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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온기 - 내가 먹은 채소에 관한 40가지 기억
김영주 지음, 홍명희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음식'이라하면 괜스레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아무래도 '엄마'와 '가족'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하는 것도 '엄마'의 요리.
그 입맛에 길들어져 커서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문에 예뻤던 손이 투박해짐을 모르고......
이 책의 제목이 그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채소의 온기』
저에게도 아무래도 기억들이 남아있곤 합니다.
저의 어머니도 '고기'보다는 '채소'와 관련된 요리를 많이 하셨기에 어릴 적엔 투정을 많이 부렸지만 커서 '엄마'의 위치에 서게 되니 문뜩 엄마의 채소 요리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서도 간간히 엄마에게 부탁을 하곤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음식을 해 달라고......
이 책 속의 저자에겐 어떤 채소에 관한 기억이 존재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혹시나 나와 연관되는 점은 없는지......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채소'라는 단어에서는 파릇파릇한 생명력과 신선한 바람이 분다. 채소와 관련한 추억과 맛있게 먹은 음식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따뜻한 온기를 안고 있었다. 온기는 뜨거움보다 오래간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지금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누군가에게도 그 온기가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의 작지만 큰 포부이다. - page 11
저자의 말처럼 글을 읽을수록 그 따스한 온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덮었을 땐 마치 엄마의 품 속에 들어온 듯한 포근한 안김마저 들곤하였습니다.
그 온기......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세포들이 반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책 속엔 40가지의 채소에 관한 기억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의 음식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마늘이나 고추, 생강, 무, 당근 등등.
그 중에도 저에겐 몇 가지 채소에 대해 인상이 깊었습니다.
어릴 적엔 그토록 싫어하던 '당근'.
이 책 속엔 당근에 관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당근 피자를 이렇게 만드셨다.
밀가루 반죽으로 피자 도우를 만들고 그 위에 강판으로 갈아놓은 당근을 가득 깐다. 다시 그 위에 햄이나 피망, 옥수수 등을 토핑으로 올리고 피자 치즈와 케첩을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 오븐에 돌린 후 꺼내면 녹은 피자 아래 당근은 감쪽같이 보이지 않는다. 나와 아직 유아기였던 내 남동생은 거기에 당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엄마의 피자를 모조리 먹어치웠다. 당시 여든을 훌쩍 넘기셨던 친할머니께서도 함께 드실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는 피자였다.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아 그런 우리를 뿌듯하게 지켜보셨다. 정작 본인은 거의 드시지도 못한 채로. - page 61 62
당근도 역시 버릴 것이 없구나. 당근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내심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당근에 관해 쓰면서 젊은 날의 엄마와 가족들이 떠올랐고,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우연하게도 가장 행복한 날의 기억에는 항상 당근이 있었다. - page 64
저 역시도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공감하면서 인상깊었습니다.
'오이'는 좋아하면서 유독 '당근'을 싫어하던 저에게 엄마는 '당근'을 먹이기 위해서 갈아서 좋아하는 전에 넣으시거나 달걀말이에 넣곤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심히 먹었던 나를 흡족하게 바라보시던 엄마의 표정.
이제는 제가 어른이 되어 나의 아이를 위해 당근을 잘게 써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왜이리 이 부분에서 책장을 쉽사리 넘길 수 없었는지......
책 속엔 채소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요리도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나선 책에서 소개된 요리를 하나씩 완성한다면 비로소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닌지, 괜스레 못하는 요리라도 한 번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굳이 '채소'라고 특정지은 것이 아닌 그 시절 '엄마'의 온정이, '가족'의 사랑이 담겨있었던 이 책, 『채소의 온기』.
또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엄마의 요리가 먹고 싶다고......
그랬더니 망설임없으신 엄마의 한 마디.
"먹으러 와!"
전화를 끊고나니 눈물이 흘렀습니다.
책으로 받은 온기, 이번 주말 부모님으로부터 받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