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너무나도 예쁜 책 한 권이었습니다.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책과는 달리 왠지 책장을 하나하나 땀을 놓은 듯한 이 책.

하지만 책의 앞표지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베레니스'는 실연당한 모든 여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어진 문장이 왠지 자꾸만 맴돌게끔 하였습니다.

오늘의 베레니스가 라신을 읽으며 위로받듯이,

내일의 베레니스는 아줄레를 읽으며 위로받으리라.

내일의 베레니스가 되어 위로를 받아야하는 걸까......

오늘의 베레니스에게 '라신'은 어떤 위로를 전한 것일까......

책을 펼치기 전에 '사랑'의 쌉싸름함이 느껴졌습니다.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가슴 한 편이 찡하였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곁에 머물던 그, 티투스.

결국 그는 베레니스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문구.

"아담은 원죄 이전에는 다이아몬드였으나 원죄 이후에는 석탄이 되고 말았다." - page 10


사랑의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녀는 책장에서 라신의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합니다.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묘사한 그의 작품들.

이 책에 인용된 문구만 읽더라도 왜 베레니스가 라신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슬픈 포로가 되어, 나 자신에게 성가신 존재가 되어 끊임없이 증오하고, 언제나 벌할 수 있을까?" 또는 "모든 것이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해지고, 또 해치려고 획책한다." 아니면 "나는 카이사레아를 오래도록 떠돌 것이다." 그녀는 분노, 버림받은 느낌, 긴장감 같은, 자신의 굴곡진 기분과 어울리는 시구를 언제나 찾아낸다. 그리고 대화 속에 인용 구절을 집어넣을 떄 생겨나는 진지함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라신은 사랑의 슬픔을 파는 슈퍼마켓이다. - page 13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가면서 이어지는 사랑의 슬픔, 상실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시대는 다를지 몰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별'이라는 감정, '상실'이라는 감정은 변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베레니스는 라신으로부터, 우리는 베레니스로부터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순간 베레니스는 안티오쿠스가 관대하다고 생각하지만, 곧 A는 B를 사랑하고, B는 C를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내고, 그가 B를 사랑하는 A이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의 품에 안긴 채 여러 차례 그녀는, 왜 사랑의 환상은 어떤 결합이라도 매혹할 수 있는 작은 구름처럼 거기까지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B가 C에 대해 환상을 품는다면 왜 A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할까? 이 환상 속에는 작지만 결정적인 몫의 현실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결론 내려야 할까? A는 결코 C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그래서 베레니스는 안티오쿠스에게 앞으로 전화도 걸지 말고 자신을 따라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나를 사막으로 돌려보내는 겁니까? 그가 슬프게 항의한다. 그래요, 각자 자기 사막에서 사는 거예요. - page 189



사랑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베레니스'란 여인.

사랑을 하고 그에 따른 상처를 받은 이들을 대신하였지만 그러기엔 왜이리 가슴이 아프고 저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로 인해 위로를 받고자 하지만 왠지 독자가 그녀를 위로해 주어야할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그녀가 위로를 받았다는 '라신'의 작품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그에게서 베레니스가 준 위로보다는 다른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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