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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평점 :
『오베라는 남자』로 국내독자들에게 인사를 한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그 뒤에 선보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개성이 강하지만 왠지 우리 주변에 있을 듯한 사람들입니다.
괴짜지만 인정이 많았던 '오베'와 '할머니'를 통해 뜻밖의 웃음코드를 알게 되었고 책을 읽으면서는 웃고 있었는데 책을 덮고 난 뒤엔 긴 여운과 함께 가슴 찡함이 남아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왠지 그의 작품을 읽고나면 특유의 캐릭터에 웃으면서 위안을 받는다는 느낌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그가 다시금 우리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겨울에 '브릿마리'라는 할머니(?)와 함께 등장한 그.
이번 '브릿마리'는 어떤 개성을 지니고 있을지 벌써 궁금해졌습니다.
역시나......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브릿마리' 역시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음은......
결혼생활 40년차 주부, 60대 여성.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다른 이들에게는 인정받기를 바라는 우리 주변에서 친숙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일생의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을 무시하던 남편의 외도.
남편에게 숨겨둔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고 하얀 차를 몰고 난생처음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브릿마리'로 살아가기!
고용센터에서 찾게 된 레크레이션 센터의 관리인의 일은 그녀에게 낯선 일밖엔 없습니다.
그런 그녀의 고군분투가 담긴 이 소설.
책의 구석구석에는 인상깊은 문장들이 숨겨 있었습니다.
모든 결혼 생활에 단점이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살다보면 그 사람의 약점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약점들을 무거운 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면 그걸 피해가며 청소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환상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 먼지가 쌓이겠지만 손님들 모르게 지나갈 수 있기만 하면 참고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허락도 없이 가구를 옮겨버리면 모든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먼지와 긁힌 자국. 쪽매널 마루에 영원히 남은 흠집. 하지만 그쯤 되면 이미 되돌릴 방법이 없다. - page 172
인생은 자기가 신고 있는 신발, 그 이상이다. 나라는 인간, 그 이상이다. 그 모든 것의 총합이다. 다른 무언가에 깃든 나의 조각들이다. 추억과 벽과 찬장과, 커트러리 통이 들어 있어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전부 알 수 있는 서랍이다.
두 인격체에 기반을 둔 유선형 존재라는 완벽한 구조를 향한 적응의 시간이다. 평범한 모든 걸 공유한 시간이다. 시멘트와 돌, 리모컨과 십자말 퀴즈, 셔츠와 과탄산소다, 욕실 수납장과 세 번째 서랍에 든 전기면도기. 그 모든 것 때문에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게 어긋난다. - page 288
그녀의 '브릿마리'로 살아가는 것은 '~ing'일 것 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면 결정의 계기는 '내'가 중심이었는지 내 주변의 '남'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끝나지 않은 여정.
왠지 더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책에서 일러준 이야기.
화분에는 흙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밑에서 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물을 주어야 한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둘 다 없는지도 모른다. - page 68
제 마음 속에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인지......
생각에 잠기며 또다시 그녀와의 동행을 꿈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