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앞 19세기 후반의 영국 사회.
그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자본가들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노동자를 대하며
예술은 부유한 소수의 것이 되어갔습니다.
이런 영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예술에 불안감을 안고 암담한 미래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질문하였던 '윌리엄 모리스'
1878년부터 1881년까지 다섯 번의 강연들
(책에서는 5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에서는 르네상스 이전까지도 생활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나 가구나 장식 같은 더 작은 예술이 경시되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였고
2장에서는 진정한 예술은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3장에서는 진정한 예술이 싹틀 수 있도록 역사적인 예술품을 보존하고 배우며 자연이 더 이상 훼손되고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4장에서는 예술이 희망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5장에서는 모든 예술이 통합되는 분야, 건축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일러주고자 한 것은...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며 자연이 베풀어준 향연을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잘못도 아닌데 생각도 기쁨도 없이 그저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속박에 반항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요? 우리 자신은 승리할 희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희망으로 가득 찬 예술이 우리의 삶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갈망은 우리가 예술을 확산시키려고 애쓰게 하며, 예술을 더 원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예술을 갈망한다고 느낀다면, 우리에게 이끌린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미약하게라도 우리의 반항이 힘을 더 얻게 되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충분히 나눌 수 있게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이 예술을 공평하게 가지게 되면, 이전의 자기 몫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또 삶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 page 231
150여 년 전 이미 그는 환경 오염, 노동의 비인간화, 예술의 소외, 삶의 양극화 등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는 기계적 생산을 갓 시작한 산업 사회였기에 창의적인 노동은 고사하고, 노동자를 그저 새로운 부류의 노예로 집단화하였지만 오늘날을 보면 양적·질적 발전하였기에 모리스가 꿈꾸었던 적당한 노동의 기쁨과 예술 창작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계와 노동의 대립은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였고...
결국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나아가야 함을 일러주었던 그.
지금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실용적인 면을 중시한 '아파트'에서 우리가 만족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집에 살면서 적당한 일을 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마음이야말로 예술을 구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술에는 파괴할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 page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