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이게 정말 예술 맞습니까?"
1927년 미국 뉴욕의 세관 법정.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황동으로 만든 매끄러운 금속 덩어리 하나를 두고 세관원과 마주서게 됩니다.
세관원은 그것을 주방 도구나 공산품이라 불렀고
작가는 '새'를 표현한 예술 작품이라 주장했습니다.
세금 40퍼센트를 내야 하는 물건인가, 아니면 관세가 면제되는 숭고한 예술품인가...
약 100년이 지난 2019년, 마이애미의 아트 바젤 전시장.
이탈리아의 악동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인근 식료품점에서 사 온 바나나 하나를 덕트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습니다.
그 바나나는 1억 4천만원에 팔렸는데 한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떼어 먹으면서 사람들은 다시 묻게 됩니다.
"이것은 재물손괴죄인가, 아니면 또 다른 예술 퍼포먼스인가?"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고,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사기죄로 법정에 서고,
AI가 그린 그림은 저작권등록을 거절당하는 등
법과 예술의 충돌 속에서 책은
이것은 정말 예술인가?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서부터 표절인가?
예술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우리는 예술 작품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가?
소유자는 작품을 파괴할 권리까지 가지는가?
AI가 만든 결과물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을 다루는 여섯 개의 법정을 따라가며,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생생한 사건과 날카로운 판결
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판사의 판결이 예술을 질식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예술가의 도발이 법의 허점을 찌르기도 하는데...
법과 예술의 관계...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법이 예술 앞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태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책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예술은 아직 법정에서 완전히 패소하지 않았다. - page 424
어제의 스캔들이 오늘의 걸작이 되고
오늘의 문화유산이 어제의 범죄로 취급받았던 것이 오늘의 문화유산이 되는
이에 대해
과연 모든 독창성은 부정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그렇다면 예술 저작권법 개념 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저작권법은 창작을 보호하는 법이다. 창작이 곧 인류 진화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혼란과 시간을 동반한다. - page 75
결국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었고 받아들이기까지 혼란과 시간은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예술은 동시대인들의 사상과 철학, 감정과 관점, 그리고 당대의 사건 등을 기록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자 기록이며, 한 인간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 예술이 법률적 판단의 대상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점이 슬프게 다가왔지만
그럼도 법정은 예술을 심판하는 곳인 동시에 새로운 미학을 세상에 선포하는 무대이기도 하기에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AI 시대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의 예술을 어디까지 규제하고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AI 아티스트 'X'의 미국에서의 판결...
법은 X를 금지하지 않았다. X를 파괴하거나 추방하지도 않았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너는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작자는 아니다.
너는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대체할 수는 없다.
너는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잠식해서는 안 된다.
너는 도구로서 활용될 때에만 자유롭다.
X는 오늘도 작업 중이다. "어디까지가 허용된 창작인가"라는 예전과는 다른 질문을 품은 채. 그리고 어쩌면, 이 질문을 가장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할 존재는 AI가 아니라 인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법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 page 370
기술도 예술의 마지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