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앞도 뒤도 위도 아래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새까맣다.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두 손을 들어 내려다봤다. 손이 보이지 않는다. 손을 바로 눈앞에 갖다 댔지만 보이지 않는다.
왜지? 눈이 보이지 않는 건가? - page 52
시커먼 암흑 속.
뭔가가 어른거리는 걸 보니 눈이 안 보이는 건 아니고...
불안과 공포 속에
"아악!" 젊은 여장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고
"꺄악!" 어린 여자아이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정수리를 꿰뚫었습니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다 갑자기 모든 감각이 사라져 버리곤 무언가가 머리를 쿡쿡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은데요…."
김동현.
기억을 잃은 채 병실에서 깨어난 그는 심리상담사 '최재준'으로부터
"김동현 님은 아내와 따님을 모두 잃으셨습니다."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이 사실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또다시 기억을 잃었었다며
그럼에도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알려준다는 재준.
"앞으로도 꿈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보게 되실 겁니다. 물론 현실에서 갑자기 떠오를 수도 있고요. 충격적인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절대로 김동현 님 '자신'을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시겠죠?" - page 86
동현은 재준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둘 기억을 복원해나가며 복수를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앗아간 악마들.
판사 이기우와 검사 최진열, 대망그룹 정순철 회장과 그의 아들 정진태.
이 네 명의 악마에 내려지는 '나'의 최후의 심판.
지난번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내 딸 수아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충격을 이겨내고 악마들에 대한 복수까지 준비했었다. 그런데 결국 모든 기억을 잃었다. 왜? 무엇 때문에? 내 딸의 비참한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이 있었던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 이상의 충격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충격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까?
그 어떤 충격이 기다리고 있든 이번에는 복수해야 한다. 반드시! 다시 기억을 잃기 전에! - page 179
악마들을 하나씩 처형대에 올려 진행하면서 지금껏 가려진 어둠의 장막이 걷히는데...
마침내 마주하게 된 진실...!
"직접 나서지 않고 어떻게 복수를 하겠다는 겁니까?!" - page 402
복수가 삶의 전부가 되었던 이들.
긴 시간 동안 복수를 준비하며 삶을 지탱했을 이들의 모습이 처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수 후의 이들의 삶...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강한 권력을 가졌던 가해자들.
권력으로 누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의 세상도 여전히 엿볼 수 있었던 것이었고
이로 세상은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체계를 만들어야 함을
또다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날카로운 복수의 칼날로 변했던,
그 칼날이 결국 또다시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다른 슬픔이 찾아왔었던 이 소설.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