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건축가'는 도쿄의 관문이자 일상의 축인 '역(station)'과 옛 만세이바시의 흔적을 통해
도시와 기억의 관계를 추적하고, 도시에 남겨진 매혹적인 흔적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요리사'는 36번의 계절을 지나며 체득한 일본의 식문화, 손님을 온전히 환대하는 오모테나시의 철학, 그리고 주방 안팎의 생존기를 통해 일본을 이해하는 창을 열어주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17년간 하라주쿠의 빈티지 씬(scene)을 누비며 서브 컬처가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로 진화하는 매커니즘과 다양성의 공기를 포착했습니다.
'예술가'는 아이의 유치원 등하원 길에 마주한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 롯폰기 모리 미술관을 통해 일상과 육아,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귐'의 시간과 '머무름'의 미학을 전하였습니다.
'출판 디자이너'는 도쿄의 출판 및 인쇄 성지라 불리는 진보초에서 만화책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종이책의 물성과 인쇄 문화의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배운 오답노트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5인의 시선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의 시선들이 쌓이고 쌓여 한 도시가 이루어지게 되고,
그럼 우리의 도시엔 어떤 레이어가 숨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도 지나쳤던 '역'의 의미를...
건축가에게 사색이란 '멈춤'이자 '출발'이다. 멈춰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도시의 표정이 보이고, 그 표정 속에서 다시 나아갈 다음의 선이 그려진다. 역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언제나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는 경계의 장소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발걸음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도시가 어떻게 기억되고 변화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도시를 걷고, 멈추고, 바라보며 공간 속에 스며 있는 시간과 사람들의 흔적을 읽어내는 작은 사색의 기록들 말이다. - page 34
그 의미가 새겨져있었던 만세이바시역이
'철거와 신축 사이에 놓인 제3의선택지'를 실험하여 2013년 '마치 에큐트 만세이바시'로 재탄생하였는데
오늘날 마치 에큐트는 단순한 상업공간을 넘어 도시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담아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차로로 존재한다. 이곳에서 나는 가끔 시선으로 벽돌을 더듬으며 '건축은 결국 기억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에 잠긴다. 벽돌은 재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벽돌이 구워지는 온도와 위치,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벽돌이 설치된 이후의 자리와 시간에 따라 풍화하며 각기 다른 색과 표정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적 재료인 콘크리트나 유리에서 느껴지는 균일한 질감과는 다르다. 벽돌 하나하나가 마치 개인의 개성처럼 동일한 시스템 안에서도 서로 다른 기억을 품은 객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page 69
기억의 잔향이 남아 있고.
그 위에 현재의 삶이 더해진 이곳의 의미가...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현대화로 바뀐 마당에 아쉬움이 남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