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프라하.
보험회사 직원이 밤새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레가 되어 있던 남자의 이야기.
'프란츠 카프카'
1912년, 빈에서 스물한 살의 화가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미성년자를 외설적으로 그렸다는 혐의였고, 재판정에서 판사는 그의 그림 한 점을 촛불에 태워버렸습니다.
'에곤 실레'
1912년, 같은 제국, 같은 언어, 다른 도시.
이 두 사람에게는 놀랍도록 닮은 점이 있었으니...!
둘 다, '아버지'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살아 있는 권위'였습니다.
거구의 사업가이자 가부장적인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 앞에서 아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 위축되었고, 세 번의 약혼은 모두 파혼으로 끝나며, 40세 죽을 때까지 부모 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에곤 실레에게 아버지는 '죽은 공포'였습니다.
매독으로 정신이 무너진 아버지가 가족의 모든 재산을 불태우고 죽는 것을 열세 살의 소년 실레는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내 몸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 의해 점령당한 영토인가?
둘 다, 제국이 무너질 때, 예술이 폭발하게 됩니다.
1900년 전후 빈과 프라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심장부였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제국은 서서히 무너지게 되면서 이 나라의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묻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혼란 속에서
-카프카가 벌레가 된 직장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변신』, 1912)
-실레가 자신의 뒤틀린 몸을 그렸습니다.
(1910년 자화상)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했습니다.
(『꿈의 해석』, 1899)
-클림트가 금빛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키스》, 1908)
-쇤베르크가 조성을 해체했습니다.
(현악 사중주 2번, 1908)
가정 환경이, 그 시대 사회적 배경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한 사람은 문장으로, 다른 한 명은 붓으로
비명을 질렀고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