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봄, 피어싱을 얼굴에 주렁주렁 단 천사가 나를 찾아왔다. - page 5
북한산 아래 오래된 동네, 미암동에서 20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며 별다를 것 없는 매일을 보내던 53세 '김재근'
어느 봄, 피어싱을 주렁주렁 달고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는 재미교포가 나타납니다.
'성스러운 가브리엘' 줄여서 '성갑'이라고 소개하는 그.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천사예요. 타락한 도시 서울을 멸망시키러 온. 근데 위에서 마지막 체크를 하래요. 그러니까 여기에 아직도 의인이 남아 있는지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 리도 없거니와 녀석의 꿍꿍이에 말려들 것 같아 답하지 않았는데...
"... 나 서울에 의인 있는지 확인하는 미션 받았어. 근데 서울 너무 큰 거야. 힘들다고 했더니 위에서 서울 의인상 수상자 중에 찾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도움 받아야 해."
"물건 팔아주는 거랑 그런 일이랑은 다른 문제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지."
"머니 톡스! 사람이 돈 안 따르는 건 돈이 적어서래요. 의인상 수상자 한 명에 5백 해요. 그동안 수상자 아홉 명이고 아저씨 빼면 여덟 명. 여덟 명 다 확인하면 4천만 원. 완전 좋은 거 아니에요?"
이 허무맹랑한 말에 처음엔 무시를 했지만...
갑작스레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고...
재근은 그의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형사 시절의 수사 기법을 떠올리며 먼저 행동 방침을 정하고
1. 역대 서울 의인상 수상자들을 찾는다.
2. 그중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확인해 만난다.
3. 여전히 의로운지 혹은 타락했는지 1~2회 만남으로 판단한다.
4. 판단한 결과를 성갑에게 보고한다.
5. 잔금을 받고 잊는다. 서울의 미래는 내 알 바 아니다.
본격적으로 서울 의인상 수상자들의 행방을 쫓기 시작합니다.
재근을 포함해 모두 아홉 명.
재근은 의인상 수상 이후 특채로 경찰이 되었다가 수사 과정에서 장물에 손을 댄 사실이 드러나, 끝내 경찰복을 벗고 가업인 철물점을 이어받아야 했던 자신과는 달리 그들은 여전히 의인으로 살고 있을까...?
주어진 시간 열흘.
과연 재근은 서울을 구할 진정한 의인을 단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인이고 뭐고 할일을 해치우자, 였다면 지금은 왠지 모를 기대와 불안을 동반한 책임감이 나를 감쌌다. 서울이 천벌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이 결과는 어쩌면 내게, 그러니까 타락한 의인으로 살아온 내 인생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것만 같아서였다. - page 112
재근은 성갑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
단순히 신의 사명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속이고, 사기 치고, 협박하고, 빼앗고, 때리고, 이용하고, 갈취하고, 부수고, 싸우고, 모멸하고, 무시하고, 억압하고, 짓누르고, 차별하고, 괴롭히고, 마침내 목숨을 앗아가거나 스스로 저버리게 하고…… 이 도시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다치거나 해를 입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늘 긴장한 채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이지 않게' 타인을 노려보며 살아야 했다. 극소수의 의인과 대다수의 무심한 사람들은 치밀하고 성실한 악인들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다. 어쩌면 성갑이 내내 의기양양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서울이란 비인간의 도시를 멸하는 건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을 느낄 만한 행동이란 거겠지. - page 121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결국...
처음 성갑이 철물점을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엉뚱하고 재미있는 재미교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성갑이 내게 의인상 수상자를 점검해달라고 할 때는 곤란하고 의아했다. 하지만 녀석의 요청대로 서울 의인상 수상자를 만나다보니 결국 나의 과거를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그게 녀석의 의도였다는 걸. 이제 녀석의 과거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성갑은 과거를 외면하지 말고 함께 정리할 것을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돈과 피가 튀고 서울이 멸망하고는 부수적인 효과일 따름이었다. - page 196
그 속에 살아남기 위한 우리들의 선택과 정의의 의미...
지금의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소설은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선사하고자 했는데...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손을 모아 내가 믿어왔다고 생각했던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바라건대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사옵니다. 바라건대 아무것도 행하지 마옵소서. 간절히 바라건대, 인간에게 우연이란 이름으로 찾아오지 마옵소서. 이미 우리는 충분히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아멘. - page 288 ~ 289
이 기도를 저 역시도 두 손 모아 빌게 되는 건...
과연 나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 마주하게 된 서울의 모습.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았습니다.
이 묘한 기분...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우리들...
'의인'보단 '선인'의 삶을...
그렇게 모두 우리의 서울을 지켜보는 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