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대에서 일하는 분이 쓴 책이다. 국과수에 관심이 있고 혹 업으로 택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그곳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알기는 어려운데. 이런,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고 접하기 어려운 분야에 대해 나오는 책들은 왠지 고맙다. 대중적인 수요가 없다해도 꼭 필요한 책이기에 더더욱 고맙다. 책을 쓰는 이에게나 책을 내는 이에게도.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한 때 <CSI>의 열혈애청자로서 관심이 많은 분야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서술한 이야기가 모두 실제의 경험이고 따라서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추적한 기록이기에 '흥미롭다'라는 차가운 어조로 말하기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국과수가 비교적 보편적으로 알려진데에 비해 정확히 어떤 일을 어떤 식으로 행하는지는 모르거나 현실과는 조금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오해를 받는 면에 대해서 이 책이 조금은, 쇄신 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 사고현장이나 각종 사건에 나서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텐데 책을 읽다보니 확실히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겠구나 싶다(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환경이나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은 쉽지 않을 듯..). 그들의 일을 잘 모르는 바깥의 사람들이 쉽게 욕하고 탓하는 것과 다르게 일각을 다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고심하고 연구하며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에 새삼, 자기 직업을 사랑하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인데 부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나 더. 이 책에 언급된 사건들은 내 기억 속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오래된 사건도 있지만 의외로 최근이거나 혹은 엄청 큰 사건임에도 기억에서 잊혀진 일들이 많다는데에 놀랐다. 타인의 고통이란 얼마나 쉽게 잊혀지고 전시되는가. 다시금 깨닫는다. 더불어 지난 몇 십년간 어마어마한 사건 사고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에 쉴 틈 없이 놀란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며 나는 내가 여즉 아프지 않고 살아있다는데에 가끔 -진심으로- 얼떨떨함을 느낀다.  

 

 

   하아. 왜 책을 읽어도 (현실에 대한) 잠시나마의 위안이나 안도가 되기보단 그저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이 더 클까. 이 책을 읽으니 결국 모든 문제는 현재 '사회' 자체가 아닐까 싶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평범한 한 이야기부터 시작되는 책은 현대인의 시간에 대한 강박, 강박증의 시간에서부터 남녀평등과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의 불균형까지 이어간다. 만성적인 타임 푸어와 피로가 유독 여성 특히 엄마들에게 집중되었다는 점(남성이라고, 아빠들이라고 피곤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사회와 관습이 여태껏 여성들에게 더 무게를 가중하고 있다는 의미다)이나 잉여시간을 허락하지 않은 사회의 문화, 즉 한가한 사람을 무능하다거나 게으르다고 평가하는 태도 등으로 확장되어 읽다보면 끄덕거리다가 결국엔 진한 한숨만 내쉬게 된다.

 

헌데 전체적인 논지와는 별개로 이 책은 그리 잘 쓴 책 같지는 않다. 구성 자체가 조금 이상하고 보기 불편한데다 이야기의 초점이 이리저리 튀는 경향이 있어 실제 원고가, 원서가 궁금해졌다. 이상한데 방점이 있고 볼드체로 되어있어 무라카미 하루키 생각이 난다. 대체 왜 하필 이 문장이 볼드체여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까지도 (더욱) 하루키 생각이 난다. 원서에 그렇게 표기가 되어있다 해도 번역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볼드체와 방점을 하나로 합하거나 양해를 하고 줄여도 됐을 것 같은데. 조금 산만하다. 게다가 저자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구태여 구구절절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이 들 정도로 시시콜콜하다(심지어 만나는 인물들이 몇몇 불쾌한(저자가 받은 느낌을 독자에게 더 강조하여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태도를 보여 더더욱). 심술맞게 짐작하자면 아마 연재칼럼이기 때문에 작은 이야기를 좀 더 길게 늘린 것 같은 기분이다.

 

요약하자면 질문과 답은 괜찮은데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썩 명쾌하지 못하다. 거기에 처음부터 결론을 상정하고 과정을 빙빙 꼬아 거기에 도착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든다. 요새 인지심리학이나 사회학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느끼는데 잘 쓰인 책과 아닌 것의 차이는 이 점이 있는 것 같다. 답을 찾기까지의 과정. 어떤 책은 질문만 획기적이거나 공감가고 결론은 흐지부지 그러니까 열심히 살자, 로 끝나기도 하고 또 다른 책은 답은 명쾌하나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치거나 근거를 대지 않고 그저 주장만 해서 설득하려 하기도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귀신이나 미신, 혹은 괴담이나 기담과 관련된 일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허무맹랑하다거나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엠브리오 기담』은 오히려 기담(혹은 괴담?)의 허무맹랑함과 어처구니 없음을 잘 활용한 것 같다. 에이, 이게 말이 돼? 하면서도 왠지 오싹하고 동시에 처량하고 애절하기도 한 사연들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어느 지방에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잔인하거나 잔혹한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기담의 수준이랄까 그런 임계선을 아주 잘 지킨 경우인 듯 하다.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 혹은 엉뚱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묘하게도 동정이나 연민을 품게 되어 여운을 가지면서 좋은 인상을 받게 하도록 작품의 수위를 조절할 줄 안다는 게 아마의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아, 찾아보니 오츠이치라는 작가가 가명으로 낸 글이다. 어쩐지, 신인의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 깔깔하게 불쾌한 이야기도 있지만 조금 찡한 느낌의 에피소드도 있어 이름 모르는 시골에 내려가 낡은 안내 책자를 읽는 기분으로, 우연히 만난 노인이 들려주는 여름밤 괴담처럼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반면에 『13.67』은『엠브리오 기담』처럼 단편집(혹은 옴니버스)이긴 하나 추리소설(또는 형사소설?)이고 대신 앞의 책처럼 나라(나 지방)의 색을 잘 살린 장점을 공유하고 있다. 『13.67』이라는 제목은 1967년부터 2013년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역순으로 배열한 단편집이며 일종의 옴니버스 구성을 갖고 있다. 홍콩 작가의 추리소설이라는데 생각해보니 홍콩 배경의 추리소설 혹은 소설을 접한 적이 없다는 면에서 흥미로웠다. 다들 그렇듯 내게도 홍콩이라는 곳의 이미지는 영화다. 왕가위를 위시한 전성기의 홍콩 영화, 그리고 느와르. 왕가위, 오우삼 등이 헐리웃으로 빠져나가고 영화의 이미지도 희미해진 지금은 그저 관광객이 많이 찾는, 터키처럼 그러나 터키와는 다른 이유로 이국적인 도시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진작 이런 책이 소개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일이 아닌가. 1997년의 홍콩의 반환은. 몇 십년 동안 타국에 소속된 채로 살아가다 본국으로 돌려지는 입장의 나라라는 것이. 밀레니엄을 코앞에 두고 서양의 문물의 유입이 엄청났던 곳이 원래대로 동양으로 된다는 것이. 그 혼란과 당혹스러움과 무기력 같은 것을 짐작해보면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지. 이 책은 그 지점을 잘 선택하고 있다. 67년과 2013년의 이야기는 하나의 인물로 관통되지만 그 외에도 97년 전후의 홍콩의 분위기라던가 경찰(도리없이 사실 내가 떠올린 것은 <중경삼림>의 223(금성무)와 633(양조위)였다)에 대한 불신과 비리 부패의 이야기, 무엇보다 어지럽고 복잡한 사회와 경제, 정치 체계가 바뀌는 과정과 그 여파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그러니까, 어떤 고유의 문화나 역사 덕분에 고유성과 개성을 가지는 이야기의 장점이 이 책에 고스란히 있다. 하긴, 그 점이 제외하고라도 추리소설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재밌는 책이다. 특히 하나의 단편들이 그 자체로서도 굉장히 완성도 높다는 점에 가점을 주고 싶고 영리하게도 1967년과 2013년의 시간을 반전시킨 구성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만약 순서대로 읽었다면 놀랍긴해도 아득한 기분이 들진 않을텐데 시간을 역행하면서 한 인물의 끝을 먼저 본 후에 시작을 보니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든다. 역자의 말에 보니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면면이 훌륭하다던데 빨리 만나보고 싶다.  

 

 

덥다. 어차피 더운 거 덥다고 말하면 왠지 더 더운 것 같아서 말을 아끼지만 ...덥다. 언제든지 깊게 잘 자는 강점이 더위 덕에 약해졌다. 머리카락이 끈끈해져 뒷목에 붙어서 깨고 뒤척이다 깨고 쓰레기차 소리에 또 깨고 해가 빨리 떠서 결국 깨고. 어떤 한의사가 말하길 태양의 진리에 따라 여름에는 조금 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겨울에는 좀 더 일찍 자고 평소보다 약간 더 늦게 일어나도 된단다. 그래서 그 조언을 받아들여 그냥 일찍 일어나면 일어난대로 책을 읽는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더위이니, 피서 대신 독서 아니지 독서로 피서 중이다. 그렇게 만난 책들이 이 친구들이었다.

 

덧) 친구가 선물로 준 알록달록한 스트로우와 티코스터에 냉침한 홍차나 직접 담근 라임청으로 만든 모히또, Kings of Convenience나 Bahams, Jack Johnson 같은 음악만 있어도 (나는) 금세 피서 기분을 낸다. 이렇게 또 여름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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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5-08-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ning님, 잘 지내요? 난 잘 지내요. 아 벌써 8월도 중반. Shining님글도 오랜만에 들어와서 봐요. 출근길이라 꼼꼼히 읽진 못하지만 뭔가 기분좋은 숙제거리네요ㅎㅎ 더위 먹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요. 곧 지나갈테니까. 굿럭♥
 

 

 

  지난 페이퍼에서 적게 소유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놓고 소심해졌다. 혹시라도 타인의 생활방식, 가치관, 소비나 소유에 대한 방식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처럼 보여질까 혹여 계몽적인 태도로 읽힐까봐 염려가 됐다. 하지만 사실 페이퍼에서 쓴 이야기는 사실 보고서에 가까운 자기 고백이었다(혹 불편을 느끼시는 분이 없길 바란다). 페이퍼에서 밝히지 않았지만-계기가 될 만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긴 했다. 그 일로 얻은 것은 더 짙은 허무와 더 날카로운 방어의식, 겉옷처럼 두르게 된 떨칠 수 없는 무기력함이었지만 눈에 띄게 바뀐 부분은 소비와 소유에 대한 측면이었다. 대체 소유란 무엇이고 소비란 뭘까. 무엇을 위해 돈을 쓰고 어떤 목표로 돈을 모으고 어떤 삶을 고려하며 살고 싶은가. 거창하게 말하면 내 자신과 대질하는 시간. 그 때 또 다른 내가 제시한 길이 저소비와 저소유였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 조금씩 바꿔갔다. 공간이 더 넓어졌고 청소하기가 수월해졌으며 짐스러운 기분도 줄었다. 돈을 엄청나게 아끼게 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물건을 산 후 쓸모없는 물건을 샀다거나 쓸데없는데 돈을 썼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은 적어졌다(물론 곰곰이 생각하고 꼼꼼히 따져봐도 여전히 잉여물건이 약간씩 발생하긴 한다). 괜찮은데? 나와 잘 맞아. 나는 또 다른 나에게 대안을 제시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자기 소유물을 포기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안다. 심지어 지금도 이따금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거 다른 사람 주지 마! 나중에 필요해질지도 몰라!” 문제는 그 ‘나중’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동안 우리의 물건은 나날이 효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별 필요도 없고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사느라 그간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생각하면 속이 쓰려요. 그래서 나는 그 물건들을 꼭 틀어쥐고 어떻게든 쓰임새나 의미를 찾아내려고 머리를 쥐어짜죠. 정말 짜증나요! 이런 문제는 돈과 나의 문제, 그리고 내 ‘가난 사고방식(poverty mentality 가진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을 두고 걱정하거나 불평하는 사고방식)’과 연관이 있어요. 그리고 물건 자체보다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데 지출을 많이 했다는 죄책감과 더 관계가 깊어요. 나는 물건 놓아버리기의 핵심은 결국 자기평가에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책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내가 이 책의 저자처럼 3,4평의 이동집을 만들어 살 가능성은 없겠지만 (나의) 소유에 대한 개념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나니 왠지 응원받는 기분이 든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변화 과정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고 유용했지만 보다 좋은 인상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태도 덕이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연대와 협의에 의미를 두며 살아가는 사람답게 변화나 다양성에 관대하면서도 신중하게 삶을 대하려는 태도가 보여서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것 마냥 흐뭇하다. 특히 남편을 비롯 가족이나 친구 등 자신의 삶의 방식에 동의하고 동조하며 함께 실천할 사람을 가까이에 가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될 것 같은 저자의 상황은 솔직히 좀, 부럽다.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한다해서 그것이 나의 어려움을 상쇄해주진 않는다. 때문에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 것 같은 제목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가 아니고 힐링도서도 아닌 이, 일본의 사회학자가 쓴 일본의 젊은이들에 대한 고찰과 사회론을 읽다보니 일본의 현재는 한국의 미래라고들 하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저출산 현상이 지속될수록 노동 인구는 감소하게 될 테고 당연히 일본은 노동력 부족 문제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더불어 세수입도 줄어들 것이다. 대다수 젊은이들이 계속 저임금 노동자에 머물게 된다면 세수입 감소는 자명한 일이다. (중략) 마땅한 고용 대책과 합리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단지 ‘젊은이들’이 가엾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본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진정한 내셔널리스트라면 고용 대책과 저출산 대책, 사회보장제도의 정비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젊은이 빈곤 문제와 과거의 젊은이 빈곤 문제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앞선 세대가 말하는 “우리가 젊었을 때는 이보다 훨씬 가난하게 생활했다.” 혹은 “옛날부터 가난한 사람은 많았다.” 라는 지적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예전의 젊은이들에게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출처나 '일본'이라는 말을 가린다면 한국의 이야기라고 해도 거의 위화감이 없는 이 책의 구성은 이렇다. '젊은이'란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인지 그 말은 언제 어떤 의미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후엔 과연 현재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그들보다 더 내향적이고 개인지향적인지에 대해서 비교해본다. 사회에 대한 관심 척도나 해외로 나가는 비율을 비교하고 외향적이고 사회지향적인 사례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내향적이고 개인적이라 평가 받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한다. 뒤로 갈수록 뻔한 이야기가 되거나 힘이 빠지고 일본어 병기나 과도한 문장부호의 남용 때문에 가독성 면에서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출판사의 고유 방식인 것 같은데 가독성이 지나치게 떨어져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획기적이기도 하고 조금 위험하기도 한 독특한 발상이 있어 재밌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에 열광하는 현상을 애국심의 관점이 아닌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미심적인 관점으로 축제라 파악한 점이나 현재의 시점에서 국가란 결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불과한데 문제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일본이라는 업체를 패키지로써 선택된 것이지 이 점을 유대나 연대, 국가에 대한 애착이라 해석하기엔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역설하는 점.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척결해야 할 명백한 대상이 모호하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인과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가 헷갈리기 때문에 이른바 혁명적인 태도가 적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관점이 그렇다.  

 

일본에는 무바라크처럼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악당이 없다. 동일본 대지진의 복구, 정치인의 뇌물 수수 사건, 관료가 뒤얽힌 이권 사업, 경찰의 월권행위, 젊은이의 고용 문제, 줄어들지 않는 자살자,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 단숨에 나열해 본 것만으로도 아찔할 정도의 ‘사회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손쉽게 ‘악’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언론 통제라든가 민간인 고문 등의 문제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당장 내일부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 불행하긴 하되 그 불행이 계급 차별, 인종 차별, 독재 정권 등 선악의 경계가 뚜렷한 일이 아니라 역사 속 혁명들처럼 과격하게 발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재밌었던 건 결론 부분에 등장하는 문단이다.  

 

그러나 정부가 ‘전쟁을 시작하겠다.’라고 선언해도 만약 국민 모두가 도망쳐 버리면 전쟁은 시작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본래 일본이었던 국토에서 살던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중략) 일본이 사라지더라도, 일찍이 일본이었던 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국가의 존속보다도 국가의 역사보다도 국가의 명예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나라의 존속보다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꽤 극단적인 예시로 피력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쪽이 진실이고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 나라를 조금이나마 사랑한다고 느끼는건 국가의 위대함이 아닌 개개인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었으니까. 내가 살고있는 곳에서 만난 인연과 소중한 사람들 때문인지 국가가 사랑스러운건 아니니까. 슬픈건, 여러 관점에서 볼 땐 한국이 일본보다 -유사한 문제라하더라도-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하아. 이러고 싶진 않은데 끝은 늘 한숨이다.        

 

 

 

  위 책과 반대로 구성과 편집면에서 흡족한 경우였다. 엣지 재단에서 애초 이러한 특집을 계획했을 때부터 이미 좋은 시작이었겠지만 쭉 읽다보면 다들 상당한 달변가 혹은 달필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번역이 좋은 편인 것 같다(다른 이야기지만 소설가 뿐 아니라 인문, 과학, 사회학자들도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 들 때 그 공은 편집자에게 있는걸까. 아님 학자들은 다들 글 솜씨가 좋은걸까. 그도 아님 연구 성과도 좋지만 역시 글을 잘 써야 성공할 확률이 높은걸까). 알아듣기 어려운 소재나 주제도 꽤 있는데 역주가 적절히 있어 읽기 편하기도 했고. 몰입도 높게 읽었던건 성격형성이나 동류교배 이론, 상황주의자와 성선택 등이었다(아무래도 평소 관심 있는 분야가 가장 흥미로울테니 어떤 면에선 알고 있는 지식만 더 확고하게 해준 것도 같다).

 

6살 차이나는 언니와 4살 차이나는 남동생. 우리는 나이 차가 많아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둘째라는 것에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건 '결국' 아들 낳으셨네요, 라는 어조로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의 무심코 나온 말에 화가 나서이기도 하고(그럼 나는 실패한 자식인가? 내가 여자애라서? 어릴적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남자였으면 넌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남동생에게 감사하라며 농담을 던진 적도 있지만 어릴적엔 이 말이 진짜 기분 나빴다) 키우는데 힘도 안 들게 하더니 네가 남동생을 보게 했구나 라던 동생이 태어난 날 친할머니가 했던 말 때문이기도 하고 네 덕에 사돈댁 볼 면목이 있구나 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외할머니 때문이기도 했다. 남동생과 언니는 닮은 성향을 가진데 반해 나는 외모며 성격이며 닮지 않은 탓도 있었다.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아 잘 웃지만 그만큼 잘 우는 언니와 자주 칭얼거리던 남동생에 비해 무던하고 조용한 성격도 있고, 여러 요인들로 고의든 아니든 늘 부모에겐 내가 일순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난 샌드위치 사이에 양상추나 햄에 불과하다고 투덜거렸을 때 언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야, 빵은 하나만 있어도 괜찮지만 양상추나 햄이 없으면 샌드위치가 아니잖아. 네가 더 낫지(확실히 언니는 나보다 긍정적이고 여리다). 좀 커선 덕분에 독립심이 강해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여튼 어릴 적엔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길 큰 아이들은 제 동기간이 아니라 다른 형제의 큰 아이와 성격이 더 닮고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동기간의 힘과 나이라는 권력을 가지기에 더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역사상 실패한 혁명을 지지한 쪽은 동생들 쪽, 변화를 꾀하지 않는 보수진영엔 대개 큰 아이들이 있었단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기대와 관심을 가장 많이 받기에 가업을 이어받을 성향(위치보다도)이 높고 사전에 등재된 사람들 중 가장 많단다. 재밌는 건 동기간의 나이 차가 발생하면 이 이론은 신뢰도가 떨어지고 외동인 아이들은 항상 저자에게 미스터리라고 말한 점이었다. 

 

그 밖에도 거울 뉴런에 대한 이야기, 자폐에 대한 이야기 들도 흥미로웠는데 지금 가장 기억이 나는 문장은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서 커가는 과정을 우리가 관찰한다고만 생각한다. 허나 자세히 보면 오히려 관찰당하는 쪽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을 빤히 바라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해낼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가르쳐지는게 아니라 아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배우는 걸 무척 즐기는 학구열이 뛰어난 학생과 유사하다. 라는 식이었는데 백 번 엉덩이를 찧어야 혼자 일어나고 천 번 넘어져야 걷는다는 돌쟁이들이나 알려준 적도 없는데 자잘한 요령을 배우는 아이들의 손을 보면서 감탄한 기억덕에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으로서 나쁜 짓 하지 말아야지. 결론은 조금 심플하고 억지스러운 교훈이다.

 

 

새벽엔 열린 문을 반쯤 닫고 배를 덮은 얇은 이불을 돌돌 말고 잔다. 그나마 낮에도 바람이 불고 지난 몇 년이 유독 더워서였는지 올 여름은 아직까진 견딜만하다. 살갗에 배인 땀과 들러붙는 옷자락에 짜증을 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드는 더위따위야 그나마 견디기 쉽다는 생각을 한다. 던적스러운 세상과 그 세상을 기약없이 살아가야하는 막막함에 비한면야. 한여름의 더위가 대수냐. 그렇게 생각하며 새 책을 읽는다(알라딘이 예상치 못한 충격요법을 해냈다. 근 2년 동안 가장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심지어 고르는 것마다 재밌어. 이 재밌는 걸 왜 안 하고 살았던가. 어떻게 안 하고 살 수 있었나. 괜히 젠체 한 번 해본다. 아니면 우연찮게 고르는 것마다 재밌어서 탄력을 받은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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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드 < CSI>에서 새라라는 캐릭터가 그런 말을 한다. 자신은 항상 출근하기 전에 쓰레기통을 비우고 집안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나선다고. 범죄수사대인 그들은 늘 남들이 죽은, 다친 흔적을 본다.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물건을 뒤적거리고 타인의 직업, 생활, 인간관계,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한다. 그녀는 삶의 유한함을 잘 안다. 세탁소에 가려고 나섰다 총을 맞아 죽은 아내, 쇼핑몰에서 총기난사사건, 부모의 침대 서랍에서 총을 발견한 아이의 호기심과 안전장치를 걸어두지 않은 부모의 실수, 술자리에서 옆 사람과 시비가 붙어 충동적으로 죽은 사고, 알고보니 식당의 장작을 통한 죽음, 동물에 의한 로드킬 등등. 한 사람의 생명이 때론 얼마나 가볍고 허망한지 알고있다. 어쩌면 어딘가에선 선악 혹은 인과도 아닌 우연의 소산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끼며 두려워하는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 모든 것을 뭉퉁그려 덤덤하게 집안을 치우고 나선다. 혹시 자신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해도. 누군가 자신의 집을 뒤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해도. 삶의 너절한 부분을, 자신이 보이고 싶지 않았던 부분 -일테면 정리되지 못한 속옷바구니나 침대 밑으로 들어가버린 스타킹 한 짝이라던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붙은 욕조 같은 것, 체납된 세금의 독촉장이나 여는 순간 우르르 쏟아지는 다용도실의 짐 등- 을 최대한 적게 보이도록.   

 

故 박완서 작가의 『잃어버린 여행가방』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있었다. 여행가방이 바뀐 기억에 대해 말하면서 누군가 자신의 가방을 주워 그 가방을 열어본다면. 그곳에서 나올 미처 정리되지 않은 짐들과 대충 구겨 넣은 속옷과 양말, 누추하고 쿰쿰한 옷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 외엔 아무도 열지 않을거라 믿었던 가방이 생각지도 않게 공개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홧홧해졌다고 하면서 혼자만 여는 가방이라 해도, 누군가 열어보지 않는다해도, 혹시 내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으므로,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은 짐을 싸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충대충 하루를 빌어 살듯이 정리하고 던져놓고 하는 식이 아니라 찬찬히 꼼꼼히 정말 필요한 것들만. 삶도 영혼도 그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글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상적인 글귀를 많이 썼지만 내게 거의 교훈처럼 기억되는 문장은 이것이다. 너무 많이 써서 빌려쓰기 미안할 정도로 많이 인용한 문장. 이 불확실하고 폭력적이며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여러 형태의 죽음이 넘쳐나고 있으므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작년과 올해 이 문장이 무슨 각인처럼 머리 한쪽에서 계속 떠올랐다.   

 

 

2.

지난 2년 동안 많은 것들을 처분했다. 물건을 굉장히 깨끗히 쓰는 편이라 낡아서 처분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그래서 더 빠르게 판단해서 방출했다. 갖고 있는다 해서 피차 두 번, 세 번 읽지 않을 책들은 의견을 물어 선물하고 기증하고 팔았다. 색이 예뻐서 사놓고는 막상 손과 어울리지 않아 한 두 번 사용 후 안 쓰는 매니큐어들은  친구들에게 넘겼다. 책장이 무거워보일만큼 꽉 찬 잡지는 날을 잡고 일일이 스크랩 할 부분만 오려서 파일에 넣은 후 처리했다. 다 쓴 향수병, 추억을 핑계로 그러나 분명 다시 안 들여다볼 먼지 쌓인 물건들, 사이즈가 애매한 옷 등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물건은 많이 줄었고, 당연하게도 그만큼 사는데에도 더 신중해졌다. 가방이나 신발, 옷 등은 꼭 필요할 때,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끔은 좀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고심해서 골랐고 원래도 없는 화장품은 더 간소해졌다(결국엔 같은 계열의 색조화장품을 고르고 제일 좋아하는 컬러 두, 세개의 매니큐어나 립제품만 바르게 된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쓴다고 말만 했던 것들은 실은 언제 사라져도 그리 마음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괜히 예뻐서 갖고만 있었던 엽서나 안 쓸 걸 직감하면서도 모아둔 수첩을 보면서 생각했다. 책장이 비워진다고 내가 비워지는 것은 아니고 많은 DVD나 음반을 가진다고 내가 그것들을 모두 섭렵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동안 밀린 다큐멘터리 파일을 보고 하드를 깨끗이 비웠다. 사라져도 그다지 아깝지 않은 것들은 사실 정말로 필요하고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을 받고 기뻐하거나 고마워하는 모습이 훨씬 더 오래, 깊게 마음에 남을 수 있다는 걸 계속 배워간다.    

 

 

3. 

놀랍게도 내게는 여전히 -주관적 기준에선- 많은 물건이 있다. 그리고 별 놀라울 일 없게도 많은 물건을 방출하고 사지 않았음에도 아주 잘 지낸다. 사실은 특별한 불편도 후회도 일말의 아쉬움조차 없다. 심지어 어떤 물건이 있었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에 비하면 잉여공간이 생긴 것과 청소가 필요한 곳이 줄어든 것은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4.

생각해보면 인터넷은 잘못한게 없다. 따져보면 아마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으리라. 다만 갯수보다 경중을 따진다면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긴 호흡. 예전에는 300페이지 책은 길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요샌 좀 긴 기사조차 각을 잡고 보지 않는한 읽는게 힘들어졌다(그래놓고 본인은 매번 긴 글만 쓴다. 글을 못 써서 그런다. 반성하자...). 며칠 전 알라딘에 들어왔다 16주년의 기록에 대한 페이지를 봤다. 오롯이 알라딘에서 구매한 기록만 두고 한 통계이니 완전히 믿을수야 없지만(오프라인을 포함한 타사의 구매기록이나 도서관이나 지인을 통한 대여는 아예 배제한데다 기본적으로 내가 산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했다거나 읽지 않았다는 가정은 포함되지 않으므로) 대충의 가이드라인이라 생각하고 흥미롭게 넘겼건만. 아아, 책을 너무 안 읽었구나 일차로 반성하고 아아 우리 동네에 책 사는 사람이 많았구나 생소했고 이런 속도로 읽는다면 80세까지 고작 1200권 밖에 못 읽는다니 위기감을 느꼈다. 

 

80세까지 살지 못할 수 있고 살아있다 해도 글을 읽을 수 없는 상황이나 여건이 될 수도 있고 아마 나이가 들면서 지식욕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눈이 침침해질텐데. 살면서 아무리 해봐야 만 권도 못 읽고 죽겠구나, 몇 년 전엔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했다. 아니 만 권이 뭐래, 1200권 밖에 못 읽는다잖아! 아닌 밤중에 방방 뛰었다. 그래, 타사에서 산 기록은 빠졌잖아, 어,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빌린 책과 그러니까, 내가 돈이 좀 없고 자리도 없어서 책을 좀 많이 안 샀잖아, 아무리 자위해봤자 울적했다.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숫자만큼 좋은 책들이 엄청나게  많을텐데. 안녕, 1200권을 제외한 나머지여. 위기감을 느꼈다. 주말엔 영화를 보자. 그리고 우선 책을 읽자. 그래서 준비한 책은 이런 책들이다.  

 

 

5. 

최근 인권과 여권신장에 대한 글을 접하면서, 또 <매드 맥스> 페이퍼를 쓰며 문득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여지껏 막연하게 양성평등에 가까운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보다는 여권신장 정도가 유사한 개념 같기도 하고. 어찌됐건 여성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란 것도 맞는 말 같고. (나 역시) 특별히 고민해본 적이 없는 단어구나 반성했고 활용되는 빈도수나 중요도만큼 제대로 이해받거나 학습되지 않고 오해받은 단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하필 이 두 권이 딱 꽂혀있는걸 우연히 발견했다. 오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더니. 우주의 보살핌을 받아 두 권을 데려왔다. 앞부분을 잠깐 읽었는데 아직까진 무척 흥미로웠다.  

 

 

6. 

북플을 설치해봤다. 우선 정신이 사나웠다. 기록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왔다. 다들 진짜, 정말, 열심히 읽고 읽고 싶어하고 쓰는구나. 괜히 쭈글쭈글해진다. 며칠 적응하려 했는데 실패했다. 하나는 성격이 엄청나게 방어적이라 시시콜콜 기록을 남기는데에 혼자 너무 의식을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록할 책이 별로 없었다(...웃어도 되나). 결정적으로 ...귀찮았다... 왓챠였던가, 그걸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유와 얼추 비슷했다. 남들의 기록을 읽거나 그들이 추천하는 목록을 부지런히 담다가 위시리스트만 왕창 늘어난게 부담스러웠고 볼 영화, 안 본 영화는 많은데 그 시간에 정작 영화는 안 보는 게으른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고 별점이라는 합리적이지만 다소 극단적인 평가를 하면서 소심하게 끙끙대는것도 싫었다(리뷰처럼 장, 단점을 늘어놓으며 일일이 설명할수도 없으니 괜히 마음에 차지 않아도 별만 후해지더라). 나와는 안 맞는 시스템인가보다, 에잇. 언젠가는 다시 도전해서 또 다시 실패하거나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진 북플 포기...(친구 추가? 맞나요? 해주신 분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7. 

그러고 보면 책을 읽지 않는 세대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자의 사용 빈도자체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세대인 것 같다. 메시지를 보내고 SNS를 사용하며 말이나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요구되고 또는 표현하려는 수단이 제일 발달된 때라고 해야하나. 포스트, 페이퍼, 웹소설 등이 얼마나 활발한지 보면 글이나 이야기, 혹은 뭔가를 읽는 자체에 사람들이 얼마나 목말라있는지도 간접적으로 느껴지고. 흥미롭고 아이러니하고 이상하게 씁쓸하다. 

 

 

8. 

주말엔 <손님>을 보러갈까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침대 옆에 놓인 『마음의 과학』(두 파트 정도 읽었는데 재밌다)을 다 읽고 싶다. 가장 큰 목표는 그러고나서 뭐라도 기록을 남기는 거다. 짧게라도, 부족해도. ...할 수 있으려나? 인지심리학 책을 읽다 보니 '집중하되 집착하지 않는 자세' 라는 표현이 있더라. 집중해서 읽고 쓰고 싶다. 하지만 집착하고 싶진 않다. 맞다, 나도 그렇다. 문제는 둘을 거꾸로 하고 있다는 거다,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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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9 1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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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1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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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읽었더라, 소설에선가 에세이에선가 "그건 쏘아버린 화살과 같다."라는 표현을 읽고서 참 그럴 듯한 말이란 인상을 받았다. 요샌 그 표현을 시간과 함께 박제시켜 말한다. 시간이 꼭 쏘아버린 화살 같다고. 혼잣말이기도 했고 누군가와 하는 대화 중에서도 등장했으며 수첩에도 끄적거렸다. 하루는 제법, 어쩔땐 지루할만치 길게 느껴지는데 어째서 일주일, 한 달, 한 계절은 그렇게 훅 지나가버리는 느낌이 들까.

 

그렇게 화살이 스쳐간 흔적에서 간신히, 사건들은 서로서로를 얽어 지표가 되어준다. 헨젤과 그레텔의 부스러기처럼 시간을 더듬어 되돌아가거나 홍차와 마들렌이 되어 시간을 상기시키듯이. 맞아, 토요일 아침엔 영화를 봤지. 그 때 그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렸어. 날씨가 꽤 좋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걷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칠 뻔 했어. 머리 위로 목련이 피어있었고 발 밑엔 수선화가 있었지. 하는 식으로 멍뎅한 안개 속을 헤쳐갈 수 있는 어둠 속의 손전등이 된다.

 

 

 

  책이 있어서, 영화가 있어서 내가 그것들을 퍽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가끔씩, 특히 부정적인 파도가 한 차례 휩쓸고 난 후 감정의 폐허에 서서 그 때문에 내가 더 힘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들이 아니었으면 불운을 견디기가 더 어려웠겠지만 그것들로 인해 나의 사고가 더 복잡하고 예민하고 다양해졌다는 생각 때문에 허탈하기도 하다. 남들은 그냥 힘들었다, 아팠다, 로 끝나는 걸 온 각도의 시각과 관점과 시야와 근거를 들어 재구성하고 가정하고 상상하고 결론을 내리니까. 피곤한 성격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절대적 이상주의와 예리한 통찰력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들은 자폐증과 반항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황홀한 몽상과 가슴 아픈 현실 사이에서, 순진무구함과 절망 사이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그들은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호의가 문제에서 빗겨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도움을 외면하고 싶을 만큼 그들을 후벼판다. 쓸데없는 의문을 품지 말라고? 사람들은 항상 그런 소리나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세상의 불완전함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란 말인가? 그게 안 되는 걸 어쩌라고!

 

그래, 그게 안 되는 걸 어쩌라고...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는 정신적 과잉 활동surefficience mentale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생각의 전환이 지나칠 정도로 빠르거나 생각이 너무 많거나 또는 감각과잉으로 유별난 기억력을 갖고 있거나 등등 어찌됐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내 경우엔 감정과잉으로 인한 감정이입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책의 소개된 사례들에 동의를 한 편이었는데(그래서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냉정한 편인데 사고전환만 빨라서 가끔 스스로의 냉랭함에 기가 찰 때도 있으니까) 흥미롭게, 동의하며 읽어가면서도 어렵지 않게 한 권의 독서를 끝냈다. 스스로가 잘못되거나 잘 못 된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편하게, 덜 고민스럽게, 덜 복잡하게 등등- 생각하지 못할까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 나는 어릴적부터 혼잣말을 잘 하는 편이라 엄마한테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정신적 과잉 활동자들의 많은 경우가 지나치게 빠른 사고전환을 잡기 위해, 스스로 교통정리를 하려고 혼잣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하. 조금 위로가 된다.

 

 

 

   나이를 먹어서 인간에 대한 고찰보단 경제, 사회 분야의 책이 더 흥미로워지는건지, 단순히 문학에 매너리즘을 느끼는건지, 그도 아니면 워낙 경제 분야에 무지한 사람이라 잘 모르던 이야기를 듣는게 재밌는건지, 어쩌면 단순히 조금이라도 아껴보고 더 벌고 싶은 마음인지. 여튼 요새는 경제와 관련된 책이 제일 재밌다.

 

벌써 올해가 2015년이니 상당히 늦게 읽은 감이 있다. 2012년에 발행된 책이라 악화된 부분이 많지만(음, 양화된 부분은 거의 없는 듯...) 책에 언급된 몇 년 전의 세계경제와 지금의 각 나라와 경제위기를 연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내 것처럼 주장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시야 확보를 위해 전문가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자가 천천히 마치 아이에게 가르치듯 조근조근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는지라 길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그 전에도 박종훈 기자의 글에 호감을 느꼈던터라 더 고마웠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는 반가운 연재 칼럼이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니까. 다만 태풍이 닥칠것을 전혀 모른 채 배를 띄우는 것보다 태풍이 닥칠 것을 예상하며 배를 묶어두는거나 혹은 배를 띄울 타이밍을 재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므로 세계 경제의 유동을 살피는 것 또한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구나,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세상엔 참 배울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끝이 없이 많다.

 

 

 

혹시 이런 적이 있는가. 영화를 공부하려고 『영화의 이해』를 폈다가 컷 바이 컷으로 쪼개진 <시민케인>이나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씬을 마주하고 전의를 상실하거나 서양 미술에 대해 알고 싶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찾았다가 책 무게에 읽기도 전에 질식할 것 같거나 고전을 읽으려고 무슨무슨 추천 목록에서 『마의 산』,『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전쟁과 평화』를 마주하고 지레 겁부터 먹은 기억이. 누군가 떠먹여 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한 술 드는 숟가락이라도 궁금해지고 지푸라기라는 것을 알아도 잡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일단 시작을 어디서 할 지를 모르는 이에겐 잔인한 말이다.

 

지적 의욕은 충분한데 시작점을 몰라 헤매고 있거나 개념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확신이 없을 때, 그럴 때 이런 책으로 시작하면 참 좋을텐데.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학 새내기라던가 사회초년생이라면 더더욱 고맙게 느껴질 책일 것 같다. 깊은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만큼 어렵지도 않다. 지식으로 가는 계단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계단이 여기있다고 알려주는 정도의, 개괄과 개념정리, 정도로 참고할 일종의 정보서이기에 물론 계단을 올라가는 건 이제 본인이 노력해야 할 문제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이런 이들에게 권한다고 말했다(경우가 더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한 케이스만 잘라서 발췌했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복잡하다고 느끼거나, 대학에서 교양 수업을 듣기 전에 기초적인 지식을 얻고 싶거나, 정치는 썩었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면서도 뉴스는 사건 사고와 연예, 스포츠 부분만 보거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불안하지만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

 

1편은 경제, 정치, 사회가 주가 되는 내용이라 그나마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그리기가 쉬운 편이고 역사도 짧은 편이지만 2권은 아무래도 분야가 분야인지라 -종교, 철학, 예술 등- 지나칠 정도로 축약되고 생략되어 있어 많이 부족하다(그래서 1권만 페이퍼에 넣었다). 종교, 철학, 예술 등의 개론서는 다른 것을 참고하고 1편은 읽어보되 특히 역사, 정치와 경제 부분을 참고하는게 나을 것 같다. 

 

책의 내용엔 만족했지만 사실 서문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세상 사는데 필요한 건 전문지식이 아니라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말하며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책 뒷표지에도 인쇄된 걸 보면 출판사이든 저자이든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었나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이 주장엔 동의하진 않는다. 물론 저자가 생각하는 상식과 전문지식이 내가 생각하는 범주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분명 우리가 친교 활동을 하는데에 있어선 전문지식보다 상식이 더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도 인정한다. 게다가 막상 책의 내용은 잡학상식이 아니라 지식으로 가기 위해 첫 발이기에 저자의 하고자 하는 저의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 지식이 아니다.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넓고 얕은 지식이다." 라는 표현 자체는 어째 좀 불편하다. 심지어 단언을 하고 있어 더더욱. 차라리 "지식으로 가기 위한 첫 발로 넓고 얕은 상식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라고 썼으면 더 설득력 있었을텐데. 아이러니한 일이다. 책의 서술 의도는 동의하지 않으나 책의 내용은 호평한다는 것이. 말이란 게 그렇다. 아 다르고 어 다르고, 매일 쓰면서도 매번 조심스럽다.

 

 

 

3월까지는 그래도 제법 부지런히 영화를 봤다. <폭스캐처> - <미스터 터너> - <이미테이션 게임> - <버드맨> - <위플래쉬> 까지 보고 났더니 뭐랄까, 완전히 진이 빠져 버렸다. 신나는 오락무비로써 본 <킹스맨>을 제외하고 하나같이 여러가지의, 각자 다른 의미에서 탈력감이 드는, 몸 속 수분을 쥐어짜는듯한 영화들이었다. 오늘, 러닝화 끈을 묶으며 시간을 보내는 틈틈이 영화를 본 건지, 아니면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몰입했던 순간과 강렬한 장면들, 영화를 통해 느꼈던 불안, 허탈, 혼란, 위안, 반향 등등의 감정이 영화와 만나 기억의 곳곳 태그가 되어있어서 흐릿한 기억을 깜빡깜빡 비춰주고 있었으니까. 이러나 저러나 시간이란 쏘아버린 화살이 지나간 자리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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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무비 매거진 창간 소식에 -내가 할 걱정이 아님에도- 걱정이 됐다. 영화 주간지가 하나 남은 이런 때에, 책도 잡지도 읽지 않은 이때에, 영화 월간지라. 8000원이라는 돈은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지만 사람들이 영화 잡지를 사기 위해 낼만한 돈은 아닐 것 같았다.   

 

콘셉트가 명확한 잡지다. 홈페이지를 통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통계와 수치가 주를 이루는 시작, 자잘한 소식과 국내배우 한 명에 대한 인터뷰와 취재 그리고 특집. 처음 사본 것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특집이 실린 때였는데 이야, 감탄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일생을 축약한 수많은 정보와 고증(?), 필모그래피를 나열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 섬세하게 밟아갈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주는 친절함, 한 쪽에 한 작품을 할애하는 과감함, 그가 자주 가는 샵과 식당, 그와 열애설이 난 상대와 심지어 퀴즈까지. 이쯤하면 좀 질린다 싶을만큼 마감에 넘기기 직전까지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티가 났다. 그 뒤엔 <엑스맨>, <반지의 제왕>과 <호빗>특집, 웨스 앤더슨과 자비에 돌란 특집 등이 있었는데 뭐라고 해야하나. 좋은 말로 하면 세심하고 나쁜 말로 하면 집요하고 주관적으로는 장사를 할 줄 안다고 느꼈다. 핫하면서도 팬덤이 확고한 소재를 착착 고르는 영민함과 몇 십 페이지를 통으로 특집을 내는 배짱이라니.  

 

어차피 영화 잡지를 사 볼 사람들이 영화를 쉽게 소비하는 층들은 아님을 감안했을 때 좋은 선택인 것 같다(실제로 덕후들은 환호하는 듯하고 2부씩 사는 사람도 봤다). 돈을 낼 만한 타깃을 선정하고 타깃의 구미를 맞추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선택이랄까. 이번 호는 <21세기 뉴클래식>이라는 제목 하에 41편의 영화 목록이 실렸는데 몇몇 의아한 영화도 있지만 대개는 수긍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아주 좋아하는 영화들이 목록에 있어서 영화팬으로서 뿌듯했고 <테이큰>의 리암 니슨이 상대방을 주먹으로 21회, 발차기 6회, 목 조르기 2회 등등으로 악당을 처치한 것도 <올드보이>에서 한대수(최민식)이 오달수가 연기한 철웅의 이를 6개 뽑은 것도 알 수 있고(진짜 이런 목록이 나온다, 이걸 돌려보며 새고 있었을 생각하니 왜 이렇게 웃기지) 아주 유익하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부씩 소장하길 추천한다(본 페이퍼가 너무 늦게 쓴 탓에 재고가 모자를까봐 걱정이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공장에서 하는 일보다 우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공장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보다 구체적이며 직접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 프롤로그 중

 

1. 공장외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공정의 과정을 취재하고 글을 쓴다는 기획도 흥미로운데 그것을 맡은 사람이 김중혁 작가라는데서 좋은 시너지가 생기는 듯 하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치중한 에세이의 느낌이 너무 짙어서 조금 아쉽지만 만족스럽게 읽었다. 생각해보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공산품을 쓰면서도 이것을 만드는 공장이 있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펜이나 노트, 가위나 화장품과 플라스틱 공병 등 훨씬 더 자주 쓰고 더 가까이 있는 물건들보단 오히려 '공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등이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그렇지.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콘돔도 만들고 지구본도 만들고(솔직히 지금도 지구본을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궁금했는데 전쟁이 발발하면 지구본 판매가 늘어난다는게  놀랍고도 씁쓸한 일이다) 악기도 만들겠지. 아주 당연한 일들을 잊고 산다.

 

2. 예전에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나이로 생각하거나 어떤 순수성의 상실로 따지곤했는데 요샌 좀 더 구체적인 선을 만든다. 호기심이 없으면 어른이 되는건 아닐까 싶었던건 지구본이라는 플라스틱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한 번도 궁금해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저, 어떻게든 하겠지 뭐 세상 별별 것들이 다 있는데, 하는 심드렁함과 무관심함. 지구본을 '왜' 사는지는 의아해하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3. 종종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순수한 감탄도 일고 말콤 글래드웰이 말했던 '1만시간의 법칙'도 생각나고, 가끔은 찡하기도 하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나마?) 유지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아마도 그들일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타인의 일이나 직업을 자신의 시점에서 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남들 눈에는아주 단순하고 사소하고 심지어 하잘 것 없이 보일지라도 성실하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몇 년, 몇 십년째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꽈배기를 빚든 안경닦는 수건에 도장을 찍든 우체국에서 일하든 그게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 김중혁 작가도 말했듯 소설가가 공장직원보다 더 중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장직원이 소설가보다 더 고생한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직업이 사람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람이 직업을 가치있게도 가치없게도 한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자.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책의 내용이나 경우에 따라 만듦새에 힘을 주고 튼튼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책들도 있지만 구태여 모든 책이 그 생김새 때문에 덩달아 가격까지 오를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나로선 예쁜 책도 반갑지만 가볍고 손에 들기 편하고 호로록 넘기기 좋은 책이 좋다. 외출할 때 한 권씩은 예의상(?) 넣고 나가는데 그때마다 고민스럽다. 너무 어렵거나 심각하거나 무겁거나 무섭지 않은 이야기, 가장 중요한건 가볍고 가방에 쏙 들어가서 잃어버리지 않고 무겁지 않을 책. 어깨도 가볍고 지갑도 조금은 가볍게 열 수 있는, 아무데나 갖고 나가서 아무데서고 앉아서 펼 수 있는 책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셰익스피어 책은 그래서 좋다.

 

가볍고 작고 디자인도 단순하며(심지어 그런데도 예쁘다) 책장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요샌 나갈 일이 생기면 해설처럼 붙여진 특별판을 들고 다니며 아무데서나 열어본다. 크로스백에도 에코백에도 쏙쏙 들어가서 데리고 다니기도 좋고 침대 옆에 한 두권 쌓아둬도 무너질 염려도 없다. 책을 안 읽는 것도 문제지만 책값이 전체적으로 비싸진 부분도 있다. 비싸게 책정한 후 할인율을 높여 출판사도 독자도 허무한 일 없도록, 일본처럼 문고본이 조금 더 보편화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책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할인율이 높아진 책들이 꽤 보인다. 대형출판사에서도 또 한바탕 풀 것 같고. 이렇게 쫓겨나듯 덤핑되는건 출판사도 씁쓸하고 독자로서도 씁쓸하지만 씁쓸한 건 씁쓸한거고 이 와중에 슬쩍 기회를 엿보는 내 자신도 보인다. 안 읽을 책을 쌓아두는 편이 못되서 아직은 심각하게 흔들리진 않았지만 필립 K 딕 선집은 탐이 나네. 아, 근데 SF와 판타지 소설 못 읽는 고질병을 가진 내가 이 책을 사는 것도 실례(?)라면 실례라 고민 중이다. 절대 자금난 때문은 고민하는 건 아니다, 아닐...거다. 그래. 아직 안 읽은 책들이 조로록 자리를 하고 있어서지.

 

셰익스피어 전집을 다 읽으면 밀란 쿤데라 것 셋, 그리고 이들까지 무려 5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전 친구랑 얘길 하다가 올 들어 -부러 그랬던 것은 아닌데- 한국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거기에 남은 두어달 하고 며칠 사이에도 보려고 체크해둔 한국영화가 없다. 이렇게 한국영화 한 편도 안 보는 한 해가 되나, 라고 끄적거리다 보니 플레이리스트며 구입한 음반도 모두 해외 가수들 뿐이었다. 9월에는 A Great Big World, RAC, Blake Shelton의 음반을 돌려듣기했고 다행히(?) 10월은 덕원의 솔로앨범이 채워주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뜨겁고 바람은 차다. 노래는 담담하고 목소리는 덤덤하고 상황은 막막하고 가사는 먹먹하다. 벌써 가을이 뉘엿뉘엿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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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4-11-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ning님이 쓰신 이 페이퍼 뒤늦게 읽고 맥스무비 사려고 들어갔더니 벌써 판매불가 떠서 좀 슬퍼하다가 그만 까먹어버렸어요. 11월호 나왔던데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생각하고 있다가..조만간 또 판매불가 뜨겠죠?(흐악)

셰익스피어 맘에 들어 다행이에요, 예전에 댈러웨이님이 펭귄판 한 권(영문판 자기만의 방이었어요) 보내주셨는데 같은 디자인으로 책이 나와서 되게 신기했거든요, 그 판본 저도 가볍고 예뻐서 너무 좋았거든요, 다른 텍스트가 보바리 부인이랑 월든인 게 함정.. 플로베르도 보낼까 했는데 읽었을 것 같고 소장하고 있을 것 같아서 물어봐야지 하다가 까먹은 듯(제가 이래요).

저도 한 세트 살까 했는데 이것저것 살피다 보니 셰익스피어 소장할 여유가 없....................... 근데 있긴 있으니까요. 으흙흙. 어떻게 지내요, 인사한지 꽤 돼서 보고 싶었어요^^

Shining 2014-11-21 13:28   좋아요 0 | URL
11월호는 질보다 양, 의 도리로 꽤 많은 배우들이 지면에 실렸지만 덕후의 마음으로선 부족했어요. 흐흐. 지난달 거가 최근에 나온 잡지 다 통틀어 가장 소장욕구를 일으키더라구요. 히히히. 11월호도 나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추천은.. 음, 12월호가 벌써 나왔을거에요! 18일인가에 출간되는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진....

펭귄판, 저는 딱 좋네요ㅠ 가볍고 얇고 부드럽고 싼데다(킥킥. 이젠 진짜 무시할 수 없잖아요...) 아주 깔끔해서 좋아요ㅠ 우리나라 책 표지나 영화포스터, 대체적으로 좀 유치하고 과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웃음) 이런 깔끔하고 정갈한게 더 좋네요 :)

저도 어제 정가제를 대비해서 잘 계시나 들어와보려고 했는데, 이런, 서버가 폭파되어서 못 들어왔어요ㅠ 인사 남기러 왔는데 댓글이 있길래 답글은 쓰고 안부는 방명록으로 갈게요 :D

2014-11-26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