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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강정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8월
평점 :
내가 울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남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울거나 울음을 삼키곤 하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마음에 묻어두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기엔 이미 먼 길을 온 것 같습니다.

그저 제목에 끌렸습니다.
울 수 있을 때?
그럴 때가 있는걸까......
있다면 울어도 되는 걸까......
또다시 마음 속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그럴 때 어떻게 했을까......
책 속엔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릴 적 이야기부터 지금의 자신의 이야기까지 주절주절하는 이야기 속에 우리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같아 마냥 무심코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돌의 웃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과연?>에서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고독'은 어떤 반복된, 자발적 고난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 단어사전 속의 '고독'은 뭔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는, 안일한 면이 있다. '외로움'이란 단어와도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어딘가 기댈 곳을 찾아서 휘청거리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고독'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그리게 만든다. - page 102
돌은 갈색이고 표면은 뺀질뺀질하며 어느 큰 돌에서 깨져 나온 것처럼 한쪽 면이 날카롭게 깎여있다. 아무리 좋게 봐도 결코 예쁜 모양이 아니다. 애기 주먹만큼도 안 되는, 두꺼비를 반 토막 내 세워둔 것 같은 못난 몰골이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살면서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이 떠올라 공연히 분연하고 의연해지는 기분. 나는 바라보는 사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 page 104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계속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들을 수 없다는 상황. 어떤 미궁 속에 빠진 벙어리가 된 듯하다. 그러면서 되나 맑아진다. 고흐나 밀레 따윈 이제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못생긴 돌 앞에서 나 자신을 송두리째 들킨 기분이 드는 게 그닥 불쾨하지만은 않다. 묵묵부답인 무언가를 향해 고해하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발가벗을 때 늘 시가 써지곤 했다. - page 104 ~ 105
무심코 지나칠 '돌'이 그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돌......
저는 그저 '돌'대신 그의 글을 다시 곱씹어보았습니다.
묵묵부답이지만 그 속에 저에게 향한 이야기는 제 속의 본모습을 향한 이야기겠지요...
그에게 그 돌이 웃는다......
돌의 웃음 속엔 시간의 틈이 있어 떠돌아다니겠다는 그에게 저도 쫓아가고 싶었습니다.
<코끼리를 이해하려면 코끼리 그림을 멋대로 그리지 말라>에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설명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보여지고 움직이는 존재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백 마디의 말보다 그의 표정을 알아봐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섬세한 움직임이다. 말은 언제나 사후의 문제들에 전념할 뿐 사람의 진정한 속을 들춰내 보듬을 수 없다. 심한 경우 말은 쓸데없는 오해의 진원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극단적 행동이 내포하는 수많은 심리적 결들과 내상들에 대한 본원적 이해 없이 사후적으로 얼버무리기만 일삼는 이 세계의 완고한 논리체계 앞에서 또 어떤 총탄들이 나부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완전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세계가 특정한 개인의 울분과 원한에 의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는다면 여전히 코끼리의 진짜 모습은 우리에게 미궁이다. 코끼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나 자신의 진짜 마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age 200 ~ 201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마치 그것을 다 안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에 일침을 놓는 이야기였습니다.
코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그리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생각과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 있었기에 읽는 독자들에게 그의 글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는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다시,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기이든 고양이든 살려고 내는 소리. 뭔가 두렵고 안타까워 자신을 봐달라는 소리. 파동은 가늘고 지속시간 또한 짧지만 그 어떤 음악보다 몸에 더 바짝 붙어 비슷한 하모니라도 넣어달라는 듯한 소리. 하지만, 그보다 더 큰건 소리가 지워지고 난 다음의 투명한 침묵이다. 소리란 결국 이 세계가 침묵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반동작용일 따름이다. 울음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 삶이 사실은 거대한 죽음의 밭에서 피어난 짧은 기간 동안의 현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울림과 파동. 그리하여 결국 다시 거대한 침묵 속에서 처음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본능적 희원과 공포의 태초 반응. 울고 싶다. 더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 테다. 노래하고 싶다. 더 잘 죽으려고 그러는 것일 테다. - page 129
그의 말처럼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왠지 내 삶이 아프고 아플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울음을 참고 있는 이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울고 싶으면 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