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떼어내 다른 사람에게 나눠준다니… 아, 상상만 해도 아프다. - page 7
구치소 접견 대기실.
면회객들 사이에서, 면회객들이 챙겨온 음식 냄새 속에서 정팡은 생각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자기 얼굴을 떼어 나눈다니… 실내를 가득 채운 음식 냄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호빵맨의 좌우명이 마음속에서 발효를 거듭했다. 그러다 불현듯 그 속에서 나는 섬뜩한 재미를 느꼈다. 호빵맨이 얼굴, 그러니까 자기 몸과 체면, 존엄을 조각조각 떼어낼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 그런데 호빵맨이 얼굴을 떼어낸 동기는 뭐지? 샤오위에게 물어볼걸. 정의? 사랑? 아니면 평화? 그러고 보니 나는 여태껏 밍런의 범죄 동기도 정확히 모른다. - pageg 8
2주 전 아이들을 데리고 면회를 다녀온 뒤, 더 이상 오지 말라던 밍런이 구치소에서 전화를 걸어 면회를 와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내 의무는 아니잖아?"
"그래, 부탁하는 거야."
전남편이 이렇게까지 굽히고 들어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어쩌다 그가 나를 떠올리게 된 건지 알고 싶어서 면회에 가게 된 정팡.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그 여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절기상 초가을인 8월의 오후, 아이들의 여름 방학 숙제를 위해 온 가족이 함께 황쭈이 화산 분화구에 오게 된 이들.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예상대로 밍런은 운전기사만, 그리고 차에서 일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따지듯 물었는데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 당신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걸지도 몰라."
밍런이 내세운 건, 요컨대
결혼한 이래로 코끼리가 존재했고,
코끼리의 배 밑이자 네 발 사이에서 코끼리를 집 삼아 살며 아이 둘을 낳았고
이제 큰아들이 일곱 살, 작은딸이 여섯 살이 되었으니 더 이상 아빠인 척, 남편인 척, 살아갈 수 없다며,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그러니 이제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까짓거 이혼하지, 뭐. 당신도 좀 쿨해져. 애인 생겼다고 인정하라고."
"말했잖아, 다른 여자 생긴 거 아니라고."
분명 누군가가 있어서 이혼하려는 거라고 직감은 굳세게 주장하는데, 밍런의 태도가 왠지 거짓말 같지 않은데...
이해할 수 없는 상실감 속에 간신히 일상을 버티던 정팡.
그러던 어느 밤,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밍런.
그리고 한 달 뒤 살인 용의자로 구속되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며 모든 면회를 거부하던 그가 돌연 정팡에게 집 안에 숨겨둔 '어떤 물건'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이튿날 자살을 선택한 그.
바퀴벌레도 못 죽이는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살을 선택하면서까지 지키려던 비밀이란...?
정팡은 밍런이 남긴 단서들을 추적하며 완벽했던 일상 뒤에 숨겨진 기괴하고 서늘한 진실과 직면하게 되는데...
죽어버린 꿈과 죽어가는 꿈, 그리고 작디작은 희망이 바람 속을 유유히 맴돌았지만, 아마도 알아챈 이는 없었을 것이다.
상관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먼 곳을 향해 울부짖는 코끼리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 page 314
남편이 남긴 고통스러운 판도라의 상자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였던 정팡.
불편한 진실 앞에서 정팡은
그는 그토록 이기적이면서도 순수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죽이고 싶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얼굴을 떼어내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만큼이나 그를 이해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 page 305 ~ 306
고통스러우면서도 이해하고자 했던 그 태도...
그래서 정팡이 참 안쓰럽다고, 그럼에도 대단하다고...
만약 나라면 코끼리를 씻겨줄 수 있을까...?
용서를, 관용을, 용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균열과 상처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가던 그녀.
그녀에게 코끼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저도 나아가는 방법을 한 수 배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