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영혼의 미술관 - 우리가 사랑한 화가들의 삶이 담긴 낯선 그림들
김원형 지음 / 지콜론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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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했었습니다.


'해바라기' 하면 '빈센트 반 고흐'

'절규' 하면 '에드바르 뭉크'

'키스'하면 '구스타프 클림트'


흔히 화가를 그들의 가장 유명한 작품, 단 하나의 그림으로만 기억했었는데...

이 책의 소개 글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말 하나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대변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받자마자 솔직히 뜨끔했습니다.

하나의 작품으로 화가를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명성 뒤에 가려진, 거장 18명의 낯설고도 사적인 그림들을 이야기한다고 하였습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

이제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림은 벽에 걸린 장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온몸으로 밀어 올린 삶의 증거다

거장들이 캔버스 위에 새긴 숨겨진 영혼의 기록


숨겨진 영혼의 미술관

책은

어둠치유순간탐구교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18명 거장들의 내밀한 고백이

다섯 개의 특별한 전시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마주하게 된 거장들의 영혼들은 생각보다 더 절박했고 치열했었으며 

그랬기에 더 우리에게 위로와 치유를 건네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이제는 화가의 대표작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과 같이 그들을 제 안의 미술관에 담아둘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된 이가 있었는데...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1880년 독일 아샤펜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드레스덴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1905년 동료들과 함께 표현주의 미술가 집단 "다리파"를 설립하게 됩니다.

1911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는 그곳에서 표현주의 화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게 되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비록 폐질환과 허약을 이유로 군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지만 짧은 군 복무는 그를 신경쇠약에 빠트렸고, 알코올과 모르핀에 의존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다시 군인으로 징집될지도 모른다는 고통스러운 불안이 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밤낮으로 그런 불안한 상상에 시달렸습니다."


1917년 1월, 군 복무 이후 절망에 빠진 키르히너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스위스 다보스로 향하게 됩니다.

약 한 달간 첫 요양을 마치고는 평화와 고독을 원했던 키르히너는 알프스의 고립된 풍경 속에서 그곳 사람들과 교감하며 치우의 시간을 보내며 수많은 드로잉과 수채화, 목판화, 유화를 남기게 됩니다.


"산의 황량하면서도 친밀한 자연은 화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작품 소재에 대한 그의 사랑을 깊게 했고 동시에 부차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그의 시각을 정화시켰다... 그의 심각한 병은 그를 파괴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숙시켰다."


그는 이곳에서 파괴적이고 격렬했던 표현주의의 외침을 섬세하고 조화로운 서정으로 바꾸어냈습니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느끼는 묘한 위안과 평화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한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희망의 색깔이다. 키르히너는 다보스의 산들로부터 예술의 본질을 다시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법을 터득했다. - page 183 ~ 184


눈 덮인 산맥들,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굽이치는 강과 우뚝 선 침엽수들.

푸른빛과 분홍빛, 주황색과 노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우리에게 포근하고 보호적인, 삶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이 작품.

그의 치유의 과정이었지만...


1937년, 뮌헨의 '퇴폐미술전'이 깊은 상처를 남긴 데다가

1938년에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또다른 전쟁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키르히너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들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결국...

1938년 6월 15일, 스스로 심장에 총을 쏘아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새로운 예술의 출발점에서도 전쟁의 공포 한복판에서도, 온전치 않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치열하게 그리고 또 그렸던 그의 작품들.

지금의 우리에게 절망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남겨주기에 저에게는 더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의 춤추는 사람들이나,

선상 파티의 점심》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

불그스레한 뺨을 가진 여인들과 햇살 가득한 야외 정경이 떠오르는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사실 그의 그림 단골 소재로 '꽃'도 있었다는데...!


특히나 1869년 르누아르와 모네가 같은 꽃병에 같은 꽃들을 꽂고 그린 정물화를 보면...


모네는 꽃병을 화면에서 미묘하게 중심에서 벗어나게 배치하고, 탁자의 평면과 그 위에 놓인 다양한 과일들로 공간을 구축했다. 포도송이와 배가 담긴 바구니까지 추가하여 복합적인 공간 구성을 시도했다. 반면 르누아르는 정면적이고 직접적인 화면 구성을 택했다. 중앙의 주요 모티프가 화면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도록 배치하고, 빛이 닿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의 대비를 극명하게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강력한 인상을 만들었다. - page 267



개인적으로 르누아르 작품이 더 화려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그에게 꽃이란..


"꽃을 그리는 것은 나의 뇌를 쉬게 해준다. 인물 모델 앞에 있을 때와 같은 정신적 긴장을 꽃 앞에서는 느끼지 않는다. 꽃을 그릴 때 나는 색조를 놓고, 과감하게 색가를 실험해본다. 캔버스를 망칠까 봐 걱정하지 않고 말이다. 인물화에서는 모든 것을 망칠까 두려워 감히 그런 실험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실험에서 얻은 경험을 나중에 내 그림들에 적용한다."


르누아르의 꽃 정물화는 한 예술가의 평생에 걸친 탐구와 실험의 궤적을 마주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예술 철학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었던 꽃 정물화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전해주고 있었음에,

그래서 그의 꽃 정물화가 유난히 제 마음을 예쁘게 물들였습니다.


"그림은 즐겁고, 아름답고, 예뻐야 한다. 그렇다, 예뻐야 한다. 세상에는 이미 불쾌한 것들이 충분하니, 우리가 더 만들어낼 이유는 없다."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던 우리가 사랑한 화가들의 이야기.

오히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그의 그림에, 그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던...

책을 덮은 이 순간에도 화가들이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까 자꾸만 기웃거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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