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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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색다른 책을 만났습니다.

『하품』 

'하품'이 주는 의미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왠지모르게 '권태로움', '지루함'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 중편소설이라고 하였습니다.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은 많이 접해보았는데 사실 중편소설은 조금 낯설기만 하였습니다.

단편이 주는 짧지만 강한 여운에서 벗어나, 장편이 주는 긴 호흡과는 다른 무언가를 선사할 것만 같은 중편소설.

이 책을 빌미로 중편소설로의 매력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한 두 남자.

권태로운 오후, 동물원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 둘의 서로를 무시하거나 비꼬는 대화 속엔 무료한 일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빗대어져 있는 것 같아 읽으면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나 저에게 인상깊었던 문장들.

-나의 삶은 어느 한순간, 작은 충격에도, 아니, 아무런 충격이 없이도 완전히 무너져내릴 수도 있는 허술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시 말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옳을, 이 삶, 그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어. 그 시작에서부터 무산된 이 삶은 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르지. 내게 있어 삶이 의미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에서였을 뿐이야, 그가 말했다. - page 60 ~ 61


-나는 삶과의 모든 투쟁에서 패배했어. 그리고 앞으로의 패배 또한 장담할 수 있어, 그가 말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패배지. 하지만 그 패배로는 뭔가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마치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이제 그만하게, 자네에게, 자네의 패배에 졌네, 자네는 자네의 힘이 닿는 한 나를 힘들게 하려는 것 같군, 내가 말했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 page 97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그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보면 그런 일상에서의 탈출을 하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왠지 그들이 안타깝게 느껴졌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또 만나세, 오늘처럼, 어제처럼, 어제의 어제처럼, 그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장소에서, 그 시간에, 그래서 그동안 수없이 했던 얘기들을, 아니면 아직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한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들을 하세, 할 얘기가 도무지 없을 것 같지만 또 있겠지, 그가 말했다.

-아니,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는 자네를 보고 싶지 않네, 내가 말했다. - page 106

또다시 반복될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

그 속에 그들의 이야기는 '하품'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저도 그들에게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도 자네들을 보지 않길 바라네.

왠지 우리들의 모습, 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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