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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
이운진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평점 :
'반 고흐'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면 읽곤 합니다.
좋아하는 화가이기에, 그의 삶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기에,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와 같은 시대에 살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기에 그의 이름만 들어도 손길이 가고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갔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도 혹시나 '고흐 씨'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때 우연히 고흐의 <슬픔>을 본 건 운명이었다고 믿어. 벌거벗은 여자가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연필 스케치를 보는 순간, 그냥 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흘렀어. 아무것도 닮지 않았는데 왜 나를 보는 것 같았을까.
(중략)
덧붙여 아주 사소한 고백을 하자면, 고흐의 슬픔에 기대 울었던 그날 난 알았어. 그때까지 결코 가 보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로 들어가려면 슬픔이라는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날의 위안을 내 안의 고흐에게, 시 한 편의 시간으로라도 갚아 주고 싶었던 것 같아. 앞으로도 난 슬픔을 이길 마법을 기대하는 대신 고흐의 별밤 속을 시처럼 자유롭게 마음껏 오래도록 거닐려고 해. - <들어가며> 중
고흐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저자.
고흐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시는 결국 저자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었고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일까......
저 역시도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제 자신의 깊은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었고, 시와 그림을 통해 내 안의 슬픔을 다독여 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여운이 남았던 시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등의 슬픔을 보여줘>
사실 어릴 적엔 몰랐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이란 입으로만, 얼굴로만 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등'.
어쩌면 무심코 보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어른이 되고부터는 자꾸만 부모님의 뒷모습이, 연인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슬픔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등의 모습.
책에 나온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다나이드>가 이렇게나 슬픔을 간직한 작품이었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억지로 꾸밀 수 없는 등, 손 닿지 않는 곳의 아름다움과 슬픔은 진솔해서 언어를 초월한 몸의 시라는 생각도 해 봤어.
(중략)
언제던가 마음이 무너져서 저렇게 혼자 엎드려 울다가 문득 <다나이드>가 떠오른 적이 있어. 그녀의 등 위에 나를 내려놓는 그 순간 내 울음은 천천히 잦아들었어. 큰 슬픔을 보는 일만으로도 내 슬픔은 밀려나는 것 같았어. 그 어떤 말보다도 더 잔잔한 위로가 마음을 덮어 웅크린 몸을 일으켜 세웠지. 그 어느 때보다도 혼자였으나 혼자 울지 않은 듯한 그 경험은 내게 아주 특별했어. 슬픔이라는 건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의 삶에나 스며 있다는, 그런 들리지 않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거야. - page 93
저 역시도 울적해질 때면 <다나이드>가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이 조각상의 여인의 제 슬픔도 짊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일지, 아니면 여인의 슬픔이 더 크기에 그에 따른 안도감때문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뒷모습'이, '등'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시와 그림에 대해 해석을 해 주니 더 공감을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전해준 시와 그림.
만일 내가 그 사이 조금 더 성숙해졌다면 그건 시 그리고 그림과 나눈 마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간직하도록, 슬픔으로부터 조금 더 빨리 회복되도록, 그리고 아픔을 보다 잘 견디도록 해 주었으니까. 물론 시 한 편, 그림 한 점으로 일상의 매 순간이 봄날의 꽃밭이 되진 않았지만, 시와 그림은 내가 삶에 표시하는 눈금을 행복이라고 속이지 않아도 헛된 하루가 아니었음을 믿도록 해 줘. - <들어가며> 중
이 책을 읽고 난 뒤 괜스레 저 역시도 조금은 성숙해진 듯 하였습니다.
아마도 저의 외로움과 슬픔을 책을 읽으면서, 그 속의 시와 그림을 통해 위로받았고 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을 선물받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책을 덮고나니 수많은 감정이 표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문득 저에게도 이런 무수한 감정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한동안 지쳐있었기에 괴로움과 외로움만 있어 아픈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행복도 있었고 즐거움도 있었기에 하루하루 조금은 성숙하고자하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이 책을 펼칠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고흐씨에게 시 한 편, 그림 한 점을 같이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