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술 작품을 마주할 때 일체감 또는 거부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건 아마도...
그림을 보는 것은 흩어진 생각과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이다. 때로는 그림이라는 거울 속에서 어둡고 추악한 내 모습과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자만과 허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거울을 마주하며 진짜 나를 알아가게 된다. 내가 아는 나를 넘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면서 나를 더 알고 싶어진다. 나를 제대로 알고 나면 허영과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그림은 나와 삶을 비춘다. 그렇게 나는 미술을 통해 흔들리는 삶을 통과하고 있다. - page 18 ~ 19
작품 속에서 나와 닮은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화가 자신의 삶에서 겪을 감정에 내가 느꼈던 감정, 경험이 더해지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되고
어느새 그 작품은 나의 또 다른 '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책 속엔
뭉크의 <절규>에서 <태양>으로,
펠릭스 발로통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에서 <공>으로,
앙리 루소의 <세관>에서 <뱀을 부리는 주술사>로,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까지,
욕망, 불안, 외로움, 애도, 후회 속에서 흔들리던 시기의 그림부터 그 시간을 지나 자신만의 답을 찾아 삶을 품게 된 순간의 그림까지
명화 속 화가들의 방황과 마침내 깨달은 삶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작품을 바라볼 우리에게
불완전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용하고도 따스한 공간을 마련해 주며 다독여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전시가 있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과 수잔 발라동: 몽마르트르의 화가들>
수잔 발라동의 그림이...
자꾸만 제 마음을 붙잡았다고 할까...
그래서 꼭 보러 가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미혼모에게 태어나 파리로 이주한 뒤,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열다섯 살에 서커스단에 입단해 단원으로 활동했지만 그네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이후 친구를 따라 화가의 모델이 되었고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평범한 여성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수잔 발라동'
발라동은 여성을 감상의 대상이나 이상화된 존재로 그리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시선은 다른 여성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이어졌다. 발라동은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나다운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자화상 속 그녀는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터질듯한 관능미도, 로트레크의 그림처럼 삶에 지친 모습도 아니다. 자화상 속에는 그저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한 여자가 있을 뿐이다. - page 97
방황하던 시절도, 결핍으로 힘들었던 시절도,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던 시절도 모두 '나'였고
그런 나를 고스란히 그려냈던 수잔 발라동.
그녀의 작품을 통해
진정한 '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시간이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 과거는 후회한다고 바꿀 수 없으며, 미래는 걱정해도 알 수 없다. 지금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 page 101
제가 그녀의 작품에 끌렸던 건 진짜 '나'를 찾고 싶었나 봅니다.
자화상을 보며...
저도 저를 받아들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