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말들 -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겨울 지음 / 유유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겨울 작가의 글이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전작 『독서의 기쁨』을 읽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전자책으로 읽어서 그런가? 많은 사람이 독서 매체의 물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재미있는 책은 휴대폰으로 봐도 재미있고, 재미없는 책은 고급 양장본으로 봐도 재미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그녀의 글에 더 공감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이런 문장이다. 


 한번은『해리포터와 불의 잔』미국판을 언니가 빌려 가면서 여기에 밑줄 그어 가며 단어도 찾고 영어 공부도 하겠다고 하길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절대 안 된다고 발광을 했던 역사가 있다. <23쪽>


 책 읽기 전엔 꼭 손을 씻는다든지, 책장을 넘길 땐 마치 <TV쇼 진품명품>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고서를 넘길 때처럼 한다든지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책을 깨끗하게 보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특히 책에 밑줄을 긋거나 글자를 적는 만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포스트잇 정도는 이해하지만, 그 외에 적는 행위는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교과서가 그리 깨끗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깔끔 떠는 것도 문제라 여겨 몇 번 의식적으로 밑줄을 긋고 글씨를 써 봤는데 잘 안되더라.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에 뭘 쓰는 건 여전히 편하진 않다. 


 사실 다른 핑계도 있다. 어떤 책을 읽을 당시 괜찮은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느낌이나 생각 등을 적어 놓으면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밑줄 친 문장이나 적은 글귀가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고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재독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간혹 다시 읽는 책에서 보게 되는 밑줄이나 적어 놓은 글은 이것이 중요하다는 선입관을 주게 된다. 물론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이 지금도 같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이 억제되거나 차단될 수도 있다고 보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다음 문장에선 나도 덩달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나는 염려한다. 읽으려던 책을 결코 다 읽고 죽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 읽어야 한다. 매일 읽어야 한다. 고요 속에서 읽고 또 읽는다. 이걸 다 읽고 죽어야 한다. <27쪽>


 어라? 대강 작가보다 내가 10살 이상 많으니까 앞으로 내가 읽을 날이 훨씬 적잖아. 이런! 아, 물론 가는 날은 순서가 없다지만...^^; 아직 사놓고 읽을 날만 기다리는 책장 속의 책들을 보니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저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데. 심장이 바운스 한다. 


 "마음을 위로하는 책을 추천해 주세요." 나는 매번 혼란에 빠진다. 마음에 와닿는 책은 읽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가 된다. 그게 슬픈 책이든 웃긴 책이든 담담한 책이든 신나는 책이든, 나와 주파수가 맞기만 하면 그리고 작가가 충분히 고민했다면 어떤 책이든 위로가 된다. 삶의 의미와 인간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해 주고, 일상의 작은 조각을 빛나게 해 주고, 나의 내면을 직면하게 만드는 책들, 삶에 깊이 잠수해 본 사람이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정말로 무엇이든 위로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소설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에세이, 누군가에게는 시가 되겠지. 그렇게 한 사람에게 위로가 된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83쪽>


 정말 그렇다. 한번은 데이비드 베너타의『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읽고 크게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에는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니 출산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반출생주의'를 담고 있는데도 말이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6-12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죠. 내 책을 내가 밑줄 긋기도 하고, 접고 형광펜으로 쭉쭉 그어가면서 난리를 치면서 읽어도 되는데, 남이 내책에 그러면 안됩니다! 주의입니다. ㅋㅋㅋ 그래서 사실 남에게 책 빌려주는 것을 좀 많이 싫어하는데, 그래도 빌려주긴 빌려주는데....이게 꼭 반납 안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10년전 그녀에게 빌려준 책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noomy 2021-06-10 15:00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ㅎㅎ 저도 이제 책에 밑줄도 좀 긋고 써볼려구요 ㅋㅋ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조를 처음 본 건 '소규모아카시아밴드' 공연에서였다. 10년도 더 전 계명대학교 근처 작은 라이브 클럽이었던 것 같다.(대부분의 기억이 그렇듯 정확한 해와 공연장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당시 대중음악의 미래는 인디신에 달려 있다고 강하게 주장한 박준흠의 글에 격하게 공감하며 같은 사명감 하나로 많은 인디 음악을 들을 때였고, 그 중 소규모아카시아밴드(민홍, 송은지)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들 중 하나였다.

 

 흡사 지문과도 같은 민홍의 기타 톤과 리듬은 눅눅한 반지하의 자취방에서 새우깡에 소주 한 잔 하며 듣는 친구들의 고민 같았고, 한 때 사랑했던 너무나 친숙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옛 연인 같은 송은지의 목소리를 참 좋아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별 망설임 없이 공연장을 찾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요조를 처음 봤다. 쟤는 누구지 하고 호기심 반 우려 반인 마음으로 공연을 보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작은 소녀의 목소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음악과 썩 잘 어울렸다. 그렇게 즐거운 라이브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이 옆 테이블에 앉아 맥주로 목을 축이며 담소를 나누는 걸 보았다. 그러면서 담배를 한 대씩 피우는데 우와 너무 멋있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고 멍청한 생각인데 당시엔 그랬다. 요조와 다른 멤버들이 주위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담배를 시원하게 피우는데 아, 왠지 뭐랄까? 예술가다운 고뇌가 느껴진달까? ㅋㅋㅋㅋ

 

 그래서 요조의 앨범을 샀다. 1집은 전곡을 민홍이 만들었는데 역시나 그의 기타는 좋았고 요조의 음색은 나쁘지 않았다. 당시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기 시작한 홍대여신이라는 타이틀이 없더라도 충분히 매력 있었다. 후에 앨범을 몇 장 더 샀고 잘 듣다가 삶의 중력에 눌려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요조가 책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아무튼, 떡볶이>를 포함해 몇 권을 읽었다. 그리고 뒤에 책방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또 어느 순간엔 장강명 작가와 팟캐스트를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참 재주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글은 솔직해서 좋다. 이만교 작가가 늘 강조하듯 실질적 정직의 자세로 일상을 꾹꾹 눌러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가령 본인은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채식주의자라든지,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을 보고 공포를 느낀다든지,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주변 인물을 OO 씨라고 부른다든지 말이다. 가끔 에세이에서 보이는 감정 과잉이 없는 것도 좋다. 앞으로 또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책을 내고 무슨 재미있는 일을 벌일까 기대된다.

 


요조 1집 중 <낮잠>






소규모아카시아밴드 1집 중 <나비>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6-0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조 좋아해요.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그런 느낌. 노래도 그렇고, 이야기 할 때도 그렇고....괜찮더라고요 ^^
저기...이비에스...방송이름이 머였지? 기억이 안나네요. 한국에 있을 때 방청하러 몇번 간적 있는데, 아~좋은 시절 ㅋㅋ

noomy 2021-06-06 18:15   좋아요 0 | URL
EBS 스페이스 공감 말씀하시는 거죠? 우와 정말 재미있었겠어요~

han22598 2021-06-07 23:52   좋아요 0 | URL
맞아요!이비에스 스페이스 공감! 소극장의 공연 느낌...좋았어요. 방청 경쟁률이 높지 않았는지, 몇번 당첨되서 갔었어요. ^^
 
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소피의 세계>와 같은 철학 소설이다. 저자는 철학에서 근본적이고 중요한 여러 화두를 이야기의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렇다 분명 재미있다. 그런데 감흥이 예전 같지 않다. 꼬꼬마 시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논리야 시리즈>, 연달아 놀라움을 안겨줬던 <소피의 세계>, 이후로 많은 철학 입문서와 원전(기웃거리는 정도)을 읽었지만 재미와 감흥은 점점 주는 듯하다. 매너리즘일까? 근데 웃기는 게 내가 뭐 대단히 철학에 박식한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입문서 애호가(?) 정도일 뿐.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고, 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악은 선의 부재라는 개념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 외 자유의지, 과학, 윤리 등 많은 부분에서 딱 내가 예상한 만큼 전개되는 소설 내용을 보며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다. 거참, 왜 그럴까? 알라딘 서재의 수많은 독서 고수들이 보기에 햇병아리 같은 수준인 내가 이런 고민을 하다니. 사실 좀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책을 보면 좋을 것 같은데 각 잡고 그런 책을 보기가 정말 쉽지 않다. 솔직히 일하면서 짬을 내 이 정도의 책만 읽는 것도 벅차다. (맞아요~ 핑계 대는 겁니다^^;) 


그래도 아직은 철학책이 재미있다. 재미없으면 뭐 하러 귀한 시간 내서 보겠는가. 그럼에도 예전 같은 짜릿함(?)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급적 2차 저작물은 피하고, 여간해서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도 어려운 원전에 손을 대야 할까? 그랬다가는 문학이나 기타 다른 분야의 책은 전혀 못 읽을 것 같고. 아니면 그러려니 하면서 입문서 정도의 책만 흥미가 없어질 때까지 읽는 게 좋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5-2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누미님에게 철학을 배우고 있죠 ㅎㅎ

noomy 2021-05-25 16:32   좋아요 0 | URL
저한테 철학을 배우다니요~ㅋㅋㅋ 당치도 않습니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음악과 삶
조진주 지음 / 아웃사이트(OUTSIGHT)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어찌나 이렇게 잘 쓰시는지.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다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최근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피아니스트 원재연 공연을 봤는데, 팸플릿 곡 설명을 연주자가 직접 적었다. 다들 글쓰기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5-2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부터 공굴려본 사람들 ㅋ의 내공. 부러우면서 나도 이제라도 공 열심히 굴려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ㅎㅎ 이책 바구니에 넣어둡니다.

noomy 2021-05-21 12:49   좋아요 0 | URL
악기도 잘하는데다 글까지 잘 쓰니까 부러울 따름입니다.^^ 같이 공 굴립시다~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소설속에서 누가 가장 인간다웠나? 아니, 누가 인간이었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