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윤채근 지음 / 북레시피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 중의 하나...

'일제강점기'

마주하면 가슴 아프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기에...

이 소설을 보자마자 살짝 주저함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역시나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은 이들의 이야기

소설이라지만...

소설로만 그치지 않을 듯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유서 속에 주저흔처럼 새겨진

시대의 아픔과 진실

1942년 경성에서 '점'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김욱은 어머니 유품 속에 있던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폐암 말기의 어머니는 예상보다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 죽음과 더불어 그녀의 이야기 역시 망각의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 - page 7

평생 비밀지령을 받고 지구에 파견된 외계인처럼 살았던 김욱의 어머니 '최혜심'.

유일한 혈육인 아들 김욱을 데리고 경기도와 서울을 옮겨 다니던 그녀는 일본의 누군가로부터 후원을 받곤 했는데...

유품이 든 가방 속 국토통일원에서 보낸 공문으로부터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북에 있는 남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유서로부터

나의 삶은 놀랍고 훌륭했지만 치욕적이기도 했다.

...

욱아, 나의 아들아. 해방 이후 나의 삶은 김혁 없이 생존하기 위한 부끄러운 투쟁이었다. 너에게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 겪은 고초는 따로 말하지 않겠다. 내가 죽고 난 뒤 네가 아버지를 만날 수만 있다면 후회는 없다. 설령 만날 수 없다 해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욱아,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결코 이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건 1942년 가을 운명처럼 시작됐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왜 자기 삶에 대해 침묵했을까?

외과의사가 된 아들의 물질적 지원을 거부하고 유폐와도 같은 고독을 선택한 그녀는 누구인가?

이야기는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경성.

밀양 출신의 스무 살 청년 '김혁'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을 동경하여 독립군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독립군 전사로서 김혁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안에 깃든 스무 살 청년은 죽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갓 스무 살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구름이 걷히며 창을 타고 들어온 선홍색 달빛이 김혁 얼굴 반을 물들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절망한 표정ㅇ도 따라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는 것보다 가치 있는 죽음도 있소." - page 32

그는 김원봉의 비밀 임무를 받아 경성에 오게 된 것입니다.

바로

'야차'라 불리는 조선인 여인 구출

야차는 총독부 고위 관료 다나카 정무총감의 수양딸 '다나카 코코 시즈코' 였습니다.

시즈코 안에 숨은 또 한 명의 시즈코, 조선인 시즈코는 상처 입은 자존심에 몸서리치는 불안한 존재였지만 현실의 그녀보다 훨씬 영리했다. 영리한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다. 그건 입양된 조선인 딸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이자 제국이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포용력의 끝 지점이었다.

...

삼 년 전, 그녀는 조선에 대해 간절히 알고 싶었다. 그 호기심을 억누르려 조선을 비하하면 할수록 앎의 공복은 커져만 갔었다. 지금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그 영혼의 배고픔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그녀는 불안했다. 하지만 분명해진 건 그녀의 야차 놀이가 사춘기의 열정만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를 구하려는 투쟁일 수도 있었다. - page 152 ~ 153

그러다 자신이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결심하게 되는데...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길러진 여인 '최혜심'

중경에서 온 아나키스트 '김혁'

정의감 가득한 무도가인 '야마시타 경부'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해 밀정이 된 '불곰'

일제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구로다 군조'

이들의 적대적 공생과 치명적 배반이 얽힌 경성역의 붉은 달 아래, 진실을 향한 페이퍼 체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책의 제목 '페이퍼 체이스'의 의미를

"페이퍼 체이스라고 들어봤소?"

한 차례 고개를 갸웃거린 노사가 대답했다.

"종잇조각을 떨어뜨리며 도망가는 자를 술래가 쫓는 게임 아니던가요? 조선의 숨바꼭질 같은?"

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노사의 온화한 표정 안에 숨겨진 다른 얼굴을 발견하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난 그걸 하러 온 사람이오. 떨어진 종이를 주우며 목표를 찾는 술래." - page 66

그리고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스무 살? 죽긴 아까운 나이디. 내래 독립단 아니야. 어드러케 설명해얄지 모르갔구만기래. 여기 경성 생각을 함 해보라우. 지금 여기 상황이 어떠캈어? 의열단이고 독립단이고 다 처분됐어. 우리? 조직 아니야. 우린 점이야, 점."

"점?"

"기래, 점. 독립운동 조직들 다 헤쳐 흩어진 지 오래야 선으로 연결될 게 남아 있딜 않아. 선이 끊긴 기지. 기래서 점들로 뿔뿔이 살아남은 기야. 동무래 그 점들을 따라 이리저리 뛰다닌 거이고. 용케 살아 있는 줄만 알라우." - page 33

각각의 점이 선이 되어가면서

그렇게 우리의 역사 한 페이지가 완성되었지만 정작 점이었기에 페이지에서는 그저 흔적으로 남았던...

"이름들을 기억하시오?"

정종 한 잔을 더 마신 히로시가 난로 속 감자를 꺼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난 이름 기억 안 해요. 그게 뭔 쓸모가 있다고? 광나루를 지나는 나그네가 하루에도 수백 명이오. 그 속엔 독립군도 있고 친일파도 있고 밀정들도 있을 거고. 많이 보다 보면 다 그게 그 사람으로 보이거든. 기억이든 기록이든 다 부질없는 겁디다." - page 109 ~ 110

참...

슬펐습니다...

나라면 이 시대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김혁이 외쳤던 이 시가 잠시나마 제 곁에 바람으로 불어왔습니다.

안녕이라 속삭이면

들녘 바람은 기억하리

물러설 곳 없어

하늘가 우두커니 선 그림자

돌이키지 못해 천천히

저무는 석양

아무도 남지 않은 언덕

바람은 기억하리

안녕이라 속삭이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