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닐스 타베르니에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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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제목을 보고는 솔직히 조금 자극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그러다 책의 띠지에서

​

파블로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가 그림을 헌정한

위대한 한 사람의 이야기

​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단한 사람일 텐데...

묻힌 것일까......

그럼 얼마나 답답했기에 우리에게 '바보'라 표현했을까...

이제라도 그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

우체국 슈발이

33년간 쌓아올린 것은

무엇인가!

​

『바보들은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첫 장부터 강렬했습니다.

​

우체부 슈발이 누구냐고요?

파다죠!

​

* 요전에 들린 사람. (fada는 머리가 조금 돈 사람을 가리키는 남프랑스의 말인데, 어원으로 보면 작가 말대로 요정의 마법에 걸린 상태를 뜻한다. ---옮긴이 주)

​

그러고는...

​

「역사 기념물 고등 위원회 위원 여러분, 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은 우체부 슈발의 궁전을 역사 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여러분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기를 바랍니다.」

「더없이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 page 9

​

1969년 프랑스 역사 기념물 고등 위원회 위원 대부분은 한 건축물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촌뜨기의 머릿골에 뒤섞여 있는 터무니없는 것들을 애처롭게 모아놓은 것>이며 예술이 아니라 <정신 병리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지만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부처 전문가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반대를 무시하고 역사 기념물 지정을 강행하게 되는데...

바로 그 건물은 오늘날 연 17만 명이 찾는

​

<이상 궁전>

​

이었습니다.

​

앙드레 브르통은 헌시를 바쳤고,

파블로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는 그림을 남겼으며,

니키 드 생팔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몇 번이나 그 앞에 입을 벌리고 섰던...!

이 건축물을 만든 이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가난한 사람이었고,

마흔셋이던 1879년, 배달 순회로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 하나에 걸려 넘어지면서 꿈에서 본 궁전을 짓기 시작하는데...

하루 30킬로미터의 우편 배달을 마친 뒤 다시 10여 킬로미터를 걸어 돌을 주워 밤이면 쌓아 올린,

사람들의 조롱을 받아 가며 33년에 걸쳐 그의 나이 일흔여섯일 때 높이 12미터에 길이 26미터에 이르는 궁전을 완성하게 됩니다.

​

아마도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 길을 계속 갔을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 엄청난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그는 어쩌면 일손을 놓고 쉬는 틈을 타서 목을 축인 다음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 page 14

​

그렇게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이 33년간 혼자 궁전을 지은 이야기가,

그의 걸작이 예술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기록

이었습니다.

​

제대로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말수도 적고 특별한 취미도 없던 페르디낭.

종종 무거운 짐(달력, 대중적 잡지, 신문!)을 들고도 너끈히 매일 8~10시간씩 걸을 수 있는 사람,

근무일에는 단 하루도 일을 안 하고 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거리에 따라 봉급이 다른, 도역꾼이나 공장 숙련공보다 훨씬 적은 수준의 봉급

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도 자기의 미래가 확실치 않은 터라,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오트리브 마을의 우체부가 된 그.

어떤 고객이 정기 구독하는 잡지들로부터 그의 호기심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는데...

​

페르디낭은 그런 잡지들이며 책들을 열중하여 읽었다. 그 도판들과 이야기들 속에서 그는 프랑스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찬란히 빛나는 나라의 횃불을 그들과 함께 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농부의 아들인 자기가 무슨 위업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가 꺾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책에서 읽은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수학자 몽주는 칼갈이의 아들이었고, 발명가 자카르는 직조공의 자식이었으며, 정치가 콜벨르는 소박한 나사 천 상인의 아들이었다고 하지 않은가? 또 리쿠는 어떤가? 브르타뉴의 가난한 농부였지만 꿋꿋한 의지로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는 놀라운 인물이 아닌가? <리쿠는 참을성 있게 거친 초안을 다듬어서 껄끄러운 부분을 없앴다. 그러고 나면 거친 초안에서 더 정교한 작품이 생겨났다. 이야기 속에 단단히 박힌 그런 시행은 마치 잘 깎인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모든 게 생기를 얻고, 모든 게 시적인 색채로 물들었다.>

그렇다면 나, 피르디낭은 무엇을 할까?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도 세상에 줄 무엇이 있을까? - page 137 ~ 138

​

그러다 그의 삶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우편 배달을 하던 어느 날, 아주 기이하고 무척 색다른 느낌을 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고 그 돌을 주워 정성스럽게 챙기고는

​

<... 내가 처음으로 꿈을 꾼 지 15년이 지난 후에, 그 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서 전혀 생각도 않고 있던 때에, 내 발이 그 꿈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연은 조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내가 석공 일을 하고 건축을 하리라>. - page 148 ~ 149

​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33년의 세월을 거쳐 상상속의 궁전을 완성하게 됩니다.

​

세상의 편견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나갔던 그의 열정이 바보는 바로 우리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가 달릴 수 있었던 건 아내의 내조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인상적이었는데...

​

「당신, 나랑 같이 살아서 행복했어?」

페르디낭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당신이 없었으면, 난 버티지 못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을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당신을 만난거지…….」 - page 347

​

먹먹함에...

그리곤 그가 일흔여덟의 나이에 다시 외바퀴 손수레를 끌고 무덤을 궁전처럼 만드는데...

그에게서 궁전의 건축은

​

야망의 실현이자 사랑하는 이들을 애도하는 수단

​

이었음을...

마지막까지 울림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

위대한 한 예술가의 이야기...

그는 우리에게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신념을 믿으며, 열정을 다하면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며 희망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꿈을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음에 그가 첫돌을 놓았듯이 저도 돌 하나를 놓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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