝으로 냉기가 올라와 목끝으로 넘어올 때까지 꼼짝 않고 눈을 응시했다. 손가락이 제각각 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유치한 기도를 했다. 모든 것을 눈처럼 덮어달라고. 잊게 해달라던 그 날의 기도, 온도와 습도, 술렁거리던 몸의 밀도까지도. 빽빽히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기억이 걸어온다. 사부락거리는 눈처럼 걸어온다. 침묵의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정다운 누이를 바라보듯 찬찬히 뜯어본다. 저를 믿느냐 묻는다. 고개를 젓는다. 저가 두렵냐 묻는다. 이번엔 내가 오랜만에 만나는 오라비를 보듯 바라본다. 죄를 짓지 않고도 죄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 죄의식은 더 뻔뻔해지고 반질해진다. 기억은 자의적이고 이타적이라 때로는 나를 위해 기억을 하기도 잊기도 한다. 아니, 내 삶은 누구 때문이어선 안 된다.  

   

 

 

 

도시의 눈

- 겨울 版畵 2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사방으로 인적 끊어진 꽃밭, 새끼줄 따라 뛰어가며 썩은

꽃잎들끼리 모여 울고 있을까.

 

우리는 새벽 안개 속에 뜬 철교 위에 서 있다. 눈발은 수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河口로 뛰어가고 너는 말했다. 물이 보여. 얼음장 밑으로 수상한 푸른 빛,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그대 소중한 웃음.

안개 속으로 물빛이 되어 새떼가 녹아드는 게 보여? 우리가.        -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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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1-3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아침부터 절절히 제 맘에 맺히는 글 발견하게 해주시네요.
서늘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위한 글 같아서요.
한 호흡을 갈무리하지 못해 상처에 괴로워하는 저는 언제나 패배자이거든요.^^*
그런 취지의 단상을 끼적인 상태에서 님의 글을 보니 확인사살당하는 기분이랄까요.
자주 와서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상큼한 하루 시작하시길...

Shining 2013-01-31 10:49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우울하게 해드려서 저는 죄송할 따름인걸요(흑). 제게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글인데 팜므느와르 님께 다가가 어떤 부분이 닿게 해드렸다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하하. 자주 오시는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만(찡긋) 배우는 건 제가 해야...ㅎㅎ 날씨가 좋아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

2013-01-3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에 대해 이렇게 밀도 높은 글을 쓰시다니, 정말 '빽빽'한 글이네요.^^ 그리고 아름다운 글. 인용시도 좋구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떤 기억은 진짜 누가 훔쳐가 줬으면 합니다. 아무리 그게 내 삶을 파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되더라도. 고통을 없앨 수 있다면 자기 삶의 완성도쯤이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요. - 이 글과는 관계 없는 투정.ㅎㅎ

Shining 2013-02-01 12:11   좋아요 0 | URL
하하. 엄청 허술하고 헐렁한 글인데요ㅋ 잊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정 잊지 못했다는 걸 증명하는구나.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잊고 살았구나. 이 두 개의 생각에서 출발한 페이퍼에요. 제 마음을 아주 잘 읽으신것 같아요. 관계없는 투정도 아닌 것 같고 관계없는 투정이라 해도 좋습니다 하하 :)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 루시드 폴, 고등어

 

 

스티븐 갤러웨이의 『상승』의 주인공은 셜보. 그는 집시이자 서커스단원이며 줄타는 광대다. 그가 줄에 올라갈 때 아내인 애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떨어지면 세상도 무너질 거예요. 세상은 절대 무너질 수 없죠." 세상은 무너질 수 없다. 나는 밥을 먹고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에센스까지 바르고 나왔다. 운동화를 신은 발을 내딛기 전 잠깐 망설였지만 땅은 땅땅하고 폭신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나 역시 무너지지 않았다. 입김이 나오는 날씨, 머플러를 두른 사람들, 신호가 바뀌자마자 클락션을 울리는 차들, 빨간 인간과 파란 인간이 그려진 신호등.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어제와 달라진 건 세상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

 

조카가 뒤집기를 한다. 힘 쓰다 짜증내고 한숨쉬고 그래서 언니가 살폿 엉덩이를 밀어줬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잘 한다. 쇼파에서 뒤집다 떨어지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둥글둥글 뒤집는다. 인간이란 신기한 거구나. 팔불출처럼 예쁘게도 보이지만 그보다, 신기하다. 뒤집는다고 우유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더 안아주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빨개진 채 낑낑대며 애쓰는게.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두 시가 넘어서 언니가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동영상 속 조카는 가만히 누워있다 배에 힘을 주며 부드럽게 뒤집었다. 머리를 가누는게 아직 힘든 것 같고, 깔린 팔도 혼자서 꺼내지도 못하지만 희미한 자부심과 어리둥절함이 표정에 배여있다. 언니가 조카를 부른다. 고개를 든다. 언니가 손을 흔든다. 점차 표정이 생기더니 볼우물을 만들며 웃는다. 엄마가 거기있다는 것만으로 제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웃는다. 단지 몸을 뒤집는 것만으로도 의기양양해진다. 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엄마라는 걸 알고, 엄마가 제 이름을 부른다는 걸 알고 있는가보다.

 

한 번, 뒤집는다.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두 번, 뒤집는다. 아이에게 고마워진다. 세 번, 뒤집는다. 뭉클해진다. 네 번, 뒤집는다. 결심을 한다. 아이는 알까. 나를 가장 미안하게 한 것이 저라는 것을. 나를 헤어나오게 한 것도 저라는 것을.

 

고등어를 굽는다. 한 번, 뒤집는다. 푸른 등이 눈부시다. 두 번, 뒤집는다. 고소한 냄새가 난다. 세 번, 뒤집는다. 살이 오동통하다. 네 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적당히 짭조름하면서도 잘 구워진 고등어는 폭신하고 연했다. 뼈를 발라 알금알금 먹는다. 맛있다. 맛, 있다. 맛, 있다고 느껴서 다행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읽지 못할 것 같았다. 곧 괜찮아지겠지만, 또 그렇게 살겠지만, 그건 조금 후에. 적어도 지금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점심 때 조카의 뒤집기를 봤다. 집에 가는 길에 책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웃는다. 영리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고등어를 뒤집는다. 아니, 현명해져야하는걸까. 고등어를 먹는다. 강해져야겠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말하든, 나를 어떻게 만들려하든. 나는 나일 것이다. 겨우 나이기도 하고 고작 나이기도 해도. 앞으로도 내가 나이려면 더 많은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흔들리고 비참하고 절망하겠지. 나는 계속해서 주먹을 쥐겠지. 그러나 손바닥에 새겨진 손톱자국이야 손톱을 짧게 자르면 될 일. 아마 여전히 절망하고 한결같이 분노하고 똑같이 슬퍼하겠지만. 얼마간 더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고 보고 들어야겠지. 영리하고 현명하고 강해져야지. 아이와 고등어. 제 몸을 뒤집는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선다.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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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2-2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 숨쉬는 게 너무 피곤해요. 다음이면 내가 나이가 좀 많거든요. 내가 5년 사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절망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그런 게 아니라 저 잘 살 수 있을까요? 결혼도 하고 내 아이도 낳아야 하고 내 집이랑 차도 사야 할텐데 내가 일하면 아이도 기관에 맡겨질테고 그런 것들을 인생의 중요한 꿈들을 이제부터 5년 사이에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한데 이를 어쩌죠? 희망을 줬다 뺐는 건 정말 나쁜 것 같아요. 고등어 먹어본 지가 진짜 오래됐는데 고등어와 조카님이 뒤집는 건 동급이 아니죠. 우앗, 위대한 애기님.

저는 그래도 잘 살 거예요. 불끈!

Shining 2012-12-22 21: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아이님. 인생에 어느 때가 안 중요하겠냐만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오년일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난 오년보다 더 많은 걸 결정하고 버려야 하는 나이니가요. 나는, 결혼도 출산도 요원하고 뜻을 두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아이들 보면, 안쓰럽고 미안해져요. 나중에, 내가 무얼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왜요왜요. 조기,갈치,고등어 같은 건 비교적 일상적으로 먹지 않나요? 전 요즘엔 고기만큼 생선이 좋은데(고기보다,라고는 말하기 어렵고;).

하하. 그런가요. 애기님도 자기를 뿌듯해하는게 얼굴에 다 보여요. 이젠 완연한 사람ㅋㅋ

어제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았어요. 우리에겐 사람이 있으니까, 라는 생각에 작은 건데도 뭉클해졌어요. 그래요, 살아요, 우리, 잘. :)

아이리시스 2012-12-31 19:10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웃겨요. 정신이 없긴 없었어. 제 할 말만 신세한탄처럼 하다 잘 살 거라고 하고 가버린 거 봐봐요--; 근데 샤이닝님이 보여주신다고 예고(!)하신 글은 올해 안에 보긴 보는 겁니까?

Shining 2013-01-01 22:35   좋아요 0 | URL
흑.... 결국 작년을 넘겨 새해에.... 흑흑.... 올해는 약속을 지키는 제가 되겠습니다+_+
아, 예고를 안하면 되는구나, 그렇구나ㅋㅋㅋ

2012-12-2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은 왠지 고등어를 노릇노릇 바삭바삭 맛있게 구울 것 같아요~.
아이는 뒤집고 기고 걸음을 떼고, 우리는 고등어를 뒤집으며 그렇게 세월이 가겠군요. 겨울도 여름도 왔다가 가겠지요. 모든 시간에 같은 햇살이 빛날 거구요. 모두 힘을 내요!

Shining 2012-12-22 21:50   좋아요 0 | URL
하하. 고등어야 뭐 두어번 뒤집으면 되는 거잖아요, 양념없는 그냥 구이였거든요ㅎㅎ 이 평범한 움직임으로 맛난 양식이 된다는 거, 그래서 고등어는 좋습니다_-*

네, 힘을 내야죠. M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결국 각자의 삶을 사니까요. 괜찮아요, 제 마음은 지지 않았으니까요.

마녀고양이 2012-12-2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늦었지만 이 글은 꼬옥 댓글 달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 달아요.
실은 페이퍼를 봤던 그날 달고 싶었는데, 제가 좀 여유가 없었어요.
저는 루시드 폴의 고등어 참 좋아해요. 지금도 듣던 음악을 끄고 다시 페이퍼 음악을 틀었네요.

등 푸른 생선, 이라는 말이 참 좋았어요.
싱싱하고 생생하고 활력있고, 그리고 삶의 냄새까지 풍겨준다는 느낌을 좋아해요.

그리고 샤이닝님의 페이퍼로 인해, 뒤집다 라는 단어가 제 머리에 각인될거 같아요.
뒤집다, 그래서 우리는 강해진다, 이겨낼 수 있다, 추스릴 수 있다.... 페이퍼 감사해요.

평온한 연말 되시고, 고운 일 담뿍 누리는 새해 맞이하시길.

Shining 2012-12-29 17:31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정말 오랜만이에요>_<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봐요. 건강은 해치지 않고 잘 지내시는거죠?

고등어, 뿐 아니라 레 미제라블, 음반에 들은 모든 곡들이 참 좋아요. 루시드폴 특유의, 한 감성이 한 앨범을 다 차지하는 그 약간의 지루함까지도 이 음반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조카는 엄마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웃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래, 현명하고 강한 어른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에 조금씩 절로 추스르게 되더군요. 페이퍼 좋게 읽어주셔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달여우님도 건강하고 온건한, 한해를 맞으시길 바랄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