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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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는 '조선 무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대개 왕이나 왕비, 아니면 업적이 뛰어난 이들의 이야기와 관련된 책들은 종종 접할 수 있는데 '무녀'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생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소설은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니 그동안의 저명한 작품들을 낸 이력이 있기에 믿고 읽어보았습니다.


배경은 조선 숙종 때.

19살 원향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13명을 선택해서 한양으로 길을 떠납니다.

용을 승천시켜 마른 땅에 비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용녀 원향이라면 큰비를 내려 도성이 씻겨가고 그 곳에 새로운 미륵의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들끼리도 서로 맞지 않아 다른 길을 향해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한양에 도착을 하지만 큰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향은 하랑의 넋을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이 가야할 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 복수는 너의 방편이 아니다. 원망과 분노가 너를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아니 된다. 숱한 원한과 분노를 품은 용이 너를 집어삼키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용은 부리는 거라 하지 않았더냐? 잊었느냐? 대우경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큰비는 오지 않을 것이다. 너의 방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의 것이라 여겼지만 너의 것이 될 수 없었다. 나를 빌려 너를 구하지 마라. 너는 본래 너이니라, 하여 너는 나이니라. 이제 나를 떠나라, 나를 보내라. 나의 죽음이 너의 오늘이다. 너의 하늘을 열어라. - page 240


이 소설에서 만나게된 조선 무녀들.

사실 무녀들이라함은 신령을 모시는 이들이기에 신성시 되는 반면에 그리 대접을 받지는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음란한 짓거리를 하는 음흉한 것들이라 무녀를 욕하던 사대부 황 대감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양반들이 그러했다. 겉으로는 예를 숭상한다며 무녀의 일을 음사로 여겼다. 허나 유학의 예가 인생의 마디마다 턱턱 걸리는 우리네 삶을 구제해주더냐? 태어나고 죽고 병에 걸리고 이별하고 사별하고 배곯고 벼락을 맞는 삶의 마디마다 사람들이 기대어온 곳이 어디더냐? 우리 무녀들이었다. 그들도 결국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 무녀를 부르지 않더냐? - page 164


사대부들은 유학의 예를 새로운 신령으로 받잡고 사람들을 지배하려 한다. 그들의 순수한 예법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이가 누구이겠느냐? 바로 무녀들이다. 수천 년 동안 하늘과 통하고 신령과 통하면서 인간사에 스며들었던 힘을 가진 무녀들이다. 땅에 사는 비천한 이들이 땅의 삶을 하소연하고 하늘의 뜻을 알게 하는 문이 되어준 무녀들이다. 그 힘을, 신령스러움을, 무녀에게서 빼앗으려 한다. 하여 무속의 신령과 예의 신령이 다투는 것이다. 신령의 쟁투이다. 너는 그 쟁투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 page 190

무심코 지나칠 뻔한 그녀들의 삶.

다른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주고 한을 풀어주지만 정작 자신들은 살아서는 욕되고 죽어서는 원통한 여인들을 넋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 그녀들.

그런 그녀들이 역모를 꿈꾸며 맞이하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혁은 되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져 새로운 큰비가 내렸음은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들의 순수하고도 혁신적인 역모의 꿈.

그 꿈이 있기에 우리가 바라던 세상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의 우리도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작지만 간절한 큰비를 빌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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