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가 오랫동안,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 3명의 인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수레바퀴 아래서』에서의 '한스 기벤라트'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소년은 신학교에서 '헤르만 하일르너'라는 천재적이고 반항적인 시인 학생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다
힌딩거라는 친구의 죽음과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교장 선생님과 대립하다가 신학교를 뛰쳐나간 사건을 계기로 하일르너는 퇴학을 당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고된 생활과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약해진 한스는 신학교를 휴학하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한스는 무기력과 우울증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그렇게도 똑똑했는데…. 게다가 모든 게 잘되다가! 학교에서도, 시험에서도…. 그런데 갑자기 불행이 겹치다니!"
구두 장수는 프록코트 차림으로 묘지 문을 나가는 사람들을 턱짓했다.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이 이 애를 이런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이오." - page 214
타인의 '좋음'의 기준을 좇는...
'열심히'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그 사회는 여전히 지금도 수레바퀴처럼 돌고 있었고...
슬펐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데미안』에서의 '에밀 싱클레어'
"나는 오직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성장하는 그는 '막스 데미안'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쪽지를 펼치는 순간, 다음 문장이 한꺼번에 눈에 박혔다. 운명 앞에 고개를 숙인 내 심장은 찬바람을 맞은 것처럼 오그라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 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
나는 그 몇 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며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것이 데미안의 답장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page 348
선과 악,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자신만의 아브락사스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그 무렵 나는 색다른 피난처 하나를 발견했다. 이른바 '우연' 덕분이었다. 하지만 원래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이 뜻하지 않은 방향에서 주어지면 우리는 '우연'이라 부르지만, 실은 그것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그만큼 열의를 다해 구한 사람에게 돌아온 당연한 대가일 뿐이다.
우연히 주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사람 자신이 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욕구와 필연이 그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 page 357 ~ 358
러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하게 된 싱클레어.
그곳에서 큰 부상을 당하게 되지만, 그것은 그가 이제 그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운명을 대면할 수 있게 됩니다.
"잘 들어, 싱클레어. 난 곧 여길 떠나야 할 것 같아. 너는 언젠가 다시 나를 찾게 될 거야. 하지만 그때는 네가 부른다고 예전처럼 말이나 기차를 타고 너에게 갈 수 없어. 그때는 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알겠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어머니 아니, 에바 부인이 네게 전한 말인데, 네게 어떤 이변이 생기면 내가 대신 키스해 주라고 했어. 나는 에바 부인의 키스를… 네 몫까지 받았어. 눈을 감아, 싱클레어."
...
나는 치료를 받았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열쇠를 찾아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부 세계 깊숙한 곳의 마음의 거울에는 운명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거울 위로 허리를 굽히기만 하면 나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거울 속 그 모습은, 내 친구이자 내 인도자였던 그 남자를 닮아 있었다. - page 447
방황과 좌절 속에서 자아를 찾아 나아가는 과정...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싯다르타』에서의 '싯다르타'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던 싯다르타.
그런데도 싯다르타는 자신의 정신이 만족하지 못하고, 영혼은 가라앉지 않으며, 심장은 여전히 허기진 듯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싯다르타의 마을에 찾아온 사문 일행을 보고 그들을 따라 친구 고빈다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고빈다. 머지않아 나는 자네와 함께 오래 걸어온 사문의 길을 버릴 생각이네.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네. 오, 고빈다. 이 긴 길 위에서도 내 갈증은 줄지 않았어. 나는 언제나 지식에 목말랐고, 늘 의혹으로 가득했지. 해마다 바라문들에게 물었고, 해마다 성스러운 베다를 붙들고 질문했네. 해마다 사문들에게 헌신하며 답을 구했어. 그런데 오, 고빈다… 어쩌면 코뿔새나 침팬지에게 물었어도 이만큼은 했을 거야. 이만큼 똑똑해지고, 이만큼 '유익한 척'은 되었겠지. 나는 지금, 인간이 결국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네. 그리고 아직도 만족스러운 해답은 얻지 못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실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네. 오, 친구여. 있는 지식은 단 하나뿐일세. 어디에나 있는 것. 아트만일세. 내 안에, 자네 안에. 모든 생명과 모든 창조물 안에, 그리고 나는 이 지식을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해로운 적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 page 472
깨달음을 얻은 자인 고타마를 찾아갔지만 결국
'도대체 나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무엇을 배우려 했던가?
그렇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그들이 끝내 내게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다 문득, 한 줄기 번개처럼 생각이 스쳤다.
'그것은 자아다. 나는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 page 491
이 깨달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카말라 여인과의 만남으로 세속의 욕망을 즐기게 되고
돈 많은 상인 카마스와미에게서 돈에 대해 배우며 세속에 찌든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 싯다르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오두막에 홀로 남게 되는데...
고빈다는 보았다.
유전하는 무수한 형체 위에 일관된 수천의 미소를.
삶과 죽음을 초월한 동시성의 미소를.
가면의 웃음을.
그 웃음은 고타마의 웃음이었다. 그가 무한히 존경해 오던, 조용하고 명랑하며 헤아릴 수 없이 자비롭고 또 어딘가 비웃는 듯한, 현명한 부처의 수천 가지 웃음이었다.
그리하여 고빈다는 깨달았다.
인격이 완성된 자는… 틀림없이 미소한다는 것을.
...
천태만상의 막이 거기서 사라지자, 싯다르타의 얼굴은 다시 전과 같았다.
싯다르타는 조용히 웃었다. 은밀히 웃었다. 자비롭고도 어딘가 조롱이 섞인 듯한 얼굴로, 마치 부처처럼 웃었다. - page 608
진정한 지혜는 스스로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견딘 뒤에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깨어나지 못한 채 짓눌리는 삶의 위험을
『데미안』은 껍질이 깨지는 통증과 함께 찾아오는 자유를
『싯다르타』는 자유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무게인 선택, 책임, 관계, 후회를 끌어안는 법을
보여주면서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깨어날 힘이 있다는 믿음을
그리고 그 힘은 남이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키워야 한다는 믿음을
우리의 인생처럼 긴 여정으로 그려냈던 이 책.
긴 여정의 끝에 '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주하게 된 나...
이젠 저도 나를 가두던 껍질을 깰 차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