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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 일과 사랑
툴라 카르얄라이넨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그래서 더 눈길이 가고 애정이 갔습니다.
그렇게 그 캐릭터에 매료되어 있다보니 과연 이 캐릭터를 탄생시킨 이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토베 얀손'.
'무민 세계'의 창조자인 핀란드 예술가.
그녀의 삶도 과연 무민 세계와도 같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조각가인 아버지 '빅토르 얀손'과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우표 디자이너인 어머니 '시그네 함마르스텐 얀손' 사이에 태어난 그녀, '토베 얀손'.
그런 그녀의 최초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롤모델은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그는 예술을 위대하고 진지한 인고의 과정으로 여겼고, 토베도 어린 나이에 그런 태도를 배운 듯하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모순적이었다. 서로 애정이 넘쳤지만, 깊은 증오 또한 깔려 있었다. 토베의 부친 빅토르 얀손은 두 예술가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토베 역시 부모의 뒤를 잇기를 바랐다. 그리고 토베는 그렇게 됐다. 그 외에 아버지가 보기엔 너무나 이질적이고 불가해하며 혐오스러운 다른 것도 됐지만, 그럼에도 토베는 그에게 말로 못다 할 만큼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 page 13
예술가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어릴 적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고 열여섯 살 때 스톡홀름 콘스트파크로 미술 유학을 떠나 여러 곳을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우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 나갑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겐 시련이 닥치기 마련.
그녀 역시도 실력은 인정받지만 전쟁과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그녀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어디를 봐도 전쟁이고, 온 세상이 전쟁중이야. (...) 가끔은 이 세상에 쌓인 고통의 일부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커다란 혹처럼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동정심이 이렇게 비통함과 뒤섞이고, 사랑과 증오가 합쳐지고, 살고자하는 그러니까 품위와 존엄을 가지고 살려는 의지가 어디론가 기어들어가고 떠나려는 의지와 이렇게 뒤엉킨 적이 없었어."
...
"우리는 진정한 초식동물이 돼버렸어. 고기를 한 점이라도 먹으면 속이 거북해지고 타잔처럼 사나워지는 기분이야." - page 55
토베는 생계를 위해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고 다양한 출판사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며 점점 그녀는 좋은 평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의 '무민 세계'의 탄생.
어쩌면 전쟁 덕분에 무민 가족을 만난 걸 수도 있다. 캐릭터 구상은 이미 예전부터 했지만, 전쟁이 한창일 무렵에야 토베는 무민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작가를 위해서 무민 세계를 창조해 현실의 공포에서 숨곤 했다. 즉 무민 공짜기는 그저 추악함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토베 본인도 이야기의 발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실은 화가이지만 1940년대 초,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는 너무 절망했었던 나머지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토베는 무민 골짜기를 은신처로 삼았지만, 언제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곳이었다. - page 139
그렇게 그녀는 무민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만 꾸준히 화가로써의,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그렇게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녀 역시도 사회적 온갖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개척한 그녀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예술가로써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지나친 숭배는 자유를 구속한다. 자유란 가치 있으며, 하나의 이상이고, 어떤 이들의 삶에서는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자유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 무민파파가 해티패트너들을 두고 이렇게 인정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난 그들이 아주 대단하고 자유로운 존재인 줄 알았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잖아. 그들은 할 말도 없고 갈 곳도 없었던 거였어......" 자유와 독립성의 모순, 그리고 그것들의 유사성은 토베의 책에서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이는 토베의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page 137
그녀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깊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시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토베도 여든 살 때 그런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비록 고달프긴 했으나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한 삶이었노라고 답했다. 아주 행복한 삶이었다고. 그리고 살면서 가장 중시했던 두 가지는 일 그리고 사랑이었노라고 했다. 그러더니, 전혀 예상 밖으로, 만약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겠다고 했다. 어떻게 다르게 살지 분명히 밝히진 않았지만. - page 299 ~ 300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갔기에 그녀는 마지막 그 순간마저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답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상황으로,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그녀가 예술로써 승화시켜 작품을 완성하였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그 의미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그녀의 작품인 '무민'을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그 속에서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왠지 이 책을 읽었기에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