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탈 - 정치적인 것에 있어서의 수행성에 관한 대화
주디스 버틀러.아테나 아타나시오우 지음, 김응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그냥 아무런 이유없는 이끌림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소설과 에세이에 취중하며 읽었었는데 문득 다른 분야의 책이 읽어보고 싶은 충동에, 때마침 두 명의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대담이라는 것에 이끌렸습니다.
요즘들어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었기에 이 책에선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탈』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정신분석학 용어로, 프로이트에게서는 실제 여성의 페니스 결여를 가리키고, 라캉에게서는 이러한 결여에 대한 지각을 팔루스로 상징화하는 것 자체를 뜻한다.
-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벌써부터 조금은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이에대한 배경지식이 없었기에 이 책을 펼치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이 책은 이론가이자 정치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와 그리스의 사회인류학자 '아테나 아타나시오우'가 그리스 판테이온 대학교에서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에선 각 장마다의 주제에 대해 서로간의 대화형식으로 책에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담에는 수행성과 메시아성에 대해서,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해서, 전 세계적인 정치적 논쟁에 대해 서로간의 의견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저에게는 한 장 한 장 읽어간다는 것이 조금은 힘겹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박탈에 대해 인종차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족주의 등으로 해석을 하며 논리적으로 풀어나갔기에 이에 대해 크게 생각을 해 본 적 없는 저에게는 마치 신세계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읽다보니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를 100%로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뉘앙스를 알게 되고 논쟁의 핵심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이 논리적 근거에 대해 관심을 갖고 검색을 하며 보다 수동적인 독서가의 모습이 아닌 능동적으로 참여하게끔 하였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인정과 생존, 혹은 인정을 견디어내기>에서 '아타나시오우'의 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형식적인 인정이 피해를 설명하는 특정하게 표준화된 양식과 상처받을 가능성의 탈정치화된 양태들에 인정된 주체가 순응하는 것을 조건으로 가능해진다는 점을 이해하고 어떻게 그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고민은 오늘날 "희생자" 담론이 정치적 주장이나 대립보다 더 선호되고 있는 인도주의적 통치성이 가진 다양한 맥락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떤 형태의 인정 과정에서 생겨난, 그리고 그러한 인정에 휘말려 생긴 상처를 포함해서) 가해진 피해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자유주의적 인정으로 변환되거나, 위험성이라든가, 긴장 혹은 심지어 인정의 정치에 연루된 폭력의 이름으로 회피되지 않고 그것이 가진 강력한 아포리아로써 부단히 물어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또다시 관계썽의 문제로 이동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 page 149 ~ 150
책의 뒷표지에는 이런 물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치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책을 읽고난 뒤에 본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가능성과 한계가 존재하였고 서로 간은 얽히고 설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정치라고 하면 눈을 돌리고 귀를 막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좀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연관성을 가지고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를 얻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흐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흐름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진다면 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보다 나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