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주변에서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란 책을 추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작가에 대한 인상이 뇌리에 남곤 하였습니다.

프랑스 문단에서 유능한 작가로 인정을 받으면서 심지어 그의 책을 "조엘 디케르 사건"이라고 칭하기까지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이번에 신간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아직 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번을 계기로 그와의 인연을 맺고 싶었습니다.



이번 책 역시도  이미 그의 진가를 인정받았나봅니다.

아마존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40여 개국 출간!

제목에서 암시한 것처럼 볼티모어 골드먼 가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하는데 과연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볼티모어의 서』에서는 전작인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에서의 화자였던 작가 '마커스 골드먼'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를 통해 바라본 '몬트클레어 골드먼' 가족과 '볼티모어 골드먼' 가족의 이야기.

이 가족들의 호칭은 그들이 사는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 소설의 경우는 '볼티모어 골드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영예.

이는 '질투'로 인해, 서로간의 '불신'으로 인해 점점 균열의 조짐이 보이게 되면서 화려하게 비추던 조명은 어느새 그 빛을 잃고 어둠을 선사하고 맙니다.

이 모습을 작가가 된 '마커스'가 볼티모어 골드먼 가의 부침을 돌이켜보며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대한 결정들, 그리고 그 속의 오해로, 그 누구의 잘못된 선택이 아님을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책 속에 인상깊었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제발! 정신 나간 소리 좀 작작하게. 이제 책의 시대는 갔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죠?"
"요즘 20대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출판산업은 이제 끝났어. 아마도 자네의 손자들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라오의 상형문자를 바라보듯 책을 바라보게 될 거야. 자네 손자들이 '할아버지, 책은 어디에 쓰는 물건이에요?'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줄 텐가? 그때가 되면 책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 있을 거야.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들이라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망하게 되지. 그때 가서 깨닫고 후회해봐야 소용없어."

"제 미래를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상이 미래야. 영상매체에서 자네의 미래를 찾아보게!"

"저에게는 책이 미래인데요."

"요즘 사람들은 깊이 사고하길 원하지 않아. 깊은 성찰보다는 이미지에 좌우되지.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따르는거야.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 일에 매여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집에서는 회사에서처럼 일을 시키고, 대가를 지불해주는 사람이 없잖아. 집에서는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야단치거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없어.

 ...

미래의 세상은 영상매치의 노예가 된 사람들과 저항을 펼치는 한 줌의 사람들로 나뉠 거야. 한 줌의 사람들이 끝까지 저항하며 최후의 도서관에 집결해 농성을 펼칠 테지만 무한정 버틸 수는 없겠지. 결국 좀비 무리와 노예인간들이 승리를 거두게 될 테니까." - page 176 ~ 178


"마커스, 넌 지금 골드먼 이야기, 즉 볼티모어 골드먼과 몬트클레어 골드먼 이야기에 붙잡혀 있지? 이제 그 이야기의 결말에는 단 한 사람의 골드먼만이 남게 되겠지. 그게 바로 너야. 너는 거듭 태어난 거야.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지.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용서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단다. 그 나머지는 흘러버린 시간의 합에 불과해. 넌 계속 글을 써야 해. 네 글을 통해 골드먼들의 삶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커스, 골드먼들의 삶을 치유해주겠다고 약속해다오. 볼티모어 골드먼들은 네 글을 통해 삶의 의미를 회복하게 될 거야." - page 635


책을 읽고난 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들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해선 소설에서 다 밝혀주진 않았지만 '글'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글이 삶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우리가 부조리한 삶에 맞서는 복수전을 펼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처럼 강한 정신,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기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 page 640

저자는 이 소설에서 끝내 한 집안의 비극적인 일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읽는 독자로 하여금 또다시 책을 펼쳐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이 인상깊게 남곤 하였습니다.

한 개인의 모순이 그 자체로 일으키는 폭발이다. 말끔한 겉포장 아래 감춰진 개인의 허약함과 열등감이 만들어내는 슬픈 결과이다. 이런 파국의 연원은 우리 각자 안에 깊숙이 숨어있는 것이어서, 미리 알고 예방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완벽한 행복이란 허상임을 인정하고,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모르는 모순 투성이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 page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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